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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용오름-영웅의 기준
작가 : 대홍수2
작품등록일 : 2018.12.6

슈퍼히어로 '용오름'이자 대학생인 정일은 여러 범죄를 해결하던 중 잠깐의 휴식을 가지며 친구들과 섬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이 정일을 갉아먹기 시작하는데...... 대홍수의 슈퍼히어로 시리즈 <증인들>의 첫 번째 이야기!

 
3화
작성일 : 18-12-23 16:49     조회 : 220     추천 : 0     분량 : 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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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혜린이 동아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한 날이었다. 새로운 수업,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기대에 두근거리던 중 혜린은 한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남들보다 머리 반 개 정도는 더 큰 그 소년은 혜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혜린의 기억 속에서는 동아가 먼저 혜린을 보고, 그 뒤 혜린이 시선을 느껴 동아를 보았다고 되어 있었지만, 반에서 세 번째로 큰 동아의 키와, 작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편도 아닌 혜린의 키, 그리고 보통 키 순서대로 정렬시키는 행사의 특성 상 동아가 자신을 등지고 있는 혜린을 먼저 보고 쳐다보고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혜린은 동아가 먼저 자신을 보고 있었다고 주장했고, 동아는 그 말을 인정함으로 진실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그 말이 진실일 수도 있었지만 혜린 역시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았기에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여중 출신의 혜린은 살면서 그렇게 큰 남학생을 본 적이 없어 놀랐고, 그게 큰 편이지만 가장 큰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더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뿐. 혜린은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빠 동아를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첫 번째 중간고사가 끝난 뒤, 마음에 잠깐의 여유가 생겼을 때, 정일이 동아를 끌고 오다시피 하는 모습을 본 뒤에야 혜린은 동아를 다시 떠올렸다. 작지는 않지만 동아에 비할 바는 아닌 정일은 당당했고, 그런 행동으로 하여금 자신이 오히려 동아보다 크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셋은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동아와 혜린은 사귀게 되었다. 동아는 어느 날 정일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혜린을 데리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앞에서 자신에게 고백을 하면서도 한없이 작아져 있는 동아의 모습을 보며 동아가 작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동아를 작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은 혜린은 장난기가 돌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러나 그 자리에서 적당히 애를 태우고 고백을 받아들였다. 긴장이 끝나고 다리가 풀려 벤치에 쓰러지듯 앉는 동아의 모습이 다시 커져 있었다.

 혜린은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은 반대라더니‥‥‥. 꿈이 좋으면 슬픈 일이 생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이 너무 더러우면 꿈속을 도피처로 삼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실없는 생각을 하던 혜린은 지난밤을 떠올렸다. 하늘은 그들에게 불확실한 희망에 빛을 비추어 확실한 절망을 선사해 주었다. 그들은 단순히 무인도에 있지 않았다. 온 인류가 달을 잃어버렸거나, 그들이 지구를 잃어버렸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지구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아무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에서 혜린은 모두가 최악의 상황보다 악랄한 현실 속에서 언어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아, 아아.” 혜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내뱉었다. 다행히 말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잃어버린 것은 지구뿐이었다. 아니, 지구가 우리를 잃어버린 것인가. 혜린은 일출과 동시에 일어났지만 자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일찍 일어났다고 감탄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하루의 주기가 지구와 다를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인사를 위해 그냥 지구의 상식을 이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종이 혜린을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일찍 깼네 다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정일이 대답하고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했다. 정일을 따라 수종이 일어나고, 려경, 동아까지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자 혜린도 엉거주춤 일어나 정일의 동작을 따라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아침운동의 풍경이었지만, 혜린은 실제로 기분이 상쾌해진 것을 느꼈다. 물론 그 상쾌함은 죽을 때 까지 이곳에 갇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것 등을 해결하지 않고 잠시 담아 둔 채 찾아온 일시적인 쾌감이었기에 스트레칭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자기 전 같은 차가운 공포가 혜린의 뇌를 지배했다.

