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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용오름-영웅의 기준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18.12.6

슈퍼히어로 '용오름'이자 대학생인 정일은 여러 범죄를 해결하던 중 잠깐의 휴식을 가지며 친구들과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 정일을 갉아먹기 시작하는데...... 대홍수의 슈퍼히어로 시리즈 <증인들>의 첫 번째 이야기!

 
5화
작성일 : 18-12-23 16:52     조회 : 212     추천 : 0     분량 : 1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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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석은 러닝머신에 몸을 들이받았다. 물론 정석의 잘못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시속 25킬로미터로 달리던 중에 갑자기 기계가 꺼지면 누구라도 러닝머신을 들이받을 것이다. 기계를 끈 시아가 예상치 못한 참사에 소스라치게 놀라 펄쩍 뛰었다. 정석은 당연히 부상을 입지 않았고, 러닝머신도 크게 손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정석이 시아에게 화를 냈다.

 “야, 뭐 하는 짓이야.”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냐.”

 시아가 자신의 등 뒤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헬스장 회원들의 경악이 담긴 시선이 뒤늦게 정석의 가슴을 찔렀다.

 “일단 마스크 써. 빨리 나가자.”

 시아가 정석에게 마스크를 내밀었다. 슈퍼히어로 마스크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미세먼지 방지용 일회용 마스크였다. 정석이 마스크를 쓰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옷장에 넣어놓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정석은 시아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달았다.

 “반나절을 꼬박 달리고 있었네. 어쩐지 숨이 좀 차더라니.”

 정석이 눈을 문지르고 다시 시간을 확인한 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헬스장을 나왔다.

 정일이 실종되고 발견되는 사건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정일은 의사가 놀랄 정도로 뛰어난 회복을 보여 주었다. 정석의 옆구리에 박힌 나뭇가지가 완벽한 멸균이 되어 있었기에 2차 감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도 상당히 특이한 경우였다. 하지만 정일은 정신이 돌아온 뒤에도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으려 했다. 어쩌면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는데 돌아왔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일은 가끔 실없이 웃거나, 울거나, 벽에 머리를 들이받거나 심지어는 한여름에 캐롤을 부르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기도 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정일을 찾아와 그 때의 일을 물으려고 안달했고, 결국 참다못한 기태가 가족이 아닌 사람이 계속해서 얼굴을 비치며 부담을 주면 오히려 말을 하기 힘들 거라고 겁을 줘 더 이상 정일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기태의 전화기가 불나기 시작했지만 그 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다. 기태 역시 실종자가 정일이었다면 다른 가족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정석은 헬스장을 나오며 조금이라도 실수에 책임감을 가진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분노와 답답함에 표정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형이 그렇게 됐는데 원인도 알 수 없는 상황에 화가 났고, 물론 나름대로 속상한 것은 알겠지만 네 가족이 매일 전화를 걸고, 역시나 같은 피해자인 아빠가 단지 우리 아들은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고 저들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화가 났고, 시아 또한 그런 부모 중 하나의 딸이라는 것에 화가 났다.

 하지만 헬스장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시아는 전혀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시아가 말했다.

 “물론, 매일 이런 질문을 받는 게 지긋지긋한 것은 알지만 우선…….”

 “응, 형은 아직 그 때 이야기를 못 하고 있어. 안 그래도 어제 또 경찰이랑 의사랑 같이 왔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시간을 줘야 할 거라고 하더라.”

 “그래, 하는 수 없지.”

 그리고 침묵. 시아는 정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정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뭐라고 한 마디 안 해?”

 “뭘? 실수 할 수도 있지, 안 그래도 지금처럼 힘들 때는. 내가 뭐라고 화를 내겠니.”

 “그거 맞는 말인데 네가 하니까 되게 당황스럽네.”

 “맞을래?”

 시아가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눈을 흘겼다. 정석이 피식 웃었다. 제대로 된 웃음이 아니더라도 실로 오랜만에 올라간 입꼬리였다. 정석이 말했다.

 “근데 진짜 왜 온 거야?”

 “친구의 실수를 방지하여 나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안 어울려.”

 “너무하네. 아무튼 친구가 실수할 것 같아서 한 번 들렀지. 전화했더니 운동하러 나갔는데 다섯 시간째 안 돌아오는 걸 보니 피시방에 샌 것 같다고, 내가 잡아온다니까 반가워하시던데?”

