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가는 내내 별별 생각이 다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집단이라며, 모기 보듯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봤던 몹쓸 집단의 도움을 받은 자신을 한심스럽기까지 여기고 있었다.

　교활한 놈! 사악한 놈! 애매모환 헛웃음으로 박대리나 김소장과 다른 사람이라며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그들은 동내 애들을 모아놓고 거기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어느 한 놈도 책임지는 대장 노릇을 하려고 한 사람은 없었다. 김소장은 잘 차려놓은 밥상에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며 슬그머니 끼어 들려다가 망신만 당한 꼴밖에 되지 않았다.

　박대리도 권세를 부리려면 조금 그럴싸한 놈을 택했어야 했는지 먼 미래를 볼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망신만 당한 꼴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벌린 손을 잡은 사람의 인품과 주변의 평가. 경험하면서 후회를 하는 사람이 숱하게 많다.

　수리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장 도움이 필요해 잡은 손이 영원히 그의 허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채워진 족쇄가 된다는 사실. 이완호, 박한철, 김성태도 은근슬쩍 끼어들어 어느새 실세가 된다는 사실. 그들의 종놈으로 전락하는 건 기정 사실.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비극이며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는 본인만의 불찰. 등신!

　TS건설에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TS건설 창업자인 보수 아재와 대를 이을 건호 형님만 남아 있었다. 수리가 예상한대로였다. 노크와 함께 나타난 수리를 보자마자 화색이 밝아졌다. 만약에 찾아가지 않았다면 아재는 일그러진 채 퇴근을 하고 며칠 내내 그 모습으로 주름만 늘어났을 것이다. 앉자마자 사랑의 매인 야단부터 쳤다.

　“야! 이놈아! 무슨 사업을 애들 소꿉장난하듯이 해!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런데 네가 하는 일이 도대체 뭐냐?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도통 감이 안 잡혀”

　수리는 정수리를 아재 머리 머리맡에 다소곳이 내려놔야만 했다. 아재 중지 손가락 뼈마디에 금이나 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수리 정수리에서 엄지 발가락 끝까지 찌릿한 전율이 전해졌다.

　“아야~~ 어이~~”

　마지막 8이라는 알파벳이 나오기 전에 입을 막았다. 몸서리를 한번 치고 다소곳이 앉았다.

　“참! 자격증 빌려 준 분들 모셔서 섭섭하지 않게 식사라도 한번 대접 하거라. 오늘은 너도 얼떨결이었고 상대도 얼떨결에 우리 애들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겠지만 분명히 뒷조사를 다시 할 것이다. 당분간은 그분들도 출근을 하게 하고 우리 애들도 사무실에 있게 하거라. 그 사람들 때문인 것도 있지만 회사는 북적거리는 맛이 있어야 손님이 찾아와. 알았어?”

　자세를 다시 바르게 고쳐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TS건설의 시작은 주먹이었다. 지금도 주먹을 간혹 사용하지만 예전처럼 많이 쓰지는 않고 있다. 현재는 건설이 주된 종목이고 주류 사업도 같이 하는 사업장이다. 사업의 선구자가 하시는 말이라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될 조언들이었다. 말 중에 가장 구미가 당기는 말도 나왔다. 이 말은 수리가 먼저하고 양해를 구하려고 했던 말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확답을 받으려고 수리가 서둘러 말했다.

　“그럼! 경호보고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해도 되겠죠?”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벌써 이 말이 나올 줄 알고 판을 짜두었다. 심상찮은 눈짓들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나, 나름대로 머리를 돌리던 수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툭 내밀게 하는 말이 나왔다.

　“경호는 안돼. 다른 놈 데려가. 싫으면 다 데려가던가!”

　어떤 회사던 사람이 북적거리면 실보다 득이 많은 건 당연하지만 회사 이미지가 문제다. 깡패 소굴을 이전하겠다는 말이었다. 마땅찮은 표정만 짓고 있을 때 아재가 귀를 쫑긋하게 하는 말을 한다.