 정일은 혜린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혜린 뿐이 아니었다. 동아, 수종, 려경 역시 드러내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마찬가지로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일도 마찬가지였다. 정일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자, 이젠 어쩌지?”

 “뗏목을 만드는 건 어때?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는 거야.”

 “우주선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여긴…….”

 동아의 의견에 려경이 답하려다 멈칫했다. 려경은 왜 좀비 영화에서 사람들이 좀비를 좀비라 부르지 않고 감염자, 걷는 자 같이 돌려 말하는지를 이해했다. 정일이 대신 말했다.

 “아냐, 동아 의견이 일리는 있을 것 같아. 우린 우주선을 타고 여기에 온 게 아니야. 뗏목보다는 낫지만 후진 나룻배 같은 걸 타고 왔잖아. 어쩌면 배를 타고 바다에 어느 정도 이상 나가면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워프 같은 거? 그런 걸 믿는 거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왔다는 걸 믿고, 그 방식으로 우리가 돌아갈 수 있음을 믿어.”

 정일의 말에 수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만들자. 설마 여기 나무는 물에 안 뜬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정석과 시아는 경찰서에 가 정일과 친구들의 실종을 신고했다. 친절한 얼굴의 젊은 경찰은 이 사건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다섯 명의 대학생이 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런데 연락이 안 된다, 그런데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다.

 “그럼 그냥 가출 한 거 아니니? 휴대폰도 꺼놓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랑 다 같이 놀러 간 거지. 3박4일 여행 일정이라고 했으니 낼모레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그 때 왜 거짓말했냐고 물어보는 게 어떠니?”

 “아니, 언니. 그게 그럴 리가 없다니까요. 그 오빠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떠날 수가 없어요!”

 경찰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미소로 시아를 내려다보았다.

 “왜? 혹시 정일이라는 애가 네 남자친구니?”

 “그, 그건 아니지만…….”

 “남자친구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그냥 연락이 끊어진 거라면 너희들 말대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쪽 경찰서에 연락을 해서 이름을 올린다거나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 그리고 진짜 여행 중이면 어떻게 할래? 즐겁게 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갑자기 경찰이 찾아가면 그 친구들도 당혹스럽지 않을까? 너희들도 사실은 검은 피눈물 흘리는 다람쥐 같은 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잖니. 너희들도 사실은 그 언니오빠들이 너희에게 비밀로 하고 여행을 가고 싶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니?”

 너무 맞는 말이라 어떻게 반박할 수가 없는 오답이었다. 반박하려고 하면 시아와 정일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었다. 결국 정석은 화가 잔뜩 나 경찰서 문을 발로 여는 시아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석이 시아 대신 경찰관들에게 사과한 뒤 시아를 따라 뛰어갔다.

 “야, 왜 그래. 저 누나 말이 맞지 않아? 어차피 낼모레면 돌아올 거 아니야. 그때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한 마디 해주면 되지.”

 “아, 좀 저리 가 봐!”

 시아가 가까이 다가가는 정석을 세게 밀쳤다. 정석이 꿈쩍도 하지 않자 오히려 밀려 넘어진 시아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 짜증나!”

 시아의 과하게 공격적인 태도에 화를 낼까 생각하던 정석은 시아가 눈물을 흘리자 당황해 시아의 눈치를 살폈다.

 “너 왜 그래?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너 진짜 우리 형이랑……. 아니, 하긴 네 오빠도 있으니 걱정할 수도 있긴 하겠네. 그런데 큰일 난 것도 아니고 그냥 노는 거잖아.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다행히 시아는 눈물을 닦고 금방 일어났다. 하지만 정석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당황한 정석이 시아를 붙잡았다.

 “야, 어디 가.”