 “피시방 간 척 할까?”

 “싫으면 5시간동안 달렸다고 말하던가.”

 시아는 처음으로 정일에게 반응을 끌어낸 아이라는 칭호를 부여받고 유일하게 정일의 집에 출입하는 것이 환영받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시아 역시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 이상의 이야기를 듣지는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용오름 말이야.” 정석의 말에 시아가 몸을 움츠렸다.

 “용오름이 왜?”

 “안 보이지 않아? 물론 별 사건이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보일 법도 한데 안 보이네.”

 “네 말대로 별 사건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니면 용오름도 여름방학이니 어디 놀러 갔을 수도 있지.”

 “농담이야?”

 “아니, 용오름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인생이 있을 거 아니야. 가족들이랑 놀고 있느라 활동 못 하는 거 아니야?”

 시아가 정석의 시선을 피하며 속으로 외쳤다. ‘들켰나? 왜 하필 나한테 이런 걸 묻지? 눈치채지마라. 눈치채지마라. 제발제발제발!’ 안 그래도 동글이와 MH라이트닝이 계속 머릿속 한 구석에서 처치 곤란한 사건으로 남아있던 참이었다. 다행히도 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왜? 은퇴하거나 사망하면 네가 이어서 하게?”

 “굳이 이어서 할 필요 있나? 지금 해도 뭐 별로 하자가 없지 않나?”

 “되도 않는 소리 하지 마라. 일반인 상대면 격투기 선수라도 압도적인 힘으로 그냥 찍어 누르면 되지만 흉기를 들었거나 널 다치게 할 수 있는 증인이라면 싸워본 적도 없는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시아는 문득 정일도 아무런 훈련 없이 무작정 슈퍼히어로 활동을 시작했음을 떠올렸다. ‘역시 무모함은 혈통인가?’ 정석도 의외로 괜찮은 슈퍼히어로가 될 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정일이 이렇게 미쳐버린 지금에 와서는 더욱. 시아는 정일이 집에 돌아오고 이틀째 되는 날 정일과 단둘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오빠, 힘내요. 빨리 정신 차려서 다시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구해야죠.”

 “또, 살인자가 되라고?”

 “살인자라니요?”

 “슈퍼히어로는 전부 살인자 아니면 광고판이야. 어느 쪽이든 이제는 지긋지긋해.”

 시아는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정일은 침대에 돌아누워 대화의 단절을 선언했다. 정일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당분간 용오름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젠장, 역시 여행 따위는 말리는 게 맞았나.’

 슈퍼히어로 활동을 그만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용오름이 실종되고, 그 시간대에 정일의 사고가 있음을 알게 되면 용오름 후보가 확 줄어든다. 만약에 정일에게 누군가가 앙갚음을 한다면? 아니, 정일이 약해진 틈을 타 증인 사냥꾼이 정일의 집을 습격한다면? 흑혈도에서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만약에 활동을 그만두고 싶다면 어떤 사고가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문제없이 갑자기 확 사라져야만 일반인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빠한테 갑자기 가면을 쓰고 나가라고 하는 것도 말도 안 되고.’

 “시아야? 내 말 듣고 있어?”

 “응? 미안, 딴 생각 좀 했네. 제대로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래?”

 “아까 전에도 봤지만 맨 얼굴로는 내가 내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도 못 해. 차라리 가면을 쓰고 슈퍼히어로라고 하면서 다니면 내가 아파트랑 아파트 사이로 제자리멀리뛰기를 해도, 맨몸으로 빌딩을 올라가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

 “라는 마인드 때문에 슈퍼히어로가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아니? 범죄 척결이나 인명 구출이 아니라 재미로 그런 걸 넘어 다니는 걸 보고 어린애들이 따라하다 떨어져 죽는다고.”

 “뭐, 어린애들이 범죄자 잡으려고 아파트 뛰어넘으면 ‘아, 저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깐 괜히 따라하다 민폐 끼치지 말아야지!’ 하고 바람 쐰다고 뛰어넘으면 ‘아, 저건 놀려고 하는 걸 보니 나도 따라해야지!’ 하더냐.”

