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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3023년: 두번째 판게아
작가 : 윤그루
작품등록일 : 2018.11.2

100년전, 세상은 망했다. 지구 대재앙이 일어나 지구상의 모든 걸 집어삼켰고, 동물과 식물과 무생물을 한낱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속에서도 살아남더라. 살아남아서, 그나마 지구에 남은 그 작은 땅덩어리에 다섯 나라를 짓고, 또 다시 사회를 시작하더라. 그런데 오늘, 3023년, 그 다섯 나라 중 우리나라가 망했다. 나라가 망하는거야 딱히 상관없다만, 그것 때문에 다쳐서는 안되는 아이가 죽게 생겼다. 그래서 싸워야겠다. 이 끝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다만, 일단은 이대로 흘러가게 두지는 못하겠다.

 
#2. 족쇄 (2)
작성일 : 18-12-24 21:42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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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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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세탁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흠칫 놀라며 시선을 돌리자, 흐리멍텅한 시야 사이로 누군가의 발이 걸어들어오는 게 보인다. 그 두 발은 땅을 울리며 계속해서 가까워지더니 내 코앞에서 멈춘다.

  “[이야, 이게 누구야?]”

  익숙한 목소리, 더러운 목소리다.

  힘겹게 고개를 비틀어 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이의 정체를 확인한다. 그곳엔 스티븐의 얼굴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소 짓고 있다.

  스티븐의 등장에 여자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스티븐 학생! 여긴 무슨 일로..]”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내가 한 평생 두려워했던, 한 없이 거대해보였던 저 여자가, 저 양아치 앞에서는 한순간에 무너지는구나. 이런 관계였다는 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허무함이 밀려온다. 이걸 알면서도 저런 위치에 있는 애를 건든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애를 반 죽여놓으셨네요? 말을 많이 안 들었나봐요.]” 스티븐이 나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한다.

  여자는 당황하며 펜을 불안하게 딱딱인다. “[아, 그게.. 환각 증세가 다시 나타나는 것 같아서. 일전에 봤듯이 이 아이는 환각 증세를 보이면 무척이나 위험해지거든. 또 누구를 해칠지도 모르고.]”

  “[아, 환각 증세..]” 스티븐이 키득거리며 중얼거린다. “[그렇죠, 그 환각 증세 무섭죠. 저도 그것 때문에 벌써 세 번이나 얘한테 당했잖아요. 오늘은 정말 죽을 뻔 했다니까?]”

  이가 부득 갈린다. “[너...]”

  그런 내 앞에 태연하게 쪼그려 앉으며 스티븐은 흥비롭게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세 번이나 병원 밖에서 이상 증세를 보이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이 친구는 언제 다시 정신 병원으로 돌아가나요?]”

  “[에.. 스티븐 학생 부탁대로 최대한 빨리 격리시키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오늘 다시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여자가 말한다.

  “[음.. 좋네요. 다 좋은데..]” 그는 갑자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푸린다. “[생각해보니까 좀 너무 가혹한 거 같아. ]”

  “[수작 부리지 마.]” 내가 경고한다.

  “[왜 이래?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스티븐이 내 머리를 헝클이며 말한다. “[증상이 세 번 나타난 거 가지고 다시 병원으로 보내버리는 건 너무하잖아?]”

  “[무슨..]”

  “[그래서 내가 병원 규정을 좀 들여다봤는데.. 재미있는 규정이 있더라고.]” 그는 잠바 안쪽에 끼워뒀던 파일을 꺼내더니 여자의 책상 위에 던져놓는다. “[증상이 세 번 이상 나타나더라도, 환자가 24시간 책임자에서 300m 이내 거리에 머물 경우, 병원 외거를 허용한다. 맞죠?]”

  “[응..]” 여자가 머뭇거린다. “[그런 규정이 있긴 한데.. 그건 왜?]”

  “[그럼 얘가 책임자로부터 300m 거리 이내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병원으로 다시 안 돌아가도 된다는거네요?]”