 “집에. 내가 왜 이러는지 말할 수가 없어. 비밀이야. 하지만 내 말은 믿어 줘. 우리 오빠, 네 형, 그 친구들 다 지금 위험해.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뭐? 왜!”

 “그게 바로 비밀이야. 넌 전망을 모르니까 희망을 품고, 난 전망을 아니까 절망에 갇혔어. 그래도 찾아볼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찾아야 돼.”

 시아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정석 역시 시아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시아를 잡지는 않았고, 시아는 집으로 돌아갔다.

 

 

 *****

 

 

 뗏목 만들기는 어렵다. 정일은 나무를 자르는 것만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무 자르기는 예상대로 죽도록 어려웠다. 그나마 숲 중앙에 있는 2~30미터는 가볍게 넘을 것 같은 거목들은 손도 대지 못하고, 숲 가장자리에 있는 한 아름에 약간 못 미치는 작은 나무 두 그루를 쓰러뜨리는 데 하루가 꼬박 걸렸다. 그리고 자른 나무를 묶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정일은 허탈감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숲에는 덩굴이나, 밧줄을 대체할 것이 전혀 없었다. 옷을 찢어 나무를 묶는 방안도 있었지만 옷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한 사람 올라타기도 모자란 뗏목이 나올 것이라는 결론에 정일과 아이들은 뗏목 만들기를 포기했다.

 “그럼, 우리 뗏목은 못 만드나?”

 혜린이 하루 동안의 업적을 발로 굴리며 말했다.

 “세 아름 정도 되는 거대한 나무를 무너뜨리고 속을 파내면 카누를 만들 수는 있을 거야. 그런데 그런 나무는 보이지 않고, 보여도 자를 수가 없어. 잘라도 파내는 건 더더욱 말도 안 되고.”

 수종의 말에 려경이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울쌍을 지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먹을 것도 내일이면 끝난다며.”

 “오늘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얼마나 힘을 썼는데 어제처럼 먹고 버틸 수 있어?”

 수종의 말에 동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배에서 천둥이 치는 듯 했다. 여기서 초코바 하나로 버티라고 했다가는 수종의 머리를 대신 뜯어먹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오늘 다 먹어버리면 내일의 대책은?”

 “내일 다 먹어버리면 모래의 대책은? 어차피 여긴 먹을 게 전혀 없잖아. 나무껍질이라도 삶아 볼까? 냄비가 없어. 그리고 아무리 보릿고개라도 껍질을 구워 먹지는 않았을걸.”

 “보릿고개에는 생으로도 먹었을걸. 물론 우리가 그걸 소화시킬 자신은 없지만.”

 당연히 이들 중에서는 어떤 나무껍질이 먹을 만한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먹는다고 해도 그나마 부드러운 속껍질 대신 좋지 못한 자살 방법인 겉껍질을 먹을 만 한 상식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정일이 말했다.

 “하루만 더 참자. 이대로 식량을 전부 날릴 수는 없어.”

 수종이 정일을 바라보았다.

 “알겠어.”

 수종이 고개를 숙이고 좌우로 흔들었다. 정일과 수종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동아가 숲 속으로 뛰어갔다.

 “동아야!”

 “내가 갈게!”

 혜린이 동아에게 달려가려는 정일에게 손을 뻗어 말리고 동아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수종이 말했다.

 “동아, 요즘 좀 이상하지?”

 정일의 생각도 비슷했다. 섬에 온 뒤 동아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거나, 땅을 파헤치다가 나무에 머리를 들이받는 등 기행을 저질렀다. 동아와 혜린은 아직 정신이 덜 돌아와 멍하니 있다가 실수하는 것이라 했지만 정일은 그 모습이 조금 불안하다 느꼈다.

 “혜린이가 잘할 거야.”

