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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5
작성일 : 18-12-22 19:24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6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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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이 났다. 재보진 않았지만 높을 것 같다. 누워있는데 등이 따가웠다. 사실 어디 닿은 부위마다 내 살갗이 아닌 것 같다. 식은땀에 샤워한 것 같다. 코가 막혀 어지러웠다. 열만 나면 버틸 만할지도 모른다. 입안이 건조하고 쓰린 정도로 끝날지 모른다. 사방이 빙글빙글 도니까 움직일 수 없다. 창문을 때리는 빗물 소리가 거슬렸다. 혹시 내가 찾지 못한 증거가 저 비에 전부 씻겨 내려가면 어쩌나. 눈은 떴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눈꺼풀이 끈적끈적했다. 목걸이를 찾자 또 하나의 곤란이 터진다. 행복은 정말 유연하게 오지 않는 것 같다.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이 생기고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체감되는 인생이라 때로는 나쁜 일 뒤에 나쁜 일이 올 수도 있지만 그건 미래의 큰 행복을 위한 축적일 것이다. 좌절하지 않고 기대할 힘이 나도록 그렇게 위로한다. 그러다 보면 잠이 쏟아진다. 모든 소음은 노래를 듣는 것처럼 편안해진다.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지 않아도 된다. 간혹 꿈을 꾸기도 한다. 꿈에는 자기 전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이 영상으로 재생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어지간히 김지빈을 생각했나보다. 김지빈도 나만큼 날 생각해서 꿈까지 꿀지는 미지수였지만.

 

  김지빈의 손이 내 이마를 만진다. 눈썹 뼈를 조금조금 마사지한다. 현실이라면 이백 퍼센트 착각일 김지빈의 얼굴이 시무룩하다. 울상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진 않지만, 만약 운다면 저런 표정을 지을 것 같다. 김지빈이 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꿈에서라도 운다면 그게 꿈의 장점이 아닐까.

 

  나쁘지 않다. 날 위해 우는 김지빈이라니. 요즘 김지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프지 마, 하고 꿈속의 김지빈이 말한다. 듣도 보도 못한 물기 어린 목소리다. 이럴 땐 또 한 살 동생이 확실하다. 나쁜 녀석, 하고 답한다. 다 알아, 너도 동준이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잖아, 그냥 나한테 지기 싫은 것뿐이지, 난 다 안다고. 김지빈의 검지가 입술까지 내려온다. 까끌까끌한 손길이 느껴진다. 내 입술이 까끌까끌할 수도 있다. 콱 물고 싶은데 힘이 없다. 김지빈의 고개가 천천히 숙어진다. 일정한 숨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린다. 신경 쓰지 마, 하고 말하려던 입술이 다물린다. 내 이마와 김지빈의 이마가 만난다.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하고 뚝뚝 끊어지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꿈에서도 독심술을 쓴다.

 

  나 또한 김지빈이 신경 써주길 바란 것 같다. 재판이 거듭할수록 지난날의 회의가 밀려왔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녀석과 생판 다른 녀석이 내 앞에 있었다. 미묘했지만 수줍던 감정은 역시 거짓이었나, 그 거짓말에 속아 몇 년을 지새웠는데, 아무렇지 않아버리면 이젠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게 되는데,

 

  너는 정말 아무렇지 않으냐고 묻고 싶다.

 

 

  지빈아, 나는.

 

 

  목이 멘다. 눈을 감은 김지빈이 작게 진동했고 그건 내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동안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이마의 온기를 느낀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다.

 

 

  *

 

 

  박성우의 조사가 계속 미뤄질 때 박성우의 집 앞에서 진실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라도 할까 고민했다. 드디어 경찰서에 출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리는 깁스를 했다. 낯빛은 초췌했고 휠체어 신세였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상태였지만 눈빛이 상당히 느긋했으며 말투엔 여유가 넘쳤다고 담당 형사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형사는 동준을 안타까워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됐다.