  “[그치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해. 이 애 책임자인 내가 24시간 내내 이 주변에서 머물 수 만은 없는 노릇이고.. 병원에 내가 맡고 있는 다른 환자들도 있어서..]”

  “[그럼 그 책임자, 제가 하죠.]”

  소리라도 확 질러 버리고 싶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지가 실컷 신고해놓고 왜 또 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거냐고. 그러나 그럴 기력이 남아 있지는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미친 듯이 떨리는 주먹을 그대로 두는 것 뿐이다.

  여자 역시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뭐.. 뭐라고?]”

  “[그 책임자, 내가 하겠다고요. 쟤나 나나 계속 이 학교에 있을 테니 웬만해서 300m 보다 멀리 떨어질 일은 없을 거고. 증상 나타나는 거 같으면 내가 바로 신고하면 되니까. 그럼 이제 그쪽에서 나한테 책임자 자격만 주면 끝나는 거 아닌가?]”

  “[그..]”

  “[우리 아버지가 그쪽 병원에 해준 게 얼만데 설마 나한테 자격증 하나 못 주는 건 아니죠?]” 그가 씩 웃으며 내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때, 강해일? 괜찮지 않아? 너한텐 나쁘지 않은 제안일 텐데.]”

  솔직히 말해서 반박할 수는 없다. 다시 그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서 유진이와 카를과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면, 난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어때요? 가능해요?]” 스티븐이 묻는다. “[뭐, 불가능해도.. 가능해야 할 거예요. 내가 기대를 아주 많이 하고 있거든.]”

  “[그.. 그럼! 당연히 가능하지. 지금 당장도 가능한걸?]” 여자가 애써 웃어보인다.

  “[신속해서 좋네요. 그럼 지금 이 시각부터 강해일 책임자는 제가 하는 걸로 하죠. 필요한 서류는, 뭐, 그쪽이 병원으로 돌아가셔서 마저 처리하시고. 일단 인수인계부터 빠르게 할까요?]”

  “[어.. 어, 그래.]” 여자가 횡설수설하며 바쁘게 파일을 뒤적인다. “[그.. 이게 증상 기록 파일이고, 이게..]”

  “[아니, 그런건 관심 없고.]” 스티븐은 여자의 말을 멈추고서 그녀의 손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인다. “[난 그것만 있으면 돼요.]”

  여자가 어리둥절해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그곳엔 은색의 스위치가 서늘하게 빛나고 있다. 그와 함께 내 등골도 서늘해져온다. 저거였구나, 저 자식이 이 난리를 피운 이유가.

  “[아.. 그래..]”

  머뭇거리는 여자의 손에서 은색 빛이 여기저기 뒹군다. 저걸 쥔 사람이 나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지금 그 빛이 스티븐의 손으로 넘어갔다. 스티븐의 입가에 찢어질듯한 미소가 드리워진다.

  “[이야, 좋아요.]” 그가 스위치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한다. “[그럼 그쪽은 이제 나가보시죠? 할 일은 다 끝난 거 같은데.]”

  ”[그.. 그런데-]”

  “[내 말 안 들려요? 나가라고.]”

  방 안의 기운이 스위치의 빛만큼이나 서늘해진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여자는 결국 파일을 모두 챙겨서 세탁실 밖으로 향한다.

  수많은 감정들이 오간다. 한 없이 나약해진 여자에 대한 통쾌한 감정. 이렇게도 손쉽게 넘겨질 수 있는 나의 주권에 대한 분한 감정.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안도의 감정.

  “[일어나. 언제까지 그렇게 자빠져 있을 건데?]” 스티븐의 목소리가 적막한 가운데 울린다.

  나 역시 계속 이 굴욕적인 자세로 있는 건 싫기에, 땅을 짚고 힘겹게 일어나본다. 오기로 버티며 책상을 잡고 일어나니 휘청거리면서도 얼추 서 있을 수는 있었다.

  “[오, 그래도 일어나네?]”