 정일이 불안감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바다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다다. 정일의 능력은 밀어내고 당기는 힘, 즉 인력과 척력이다. 대상을 누르거나, 들어 올리거나, 던질 수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두 개의 힘을 조합해서 응용하는 것이다. 단단한 바닥과 건물이 가득한 도시에서는 바닥을 밀어내 허공에 솟아오르고, 건물을 잡아당겨 자신의 몸을 날듯이 이동시킬 수 있었지만 텅 빈 바다 속의 공간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일이라도 수영밖에 없었다. 바닷물을 끌어당겨 바다를 날아볼 생각도 했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돌아오는 것은 더 큰 파도일 뿐, 바다가 거대한 무게로 자신을 당겨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정일이 자신의 머리를 싸매고 소리를 질렀다. 수종과 려경이 깜짝 놀라 정일을 바라보았지만 하루 종일 나무를 쓰러뜨리고, 써먹지도 못하는 것은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을 만 한 일이었기에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려경이 말했다.

 “수종아, 이거 봐봐. 봤어?”

 “뭘?”

 려경이 자신들이 무너뜨린 나무의 뿌리를 들고 흙을 털어냈다.

 “이 나무, 죽은 나무 같은데?”

 수종이 려경이 잡은 나무뿌리를 만져 보았다.

 “난 잘 모르겠는데? 하긴, 죽은 나무를 만져본 적이 없으니깐. 근데 너도 없잖아. 아니, 있나? 이게 왜 죽은 나무라는 거야?”

 “나도 죽은 나무를 만져본 적은 없어.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아니, 야 뿌리 말고 이파리를 봐봐.”

 “난 네가 뿌리를 만지면서 말하니까 당연히 그거 보라는 줄 알았지. 어? 뭐야 이게?”

 나무의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 있었다. 마치 전쟁터에서 죽는 순간까지 싸우다가 선 채로 죽은 무사가 마침내 관에 묻힐 때 눈을 감는 것처럼 나무는 뿌리가 뽑혀 땅에 눕힌 뒤에야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시체가 된 것 같았다. 수종이 말했다.

 “설마 우리가 뽑은 나무 뿐 아니라 모든 나무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설득력 있겠지.”

 “맙소사. 살아있는 게 나무밖에 없는 게 아니었어.”

 “살아있는 건 우리뿐이야.”

 그날 밤, 동아와 혜린은 돌아오지 않았다.

 

 

 *****

 

 

 혜린은 이번에는 처음보다 쉽게 동아를 잡을 수 있었다. 동아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니, 같은 장소인가? 혜린은 길을 잘 찾는 편이 아니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숨이 찬 정도로 보아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혜린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동아의 어깨를 주물렀다.

 “많이 힘들어?”

 동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혜린은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여자니까 남자친구가 힘든 일이 있어도 흔들림 없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서로가 서로의 등을 기댈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혜린 역시 절망으로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동아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은 괜찮은 척 동아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것이 화가 났다. 혜린이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고개를 들었다. 달이 없는 하늘은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별빛이 살짝 살짝 비치는 불완전한 어둠이 숲을 신비롭게 만들었다.

 나무를 보고 있던 혜린은 손등에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에 고개를 숙였다. 자연스럽게 눈가에 맺힌 눈물이 자신의 손을 덮고 있는 동아의 손등에 떨어졌다.

 “혜린아, 힘들었어?”

 동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혜린을 껴안았다.

 정일은 수종과 려경이 부르자 관심을 바다에서 나무로 돌렸다. 정일 역시 나무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그럼 여기 전체가 죽은 나무의 숲일 수 있다는 거네.”

 “응, 동물도 없고, 식물도 전부 죽은 식물이야.”

 정일이 숲으로 걸어갔다. 려경과 수종이 정일을 따라갔다. 정일은 숲 인근에 자란 작은 풀을 뿌리째 뽑았다. 이름 모를 잡초는 순식간에 생명력을 잃고 노랗게 말라죽었다.

