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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미완성 원고
작가 : 심해해삼
작품등록일 : 2018.12.22

사라진 소설가와 남겨진 미완성 원고
7일의 여행과 7가지 기묘한 이야기

대학생 찬기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여자 친구인 효정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괴짜 소설가인 효정의 삼촌이 실종됐으며, 효정에게 삼촌이 남긴 미완성 원고가 상속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삼촌을 잘 따랐던 효정은 유작은 절대 남기지 않겠다는 삼촌의 유지를 받아 들여 직접 미완성 원고를 완성하기로 마음먹는다. 삼촌 전국을 돌면서 갖가지 기이한 이야기를 채집하고 이를 소설로 가공하는 작업을 했는데, 효정 역시 방학 동안 삼촌을 따라 전국을 여행하면서 갖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미완성 원고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한다. 찬기는 효정과 동행하기로 마음먹고, 둘은 기차 여행 티켓을 끊은 뒤 7일 동안 전국 곳곳을 돌며 기이한 이야기를 뒤쫓는 여정을 시작한다.

 
4. 매월이 (3)
작성일 : 18-12-22 00:18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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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이후부터 나는 별채 근처에서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냈소.

 

  그리고 신지 도련님이 나를 불러주길 기다렸지. 처음에는 신지 도련님도 나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셨다오. 그냥 곁에 있으면 편하게 부리고 써먹을 수 있는 하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소.

 

  당시 신지 도련님은 뭔가 날이 바짝 서 있었소. 당장이라도 누가 자기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뭐라고 쥐고 휘두를 것 같았지. 난 그런 신지 도련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시키는 것은 모조리 했소. 단순한 심부름부터 집안에 흐르는 분위기를 읽고 전해드리는 것까지 전부 도맡았지. 신지 도련님은 처음에는 심드렁하셨지만 조금씩 나를 의지하시기 시작하셨다오.

 

  이러한 내 노력 덕에 우리는 퍽 친해졌소이다.

 

 그 큰 저택에 말 붙일 사람은 나 밖에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오. 내 예상과 달리 신지 도련님은 형인 준이치로 도련님과 달리 매우 좋으신 분이였소. 비록 외모는 서리 맞은 수수깡 같았지만 넉살이 좋아서 꼭 오래 알고 지낸 넉살 좋은 동네 형 같았소이다.

 

  하지만 신지 도련님은 날 절대 별채 안으로 들이지 않으셨소. 그냥 볕이 좋은 날이면 문간에 기대에 서서 두런두런 실없는 이야기만 주고받았지.

 

 그러다가 때때로 내게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곤 했소. 빗을 사와라, 비녀를 사와라, 화장품을 사와라, 꽃을 꺾어 와라, 비단 치마를 사와라. 하나 같이 여인 마음에 드는 것들이었지.

 

  나는 아마 별채 어딘가에 꽁꽁 숨겨 놓은 소문 속 기생을 위해 신지 도련님이 선물을 가져다 바치는 거라고 지레 짐작했소. 어찌됐든 그렇게 심부름을 시키는 순간에는 신지 도련님의 얼굴에 반짝 생기가 돌아오곤 했다오.

 

  신지 도련님은 심부름을 시킬 때 마다 후하게 심부름 값을 주곤 하셨소.

 

 하지만 난 한 번도 받지 않았다오.

 

 일부로 받지 않았지. 난 그 때 더 큰 걸 노리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기생의 눈에 들려고 했지만, 신지 도련님의 성격을 보고 대상을 바꿨소. 신지 도련님은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시다가 얼마 안가 내가 속뜻을 품고 있다는 걸 눈치 채셨지.

 

  “돈 말고 다른 걸 원하는 구나, 그렇지?”

 

  신지 도련님은 노골적으로 물으셨소. 난 뜨끔했지만 기회다 싶었소.

  “네. 저는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그래, 뭘 원하느냐? 너도 나이가 나이니 술이라도 한 잔 사줄까?”

 

  “아니요. 전 글이 배우고 싶습니다.”

 

  그 말에 신지 도련님은 놀란 눈치였소. 하지만 난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대놓고 매달렸다오.

