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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6
작성일 : 18-12-22 19:57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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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회실은 여전히 서늘했다. 살이 아리는 공기보다 차가워 보이는 동준의 눈빛이 지쳐있었다. 얼어붙은 입에서 이제 그만하자고 말할 것만 같아 손을 덥석 잡았다. 나도 그리 따뜻한 손은 아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사실 고민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라고 말하기에는 무책임해서 대신 시선을 바르게 마주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손이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떨고 있다.

 

  “밥 드셨어요.”

 

  동준이 말했다. 나처럼 동준도 고민한 기색이 역력했다. 볼수록 야윈 게 또 내 걱정을 하느라 눈썹이 찡그려졌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준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준에게 자초지종 설명했다. 검찰국장에게 후원받는 학생들을 확인해야 한다. 최근 학교 홈페이지에 명단이 올라왔다고 들었으나 열람하기 위해선 재학생의 아이디가 필요하다고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동준이 볼펜을 들었다. 포스트잇에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힌다. 기억하기 쉬운 아이디와 비밀번호지만 나는 고이 접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동준의 머리를 조심스레 정리했다.

 

  “내가 그 말 했던가?”

  “무슨 말이요?”

  “화단에 새싹 돋았더라.”

 

  눈을 동그랗게 뜬 동준이 감탄했다. 재차 듣고 싶은지 한 번 더 되묻고 헤실헤실 웃었다. 웃음이 예쁜 아이. 나는 이 아이를 위해 이것이 마지막 기회는 아니더라도 마지막인 것처럼 잡을 것이다. 그 어떤 순간의 감보다 지금의 감을 믿었다. 놓치기 싫고 놓쳐서는 안 된다. 꽃보다 새싹을 보게 해주고 싶다.

 

 

  *

 

 

  학교 홈페이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활용을 못 할 뿐이지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동준이 적어준 아이디로 로그인했다. 정보공개 카테고리에 후원 명단이 있었다. 외부인이지만 열람할 수 있었다. 이렇게 손쉽게 볼 수 있는 곳에 크게 보면 인권 문제를 초래할 내용을 굳이 올린 이유가 무엇일까 문득 생각했다. 이름과 학년, 반, 최소한의 인적사항이 적혀있다. 다섯 명 중에 세 명이 곧 졸업할 삼학년이었다. 이학년 한 명 그리고 나머지 일학년의 이름이 익숙했다. 익숙한데 잠깐 곱씹었다.

 

  정예찬.

 

  그 수많은 이름 중에 하필. 왠지 머리맡으로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절로 입술이 벌어졌다. 정황이 내 감을 우연이라 말해도 좋다. 나는 이 우연으로 판을 뒤집으면 된다.

 

  사건 당일 유일하게 2층에 있던 걔, 얼굴에 피멍을 달고 다녀도 넘어져서라고 말했다. 동준의 피해를 알고 있었고 기말고사에서 박성우를 제치고 1등을 했지만, 전혀 기뻐 보이지 않던 걔.

 

  “정예찬.”

 

  처음 이름을 불러본다. 어쩌면 동준의 혐의를 벗겨줄 소년의 이름이다.

 

 

  *

 

 

  꽃도 생명이라고 제 나름 아등바등 사는 건지 아주 질겼다. 자주 가는 사우나 화장실에 화분이 하나 있었다. 빛이 일절 들지 않아 밖으로 옮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볼 때마다 했었다. 곧 죽을 거라고 마음 한구석에서 안타까워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기억이 사라질 때쯤 다시 갔었다. 누구의 손길 한 번 받지 않는 것 같은 꽃이 시들기는커녕 전보다 생기가 돌았다. 신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좀 봐달라고 한 것 같다. 살고자 했었다. 불쌍하다.

 

 

  *

 

 

  몇 번의 시도 끝에 연락이 닿았다. 그러니 수신음의 시간을 합산한 만큼의 고심으로 정작 만남은 쉬울 거로 생각했다. 제의를 받아들일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처음 만났던 카페로 순순히 나왔다. 상처는 거의 아물었다. 연고가 효과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까먹지 않고 핫초코를 주문했다. 오자마자 한 모금 마신 정예찬이 안경에 서린 김을 닦았다. 용건이 뭐냐고 경계하는 어린 짐승 같지는 않았다. 대뜸 말하기를, 찾았냐고 했다. 나는 주어가 없는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예상도 하지 못한 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걔는 입술을 우물쭈물 씹었다. 이렇다 할 표정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증언 안 할 거예요, 나는.”