 “모르지. 이… 곳의 식물들은 모두 저렇게 뿌리가 없으면 바로 말라죽는 변화가 큰 종류의 식물일수도 있지. 하지만 네 말도 맞는 것 같아. 언제부터 죽어 있던 건지도 감이 안 오네. 선 채로 죽은 나무라니. 아니, 나무는 원래 선채로 죽으니 산채로 죽은 나무라고 해야 하나?”

 동아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지만 동아를 껴안고 있는 혜린은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동아가 입을 크게 벌렸다. 동아의 입이 턱의 한계를 넘고 혜린의 머리보다 크게 벌어졌다. 혜린은 자신의 어깨에 닿는 턱의 감촉에 위화감을 느끼고 포옹을 풀고 동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아가 혜린의 어깨를 물었다. 혜린이 비명을 질렀다.

 “위험하다고 해야 하나? 위험한 동물이 있을 걸 걱정했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생각도 못 했네.”

 “수종아, 일단 우리 저녁이라도 먼저 풀자. 애들 오면 따로 주고. 배고파. 애들도 배고프면 돌아오겠지.”

 “그럴까? 정일아, 너도 먹을래?”

 “아냐, 너랑 려경이 먼저 먹어. 난 좀 더 기다릴게.”

 혜린이 다시 동아의 사타구니를 걷어찼지만 이번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동아가 혜린의 어깨를 더 깊게 파먹었다. 수종이 려경에게 저녁거리를 분배했다. 려경이 마침내 먹는 저녁에 즐거운 마음으로 초코바를 뜯었다. 혜린의 어깨를 뜯은 동아의 입이 피로 물들었다. 혜린의 피가 대부분이었지만 뼈가 잇몸에 박혀 생긴 동아의 피도 적지 않았다. 려경이 입에서 우물거리던 초코바를 삼켰다. 혜린은 양 팔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팔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들이 동아의 위장 속에 갇혀 있었다. 오른 어깨의 상처가 너무 깊어 팔이 떨어져 나갔다. 아니, 동아가 잡아 뜯었다. 혜린은 외쳤다. 뭐라고 외쳤는지는 혜린도 알 수 없었다. 구조를 요청하고, 동아에게 정신 차리라고 하고, 가족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어느 것 하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아가 혜린은 세게 껴안았다. 거칠지만 따뜻한 포옹에 혜린은 잠시 고통을 잊었다. 혜린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동아의 얼굴이 거대한 동굴로 변하는 것을, 그리고 그 동굴에 자신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목이 잠깐 따끔하고, 고통이 사라졌다.

 “맛있다. 이 맛에 사는구나.”

 려경이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비닐 포장을 뒤집어 포장지에 붙은 초콜릿까지 전부 털어 먹은 려경이 아쉬운 얼굴로 포장지를 땅 속에 파묻었다. ‘당장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환경오염 따위.’ 수종이 물었다.

 “여기서 나오면 뭐부터 먹고 싶어?”

 “일단 고기. 많은 고기. 뷔페고기 말고 비싼 한우 100만원어치 사먹을 거야.”

 “나도 데려가라.”

 “나도.”

 정일과 수종이 동시에 대답했다. 려경의 너무 행복한 식사에 정일과 수종도 허기를 느꼈다.

 “우리도 먹자. 애들이 배고프면 알아서 오겠지. 커플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뜬 눈으로 기다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정일의 말에 수종이 기다렸다는 듯 정일에게 초코바를 던졌다. 초코바가 정일의 손을 약간 빗나가자 정일이 가벼운 인력으로 초코바를 당겨 잡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오랜만에 찾아온 안온한 식사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네 명의 불만족스러운, 하지만 현재 가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슬슬 피로가 쌓이자 정일은 혜린과 동아가 걱정되었다. 시간 감각이 흐려져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3시간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그 녀석들 길 잃고 헤메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뭐 어때? 여기는 작은 섬이고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장기적인 생존에는 최악이지만 단기적인 생존에는 자살하지 않는 한 죽을 수가 없지 않겠어? 내가 먼저 불침번 설 테니까 다들 자.”