 반박하려던 시아가 입을 다물었다. 정석의 말에는 오류가 있었고, 곧바로 반대의견을 댈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지만, 시아의 머릿속에 음모가 떠올랐다.

 분명히 그건 음모였다. 올바른 도덕관념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시아를 욕할 음모. 하지만 시아는 용오름의 활동 시기를 조작할 필요가 있었고, 마침 정일처럼은 아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비행 느낌을 연출할 수 있는 증인이 있었다. 시아가 정석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의 즐거운 생각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정석이 시선을 느끼고 시아를 바라보았다.

 “왜? 재밌어 보여?”

 “너, 내 취미가 뭔지 처음 들었을 때 이야기한 게 뭔지 기억나?”

 “세상 모든 카메라를 끌어와 슈퍼히어로의 눈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뭐, 그런 식이었나? 아무튼 왜?”

 시아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어쩌면 처음으로 정일의 정체를 안 그 날 이후로 가장 미친 짓일지도 몰랐다. 마침내 마음의 준비를 끝낸 시아가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삶 속에서 가장 후회할 결정을 내렸다.

 “해보자 그거. 집 가서 가면 가지고 바로 나와.”

 

 

 *****

 

 

 “이거 진짜로 괜찮은 생각 맞아?”

 “왜, 겁나?”

 “겁나지는 않지만 겁나네. 그래 겁난다.”

 “괜찮아, 별 거 아니니깐.”

 정석은 자신이 기념품으로 구매한 용오름 가면을 쓰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있었다. 누군가 먼발치에서 이 모습을 봤더라면 한 달 만에 돌아온 영웅의 귀환에 환호했을 것이고, 가까이에서 봤더라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지나치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어린 소년을 발견하고 의아했을 모습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용오름도 사실 가까이서 보면 늘 저런 모습이었을까 하고 경악하거나, 슬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거창한 무언가를 생각하려던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영웅보다는 때 이른 할로윈 코스프레다. 시아는 중역의자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 빙글빙글 돌았다. 회전이 컴퓨터 앞에서 정확히 멈췄다. 풍선껌과 중역의자는 슈퍼히어로를 컨트롤하는 흑막의 필수품이라 생각하는 시아가 풍선을 불며 말했다.

 “자, 방향을 정해줄게. 너희 집 아파트 기준으로 앞이 앞이고 오른쪽이 오른쪽이야. 네가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 모르니까 그 기준을 생각하면서 움직여. 알겠지?”

 “어? 어.”

 정석의 어리바리한 목소리에 시아가 뒷목을 잡았다. ‘그래도 싸우는 게 아니라 모습을 보이기만 하는 게 목적이니까.’ 시아가 그렇게 자위하며 정석의 집 근처 CCTV를 열었다. 본능적으로 사건을 찾으려던 시아는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말했다.

 “뭐해?”

 “응?”

 “마음껏 뛰고 싶어서 쓴 거 아니야? 달려!”

 “어느 방향으로!”

 “그건 네 마음대로 해. 대신 진짜 용오름처럼 움직여. 땅을 달리는 게 아니라 한 걸음을 최대한 세게 뛰어서 날듯이 움직이는 거야. 자, 출발한다. 하나둘셋!”

 “어? 어! 간다!”

 정석이 오른쪽으로 달렸다. 정석이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자 땅이 움푹 파이는 느낌과 함께 정석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30미터 떨어진 건너편 아파트에 착지한 정석은 땅을 굴렀다. 한 바퀴 구르고 팔로 땅을 짚어 회전을 멈춘 정석은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도 안 아파! 더 멀리도 뛸 수 있겠어!”

 “좋아, 오늘은 네 한계를 보는 날이다. 아까 헬스장에서 힘쓰고 지친 거 아니지?”

 “나, 이제 시작이야!”

 자신감이 생긴 정석이 소리치고 다시 뛰어올랐다. 처음에는 땅이 파이던 도약도 힘을 조절하면서 조금씩 가벼워졌다. 정석은 땅에서 자신을 가리키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정석은 허공에서 손을 흔들고 다시 지나쳤다. 실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이토록 매력적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정석은 양팔을 뻗어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으로 받으며 허공을 날아올랐다. 시아는 정석의 신이 난 고함소리를 들으며 등을 기대고 앉아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넘겼다. 형제라서 그런지 목소리도 꽤나 비슷하니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것으로 정일이 슈퍼히어로 활동을 그만둔다 해도 정일이 용오름이라는 것을 들킬 걱정은 없었다.