 

  정예찬에게 힐끗 시선을 던졌다. 나는 가방에서 꺼내던 후원명단을 도로 집어넣었다.

 

  “뭘?”

  “이거.”

 

  정예찬이 얼굴에 난 상처를 가리켰다. 패딩 지퍼를 내려 라운드 티를 벌렸다. 쇄골에는 불에 지진 것 같은 자국이 있었다. 볼펜 뚜껑 정도의 크기였다. 그게 뭐냐고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알고 전화한 거 아니에요?”

  “.....”

  “박성우가 이랬어요. 근데 내가 나선다고 도움이 되진 않잖아요.”

  “.....”

  “도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왜 혼자 2층에 있었을까 대한 의심뿐이었고 그래서 만났을 때는 어렴풋이 정예찬도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날의 멍 자국은 선명했고 본인의 입을 통해 듣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정예찬에게 증언을 바란 적 없다. 그러나 이 아이는 두 수를 더 고민했다. 여기로 오기까지 무슨 심정이었을지는 가늠이 안 됐다. 옷을 단정히 정리한 정예찬이 말했다.

 

  “김동준 불쌍하지만요.”

 

 

  *

 

 

  사무실 소파 위에 길게 누워 편의점에서 산 담배를 요리조리 돌려봤다. 이게 불에 태우면 짧게 쪼그라들고 겉으론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데 들이마신 사람과 그 곁에 머물러 있던 사람에게 그렇게 치명적이다. 재를 잘못 털 경우에는 작은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간혹 무기로 사용된다. 사람의 피부를 재떨이로 삼아 지진다. 불씨는 살에 들러붙어 천천히 타오른다. 며칠이 지나면 아무는지 모르지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 기이한 행동엔 이름도 있다. 그것은 정예찬 쇄골에 번져있는 자국의 이름과 같다.

 

 

  *

 

 

  사람이 사람을 불쌍하게 여길 때,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나의 가치보다 열등하다고 인지할 때.

 

 

  *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동준이 진범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제4차 공판에서 김지빈은 10년 전 사건을 운운했다. 11살 때부터 7년간 갖은 폭력을 행했던 친부를 살해한 고등학생의.

 

  당시 가족을 살해한 미성년자는 생소해서 수면 위로 떠 올라 한동안 사회를 들썩였다. 그의 얼굴은 폭력의 흔적이 빼곡했다고 기사가 났었다. 그를 가엾게 여겨 두둔하는 여론이 형성됐고 피해자는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것은 법적인 정의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아무리 안타까운 일을 당했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다 한들 버러지 같은 인간을 죽일 권리는 그 어떤 인간도 없다고. 그 때문에 법은 법에 따라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김지빈은 이번 일이 그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게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라고 말했다. 살인미수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또 한 번 법의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으쓱했다.

 

  나는 차이점은 그게 아니라고 반론했다. 그는 가해자고 동준은 용의자라는 사실을.

 

  정당방위 좋아하신다.

 

 

  *

 

 

  “잘하네.”

  “왔어?”

  “용케 여기까지 끌고 왔다. 너.”

 

  법원 의자에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목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마 위로 차가운 캔이 올려졌다. 눈을 뜨기 전에 순간 김지빈 하고 부를 뻔했다.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봤던 수지였다. 캔을 따서 내게 건넸다.

 

  “뜨거운 거 당기는데.”

  “잔말 말고 그냥 마셔라.”

 

  이온 음료를 받아 쭉 들이켰다. 그제야 숨을 몰아쉬는 내 볼을 조물조물 만진 수지가 말했다.

 

  “재판 좀 한다고 핼쑥해졌네, 얘.”

 

  나는 잠자코 웃었다. 재판 때문만은 아니고 진짜 며칠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고 대답했다. 눈썹을 치켜 올린 수지가 되물었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잘 챙겨 먹는 애가, 하며 의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고 밤에 배달이라도 시켜 먹지 그랬어, 하고 뒷말을 이었다.

 

  집을 나와 그럴 수 없다고 말할 것 같은 입이 다물렸다. 대답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나를 수지는 험상궂게 바라봤다. 눈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시선이 이곳저곳에 머무는 것 같아 긴장했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음료수를 마셔도 건조했다.

 

  “너 집 나왔냐?”

 

  이젠 정말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여간 눈치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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