 “그럼 다음은 내가 설게.”

 정일이 말했다. 어차피 순서는 의미가 없지만 자신이 불침번을 설 차례에도 동아와 혜린이 오지 않았으면 숲으로 들어가 찾을 생각이었다.

 시계가 없어 불침번 시간을 정확히 정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정일과 수종, 려경은 각자 양심껏 너무 피곤해 견딜 수 없으면 교대하자는 것에 합의했다. 려경은 그냥 불가에 쪼그리고 누워 잠이 들었고, 잠버릇이 좋지 못한 편인 정일은 혹시나 불가로 굴러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모래를 파 작은 구덩이를 만들고 들어갔다. 마치 무덤에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헛웃음도 잠시, 정일도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곧 잠이 들었다. 오늘도 고단한 하루였다. 다섯이 넷이 된 밤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늘도 피곤한 밤이었다.

 

 

 *****

 

 

 정석의 방은 여느 남자 아이들의 방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즉, 컴퓨터 옆에는 휴지곽이 놓여 있었고, 침대 머리맡에 나무로 된 선반이 있어 그곳에 책과 교과서들이 세워져 있으며, 문에는 용오름의 가면이 붙어 있었다. 물론 용오름이 이용하는 진짜 가면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구매한 기념품이지만 얼굴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시야도 거의 가리지 않고, 말하고 듣는 것에도 큰 지장이 없도록 특수 제작된 물건이었다. 옆방에서 살고 있는 진짜 용오름이 이 가면이 자신이 집에서 만든 것 보다 질이 좋아 박스째 구매해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정석은 이 가면 역시 진짜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것까지는 모르는 정석에게는 꾸밈용 장식 정도로 취급되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정석이 몸을 일으켰다. 이미 해가 다 지고 밤이 되었지만 정석의 머릿속에 시아의 말이 떠나지 못하고 메아리쳤다.

 “걘 대체 왜 갑자기 그래? 사람 불안하게 만드네.”

 정석은 정일이 없다고 크게 불안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개차반 막내 정훈이 유학을 가 있으면서 연락도 거의 하지 않는지라 가족이 연락도 되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것이 익숙한 탓이었다. 하지만 정일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시아의 말은 정석을 불안하게하기 충분했다.

 “이거 설마 둘이 짜고 나 놀리는 건 아니겠지?”

 정석이 기억을 더듬었다. 시아가 흑혈도에 대해 묻는 것이 먼저였는지, 자신이 흑혈도의 존재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 먼저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시아의 말을 듣고 기억을 되새기면 찜찜하기는 했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었지.”

 정석은 의자에 앉았다. 평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적기 위해 구매한 주머니에 들어갈 만 한 작은 크기의 소설수첩의 맨 뒷장을 뜯은 정석은 펜을 들었다. 잠시 무슨 내용을 쓸까 고민하던 정석은 곧 포기하고 종이를 구겨 책상 밑 쓰레기통에 던졌다.

 “대체 왜 이렇게 답답하지? 아!”

 정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아가 경찰서로 직행하는 바람에 운동을 충분히 하지 못한 탓이었다. 힘이 남아돌아서 생기는 답답함을 시아의 말 때문일 거라 생각해서 이런 부조화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정일이 허물처럼 벗어 바닥에 늘어놓은 옷을 다시 입었다.

 “한 시간만 더 뛰다 들어가야겠다.”

 정석이 밖으로 나가자 정석의 엄마, 연화가 안방에서 나오다 정석과 눈이 마주쳤다.

 “아들, 어디 또 나가게?”

 “바람 좀 더 쐬고 올게요.”

 “그래, 혹시 정일이한테 연락 온 거 없지?”

 “없어요. 왜요?”