 

  미지근해진 자판기 커피를 단번에 마시는가 싶더니 종이컵을 인정사정없이 구겼다. 쓰레기통을 골대 삼아 던졌다.

 

  박성우의 조사서를 확인했다. 가해자라는 사실이 빼곡히 적힌 내용 중에서 새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박성우의 부친, 즉 검찰국장이 학교에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는 것과 몇몇 학생을 후원하고 있다는 것, 다소 훈훈했지만 내겐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

 

 

  “한 번이요. 딱 한 번만.”

 

  학교 정문을 통과하려는 내 앞을 경비원이 막아섰다. 그때 그 경비원은 아니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동안 쉬기로 했다고 들었다. 본인의 의지인지 타인의 결정인지는 알 수 없다.

 

  “딱 리스트만 뽑아 온다니까요?”

  “안 됩니다. 절대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어요.”

  “누가? 누가요? 야박하게 정말, 사람의 인생이 달린 중요한 일인데.”

 

  두 손을 냄새나게 비비며 애원해도 소용없다. 단호박 한 통을 삶아 먹은 듯한 경비원이 등쌀을 밀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가 한숨을 내뱉었다. 계속 이러면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협박까지 한다. 아아, 동네 사람들, 여기 무고한 사람을 협박하는 나쁜 아저씨가 있어요. 나는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경비원의 손이 허공에서 길을 잃었다. 그래, 어디 신고해봐. 이 학교 학생이 살인미수 용의자가 됐는데 어떻게 협조 한 번 안 하고 맨날 문전박대야. 진짜 비리로 똘똘 뭉친 학교, 매정한 학교.

 

  “가지가지 한다.”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나를 잡고 있는 경비원보다 악질을 본 것처럼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넌 또 왜 여기 있어? 이쯤 되면 스토커가 아닌지 의심된다.

 

  그러자 왠지 눈빛이 싸늘해진 것 같은 김지빈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결국 내 몸뚱이를 다시 일으키게 했다. 엉덩이를 찰박찰박 털었다. 그 옛날 학교 구멍가게에서나 봤던 쫀디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한심하단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난 저 삼색 쫀디기보다 꿀 나오는 호박 쫀디기를 좋아했다. 그냥 그렇다고.

 

  역시나 추리닝에 패딩을 걸친 김지빈은 어울리지 않는 안경까지 썼다. 어째 쟤는 고시 준비할 때보다 지금이 고시 준비하는 학생 같다. 학교에서 유유자적 나와 더 그래 보인다.

 

  “뭘 그렇게 굶주린 개처럼 봐.”

 

  굶주린 개라니, 내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너한테 빌빌대진 않을 거거든. 나는 괜히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옮겼다. 경비원이 전에 없는 다정한 표정을 짓는다. 하마터면 누구세요? 하고 물을 뻔했다.

 

  “아이고 검사님 수고 많으십니다.”

 

  김지빈은 아이고 검사님이고 나는 발도 못 들이는 신고감이고. 허리를 숙여 김지빈한테 꾸벅 인사하는 경비원 아저씨의 이중성에 박수를 보낸다.

 

  어디선가 땡 하는 실로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루저 외톨이 하는 노랫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하필 이렇게 초라한 순간에만 마주쳤다. 참 허탈한 운이다.

 

  땅에 눕듯이 앉을 때 구겨진 내 코트 자락을 확인한 김지빈이 혀를 찬다. 아니, 네 몰골을 보라며 받아치고 싶었는데 쟤는 자의고 나는 아니라 입을 꾹 다문다. 그리고 김지빈의 손목에 붙어있는 시계가 ‘나니까 이래도 간지나.’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기가 죽는다.

 

  “허.”

 

  교문에 서 있는 번쩍인 차가 누구 것인가 했더니 어기적어기적 걸어간 김지빈이 문을 연다. 아니 차는 언제 바꿨대? 어쩌면 몇 대 있는 거 나만 몰랐을 수도 있지만, 내가 김지빈에 대해 부모님 다음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는 게 아는 게 아니었다고 인정하고 체념한다.

