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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유해화합물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이건 금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의 정의를 다르게 쓰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8화. 좋아해요.
작성일 : 18-12-24 21:26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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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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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갤 돌린 곳에 여자 셋이 있었다.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진하게 화장을 한 여자가 찡그린 눈을 뜨며 다가왔다.

 

 “맞지? 예일 학원 김아현?”

 

 아현은 손가락이 떨려 더욱 핸드폰을 꽉 쥐었다. 생글 생글 웃는 얼굴임에도 적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와, 너 맞구나. 학원 쌤들한테 소식 들었는데, 엄청 살 뺐다고.”

 “성형도 한 거야? 진짜 예뻐졌다.”

 “그런 건 민망하게 왜 물어. 했다고 하겠어? 살 빠지면서 생겼다고 하지.”

 

 셋은 지독하게 괴롭혔다. 늦게 미술을 시작해 예고에 떨어지고 인문계를 다니는 아현을 무시하기도 하고, 일진인 친구들한테 말해 아예 대놓고 왕따 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툭툭 발로 차는 것은 기본이었고 남들이 듣긴 ‘미대’였겠지만 실은 ‘미술 돼지’의 줄임으로 불렀다. 남자애들은 쉽게 외모를 비하했고 여자애들은 쉽게 조롱했다. 셋은 학원 화장실에 아현이 있는 걸 알면서도 밖에서 ‘주제도 모르고 오빠한테 친한 척하잖아, 돼지 같은 게.’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아현은 진석의 담당 학생이어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그랬다. 똑같이 진석의 담당인 예쁜 여자애한테는 오히려 굉장히 사근사근하게 굴었다. 조소과여서 부럽다면서.

 

 수시로 지원해서 실기까지 합격하고 나서 아현은 이를 꽉 물고 다이어트 했다. 식욕 억제제도 먹고 새벽엔 요가를, 저녁엔 PT를 받으며 네 시간씩 운동하고 간이 되지 않은 음식만 섭취했다. 예뻐지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보게 되면 당당하게 어깨 펴고 “잘 지냈니?”하며 웃어주려고 마음먹었는데, 예기치도 못하게 만나니 질끈 올려 묶은 머리에 땀에 지워진 화장에 편하게 입은 반팔의 청바지가 신경 쓰이고 그녀들의 시선은 화살처럼 제게 꽂혀 들었다.

 

 “안 그래도 진석 오빠 근처에 있다던데, 혹시 둘이 만났어?”

 “아, 응.”

 “섭섭하다. 우리 좀 부르지. 오빠 너무 독차지 하는 거 아냐?”

 

 그 때로 돌아간 듯 심장이 쿵쿵 뛰고 입술이 바짝 바짝 말랐다. 오지 않는 진석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아, 곧, 나올 거야. 화장실 잠깐 가셔서. 난 이제 갈 거라서.”

 “같이 놀다 가.”

 “그래, 어떻게 살 뺐는지도 좀 알려주라. 요새 나도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아현은 마른 허리를 잡으며 말하는 여자애를 봤다. 늘씬한 하체와 달리 아현은 볼륨감 있는 가슴 때문에 상체가 살집 있어 보이는 게 콤플렉스였다. 오버핏의 옷을 입으면 그만큼도 제 덩치처럼 보여 더욱이 붙는 옷만 입었다. 여자애들이 저를 스캔하고 꼬집어 말하는 것 같아 몸에 더 긴장이 되었다.

 

 “나, 가볼게. 쌤한테는 먼저 간다고 말해줘.”

 “진짜 가려고? 아쉽다. 다음에 꼭 같이 놀자.”

 

 손을 흔들며 상냥한 척 하는 가식적인 얼굴들에 아까 먹은 것들이 체해서 올라올 것만 같았다. 아현이 몇 발 옮기지도 않았는데 등 뒤로 비웃음이 들렸다.

 

 “쌤이 뭐냐, 아직도. 순진한 척도 정도껏 해야지.”

 “저래놓고 오빠 앞에서는 졸라 몸으로 들이대는 거 아냐?”

 “예뻐졌다고 하도 난리여서 궁금했는데. 내가 훨씬 낫지 않냐?”

 “넌 코랑 이마했잖아.”

 “미친년아, 그거 비밀이라니까.”