 정석이 걸음을 멈췄다. 왠지 엄마의 말이 짐작이 갔다. 연화는 정석의 짐작대로 말했다.

 “애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여행을 갈 애가 아닌데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혹시 연락 오면 말해줘.”

 “네, 저도 이상하더라고요. 바로 말 할게요.”

 정석이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다 말고 연화를 돌아보았다.

 “엄마, 혹시 형이 거짓말 하는 거 언제 눈치 챘어요?”

 “오늘 낮에. 어쩐지 느낌이 좀 쎄하지 뭐니. 그래서 찾아봤는데 무슨 있지도 않은 섬에 간다고 했더라? 아니, 왜 그런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 건지 모르겠네.”

 “정확히 몇시요?”

 “글쎄?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책 읽다가 그랬으니 한 4시 정도 됐지 싶다.”

 정석의 다리를 무언가가 휘감았다. 형체 없는 불안감이 다리를 휘감고 엉덩이를 스쳐 허리와 가슴에 도달하자 피부를 파고들어 정석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정석, 시아, 연화가 다른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정석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무튼 늦지 말고 와라.”

 정석이 집을 나서려는 찰나 시아에게 전화가 왔다.

 “야, 시아야. 잘 됐다.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너, 뉴스 봤어?”

 “뉴스?”

 “안 봤구나.”

 시아가 한숨을 쉬었다. 정석이 신었던 신발을 벗고 다시 거실로 들어갔다.

 “지금 보지 뭐. 무슨 내용인데?”

 정석이 텔레비전을 켜고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강호동과 이수근이 재치 있는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정석은 예상치 못한 농담에 맞아 실소했다.

 “켰어?”

 시아는 정석의 웃음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정석이 웃음을 멈추고 채널을 옮겼다. 시아는 너무 놀라 정석의 웃음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몸을 휘감은 농담이 사라지자 다시 차가운 걱정이 정석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시아는 무서워하고 있었다. 정석은 채널을 옮기는 자신의 손가락이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을 깨달았다. 정석이 한 칸, 한 칸 채널을 눌렀다. 마침내 뉴스가 나왔다.

 일기예보에서 분홍 옷을 입은 기상캐스터가 내일부터 10년 만의 최악의 폭염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 음. 그래, 네가 더위에 그 정도로 약한 줄은 몰랐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충격적인 사건의 기준이 보편적인지, 상대적인지를 먼저 말해줄래? 난 더 심한 일인 줄 알았거든.”

 “뭐? 아니야. 뉴스가 끝났어? 끝났네.”

 “아, 그게 아니었어? 다행이네. 그냥 말해줘. 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이야?”

 정석은 긴장이 풀어졌다. 시아가 말하려고 한 것이 다음 날의 폭염이 아니라면 처음에 정석이 염려한 것처럼 ‘보편적으로 심각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긴장을 푸는 것이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다. 정석은 후에 그 원인을 이수근에게 돌렸다. 주머니에서 뺨따귀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긴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책임 전가의 합당함을 떠나서 정석은 방심했고, 시아의 말에 의한 충격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래, 정석아. 놀라지 말고……. 놀라지 말고 들어.”

 “듣고 있어.”

 “네 오빠가 발견됐어. 혼자서. 그리고 우리 오빠는, 다른 사람들은…….”

 “아들, 밖에 나간다더니 갑자기 티비는 왜 켜니? 오늘 안 나가려고?”

 연화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정석은 목만 돌려 연화를 바라보았다. 시아의 뒤이은 말은 들렸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하기에는 휴대폰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정석은 떨어진 휴대폰을 줍는 대신 연화에게 다가가 끌어안았다. 연화는 갑자기 흐느끼는 아들을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어머니의 따스한 미소와 걱정되는 눈빛으로 아들을 보듬었다. 정석은 간신히 숨을 고른 뒤 자신이 시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연화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연화는 혼절했다.

