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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류 도진과 그의 단 하나뿐인 해에 관한 이야기.

 
8화. 빛나지 않는 해.
작성일 : 18-12-24 22:22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7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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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불어닥치는 바람에는 숲의 초록 내음이 배여 있었다. 소담한 절에서 은은하게 부딪히는 종의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한데 어우러져 합주처럼 들렸다.

 

  잘 닦인 돌계단에 걸터앉은 일곱 살 무렵의 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동자승도 아닌데, 해는 사탕 하나 입에 물지 않아도 아주 얌전했다.

 

  「 오래 기다렸지? 」

 

  연주는 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가까이 온 그녀에게서 향냄새가 살포시 났다. 해가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빤히 연주를 올려다보는 색소가 옅은 눈동자는 자신의 아이임을 명확히 알려줬다.

 

  그녀는 옆에 앉아 해를 자신의 다리 위로 앉혔다. 작은 아이인데도 인간으로 산다는 건 가볍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해야. 」

 

  연주는 조금 힘차게 이름을 불렀고 아이는 고갤 들어 제 엄마를 보았다. 맑은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해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닦았다.

 

  「 엄마, 괜찮아. 」

 

  버릇처럼 연주가 해에게, 어쩌면 자신에게 되뇌던 말을 고작 일곱 살 된 딸아이가 영문도 모르면서 저를 위로한다.

 

  벌써 이런 말도 할 줄 알다니. 벌써 이렇게나 자랐다니. 연주는 터지려는 울음을 참으며 해를 끌어안았다.

 

  「 해야, 엄마 말 잘 들어. 」

  「 응. 」

 

  연주는 품에서 잠시 꺼낸 해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곤 볼을 감쌌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하고 엄한 빛을 눈동자에서 발산했다.

 

  「 엄마가 만약 죽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여기로 달려오는 거야. 」

 

  죽음의 뜻을 아는지 아이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연주는 답을 들어야 했다.

 

  「 해야, 꼭 그래야만 해. 알겠지? 엄마랑 약속할 거지? 」

 

  제 엄마를 위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는 조금 안심한 얼굴로 다시 해를 끌어안아 토닥였다.

 

  「 오래 살 거야. 엄마, 오래 살 거야. 부처님한테 매일 기도하고 있잖아. 」

 

  연주는 여린 미소를 지으며 겁먹은 아이를 달랬다. 토닥이는 그녀의 손길에는 아이보다 더 간절한 소망이 품어져 있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008

 

 

 

  “우와, 누나. 내 선물 하나 안 사 왔어?”

 

  지호가 잔뜩 섭섭한 표정으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살 것도 없었어. 그냥, 바다였어.”

  “그래도 내가 누나 일 대타로 해줬었는데.”

 

  지호는 흘깃 애를 바라보았다. 해는 남에게 신세 지는 걸 싫어했다. 엄청난 빚이라도 진 듯 굴었다. 책을 정리하던 손길이 잠시 멈칫했다.

 

  “알겠어, 일 끝나고 맛있는 거 사줄게.”

 

  목적을 달성한 지호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럼, 뭐어. 그걸로 만족할게.”

 

  새침한 말투와 달리 목소리는 신이 난 게 잔뜩 느껴졌다. 해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일이 끝나는 시간가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지호는 맞은 편에 앉아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연신 흥얼거렸다. 연습장 하나를 펼쳐 놓고 펜을 똑딱이며 쓰는 모습이 꽤 즐거워 보였다.

 

  “요즘도 공연해?”

  “응. 가끔. 여름보다는 사람 수는 적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야겠다 싶어서.”

 

  지호는 이럴 땐 제법 어른스러운 얼굴을 했다. 지호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예술가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길거리 공연을 했다.

 

  “다음에 누나도 보러 와 줘.”

  “추워.”

  “내가 핫팩 열 개는 쥐여줄게. 나중에는 덥다고 버릴걸.”

 

  지호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었다. 뭐든 잘 해낼 수 있으면서 겁이 많아 망설이는 도진과 달리, 지호는 그 어떤 구김살도 없이 밝고 또 씩씩했다. 게다가 뭐든 다 이뤄낼 거라는 자신감도 엄청났다. 도진이 좀 배워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런 건 배울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

 

  다정한 아버지와 강단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인 것 같아, 해는 조금 들뜬 얼굴로 버스킹 이야기를 하는 지호를 보고 조금 씁쓸하게 숨을 삼켰다.

