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가 책상 밑에서 나오면서 ‘스톱!’의 손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저기! 미안한데. 안전모 쫌 쓰고 하자. 만약에 머리를 맞으면 골로 갈 수 있잖아. 그럼! 너희들도 살인자 될 거고. 잠깐만 안전모 가져 올게;”
가관인 표정들. 김성태가 입을 열었다.
“이 새끼! 완전 또라이구먼. 그래! 미친 새끼! 너 좋을 데로 해라;”
수리가 두 손을 빌듯이 모아 입술까지 올려, 입술을 비틀어 비웃고 있는 남정네들 틈새로 빠져 나가 안전모를 두 개나 들고 왔다. 남정네들이 뒤로 주춤했다. 안전모를 무기로 여긴 것 같았다. 수리가 히죽이 웃으며 안전모 하나를 순희 머리에 씌우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머리가 작은 거야? 안전모가 큰 거야? 병아리 우장 같네;”
순희 눈까지 덮어버린 안전모를 다시 씌우려고 올리는 걸 본 김성태가 비웃으며 비꼬았다.
“사내 새끼가 여자를 싸움에 끼워 넣어? 그러고도 너도 사내야?”
들은 척 만 척 기어이 순희에게 안전모를 씌우고 말한다.
“어머니가 가르쳐드린 거 있죠.”
순희가 안전모를 뒤로 밀려 김성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김소장님은 계집인가요. 비겁하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요? 우리 여자도 당신처럼 비겁한 짓 안 해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나이 들면 중성이 되는 모양이죠. 당신은 사내 자식이 절대 아니란 것만 알고 계세요.”
수리 손에 있던 안전모를 뺏어 직접 썼다. 총기 있는 눈을 뽐내듯이 말똥말똥하게 뜨고 ‘준비됐다’ 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싸안고 싶은 심정이었던 수리가 실수할 뻔 했다. 이럴 때가 순희에게 성적 욕구를 가장 많이 느낄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남정네 하나가 김성태처럼 비웃으며 말한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치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순희에게 씌웠던 안전모가 바로 순희 머리에서 나와 남정네의 눈덩이를 눌러 붙어 버렸다. 너무 기습적이었다. 김성태가 뒤로 주춤했다.
“안주임님! 이 놈만 처리해 주세요.”
수리가 가리킨 이 놈은 김성태이었다.
그러나 순희 몸은 이미 굳은 상태로 눈만 움직이고 있었다. 김성태가 입 꼬리를 치켜세워 자기를 보고 비웃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르지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억 소리에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비겁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잘난척하며 발을 쭉쭉 올리며 가르치던 동작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발로 정강이만 걷어차고 안전모로 눈두덩이만 가격을 하는 지, 누르는지 헷갈릴 정도로 집중적으로 거기만 때리면서 서너 대 얻어터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순희 몸이 꿈틀꿈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지나 남정네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게 눈에 들어오면서, 김성태가 가세하려고 발을 꿈틀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 순희가 남정네들과 김성태를 세어 보았다. 총 넷이었다. 혼자서는 불감당이란 걸 너무 늦게 깨우쳤지만 힘이 되려고, 수리 어머니에게 배운 데로 불알을 차야 하는 데 등만 보였다.
그렇다고 꿈틀대는 김성태 등을 두르려 ‘소장님! 저 좀 봐요’하면서 돌려 세워 정강이를 걷어 찰 용기도 순희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안순희가 누군가? 수리가 구시렁댔던 영악한 년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순희 발이 김성태 종아리로 갔지만 거기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뒤꿈치만 차버렸다. 그 후 순희는 양팔을 하늘 높이 치켜 올려 폴짝폴짝 뛸뻔했다. 김성태가 그 자리에서 ‘억!’소리가 아닌 ‘악!’을 내고 바로 꼬꾸라져버렸다.
‘아뿔싸!’
