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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7
작성일 : 18-12-24 03:49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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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먹는 것 같은 집밥이었다. 가짓수는 편의점 도시락보다 초라했지만 두 공기나 비웠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씹는 와중에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느꼈다. 따뜻하다 못해 후끈했다. 찜질방에 갈 필요가 없었다. 평소보다 온도를 두 배로 올렸다고 수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분명 사무실에서 지냈는데 어디 밖에 노숙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유난을 떨었으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엄마도 올려주지 않는 반찬을 숟가락에 올려줬다. 꼭꼭 씹으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당분간 수지 집에 머물기로 했다. 부탁한 적 없는데 먼저 오라고 손을 잡아끌었다. 그동안 사무실에서 지냈다는 말에 질색하더니 괜히 자존심 부릴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장난스럽게 얘기했을 때 정색했던 사람이 맞나 싶다.

 

  “맛있냐.”

  “응.”

  “그래서 진짜 왜 나왔는데.”

  “껄끄럽잖아. 적과 동침은 불가능. 김지빈 그거 잘난 척하는 것도 보기 싫고.”

  “잘났잖아.”

  “아, 맞는데.”

 

  눈빛이 무서워 도로 밥그릇에 시선을 내렸다. 뼈를 때리는 대답에 몸이 꼬인다. 쥐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식탁에 있는 휴지를 몇 장 뽑아 입술을 닦았다.

 

  “낮에 말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를 빤히 바라보며 수지가 말했다.

 

  “박성우, 우리 병원으로 이전했어.”

  “어? 왜?”

  “모르지, 나야. 김지빈이 나한테 잘 부탁한다고 말하더라.”

  “김지빈도 만났어?”

  “그래.”

  “너 그쪽 담당도 아니잖아.”

  “내 과는 아니지만 내 직장이니까.”

  “걔는 왜 제 친구도 아니고 내 친구한테 잘 부탁한다, 어쩐다, 난리야. 그래서 뭐라고 했어?”

  “알았다고 했지 뭘 뭐라고 해.”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수지 때문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수지는 턱을 매만지며 의아해했다.

 

  “걔 피해자 개인사는 일절 터치 안 한다며, 의외네.”

 

  그러니까. 안 하는 짓까지 하는 거 보면 김지빈도 나름 이 판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

 

 

  동영상 증언을 한 노랑머리에게 전화했다. 박성우와 통화했을 때 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아느냐고 물었다. 역시 잘 안 들렸다고 대답했다. 그럼 그게 동준의 목소리 같으냐고 물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

 

  잠을 잔 지 두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눈이 떠졌다. 일어난 김에 산책할까 생각했다. 대충 얼굴을 씻고 이빨을 닦았다. 그 짧은 순간 쏟아지는 물이 김이 날 정도로 뜨거웠다. 시린 이가 적응되기 전이라 다행이었다. 검은 캡모자를 눌러썼다. 다섯 시가 넘었는데 밖이 어두웠다. 곳곳에 켜진 가게 불빛, 신호등 불빛,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하지 않은 채 발길 닿는 길로 움직이다 보니 익숙한 공원 앞이었다. 내가 아는 가장 편한 곳이었다. 답답한 일이 있을 때 마음 같아선 이름도 모르는 어느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데 가는 길을 몰라 가지 못했다.

 

  공원 의자에 조금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두 개를 샀다. 거실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수지가 졸린 얼굴로 물었다.

 

  “어디 갔다 와.”

 

  나는 봉지를 흔들며 멋쩍게 웃었다.

 

  “아이스크림 사러.”

 

 

  *

 

 

  학년마다 총 4개의 반이 있다. 한 반에는 25명의 학생이 있다. 1, 2반이 이과 3, 4반이 문과다. 과학실, 도서실, 교무실이 1층에 있고 미술실, 음악실, 방송실이 2층에 있다. 동준은 2반 이과생이다. 동아리 활동은 하지 않는다. 박성우는 가끔 수학 토론 동아리에 나간다. 정예찬은 방송부원이다. 카메라를 좋아한다고 학교 홈페이지 인적사항에 적혀있다.

 

  정예찬이 사건 당일 2층에 있었던 이유가 동아리 활동 때문일까. 그러나 방송실을 들어갔다 나온 자취는 없었다.

 

 

  *

 

 

  박성우가 뒤늦게 학교폭력은 주기적인 경우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리고 본인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CCTV에 찍힌 그 날은 동준에게 화가 난 상태였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고 덧붙였다. 이유는 동준이 먼저 얼굴 앞에다 비난했다고 한다. 실제로 CCTV 영상은 하나밖에 없었다. 경위가 어땠는지도 알 수 없었다. 조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

 

 

  설마 김지빈의 입김이 있었을까.

 

 

  *

 

 

  잠시 내 거처가 된 수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고 없이 김지빈을 만났다. 비슬비슬 진눈깨비가 날리던 시간이었다.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평소와 달리 멋스러운 하얀 목폴라에 검정 코트 차림으로 내 옆에 섰다. 티는 안 냈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가 이곳을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처럼 자연스러운 얼굴을 한 대 칠 뻔했다.

 

  재판에 대해 통보를 하러 온 표정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 특유의 나른한 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상하게 슬퍼 보이는 것도 같았다. 김지빈이 아무 말도 안 하는 사이 초록 불이 켜졌다. 건널 수 없었고 그게 한 번 더 바뀌어도 굳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세상엔 모르는 것투성이다. 김지빈도 그 안에 존재했다. 모르는 사람, 알 수 없는데 알고 싶지 않은데 알아야 할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바라보면 어쩔 수가 없다.

 

 

  어쩌라고 나보고.

 

 

  이렇게 마주 보면 뭐가 생기나. 이토록 김지빈을 적대시하게 된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재판 때문인지 단순한 열등감 때문인지 서운함 때문인지 그냥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것처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지빈이 내 손목을 잡았다. 잡고도 말이 없었는데 그냥 이러고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자꾸 생각나서.”

 

  숨이 멎는 것 같다. 김지빈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서. 왠지 다음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보고 싶은데.”

 

  손아귀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뿌리치고 귀를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그게 맥박으로 전해지면 어쩌나 문득 생각했다. 내가 떨고 있는 것을 김지빈이 눈치챈다면 무슨 기분일까. 손을 살짝 비틀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은 고요하기만 했다.

 

  “미친놈같이.”

 

  이해하지 못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대로 고개를 떨군 김지빈의 손이 결국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 같았다. 물론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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