 “신사……. 그리고 신사 여러분! 여긴 왜 남자밖에 없어?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그럼 이만!”

 정석은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외치며 사방을 누볐다. 시아는 그조차 듣고 웃음이 나왔다. 해방감. 즐거웠다.

 ‘아, 웃는 건 모든 게 끝나고.’

 시아가 자신의 뺨을 양 손바닥으로 세게 때렸다.

 “자, 오늘은 이만 하고 가면 벗자.”

 “벌써?”

 “벌써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말한 건 이번이 처음이구나. 아무튼 네가 말했지. 내가 네 눈이야. 눈이 따르는 대로 해.”

 “좋아, 잠깐만 저기만 가보고.”

 “저기가 어딘데?”

 정석은 시아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공중에 날아올랐다. 정석의 몸이 15층 높이까지 날아올랐다가 놀이터를 폭격했다. 놀이터에는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가슴이 파인 옷과 핫팬츠를 입은 고등학생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정석은 현장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를 폭격했고, 그 고등학생은 모래를 뒤집어쓴 채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정석이 초등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얘들아? 슈퍼히어로 용오름이야.”

 두려움에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정석에게 달려들었다. 정석은 양 팔에 두 명씩 매달리게 하고 포즈를 잡았다. 정석에게 오늘은 죄책감이 들 정도로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

 

 

 MH라이트닝은 동글이의 집을 찾아갔다. 동글이가 벌써 이틀째 MH라이트닝의 연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일과 시아의 추론과는 달리 범죄 조작자 동글이는 MH그룹이 고용한 것이 아니라 MH라이트닝이 혼자서 결정한 것이었다. MH그룹의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이면 모를까 이미 한 차례 범죄 조작을 해결한 적이 있는 정일이 있는 지역에서 같은 짓을 저지를 정도로 무모하지 않았고, MH라이트닝 역시 그 생각에는 동의했지만 범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범죄가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지나치게 안전한 도시 대전에서는 사건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안전한 도시는 MH라이트닝에게는 인기의 하락을, 그리고 직장의 소멸을 의미했다. 결국 회사 몰래 범죄 조작자를 고용했다. 그리고 동글이는 용오름도 활동하지 않는 이 절호의 시간에 연락을 받지 않음으로 MH라이트닝을 미치게 만들었다.

 다행히 동글이의 집을 알고 있었던 MH라이트닝은 가볍게 노크했다. MH바이크도 없이 츄리닝에 청바지, 캡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주머니에는 MH라이트닝의 마스크가, 츄리닝과 청바지 안에는 슈트가 다 준비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다른 소리를 하거나 배신할 기미가 보이면 ‘적의 주소를 알아내 격렬한 전투 끝에 정당방위로 그만 동글이는 사망하고 아무튼 범죄자를 잡은 MH라이트닝은 영웅.’라는 식의 이야기도 고려하고 있었다. 노크 후에도 대답이 없자 MH라이트닝은 키패드에 손바닥을 댔다. 손에서 작은 전류가 흐르며 번호가 빠르게 올라갔다. 마침내 비밀번호에 해당하는 숫자에 도달하자 문이 열렸다.

 “어, 문이 열려있네.”

 MH라이트닝은 과도하게 놀란 연기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고약한 냄새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동글이의 집 주소는 알고 있었지만 안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르시시즘의 사물화인 MH라이트닝의 집과는 달리 동글이의 집은 증인, 혹은 범죄자가 산다고는 느끼기 힘든 평범한 원룸형 집이었다. 벽에 붙은 아이돌의 브로마이드와, 지금은 유행이 된 용오름 가면은 잠시나마 집을 잘못 들렀나 싶게 만드는 혼란을 선사했다. 하지만 책상 위에 놓인 구식 휴대전화기는 분명 MH라이트닝이 동글이에게 준 대포폰과 같은 기종이었다. 화면을 열어 같은 것임이 확인된 MH라이트닝은 혀를 찼다.

 “이렇게 허술한 인간이라니.”