  “[너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이거.]” 그가 손에 들린 스위치를 당연하단 듯이 흔들어보인다. “[너 내가 이게 얼마나 가지고 싶었는지 알아? 뭣도 아닌 사배자 주제에 도도한 척 하는 그 꼴, 내가 진짜 꼭 눌러주고 싶었다고.]”

  헛웃음이 픽 나온다. “[뭣도 아닌 사배자를 못 이겨 먹은 게 그렇게 안달이었나 봐? 세상 사람들 다 니 맘대로 주물러봐야 적성이 풀리나보지?]”

  “[그래, 맞아. 아까 봤듯이 난 그럴 능력이 되거든. 이젠 너도 곧 그에 포함될거고.]”

  스티븐의 손이 스위치의 버튼을 하나 누른다. 스위치에서 작은 홀로그램이 하나 나오더니 깨알 같은 글자들이 바쁘게 떠오른다.

  “[책임자가 이전되는 것에 대한 동의서야. 법이 쓸데 없이 잘 되어 있어서 환자 동의도 필요하더라고?]” 그가 홀로그램을 내 쪽으로 들이밀며 말한다.

  홀로그램의 아래쪽에는 지문을 찍는 곳이 보란듯이 빛나고 있다. 내 손으로 내 주권을 넘기라고 강요하듯, 당당하고 예쁘게.

  “[어쨌든 너도 그 병원으로 돌아가기는 싫잖아.]” 스티븐이 계속해서 말한다. “[거기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냥 이 스위치를 나한테 넘기는 게 낫지 않겠어?]”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하긴 뭐, 어쨌든 그렇게 될 일이라면 빨리 끝내는 게 나을지도.

  홀로그램을 잠시 멍하니 쳐다본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깨알 같은 글자들에 내 정신 마저 매료되는 듯 하다. 손이 천천히 올라간다. 글자들에 매료된 채, 나는 손의 떨림을 억누르며 홀로그램에 엄지를 가져다댄다.

  “완료되었습니다.” 예쁜 여성의 목소리가 말한다. 그와 동시에 스티븐의 얼굴에도 이제껏 본 적 없는 미소가 지어진다.

  “[만족해?]” 내가 반쯤 풀린 눈을 올리며 묻는다.

  “[아주.]”

  뭘 더 어찌할 틈도 없이 스티븐이 날 뒤로 밀치더니, 스위치의 버튼을 누른다. 고통의 쓰나미가 또 다시 나를 덮친다. 이제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간절한 껄떡거림이 숨 사이를 오갈 뿐이다.

  “[이 느낌 잘 기억해, 강해일.]” 스티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부터 이건 그 여자가 아니라 내가 내리는 고통일 테니까.]”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다. 가루가 되어 없어진다면 딱 이런 느낌일 것 같다.

  “[그니까 앞으로 내 앞에서는 빌빌 기어다니라고. 한번만 더 그 같잖은 눈깔이 내 눈동자와 마주치는 날에는, 눈깔을 도려내는 것 만큼의 고통을 선사해줄테니까. 알겠어?]”

  난 왜 항상 이런 식일까. 왜 이 철제 팔찌의 저주의 걸려 누군가의 아래에 머물러야 하는 걸까. 이 세상의 부모 없는 애들은 원래 다 그런 건가.

  “[대답해!]”

  “[아... 알아들었어.]” 내가 간신히 내뱉는다.

  철제 팔찌가 다시 차갑게 식는다. 또 다시 바닥에 널부러진 나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며, 스티븐이 내 볼을 두어번 건드린다.

  “[아, 그리고 내일 댄스 파티는 꼭 와. 기왕이면 좀 예쁘게 차려서. 거절하면.. 알지?]” 그가 스위치를 보이며 말한다. “[내일 보자?]”

  스티븐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간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사라짐과 동시에 방이 새까맣게 변한다.

  유치한 자식. 불까지 끄고 가냐.

  일어나야 한다. 나도 일어나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기력이 없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게 멈췄으면 좋겠을 뿐이다.

  세상이 어두워진다. 세상이 어두워지도록 그대로 둔 채, 내 정신은 암흑 속으로 젖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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