 

 속닥대는 건지 떠드는 건지 알 수 없다. 아현은 비참했다. 꾸미지 않고 저 애들을 만나서 기를 못 죽여서가 아니라, 제가 아직도 이렇게 아무 말도 못하는 게.

 

 “아현아.”

 

 목소리에도 온도가 있다면 이건 끓어 넘칠 것 같은 온도다. 고개를 돌아본 건 여자 셋도 마찬가지였다.

 

 보고 싶었던 얼굴의 남자는 모래사장을 무너뜨리는 파도 같은 미소를 그렸다. 순간 셋은 넋을 잃고 쳐다봤다. 성큼 성큼 걸어가는 남자는 애교 어린 눈으로 보는 쪽으론 아예 시선도 주지 않았다.

 

 눈앞에 가득 차오른 남자는,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지금 못생긴 얼굴일 텐데, 미움으로 범벅되어서.

 

 “오늘도 진짜 예쁘다. 또 반했어.”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

 

 “보고 싶어서, 못 참겠어서, 그냥 달려왔는데. 좀만 더 일찍 올 걸 그랬다, 그치?”

 

 안되는데. 눈물이 인내심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세 사람에게 아현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품에 가두듯 돌려 세워 걸음을 옮겼다. 어깨를 다정스레 잡고, 꿀물 같은 눈빛으로 내려 보며.

 

 골목을 돌아서자마자 그는 아현에게서 손을 뗐다. 언제부터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초라한 자신을 들킨 것만 같아 것도 서러웠다. 왜 이런 못난 모습을 많이 보이게 되는 걸까.

 

 “멋대로 행동해서 미안.”

 

 진심을 다해 고갤 저었다. 그는 숨을 조금 낮게 쉬며 등을 토닥거렸다.

 

 “아현아, 너 진짜 예뻐. 얼굴도, 마음도, 존재가 전부.”

 

 이제야 평소의 그의 목소리 온도다. 겨울 날 손에 쥔 따뜻한 두유 병 같은.

 

 “너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마. 너를 알아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너를 믿고 살아.”

 

 이런 사람을 어떻게 안 좋아해요.

 

 “나 같은 사람 좋아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안 좋아할 수 있는데요?

 

 

 나붓이 얼굴에 내려앉는 햇살에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깜빡일 때마다 천장의 색은 농도가 더 짙어졌다.

 

 핸드폰은 어디다 뒀지. 잠은 몇 시에 잤지. 머리가 띵했다. 조각난 잔상들이 스치듯 눈앞에 펼쳐졌다.

 

 ‘좋아할 건데요.’

 

 뭉개지고 헝클어진 발음.

 

 ‘오빠도 저 좋아해주면 안돼요?’

 

 번졌다 지워지는 웃음.

 

 ‘오빠. 다 가져도 되요.’

 

 저도 모르게 번쩍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리면서 제 몸을 내려 봤다. 티는 벗고 속옷은 입은 채였고 청바지는 단추만 풀어져 있다.

 

 “미쳤...”

 

 머리를 푹 이불에 박았다. 이럴 수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패닉에 빠졌던 아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상황을 정리했다.

 

 옷을 그래도 입은 상태면 별 일 없었던 거겠지?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의 말에 괜히 울컥해서 “그럼 술이나 해요!”하고 질렀다. 앞장서서 술집에 들어가 얼굴을 대충 정리하고 나와 앉으니 술도 깨고 정신도 들어 창피했다.

 

 그래서 괜히 민망함을 타개하러 오늘 미술학원 선생님을 만났는데 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과의 관계까지 말하게 되었을 쯤엔 다시 마신 술이 아까의 것과 합쳐져 금방 취기가 올랐다.

 

 ‘내가 바보 같이 군 게 속상한 거지, 걔네가 여전히 그렇게 유치하게 구는 게 화나서 그런 게 아니에요.’

 ‘왜, 화내도 되고 걔네한테 사과하라고 해도 돼. 넌 걔들 미워해도 돼.’

 

 그 말에 다시금 눈물이 났다. 반칙일 정도로 멋있었다.

 

 ‘난 진짜 안돼요?’

 

 구차해진 이 구간은 스킵하고 싶다.

 

 ‘아직 잘 모르잖아요. 만나다 보면 또 좋아질 수도 있고. 기회를 줘요. 잘해줄게요.’