 대포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MH라이트닝은 옷장을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베란다가 부엌의 역할을 공유하고 화장실과의 연결점도 되어 좁은 방에 냄새가 바로 통하지 않게 만들어진 구조였다. 반투명한 유리문으로 되어있는 화장실 문을 열려던 MH라이트닝이 손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가 변기에 앉아 있었다. MH라이트닝이 그리 조용하지 않게 집에 들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둘 중 하나였다. MH라이트닝이 올 것을 알고 있었거나, 나올 상황이 안 되었거나. MH라이트닝은 저 그림자가 배탈이 난 동글이길, 그리고 이 지독한 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가 아니라 어딘가 이상한 걸 먹고 배출한 대변 때문이길 바라며 문을 열었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문을 열었을 때부터 난 지독한 냄새만으로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받았다.

 MH라이트닝은 목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죽은 동글이의 모습에 창백해진 얼굴로 거실로 도망쳤다. 아예 집을 나가려 손잡이를 움켜쥔 MH라이트닝의 손이 멈췄다.

 ‘아니, 이건 기회잖아!’

 누가 동글이를 죽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범죄자가 있다는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MH라이트닝에게 최상의 상황이었다. 동글이가 붙잡힌다면 혹시나 동글이가 입을 잘못 놀려 옥살이를 할 걱정도 해야 했지만 동글이 살해자를 잡으면 그건 온전히 MH라이트닝의 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당황해서 도망가야 할 게 아니야. 우선 누가 죽였는지 언제 죽었는지 부검을 해야 해. 경찰을 부를까? 아니, 지금은 사복을 입고 있잖아. 영웅은 언제 어디서나 신비로워야 해.’

 거실 중앙에 서서 생각에 잠겨있던 MH라이트닝은 천천히 동글이의 책상으로 걸어가 멀티탭의 스위치를 켰다. 컴퓨터에 전력이 공급된다는 작은 희망 같은 파란 불빛을 확인한 MH라이트닝은 연필꽂이에 들어있는 송곳으로 전선에 작은 구멍을 뚫은 뒤 침대 위로 올라갔다. 주머니에서 가면을 꺼내 입은 MH라이트닝의 몸에서 하늘색 스파크가 일어나 옷을 불태웠다. 잠시 후 몸을 털자 검댕이 조금 묻은 슈퍼히어로 MH라이트닝이 침대 위에 서 있었다. MH라이트닝은 손을 위로 뻗었다. 야구공 정도 크기의 구체가 손에서 완성될 무렵 발밑의 매트리스에 구멍이 뚫리며 손이 튀어나와 MH라이트닝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손은 매트리스를 종이처럼 찢으며 MH라이트닝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MH라이트닝은 신음소리를 낼 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일 날 뻔했군.”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MH라이트닝의 화를 돋웠다. 하지만 상대의 모습은 MH라이트닝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충분했다.

 상대는 검은색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검은색일 뿐인 그 옷은 미적인 감각은 전혀 만족하지 않은 채 오직 지금 이 순간 MH라이트닝을 죽이기 위해서만 만들어지고 입을 옷이라고 느껴졌다. 심지어 눈조차 검은 고글을 끼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 모습은 MH라이트닝의 몸에서 분노를 앗아가고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동글이가 목표가 아니었어. 처음부터 다 알고 날 잡을 함정을 판 거야.’

 MH라이트닝은 양손이 짜릿할 정도로 강한 전류를 담았다.

 “누구냐. 네가 이 집주인을 죽인 범인이냐?”

 “나는 ‘완벽’. 널 죽이러 왔다.”