 

  김지빈은 올라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어정쩡하게 있는 나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냥 멍한 건지, 한동안 그렇게 바라보니 속이 이상하다. 토할 것 같진 않은데 울렁거렸다. 그렇다고 어지러운 것은 아니었다. 김지빈이 말했다.

 

  “누나는 참 시대에 뒤떨어져.”

  “뭐?”

  “성격답다고.”

  “내 성격이 뭐 어때서.”

  “그렇게 무턱대고 찾아온 결과를 봐.”

  “야,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비정한 사회 탓이지.”

  “그래, 이왕에 좀 더 소리쳐보고 피켓도 들고 해."

 

  수고.

 

  끝까지 약 올리는 김지빈 때문에 넋이 나갔다. 김지빈이 탄 차가 눈앞에서 부드럽게 멀어졌다. 속에서 욕이 부글부글 끓었다. 쟤 진짜 나한테 왜 저러냐. 머리를 빨래 쥐어짜듯 잡았다. 저것도 그냥 같이 살면서 몰랐던 부분이겠지. 나는 옆에 있는 경비원을 돌아봤다. 아저씨가 봐도 쟤 진짜 너무하죠? 아까까지 경비원 아저씨한테 받았던 설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

 

 

  후원받는 학생들의 명단을 뽑아올 생각이었는데 실패했다. 답답해서 오랜만에 게임을 했다. 이상하게 게임은 3분 이상을 못 한다. 재미없다기보단 금방 질렸다. 그래서 한 게임에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한다.

 

  현재는 누가 먼저 상대방의 건물을 파괴하는지다. 2대2 플레이는 무작위로 팀이 꾸려진다. 게임 도중에는 대화창이 막혀 서로 논의할 수 없다. 전략을 짤 수 없어 애가 타는 경우가 많지만 그만큼 능력치는 두 배가 된다. 여기선 이런 방향으로 공격했으면 좋겠고 저기선 이런 방어를 했으면 좋겠고 이게 서로 어긋날 때 그건 보나 마나 지는 게임이며 지금이 딱 그랬다.

 

  배경화면 가득 패했다는 글씨가 떴다. 패 뒤에 왜 물결표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놀리는 건가. 한 판 하니까 마침 3분이 지났다. 사실 시간과 상관없이 짜증 나서 끄려고 했다. 같은 팀이었던 사람으로부터 쪽지가 왔다. 더럽게 못 하네, 님 나이 많죠, 게임을 하기 전에 인터넷부터 배우고 와요. 하는 말들이 답문도 하기 전에 연속으로 온다. 이게 다 내 탓으로 미룬다. 나이와 게임이 무슨 연관이라고 기가 막힌다. 그렇게 젊은 사람이 하드캐리 하지 왜, 하고 듣지도 못할 상대방에게 꿍시렁거렸다. 노트북을 쾅 닫았다. 옆자리 변호사가 또 놀란다. 되게 잘 놀란다. 일이 안 풀리냐고 묻는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원 명단 가지러 갔는데 까였거든요.”

  “그게 변호사의 숙명이죠. 검사한텐 사소한 것도 잘만 알려주는데.”

 

  대답하던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근데 이 변호사님.”

  “네.”

 

  나는 또 대충 대답했다.

 

  “후원 명단은 인터넷.”

 

  까지 말하다 콜록거린다. 뭘 마시지도 않았는데 사레가 들렸나 보다. 쟤도 인터넷, 얘도 인터넷, 인터넷이란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변호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말한다.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뭐라고? 나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학교 홈페이지에 며칠 전부터 공시했던데.”

 

  시대 참 좋아졌지만 이래서 인터넷 중독에 걸리는 걸까.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신 재직자나 재학생의 아이디가 필요해요. 그래야 열람 가능해요.”

 

  그거라면 나한테도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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