 

 김 아현, 자존심 다 갖다 버렸어?

 

 다시금 부은 얼굴로 울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러고 언뜻 방에 누워 덥다고 습관처럼 옷을 벗었던 기억이 났다.

 

 다행이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고개를 들어 방 안을 살폈다. 깨끗하고 넓은 방에 얇은 커튼 새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아무래도 호텔 같다.

 

 필름 끊기는 날 잘 없는데. 부모님 걱정하겠다. 핸드폰을 찾으려 고갤 돌리자 바로 옆 스탠드가 놓인 탁자에 나란히 핸드폰과 생수병이 있었다. 침대 위에 놓인 반팔티를 입고 단추를 채우고 몸을 뻗었다.

 

 부재중 통화 엄청 쌓인 건 아닌가 하고 불안한 마음에 켜자 문자 한 통 와 있었다. 소현이었다.

 

 [엄빠한테 말했음. 오늘은 일찍 들어왕.]

 

 뭐지? 그 위의 대화를 올려 봤다. [언니 어딤? 왜 안 와?] [친구 집에서 자고 갈게]

 

 술 취하고도 멀쩡한 척 보낸 자신을 보며 소름 돋았다. 안 취한 척 하는 게 주사라 큰일이다. 아현은 생수 뚜껑을 열려고 힘을 줬는데 뚜껑은 그 전에 딴 적이 있는 것처럼 쉽게 돌아갔다.

 

 분명 그의 친절이다. 하- 한숨을 푹 내쉰 아현이 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 욕실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씻고 다시 옷을 입고 머리엔 수건을 두른 채 나오는데, 그 때 삑, 소리가 울렸다.

 

 고갤 돌려보니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어, 어? 아현은 당황해서 수건을 풀어 얼굴을 가렸다.

 

 “일어났네.”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비슷했다.

 

 “여기 근처에 친구가 맛있다고 한 샌드위치 집 있어서 사왔는데 먹어볼래?”

 

 차놓고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예요? 속이 좋은 거예요? 희망 고문이에요? 뭐예요? 사람이 왜 그래요? —하고, 울컥 치밀어 오르는데 어제 울어서 부은 것도 모자라 민낯인 얼굴을 내밀지 못하겠다.

 

 “아현아.”

 

 아. 대답해야 하나.

 

 “아침 원래 챙겨 먹는다며.”

 

 눈만 슬쩍 내려 보자 그가 손에 든 비닐을 흔들며 웃었다. 스미는 햇살을 후광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믿기지 않게 예쁘다. 이렇게 예뻐도 되나 싶게.

 

 사람이 예쁘면 이렇게나 유리하다. 마음을 제멋대로 훔쳐가고 녹이고 주물럭거릴 수 있으니.

 

 그는 샌드위치를 먹기 좋게 꺼내서 내밀었다. 아현은 한 손으로는 수건으로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한 손으로 엉거주춤 받아들었다.

 

 “그냥 편하게 먹어.”

 “아. 아니. 괜찮아요. 이게 편해요.”

 “내가 눈 감고 있을까?”

 “아, 아니요.”

 

 그럼에도 그는 눈을 감았다. 눈 감은 얼굴은 빛이 고요히 어린 천사 같다. 미끄러지게 높고 선명한 콧대도, 붉고 매끄러운 입술도, —아, 천사라긴 너무 자극적인 얼굴이다. 오히려 악마다. 유혹하러 세상에 내보낸, 지상의 누구라도 다 사로잡을 악마.

 

 “아현아.”

 

 달싹이는 입술에 아현은 샌드위치를 놓칠 뻔했다.

 

 “네? 네?”

 

 당황한 목소리를 듣고서 그가 여리게 미소를 지었다.

 

 “한 달 동안 잘 부탁해.”

 

 한 달? 놓친 조각이 반짝 빛냈다.

 

 ‘한 달만 줘요. 기회든 시간이든. 그러고 아니면 진짜 더는 안 조를게요.’

 

 아.

 이 김아현. 잘했어, 진짜 너무 잘했어.

 

 “잘, 부탁드릴게요.”

 

 그가 눈을 떴다.

 

 다크 초콜릿 같은 눈동자는 쓴 맛과 단 맛에 저를 빠졌다 녹였다 정신 못 차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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