 

  마지막 정리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자,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갔다.

 

  “으아, 춥지? 누나. 뭐 먹지? 뭐 먹으러 갈까?”

  “너 먹고 싶은 걸로.”

  “뭐 먹지, 뭐 먹지.”

 

  발을 동동 굴리며 고민하던 지호가 생각났다는 듯 걸음을 재촉했다. 멀지 않은 곳은 시내였고, 지호가 해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2층짜리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연말 분위기로 반짝반짝한 전구들이 걸려 있고 캐주얼한 느낌이 드는 내부의 분위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손님들은 대학생이었다.

 

  “누나, 뭐 먹을래? 여기 목살 스테이크도 맛있고, 해산물 칠리 파스타도 괜찮아. 아, 필라프도 괜찮은데.”

 

  지호는 펼친 메뉴판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네가 먹고 싶은 걸로 두 개 시켜.”

 

  잠시 고민하던 지호는 금세 버튼을 눌렀다. 도진 같았으면 10분 내내 “음- 이거?”하고 눈치 보고 결국 답답해진 해가 시켰을텐데.

 

  주문을 받으러 온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를 단정히 입고 있었다. 작은 꽃들로 연결되어 있는 머리띠에 홍조 빛으로 물든 볼이 스무 살이라고 티 내듯 귀여웠다.

 

  “목살 스테이크 하나랑요, 해산물 칠리 파스타 하나 주세요. 음료수는 오렌지에이드 하나만 주세요.”

  “아,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여자아이는 지호의 눈을 제대로 보며 또박 또박 다시 읊었고, 지호는 “아, 네. 맞아요.”라며 다정히 웃었다. 볼이 더욱 붉어진 걸 지호는 모르곤 시선을 돌려 해를 바라보았다.

 

  “누나 입맛에도 맞으면 좋겠는데.”

 

  지호는 목에 두르고 있던 짙은 갈색 목도리를 풀고 검은색코트를 벗었다. 굵은 실로 짜인 베이지색 니트가 아주 잘 어울렸다. 도진의 얼굴에 익숙해져서인지 웬만한 잘생김에는 면역력이 생겼던 해는 그제야 지호가 꽤 잘생겼구나를 인식했다.

 

  옅은 갈색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에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귀여우면서도 시원한 인상이었다. 약간 쳐진 눈초리의 검은 눈동자는 소년의 것을 훔친 듯 순수했고, 붉은 입술은 어른의 향기를 품은 듯 촉촉했다.

 

  어딜 가나 시선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레스토랑에서 돌아오는 시선들은 부러움과 시기로 뭉쳐 있었다.

 

  “누나, 사람 많은 거 싫지?”

  “응.”

  “미안, 다음에는 조용하고 사람 없는데로 할게. 내가 생각이 짧았어. 여기 분위기 좋은 것만 생각하고.”

 

  지호는 두 손을 살짝이 모으고는 꽤 진지하게 사과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웅크러진 해의 어깨가 신경 쓰인 듯했다. 해는 고갤 저었다.

 

  “나만 너무 칙칙해서.”

 

  패딩 점퍼 안에 검은색 맨투맨 티에 어두운 청바지, 단조로운 스니커즈까지.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과는 달리 주변의 다른 여자들은 예쁘게 단장한 차림이었다.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오고 SNS에 사진을 올렸을 것만 같은 좋은 장소. 거기에 걸맞은 여성스러운 복장까지. 사실 이 모든 건 해와 어울리지 않았다.

 

  “에이. 누나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예뻐.”

 

  물을 마시던 해가 사레가 걸려 캑캑 거렸다. 지호가 다가와서 등을 쳐주려고 하자 해가 됐다고 손사래를 쳤다.

 

  “왜 이렇게 놀라?”

  “놀란 게 아니라, 질색 한 거야.”

  “왜? 예쁜 사람한테 예쁘다고 하는데.”

 

  해는 정말인지 있는 힘을 다해 얼굴을 찌푸렸다. 지호가 풋-하고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해도 예쁜데.”