 

 

 *****

 

 

 수종은 깊게 잠든 려경을 바라보았다. 불침번이라 해 봐야 살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이런 섬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는 불이 꺼져서 추워질 염려뿐이기에 시야 안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수종이 모닥불이 흔들릴 정도로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차례 뒤로 밀려난 모닥불이 갑자기 밀어낸 수종의 숨결에 항의하듯 수종에게 달려들려다가 자신이 메인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원통한 춤을 추었다. 수종이 식물성 제물을 붉은 무희에게 바쳤다. 무희는 제물을 덮쳐 자신의 일부로 만들었다. 동물성 제물을 바치면 고소한 기름 냄새와 지방과 단백질의 조화가 아름다운 축복을 선사해 주는 무희지만 지금은 제물이 부족한지 자신의 배만을 만족시키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남았지?”

 수종은 가방의 식량이 계속 쳐다보면 양이 늘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계속해서 식량 점검을 했다. 식량은 하루 간신히 먹을 만큼 남아 있었다. 식량 없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3주라고 하지만 지난 이틀간 거의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으니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보다 짧을 것이다. 그나마 물은 며칠 더 버틸 수 있을 만큼 남았지만 물은 식량보다 더 부재의 공백이 큰 만큼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바닷물은 남아있으니, 내일은 식수를 만드는 걸 해봐야겠네.”

 식수 만들기는 표류시 최우선 과제지만 그들은 지금 식량이 전혀 없는 황무지와 다를 게 없는 곳에 있었기에 이곳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 같은 행동은 도저히 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탈출 방법이 없는 이상 이제 여기서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아니, 근데 동아, 혜린이는 왜 이렇게 안 와?”

 수종이 숲을 보며 중얼거렸다. 슬슬 날이 서늘해지자 걱정이 생겼다. 위협 요소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섬에서 추위가 새로운 강자로 군림했다. 혹시 숲에서 길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낭패가 따로 없었다.

 수종이 몸을 일으켰다. 마침 마지막 땔감을 던진 뒤였다. 땔감을 보충하는 김에 숲에 조금 깊게 들어가 때와 장소가 없는 것 같은 커플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수종이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여느 때처럼 무섭게 생겼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람 소리에 나뭇잎이 바스라지면 몸이 움츠러들며 괜히 주위를 살피게 되었다. 물론 낮에 나무를 쓰러뜨리며 곤충 한 마리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지금은 의미 없는 두려움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종은 다섯 번 정도를 더 움츠러든 뒤에야 땔감에 적합한 나뭇가지를 한 아름 챙길 수 있었다. 수종이 외쳤다.

 “야! 이동아! 박혜린! 어디 있어?”

 대답이 들리지 않자 수종은 모래사장으로 돌아가며 몇 차례 더 동아와 혜린의 이름을 외쳤다.

 “수종…아?”

 동아는 하마타면 땔감을 전부 떨어뜨릴 뻔 했다.

 “동아야?”

 “수종아!”

 수종이 땔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동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야? 혜린이는? 어디 있느라 이제야 나오냐?”

 “수종아, 혜린이가 안 보여. 찾으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

 수종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어두운 숲과 동아의 말이 공포를 증폭시켰다. 수종이 말문이 막힌 채 나무에 등을 기댔다. 빨리 동아가 나타나 이 무서운 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동아가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중 어떤 것이 진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동아가 말했다.

 “이제 배고파. 혜린이를 찾을 수 있겠어. 그런데……. 밥부터 먹고 찾자.”

 수종의 정수리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나뭇잎이라 생각하고 손을 뻗어 정수리를 털려던 수종이 축축한 느낌에 몸을 떨며 손을 얼굴로 가져다댔다. 역겹고 비릿한 냄새에 수종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수종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눈을 빛내고 입가 뿐 아니라 온 몸이 붉게 물든 괴수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수종을 내려다보았다.

 “저게 뭐야.”

 동아가 수종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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