 완벽은 MH라이트닝에게 달려들었다. 목을 붙잡히고 벽으로 밀린 MH라이트닝은 힘으로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침대에 내던져질 때 이미 눈치 챘어야 할 문제였다. MH라이트닝은 완벽의 양 옆구리를 움켜쥐고 지졌다. 섬유가 타는 냄새가 났지만 완벽은 가볍게 신음하고 한 손으로 MH라이트닝의 목을 조른 채 다른 손을 베란다 부엌을 향해 뻗어 부엌칼을 잡았다. 처음부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MH라이트닝이 어떻게 움직일지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완벽이 칼을 들어 올리자 MH라이트닝이 전선을 움켜쥐었다. 구멍을 붙잡은 MH라이트닝의 몸이 전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완벽은 처음부터 전선을 노리고 있었다. 한 번의 칼질에 두 동강이 난 전선은 더 이상 전기를, 그리고 그 사이에 함께 흐르는 MH라이트닝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밖으로 뿜어냈다. 옷장에 머리를 들이받은 MH라이트닝은 머리가 깨져 정신을 잃었다. 완벽은 기절한 MH라이트닝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MH라이트닝의 맥을 짚은 완벽은 부엌칼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 차례, 두 차례 경련이 일어나고 완전히 움직임이 멈춘 것을 확인한 완벽은 문에 귀를 기울였다. 당황한 신음소리와, 경찰에 신고하려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한 완벽은 MH라이트닝의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히고 상의를 벗겼다. 상의에서 휴대폰이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지자 완벽은 휴대폰을 MH라이트닝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송곳을 들었다. 송곳을 든 완벽은 정중앙을 찾아 세로로 글을 파냈다.

 가짜가 너무 많아 진짜를 찾을 수가 없다.

 경찰이 오기까지 시간이 남음을 확인한 완벽은 자신의 옆구리를 가볍게 털었다. 탄 옷 사이에 드러난 피부에 심한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한 완벽은 문을 열고 나와 골목을 빠져나왔다.

 

 

 *****

 

 

 가면을 벗은 정석은 옥상에서 내려왔다. 가면 안에서 모래가 한 컵이 나오는 것을 본 정석은 연출과 실용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한숨을 쉬었다.

 “다음부터는 움직이기 전에 생각을 좀 해라. 잘됐네. 가족들한테는 바람 쐬다가 놀이터에서 뒹굴었다고 말해야겠네.”

 “그만 놀려라. 나도 다 알아. 정석 아웃.”

 정석이 투덜거리면서 귓구멍에 손을 집어넣고 문제의 소형 통신기를 제거했다. 이 조그마한 것이 생각보다 성능이 좋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정석은 이 물건이 얼마나 고가이고 구하기 힘든 것인지 몰랐지만 시아의 당부를 잊지는 않아 보관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정석이 신발을 벗자 신발에서도 적지 않은 모래가 쏟아졌다. 정석은 까치발로 서서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정석이 걸은 길은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처럼 선명한 흔적이 남았다. 화장실에서 옷을 벗자 작은 모래성이 완성되었다. 정석은 수도가 막히지 않기를 기도하며 샤워기로 모래를 흩어버렸다. 뜨거운 물로 몸을 행궈 모래를 전부 제거한 정석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갈아입을 옷을 미처 챙기지 못했기에 다시 까치발로 방으로 뛰어갈 준비를 하던 정석은 손잡이에 걸린 옷을 보고 외쳤다.

 “고마워요, 엄마!”

 “그래, 옷 좀 챙겨서 들어가라? 밥 먹을 거니까 빨리 나와.”

 부엌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빠였구나.”

 정석이 고개를 끄덕이고 옷을 갈아입었다.

 짧은 머리를 수건으로 가볍게 털고 식탁에 앉았다. 자반고등어의 등뼈를 들어 올리며 정석이 막 떠올랐다는 듯 정일에게 말했다.

 “아, 형. 아까 밖에서 봤는데 용오름이 돌아왔더라?”

 고개를 숙인 채 식사에 집중하던 정일이 고개를 들었다. 정일의 표정은 여전히 없었지만 눈에 불신과 의문이 섞인 감정이 정석의 표정을 읽었다.

 “진짜야? 오늘이 몇 월인지도 모르는 시대착오적 얼간이의 혼자 날뛰는 할로윈 축제가 아니고?”

 정석은 정일의 예상 이상으로 기대 이하인 반응에 실망하며 말했다.

 “아니야, 하늘을 날던데?”

 “능력 비슷한 멍청이가 용오름이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르고 좋다고 따라하며 날아다니는 걸 수도 있지.”

 정확하고, 불쾌한 지적에 정석의 표정도 정일과 비슷해졌다. 정일과 정석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연화가 끼어들었다.

 “오늘 정훈이가 문자 보낸 거 봤니? 성적이 15등이나 올랐다고 하던데.”

 “잘 했네요.”

 정일이 짧은 소감을 나누고 다시 고등어 등뼈 뽑기에 집중했다.