　“좋아! 사무실 임대료는 반반으로 하고 하루 한끼 밥은 우리 회사가 해결해주마.”

　‘밥이면 밥이지 한끼는 또 무슨 말씀?’

　벌써 건호 입가에 미소가 가득히 번지고 있었다.

　“아재요! 숟가락 두 번만 더 얹으면 안되겠습니까?”

　“안돼! 내가 네놈 식성을 모르면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아는 이상 그럴 수는 없어. 말이 길어지면 없던 일로 한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재를 보던 눈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가고 있었다. 그걸 본 건호가 수리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말을 했다.

　“걱정 마라. 아재하고 나는 오피스텔 하나 얻어서 따로 있을 거니까 애들만 데리고 있어. 너도 일을 시작하면 애들이 필요하잖아. 얘들 일당은 일년 동안만 우리가 줄 테니까 그건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어때? 이 정도면 너도 일년 안에 일어설 수 있겠지?”

　“허! 복이 이렇게 한꺼번에 굴러 들어오니 왠지 불안하네요. 그런데 무슨 이유로 오피스텔로 가십니까? 임대료도 비쌀 텐데. 혹시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이십니까? 아니면 이미지 쇄신 때문에?”

　아재가 인정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건호가 대변을 했다.

　“아재도 연세가 있으신데 이제 좀 품위 있는 사무실에 계셔야지. 애들하고 같이 계실 순 없지.”

　썩 그렇게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는지 아재가 건호를 노려본다. 그때 수리가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한 집안만 아니었으면 절대로 어리광으로 보이지 않는, 한대 얻어터질 말이 거침없이 나아버렸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아재가 무슨 사업을 하시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눈감고 아웅하세요? 어떻게 아제하고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생각을 하시고 계세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지나요? 뭐! 저는 덕분에 어깨 힘줘도 맞은 적은 없어 좋았지만.”

　건호가 바짝 긴장해 조심스럽게 아재 눈치를 살폈지만 그건 기우였다.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어쩐지 씁쓸한 미소뿐이었다. 안심을 했는지 건호가 수리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 수리는 머리만 긁적이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척만 한다. 아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이 나라 전체는 아니지만 이 동네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갓 태어난 애기뿐이지. 허허허! 네가 우리 사무실을 쓰게 되면 너도 나하고 같은 사람으로 오해를 받아 사업하기 힘들어 질 거다. 그렇다고 내가 너희 사무실에 간다고 해서 다를 건 없다. 한 다리만 건너면 전부 친척인 말 많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 내가 조카 회사 뺏었다는 소문까지 날 수가 있다. 참! 그 놈 이름이 뭐라고 했지? 회사에 찾아와 난리 핀 놈.”

　“예! 얼핏 듣기에 김성태 라고 들었습니다. 하는 짓은 양아치던데요.”

　듣기 싫어하는 말 같았다. 미간을 찌푸리는 걸 본 건호가 움찔한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대신에 생각은 꽤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수리도 건호도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끈적하게 들리는 한숨 소리를 내면서 진지하게 말하며 묻는다.

　“알았다. 제법 별난 놈 같은데 내가 이름을 모르는 걸 보니 별 볼일 없는 놈은 맞겠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얼씬 못하게 막아 줄 테니까 회사만 잘 키워. 그리고 자격증 빌려 준 사람들도 출근을 하라고 해. 돈을 꼬박꼬박 주고 있지?”

　”예! 드리는데 돌려주는 분이 대부분이라 매일 오시라고 하기가 그렇네요.”

　“그러면 안돼! 오늘처럼 사도유화에서 덮치듯이 그 놈이 고발을 하면 경찰이 언제 덮칠지 몰라. 그냥 노인정이라 생각하고 사무실에서 편하게 쉬라고 해. 명심해. 그리고 건호야!”

