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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류 도진과 그의 단 하나뿐인 해에 관한 이야기.

 
7화. 나는 그대가 아프다.
작성일 : 18-12-24 21:53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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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야. 갈 데가 있어.」

 

  도진은 평소보다 조금 더 들떠 보였다. 비눗방울을 쫓아다니는 아이처럼 연신 헤헤 웃는 모양새가 해는 의심스러웠다. 류 도진이 지나치게 기분이 좋은 건 해에게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도진이 내민 안대를 한사코 거부했지만 고집을 이길 순 없었다.

 

  「류 도진 진짜 싫어. 떼쟁이, 왕고집, 불통 할아버지.」

 

  심술궂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는데도 도진은 '아닌데, 아닌데'라고 반복하며 제 손을 꼭 붙들고 걸어갔다. 지쳐서 두 손 두 발 드는 건 늘 그렇듯 해였다. 상황에 순응하고 나자 온몸의 감각들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

 

  도진이 손은 꽉 쥐어서인지 긴장해서인지 조금 축축했다.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 그에게서는 어울리지 않는 딸기향이 났다. 민트향 치약이 맵다고 투정 부려 어린이 치약을 사다줬더니 계속 잘 쓰는 모양이었다.

 

  「내리자.」

 

  달리던 자동차가 멈추고 해는 더듬더듬 발을 내밀었다.

 

  「자, 조심히 걸어갑시다.」

 

  마음 같아선 홱 안대를 벗고 싶었는데 도진이 너무도 상냥하게 두 손을 잡고 걸어가 해는 얌전히 따라주었다. 한없이 어두운데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손가락이 서늘한 것에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도진이 해의 손을 놓고는 안대를 풀어주곤 그녀의 앞으로 후다닥 뛰쳐나가 빙글빙글 돌았다.

 

  「짠!」

 

  도진의 등 뒤로 펄쳐진 커다란 유리창에는 저 멀리 바다를 담아내고 햇살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천장이 이렇게 높고, 거실이 이렇게 넓은 집은 처음이었다. 은은한 빛깔의 벽지에 모던한 인테리어 가구들에선 센스가 엿보였다.

 

  「오늘부터, 해가 살 집이야. 그러니까, 해의 집.」

 

  해는 하, 하고 숨을 뱉었다. 털썩 쪼그려 앉은 해의 머리를 도진이 슬며시 쓰다듬었다. 감동받았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눈물이 났다.

 

  「이제 시작이야, 해야.」

 

  도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는데도 최대한 동요를 억누르듯 강직하기도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기 위해 노력할 거야. 너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 그러니까.」

 

  그는 말끝을 흐렸다. 해는 젖어드는 무릎만 아니었으면, 얼굴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을 테다.

 

  「그러니까, 받아 줘.」

 

  넌 얼마나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곳에서 떨어지는 건

 

  얼마나 한순간일까.

 

 

 

  해에게서 소년에게

  007

 

 

 

  거센 빗소리에 해는 잠에서 깨고 말았다. 아직 방은 칠흑같이 어둡고 몸이 무거운데도 눈이 저절로 떠졌다. 슬리퍼를 신고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바다의 침대를 휩쓸어 갈 것처럼 굵은 빗방울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침대에 다시 앉았다.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켰다. 그녀는 빗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 머리야.”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을 뒤적거렸지만 약통은 이미 비워져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텔레비전 소리를 더욱 높였다.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도 짜증스러워 노래 나오는 채널이 없을까 하고 돌리던 중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

 

  “평생을 원하고 기도했던 것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건 얼마나 한순간일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때 절망은 보란 듯이 쏟아진다.”

 

  내레이션에 맞춰 화면의 영어 자막은 슥슥 바뀌었다. 웅장한 콘서트 장면이 흐려지면서 우아한 집의 거실의 영상이 덮어지고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이 장엄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꼭 필요한 요소였다.

 

  남자가 집 안의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다. 휘두르는 야구방망이에 모든 것이 힘없이 조각이 났다. 파편이 튀면서 스친 이마와 찢어진 손가락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림 같은 풍경을 망가뜨린 남자는 무너져 주저앉은 피아노 위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 ​

  “​이 곳은 지옥이었어.”

 

  히스테리컬 한 남성의 음성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잘생긴 남자 배우를 외국 영화제의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올린 영화인, 의 한 장면이었다.

 ​

  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나 한평생 살리에르 증후군에 시달리며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증오로 피아노를 치며 살아온 '윤'의 이야기였다. 완벽주의 감독이 '미친 배우'라고 칭찬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영화 수출이 잘 돼서 엄청난 돈을 받고 곳곳에 팔린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체감할 순 없었는데 지금 자막을 붙여 나오는 영화를 보자니 새삼 그의 위상이 와닿았다.

 

  돌아가는 클래식 음악은 고장이 나서 소리를 튕겨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아버지가 찬사를 받고, 그를 몰락시킨 피아노 소리는 잔혹했다. 파리한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팔을 들어 올려 눈을 가렸다.

 

  “미워한 게 아니었어.”

 

  그 존재가 피아노인지 아버지인지 음악인지 자신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남자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진의 영화 중 그녀는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봤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실제의 도진을 많이 닮아있다.

 

  “해야아!”

 

  혀가 약간 꼬인 목소리에 영화에 집중하던 해가 놀라 뛰쳐나갔다. 문을 열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도진이 "어?"하고 웃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아, 해다.”

  “너 술 마셨어?”