 “형 원래 용오름 좋아하지 않았어? 갑자기 왜 그래?”

 “용오름은 살인자야. 용오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모르지?”

 “모르지. 없지 않아? 형이 봤어? 뭐, 혹시나 있다고 쳐. 그래도 죽인 사람보다 구한 사람이 더 많지 않아?”

 정석의 말에 정일의 팔이 떨렸다. 아마 정일도 흑혈도에서의 일을 겪지 않았다면 비슷하게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죽음을 목격하고 체험한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가치관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에 충격을 받으며 정일이 외쳤다.

 “천 명을 구해도 한 명을 죽이면 살인이야!”

 “최정일! 밥상에서 소리치지 마!”

 기태의 말에도 정석은 전혀 굽히지 않았다.

 “라고 소리치는 건 상관없고요? 아니면 아빠라서 뭘 해도 상관없는 건가?”

 정일의 말에 기태가 입을 다물었다. 정일은 아파서 그런 것이다. 기태는 화가 나지 않았다. 대신 슬픔이 너무 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 소리치는 게 뭐라고. 밥 먹자. 싸우지 말고.”

 “잘 먹었습니다.”

 정일이 등뼈와 생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온전히 누워 있는 고등어를 내려놓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정석이 넌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이 사단을 만드니?”

 연화의 책망에 정석이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저요? 형이 아파서 혼낼 수도 없으니 모든 책임을 나한테 돌리겠다 이거죠?”

 “아니, 그냥 이야기 할 수는 있지. 그런데 분위기가 안 좋고, 그래서 화제를 돌리려고 그렇게 했는데 왜 피할 수 있는 싸움을 해?”

 정석은 화가 났다. 30분 전만 해도 너무 즐거웠고, 즐거운 기분을 정일, 가족들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갑자기 그것이 최악의 잘못인 것처럼 듣게 되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정일은 숟가락은 내팽개쳤다. 하마타면 너무 힘을 줘 숟가락이 손가락 모양대로 구부러질 뻔 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가족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자명했다.

 “나가.”

 “아빠, 이건 그게 아니라…….”

 “나가. 이번에는 소리치지 않을 테니까 우리가 나가기 전에 나가.”

 정석이 한숨을 쉬고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정석이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문을 바라보던 정석은 무언가 빈 것을 느꼈다. 문에 걸려 있어야 할 용오름 가면이 없어졌다. 정석이 짜증 섞인 신음과 함께 문을 열고 나왔다. 기태와 연화가 엄한 얼굴로 의아함을 숨기는 것을 보며 정석은 빨랫감 속 자신의 바지를 찾아 주머니의 가면을 꺼내 옷 속에 숨기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모래 섞인 가면을 가볍게 털어 문에 걸어놓은 정석이 침대에 누웠다.

 정석이 서운함 속에서 침대를 구르는 동안 정일은 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석-용오름의 등장이 어딘가 어색한 것이 없었는지 확인하던 시아는 오랜만에 먼저 걸려온 정일의 전화에 놀라고 찔리며 전화를 받았다. 정일이 전화를 한다면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정일은 시아의 인사를 무시하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너니?”

 많은 의미가 담긴 두 글자의 문장에 시아는 대답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네, 시아죠. 오빠의 동생의 친구이자 친구의 동생?”

 무심코 농담처럼 던지던 서로의 관계를 내뱉은 시아는 곧바로 후회했다. 동아의 부재가 시아와 정일에게 동시에 상처를 입혔다. 시아는 사과할까 생각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동아의 행방을 이야기하지 않는 정일에게 아직 서운한 것이 남아있기도 했다. 아니, 서운함으로 표현 가능한 간단한 감정이 아니었다. 정일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시아는 목에 칼을 대고 위협해서라도 진실을 토해내라고 했을 것이다. 시아나 다른 사람들의 가족 모두가 미묘한 모순에 빠져 있었다. 동아가 죽었다면 지금처럼 희망을 품을 수가 없다. 동아가 살아있다면 지금처럼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물론 여전히 매일 전화를 하며, 그리고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정일의 대답을, 아이들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지만 어쩌면 오늘 구하지 않으면 내일 죽는 곳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 치고는 지나치게 일상적이었다. 마치 동아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저 우연히 모두가 이성적인 사람들이라 그런 것일 뿐일 거야. 정일 오빠가 정신을 빨리 차리는 것이 그나마 가장 빨리 동아나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모두가 침묵 속에서 약속을 했을 것이다. 시아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합리화의 결론을 내리는 동안 정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에 시아가 다시 말을 꺼냈다.