　“예!”

　“내일이라도 오피스텔 알아봐. 수리 너는 동생들 다 데려가. 군소리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모두 아재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어서 허투루 들을 수 없던 수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첩과 일기장을 펼친다. 사진과 일기장에 눈만 붙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불법을 피하려고 불법을 밥 먹듯이 저지른 사람들의 힘을 빌린 자신이 처량하다고, 일기장에 간략히 적고 눈을 감은 그의 입가에서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미소가 슬그머니 번지고 있었다.

　사도유화 일은 선박 일정이 밀려 일주일 뒤인 8월 1일부터 시작됐다.

　그 사이 성호는 이름을 경호로 불러달라고 하며 경호로 개명을 해야겠다는 농담을 했지만 이번 기회에 이름도 바꾸고 주먹 세계를 떠나려는 속내를 눈에 띄지 않게 드러내고 있었다.

　수리가 눈치를 채게 된 건 서랍장에 꼽힌 책의 순서가 바뀌는 걸 보면서부터였다. 새벽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소설책을 꺼내 30분 정도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수리는 책이 대충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선박구조론과 해상보험이나 화학관련 책들은 필요할 때만 보기 때문에 항상 그 자리였다가, 어느 날부터 순서가 바뀌는 걸 보고, 자격증을 빌려준 어르신들이 무료한 시간에 보고 계시는 가 싶어 물어보았지만 아니었다.

　경호가 매일 공부하면서 물어본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선생님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되면서 경호 마음을 눈치챈다.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다른 동생들보다 업무를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 머리에 먹물을 조금이라도 묻힌 놈이 낫다는 생각만 했지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하나 변화가 생긴 건 박대리였다. 시건방진 놈으로 낙인 찍어둔 박대리에게서 처음 만났을 때 그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고 등등 징그럽다고 느낄 정도로 살갑게 수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실험실에 있는 가스 소모가 빨라졌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경호가 분석에도 관심이 있는 줄 알았지만 가스 도둑놈은 따로 있었다. 박대리를 따라 회사에 왔던 순희가 분석기를 돌리고 있었다. 앞으로 분석은 TS검정에서 한다는 명분도 그럴싸하게 만들어 아예 자기 회사 실험실인양 사용하고 있었다.

　경호와 직원들에게 사도유화에서 취급하는 화물 특성과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분도 그럴싸하게 내세웠다. 어르신들을 앙큼하게 현혹을 시켜 분석 자료를 던져주고 실험실로 쪼르르 들어가 자기 볼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덥지도 않은 날인데도 에어컨도 빵빵 하게 켜기까지 했다. 가스 비에 전기 세는 안중에도 없었다. 말만 야무지게 하지 주부로 가정한다면 완전히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수리는 하고 있었다.

　그래도 환상은 깨지지 않았다.

　첫 눈에 홀딱 반할 때부터 이런 환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조건에 딱 맞아떨어졌고, 그 상태 그대로 평생을 유지시켜 주고 싶다는 그 마음뿐이었지, 전기를 많이 쓴다거나, 가스를 펑펑 쓴다거나, 물을 펑펑 쓴다거나,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덜렁대는 면면들은 수리 마음 속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은 환상이었다. 그 환상은 순희를 만나고, 같이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환상이었다. 없었던 환상을 순희가 만들었고 스스로 깨고 중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가스와 전기세가 갑자기 많이 나가는 원인을 알게 된 수리는 가스 비와 전기세 등 본전을 찾으려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쥐를 잡기 위해 쥐덫에 멸치를 끼우듯이, 분석할 시료를 실험실 입구에 두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생들에게도 연막 전술을 썼다. 밤에 분석할 시료라며 샘플 보관함에 넣지 마라고 꼭꼭 일러두었다. 그렇게 둔 샘플이 미끼가 돼 얼마 지나지 않자 순희는 덫에 걸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