  “아? 그게, 자다 깨서 물먹으려고 했는데에. 그게 술이더라고오. 그래서 쪼오끔 마셨지.”

 

  캔 모양으로 된 물과 술을 헷갈린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빼놓으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사고 칠 줄이야. 도진이 문을 잡고 일어나더니 우다다 뛰어가 침대 위로 안착했다.

 

  “아이, 좋다.”

 

  비비적거리는 모양새를 보고 해는 한숨을 쉬었다. 도진은 일단 취하면 눕는 게 버릇이었다. 도진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갤 돌렸다.

 

  “어, 내 영화다아. 해야. 이거 보고 있었어? 나 보고 싶으면 나 보러오지이.”

 

  도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수줍은 척했다. 해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도진은 영화 속 자신을 빤히 보았다.

 

  이마의 상처를 꿰매고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남자는 피아노 악보를 태우고 있었다. 이젠 없어도 절로 손가락이 움직일 정도로 오래도록 보고 닳은 악보였다. 어떠한 글자나 숫자보다 더 먼저 보았던 음표들이 자신 안에서 부유한다.

 

  영화에 집중한 해의 손을 끌어당겼다. 힘 조절이 안돼서인지 코끝이라도 스칠 듯 가까운 거리에 도진의 얼굴이 있다.

 

  영화보다 더 현실감 없는 얼굴이었다. 저를 부르지 않는 입술, 휘어지지 않는 눈초리가 해에게는 낯설었다.

 

  “류 도진, 취했어.”

 

  해는 떼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벌리며 목소리를 냈다. 아주 작고 연약했다. 그는 해를 그대로 안았다. 자신과 똑같은 바디 클렌저향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컴컴하고 눅눅한 느낌이었다.

 

  “해야.”

 

  영화 속 '윤'은 너무 오래 지속된 절망에 익숙해져서 빛이 쏟아지는 쪽으로 가지 못하는 인물이다.

 

  “나의 해야.”

 

  도진은 제가 빛인지 안다. 제가 태양인지 안다.

 

  “나쁜 거 아는데. 내 욕심인 거 아는데.”

 

  도진이 그녀의 손목 대신 손을 잡았다. 얼마 만에 잡는 손인지 모르겠다. 해는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집을 사주었을 때부터.

 

  “나 버리지 마.”

 

  애처로운 목소리와 함께 어깨가 뜨겁게 젖어갔다.

 

  할 수만 있다면, 해는 도진의 뺨이라도 때려 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었다. 너를 보고 나를 보라고. 너는 외국의 외딴섬에 와도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인기 있는 배우이자 스타라고. 이런 리조트도 마음만 먹으면 빌릴 수 있고, 사람들이 평생을 걸려 모을 돈도 일 년이면 벌어 오고도 남는다고.

 

  너는 이제 더 이상,

  지옥에서 길 잃은 남자애가 아니라고.

 

  “류 도진.”

 

  해가 손을 빼려고 하자 그가 고갤 설레설레 저으며 더 손을 꼭 쥐었다.

 

  “안 가.”

 

  그가 고갤 들었다. 스물여섯이나 된 남자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서는 코와 눈은 새빨개졌고 볼은 퉁퉁 부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얼굴이었다.

 

  “아무 데도 안 가니까 손 좀 놔. 눈물 좀 닦자. 내 어깨 다 젖었어. 옷도 없는데.”

 

  해는 최대한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가 그제야 한 손만 놓아줬다. 해는 침대 옆에 높인 티슈를 뽑아 도진의 얼굴에 묻어 주었다. 그가 다른 손으로 더듬더듬 제 얼굴을 닦았다.

 

  “자자.”

 

  해가 그의 곁에 그대로 누웠다. 붉어진 눈동자에 저를 한가득 담는 도진을 피하기 위해 해가 먼저 눈을 감았다. 시선이 그대로 느껴지는 데도 해는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잡힌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몇 분이 흐르지 않았는데 색색 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자 그가 어느덧 잠들어 있었다. 술 먹고, 눕고, 투정 부리고, 잠드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 해에게 그 시간은 지구가 회전을 멈춘 기분이었다. 다시는 돌지 않을 듯.

 

  “류 도진.”

 

  그녀는 살며시 그의 이름을 입술에 품었다. 그는 잠에 푹 빠져 전혀 모르는 듯했다.

 

  “미안.”

 

  그녀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딱 하나.

 

  그가 행복해지는 것.

 

  “가야 해.”

 

  자신 없이,

  그가 행복해지는 것.

 

  그녀가 떨리는 눈꺼풀을 감았다. 얼마나 눈물을 삼켜냈는지 떨어지지 않는 눈물은 속눈썹으로 다 흡수되었다.

 

  그가 긴 세월 동안 이뤄낸 '영광'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길 원치 않았다. 그건 누가 뭐래도 그의 노력이고, 땀이고, 힘이었다.

 

  “너를 버리는 게 아니야.”

 

  그녀는 자신을 믿고 바라보는 도진을 언젠가 제게서 떼어내야 했다. 그게 자신의 임무이자 의무였다. 그녀가 숨기고 감추어 온 허락되지 않은 말을, 생에 단 한 번 말할 수 있다면, 지금뿐이었다.

 

  “내가, 너를…, 사….”

 

  그럼에도 뱉지 못했다. 그녀는 숨도 삼킬 수 없었다. 이토록, 아프다.

 

  내게 너는, 이토록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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