 “아무튼, 너니가 그 너니가 맞아요? 아님 무슨 일이 있어요? 목소리가 되게 추궁하는 목소리였는데.”

 “…아니다. 다음에 보자.”

 정일이 전화를 끊었다. 시아는 휴대폰을 침대 위에 대충 던져놓고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시아가 보기에는 염력 사용자와 초인의 비행 방식의 차이가 꽤나 눈에 띄었지만 가면을 쓴 것은 용오름이지만 모두가 함께 눈을 가린 듯 용오름 팬카페를 포함한 각종 인터넷에는 그저 오랜만에 짤 투척이라는 식의 글만이 가득했다. 하긴, 용오름이 어느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도약하는지 그 때의 손짓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확히 아는 시아와 그저 어두운 밤 먼발치에서 날아다니는 사람을 목격한 정도가 전부인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다른 것이 관찰력의 차이라고 보는 것은 불공평한 일일지도 몰랐다.

 “일단은 괜찮다고 봐야 되나.”

 유일하게 의심하는 인물이라고는 정일뿐이니 시아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기로 결정했다. 시아는 인터넷을 전부 끄려다가 이상한 기사를 발견했다. 기사를 누른 시아가 눈을 비볐다. 하지만 다시 본 기사는 시아의 기대를 저버리고 변함없는 글자의 배열을 유지했다.

 ‘오늘 밤 동글이와 MH라이트닝이 동글이의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기사는 평이한 사실 전달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사실이 글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시아는 기사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괴정동에 사는(시아는 여기서 한 번 더 놀랐다. 같은 동네였다니! 물론 얼굴도 모르는 인물인 만큼 옆집에 살고 있었더라도 알아볼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충격적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동글이는 사망한 지 오래되어 부패가 진행 중이었고 MH라이트닝이 동글이의 시체를 발견한 뒤 누군가와 격투 끝에 제압당하고 살해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MH라이트닝의 몸에서 낙서와 휴대폰을 입수했고, 범인이 남긴 메시지가 있을 거라 생각해 수사 중에 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용의자로 보이는 검은 옷의 남성이 현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CCTV에 포착되었다는 것 까지가 내용의 전부였다. 사진 자료를 보던 시아가 혀를 찼다.

 “검은 옷이라기에 얼마나 검은가 했더니 진짜 검네.”

 추리 만화 속 범인의 실루엣조차도 눈과 이빨은 하얗건만, 이 검은 옷의 남자는 검지 않은 부분이 전혀 없이 검었다. MH라이트닝은 눈앞에서 흉흉한 기세를 직접 마주했기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저 사진으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스크롤을 더 내려 보인 모습은 사진으로 봐도 꽤나 끔찍했다.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주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시아의 안전이 위협받은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사진 밑에는 MH라이트닝의 배에 쓰인 글의 내용이 첨부되어 있었다.

 “가짜가 너무 많아 진짜를 찾을 수가 없다라. 극단적인 협찬히어로 반대파 정도 되려나.”

 MH라이트닝같이 특정 회사를 홍보하는 모양의 히어로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런 자들 중에 시행할 힘과 결단력을 겸비한 사이코패스가 하나쯤 있다 해도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글을 몇 차례 입 안에서 굴려보던 시아가 기사를 닫고 컴퓨터를 껐다.

 “뭐, 오빠가 용오름이라면 저것도 막아야 할 적이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잡을 능력도 없고, 잡힐 일도 없으니 저건 협찬히어로들에게 맡겨야겠네.”

 협찬히어로 중에는 얼굴로만 먹고 사는 아이돌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제대로 된 실력이 있는 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시아는 저 검은 옷의 남자가 곧 잡힐 것이고, 시아하고는 무관한 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적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까지 붙었으니 협찬히어로들도 이를 갈고 잡으려 할 것이었다. 시아는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시아의 기억 속에서 검은 옷의 남자의 우선순위가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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