자기도 바쁜 와중에 고개를 돌린 수리 입에서 나올뻔한 탄식이었다. 환희에 젖은 순희가 수리 목을 감싸 안고 폴짝 뛰어들 기세의 눈빛을 수리에게 보냈다. 탄식은 나오지만 이 상황이 아니면 언제 한번 안아 보겠나? 순희를 꼭 안고 말했다.
“잘 했어! 잘 했어!”
“나! 잘 했지?”
“그래! 그래! 대단하다. 대견하다.”
이 사건 이후 이 두 사람간의 존칭어는 평생 동안 없었다.
부부의 힘도 대단하지만 예비 부부의 힘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날이었다. 연한 갈색의 타일이 붉게 변해 있었다. 신음 소리도 여기저기 들리고 있었다. 순희가 누구 입에서 나오는 신음소리인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어느 부분이 터졌는지 확인하는 건 둘째치고 몰골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얼굴들이 붉게 칠해져 있어 실망한 표정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그때 수리가 허리도 세게 돌리고 다리도 끄떡 끄덕 올리며 스트레치를 하면서 말을 했다.
“자! 이제 몸을 풀었으니 본 게임을 들어갈까?”
순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끝났잖아.”
“주먹 한번도 못 써 봤어. 지금 주먹이 울고 있잖아. 이거 봐! 자기도 한번 만 써 달라 하잖아.”
수리가 순희 눈 앞에 주먹을 가져다 놨다.
“그렇네! 깨끗하네.”
수리와 순희가 거의 애정행각과 같은 짓을 할 때 남정네들이 하나 둘 도망치고 있었다.
“어이! 이렇게 해두면 누가 치워요? 어지럽혔으니 치우고 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 영감님도!”
그제서야 순희는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있는 느낄 수가 있었다. 마음 같았으면 이대로 안고 의자에 앉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란 것 정도는 잘 아는 순희이었다. 수리 목을 감쌌던 팔을 목발로 삼아 책상을 짚으며 수리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묘한 기분을 들면서 ‘야! 빨리 치우고 꺼져!’ 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어떻게 저렇게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지, 신기해하면서 이부장과 박대리도 저 무리에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도 같이 들고 있었다. 열심히 마대 질을 하고 화장실에 가서 마대를 깨끗이 빨아서 또 닦는 신기한 장면을 순희는 더 즐기고 싶어 했었지만 상황이 너무 빨리 종료돼서 아쉬운 마음도 컸다. 두 남정네가 김성태를 부축해서 나가고 마지막 한 명이 뒤따라 나갈 때 수리가 불러 세웠다.
“너희들 동네가 어디야?”
대답이 없었다. 수리 시선이 순희에게 향했다. ‘내보고 어쩌란 말이야?’ 이 생각을 하며 멀뚱히 보고 있었다. 그때 수리가 엉거주춤 서 있는 남자를 보고 고개를 까딱 하면서 빨리 나가라고 하고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순희는 배를 잡고 웃었을 뻔했다.
수리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있었던 줄도 몰랐던 마지막 한 놈이 어기적거리며 일어섰다. 수리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광속으로 내빼다가 아직 물기가 덜 마른 타일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나자빠졌다. 뒤통수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지만 허겁지겁 나가는 바람에 피는 바닥에 흘리지 않았다.
공짜로 너무 신나는 액션 영화를 본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이 대미였다. 긴장으로 시작해 코믹으로 끝난 한바탕 난리가 마치고 나니 물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처럼 나른해진 순희가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정말로 새 언니가 말 한대로 깡패가 맞았구나.
삽시간에 어떻게 비슷한 덩치들을 주먹도 쓰지 않고 추풍낙엽으로 쓰러뜨려버리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전혀 무섭지 않고 믿음직하고 듬직해 보이기만 했다. 짐 챙겨 가는 건 다시 한번 생각해볼까 했지만 남의 남자지. 김샜다. 씁쓸히 웃으며 여기 온 목적을 실행하려고 일어섰다.
그때 경호가 헐레벌떡 뛰어들어 오다가 방금 나가던 남자와 똑 같이 물기 덜 마른 바닥에 비틀하다가 중심을 잡고 물었다.