 

  능글맞은 이야기에 해는 싫다는 얼굴로 고갤 돌렸다. 류 도진이나, 박 지호나. 두 사람에게서 듣는 외모 칭찬은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지호는 마주한 해의 얼굴이 진짜로 예쁘다고 생각했다. 화사한 빛깔 하나 걸치지 않아도 그녀는 빛이 난다. 투명한 피부에 대조적인 검은색 단발머리가 마틸다를 연상시켰다. 긴 속눈썹의 커다란 눈동자는 깜빡일 때마다 반짝임을 쏟는 듯했다.

 

  8할을 차지하는 무표정한 얼굴이나 찡그린 얼굴은 냉소적인 느낌 대신 오히려 인형 같은 사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오늘 형은 어디 갔어?”

 

  그리고, 그 얼굴은 이 주제에만 미묘하게 변한다. 처연함도, 떨림도, 모르는 척하는 얼굴.

 

  지호가 썰어서 건넨 스테이크를 우물우물 먹던 해가 고갤 끄덕였다.

 

  “맛있어?”

  “응, 너도 먹어.”

 

  해는 그릇을 조금 더 지호에게 밀고는 식사를 했다. 조금 느린 해의 속도에 맞춰 지호는 이야기를 건네며 식사를 이끌었다. 간혹 해는 눈가에 웃음을 매달곤 했다. 새벽녘의 이슬처럼, 찰나였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누나, 내가 술 살게. 형도 없는데, 한 잔만 하고 가. 응?”

 

  그녀와 나누는 이 시간이 즐거웠다. 비워진 그릇에 옷을 챙겨 입던 해가 잠시 생각하듯 멈추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 말고 딴 데 가면.”

  “응? 당연하지. 내가 진짜 이번엔 잘 데려갈게.”

 

  지호는 그제야 코트를 챙겨 입었다. 수락하지 않았으면 안 나갈 거고 떼라도 쓸 것 같았던 얼굴이 금세 배시시 거렸다. 이럴 때 보면 류 도진과 닮았다. 배려를 잘 해주긴 하지만 결국은 고집쟁이 들이었다.

 

  어둠이 완전히 깔린 바깥은 더욱이 추웠다. 해가 패딩 점퍼를 목 끝까지 올리려고 주머니에서 손을 빼려고 하자, 지호가 목도리를 슥 감아주었다.

 

  “얼른 가자. 바로 이 앞인데.”

 

  목도리에서 옅은 향수 냄새가 났다. 가볍고 산뜻한 향은, 스포티한 남자 애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두 골목 정도 지나쳐 들어 간 술집은 작은 이자까야 였다. 커다란 텔레비전에 스포츠 중계 같은 걸 틀어 놓고 보며 간단히 술을 마시는분위기였다. 어두운 데다 켜놓은 흐릿한 조명들이 은은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오늘은 사장님이 없네. 여기 사장님이 텔레비전을 진짜 좋아하거든. 와이프가 맨날 일 끝나고 집 와서 티브이만 본다고 뭐라 하니까, 아예 돈 버는대서 보려고 술집을 차렸대. 그래서 가게도 크게 안 했대. 너무 바쁘면 못 보니까.”

  “사장님이랑 친해?”

  “응. 여기서 몇 달 아르바이트했었어.”

 

  소주 한 병에 꼬지 네 개, 가락국수 하나가 나왔다. 잔이 부딪히자 지호가 “짠, 짠, 짠.”하며 웃었다.

 

  맥주를 마시면 너무 추울까 싶어 시킨 안주와 술의 조합은 아주 좋았다. 술 약한 도진과 있을 때면 엄두도 못 내는 소주는 사실 해가 가장 잘 마시는 술이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누나랑 술 마시는 거.”

  “한 세 달전에 먹고 처음이니까.”

  “응, 한동안은 진짜 누나랑 아빠랑 많이 마셨는데.”

 

  도진은 미뤄진 영화 하나가 예정되어 있는 영화 스케줄과 꼬여 근 1년 가까이 정말 정신없이 바빴고 그 사이에는 선우를 만났다. 그게 약 8개월 전의 일이고, 지호와 알게 된지 이제 반 년쯤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선우가 살뜰히 해를 챙기면서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자 지호는 해를 친누나처럼 따랐다. 일하는 시간에도 찾아왔고 마치고는 선우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곤 했다.