“형수님! 무슨 일입니까? 바닥 청소하라고 불렀어요? 형님! 아니! 사장님은요?’
‘내가 왜 형수야? 이 사기꾼들아! 너도 똑 같은 놈이야’라고 뇌까리고 있었다.
바닥을 너무 깨끗하게 치우고 가서 경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순희는 놀란 가슴이 여전히 쿵쿵거리고 있었지만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깡패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하는 짓들은 깡패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는 두목 자리다. 두목처럼 수리가 들어간 방으로 시선만 향한 채 고개를 까닥했다. 수리는 창가에 둔 선인장을 보고 있었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그렇게 물으며 수리 발을 보면서 물었다.
“형님! 설마 이 안전화로 걷어찼어요. 잠깐!”
고개를 갸웃하면서 깨끗이 씻겨져 있는 안전모를 들고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형님! 안전화와 안전모는 살인 무기인 거 잊었습니까? 아! 정말 감이 많이 떨어졌네요.”
“그럼! 안 쓰던 주먹 쓰면 뼈만 탈나는데 내가 미쳤나? 주먹 쓰게. 표시도 없이 서너 달 고생할 짓을 내가 왜 하냐?”
투덜대면서 자리에 앉아 옆에 있는 의자를 당겨 옆에 앉으라고 하고,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경호야! 이 사진에 나오는 놈이 탱크로리 기사다. 이 놈 뒤를 좀 캐 봐야겠다. 지금 하는 짓으로 봐서는 자격증 빌려 준 사람에게도 패가 갈 것 같고 나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해양경찰이 올 때 어르신들이 막아줬지만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그 분들도 귀찮아 할거야. 도와주려고 하다가 조사까지 받았는데 또 받으면 도움을 못 받을 수도 있다. 그전에 김성태 입을 막아야지. 여기 사진에 나오는 놈이 사도유화 화물을 나르는 양아영이라는 탱크로리 기사다. 이 놈만 족치면 연관된 놈들이 줄줄이 나올 거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놈들을 고발하는 게 아니고 입을 막으려는 거다. 너희들이 자격증 딸 때까지만. 소문 안 나게 하려면 애들이 직접 뛰어야 할 거다”
경호가 이런 일을 싫어한다는 건 수리도 잘 알고 있었다. 씁쓸한 미소가 오갔다.
“형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이런 좀도둑을 우리가 어떻게 상대합니까? 쪽 팔리게. 그리고 이 사진 좀 보세요. 이게 어떻게 도둑질 사진으로 보여요. 한적한 곳에서 기사들이 쉬고 있구먼.”
수리가 다른 파일을 보여주며 말한다.
“자! 이 금액을 보고도 좀도둑이나 쉬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어?”
경호가 꼼꼼히 보기는 봤지만 피씩 웃으며 투덜거렸다.
“아이! 형님! 꼴랑 이천사백 만원이면 좀도둑이죠. 이억 사천만원 정도는 돼야 도둑 축에 들어가죠. 이 동네 정말 지저분하네요. 형님도 그렇고. 이런 놈 잡아서 우리한테 무슨 덕이 됩니까?”
이 말이 가져다 준 충격은 대단했다. 돈의 규모에 대한 사고 방식이 경호와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 뒤로는 경호뿐만 아니라 TS건설에서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말 좁쌀만한 일을 가지고 직원들을 동원하는 민폐만 끼쳤다는 생각을 수리는 한다.
경호도 지금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재와 건호 형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없이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인원이 필요한 것도, 치고 박고 싸우는 것도 전부 자기만을 위한 이기심에서 나온 결과라는 생각과 이 업계에서 떠나야겠다는 마음도 같이 나타났다. 주먹이 필요했을 때 쫓아가면서 이제 정말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멀리 했을 때를 떠올린다. 차라리 그 속에 있었다면 이런 비겁한 짓은 할 일이 아예 없다는 생각도 한다. 아무 말도 없었다. 분위기만 썰렁해졌다. 경호가 눈치를 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