 

  “처음 누나 봤을 때, 누나 진짜 싫어했는데.”

  “왜?”

  “그 책방은 진짜 오로지 엄마 거였거든. 엄마는 아르바이트생도 한 번 안 썼어. 문 연지 2년이 다 돼가도록. 근데 그런 엄마의 공간에, 낯선 사람 있다는 게, 아빠가 받아들였다는 게 뭔가 배신 같기도 하고. 아직 난 마음 정리도 못했는데 아빠는 벌써 잊은 건가 싶기도 했고."

 

  지호는 술잔을 매만지며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솔직히 말했다. 해는 고갤 끄덕였다.

 

  “내가 애 같았지 뭐.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엄마의 책방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애써준 걸 텐데.”

  “응.”

  “지금은, 그 책방을 누나가 맡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고마워.”

  “됐어.”

 

  해가 잔을 들자 지호가 금세 잔을 부딪혔다. 술이 한 잔, 두 잔 늘어가고 테이블 위에 병도 조금씩 늘어갔다.

 

  “어!”

 

  지호가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고 해는 고갤 돌렸다. 텔레비전 한 가득히 도진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으으, 잘생겼다 잘생겼어. 류 도진, 진짜 멋있지 않냐?”

  “말이 필요해? 와, 내가 저렇게 생겼으면 진짜.”

  “꿈도 꾸지 마, 오징어.”

  “대왕 오징어, 닥쳐.”

 

  투닥거리는 남자들의 대화를 엿들은 지호는 재밌어하며 조용히 해에게 속삭였다.

 

  “이럴 때 자랑스럽지 않아?”

 

  대답 대신 술 한 모금 삼켰다. 이보다 더 쓸 수가 없었다.

 

  “사실 아직도 신기한데. 누나랑 형이랑, 그렇게 가까운 사이라는 게.”

  “별로 안 가까워.”

  “에이, 거짓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는 사이는, 인생에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지호는 똑똑히 기억했다. 선우와 해에게 향하는 눈빛과 달리,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시선은 경계심을 내포한 맹수의 것이었다.

 

  “스토리 없어? 두 사람의 막 운명적인 만남.”

  “없어.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게 더 이상해. 친구나 오빠 동생 사이도 아니고.”

 

  수상하단 눈빛을 흘기는 지호를 보고 해가 툭 발로 종아리를 찼다.

 

  “네가 더 이상해, 관심 갖지 마.”

 

  원래 방어적이지만, '도진'의 이야기에는 방공호에 들어가도 안심하지 못하는 것 마냥 더욱이 꼭꼭 숨겼다.

 

  “짝사랑?”

  “한 마디만 더 하면 집 간다.”

  “알았어, 알았어. 냉정하기는.”

 

  두 손을 든 지호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러 잠시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눈은 텔레비전에 고정되었다. 시상식 카메라에 틈틈이 잡히는 얼굴은 무어라 더 칭송할 것 없었다.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지만, 현장에서 분명 수많은 여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저 그가 미소 짓고, 손들고, 또 그곳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제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그에게 자신은 역린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해는 더욱이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전화기가 울렸다. 화면 속에 도진이 잡히고 있으니 도진은 아닐 테고, 전화받으러 나간 지호도 아니라면.

 

  해는 손끝이 떨렸다.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힘을 주어 꾹 쥐고는 플립을 열었다. 닳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댔다.

 

  "-윤 해씨?"

 

  성을 붙여 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네."

 

  해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겨우 끄집어 냈다. 시야 가득히 밝은 빛을 뿜어내는 도진이 무대 위로 올라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의 뒤로 차마 쳐다볼 수 없는 광휘의 날개가 펼쳐진 듯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어둠은 늘 그랬듯 아주 가까웠다.

 

  "-김동민 변호사입니다. 오랜만에 연락드렸는데, 이런 이야기를 드려 죄송합니다만 상황이 조금 긴박해서."

  "네."

  "-아무래도 아버님이 출소하실 것 같습니다."

 

  이것 봐. 도진아.

 나는, 지옥에서만 뜨는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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