 

  “저는 말하는 법은 귀동냥으로 어찌 익혔지만, 쓰는 법은 아직 익히지 못했어요. 어설프게 몇 마디 읽을 줄은 알지만 전 제대로 된 글을 배우고 싶습니다.”

 

  난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겨우 단어 몇 개만 겨우 읽을 줄 알았던 까막눈이었소. 당시에는 드문 일도 아니었지. 먹고 살기 바빠서 학교는 문턱 조차 밟지 못했으니까.

 

 돈을 가지고 셈을 해야 했으니 숫자로 산수만 겨우 익혔소. 하지만 난 예전부터 글이 배우고 싶었소. 잘난 일본 사람들처럼 멋들어진 글을 척척 쓰면서 아는 척 좀 해보고 싶었다오.

 

  “글? 글이 배우고 싶다고?”

 

  신지 도련님은 재차 물으셨소. 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지. 그러자 신지 도련님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내게 제안하셨소.

 

  “좋아. 앞으로 점심 먹고 두 시간 씩 글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마. 대신 너는 내게 조선말을 가르쳐다오.”

 

  “조선말을요?”

 

  “그래. 요즘 매월이한테 아무리 말을 걸어도 토라졌는지 대꾸를 하지 않아. 이렇게 답답한 집에 몇날며칠 동안 틀어 박혀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 그래서 조선말을 배워서 조선말로 좀 달래주고 싶다. 내가 얼추 조선말은 읽고 쓸 줄 알지만 아직 일본어만큼 능숙하게 발음 하진 못하거든.”

 

  그 말을 듣고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오. 어떻게 보면 일석이조였지. 별채에 드나들면서 신지 도련님에게 글도 배우고, 초기 목표인 기생과도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소. 나는 그 즉시 좋다고 했지. 그 다음날부터 나는 별채에 드나들기 시작했다오.

 

  이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소. 신지 도련님은 엘리트답게 일본어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어, 영어까지 쓰실 줄 아셨지. 거기다가 일본인으로는 드물게 한글까지 쓸 줄 아셨다오.

 

  신지 도련님은 매월이가 한글 외에는 읽을 줄 몰라서 연애편지를 쓰려고 직접 독학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소. 사실 난 그때 한글을 처음 배웠다오.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한국의 글을 배우다니, 웃기지 않소?

 

  난 당시 필사적으로 쓰는 법을 배웠소. 신지 도련님 역시 내게서 온 힘을 다해 조선말을 배우셨지. 애정의 힘 덕분인지 얼마 안가 조선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조선말을 익혔다오.

 

  헌데, 몇 달 동안 별채에 드나드는 동안 난 단 한 번도 그 매월이란 이름의 기생을 보지 못했소. 아니, 신지 도련님이 거기까지 나를 들이지 않았다고 해야 옳겠지. 우리의 수업은 항상 별채 거실에서 진행됐소.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신지 도련님은 별채 안방으로 들어가셔서 두문분출 하셨지. 분명 매월이는 저 안방 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차마 들어가진 못했소. 행여나 괜한 짓을 했다가 신지 도련님 눈 밖에 날까봐 무서웠거든.

 

 

  내가 매월이를 직접 보게 된 것은 해방이 되기 딱 두 달 전 일이었다오.

 

 

 

 * * * * *

 

 

 

 “혹시 별채에 드나든다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세욱이 숨을 돌리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쉬던 틈을 타고 찬기가 물었다. 세욱은 그 질문에 잠깐 눈을 감았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했다.

 

  “운이 좋게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소. 나는 허드렛일은 도맡아 하는 놈이었소. 신지 도련님의 자질구레한 일을 봐주는 것 역시 내 일의 연장선이라고 다들 보더군.

 

  준이치로 도련님은 신지 도련님의 수발을 들어줘봤자 돌아오는 건 없다고 몇 번 타박하셨지만 딱히 나를 막지는 않으셨소. 나오미 마님은 앞서 말했듯 시동생을 가엾게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같이 나눠 먹으라며 양과자 같은 걸 들려 보내시곤 했다오.”

 

  세욱은 몇 번 마른기침을 쿨럭이면서 설명 했다.

 

  “그리고 신지 도련님은 천덕꾸러기인 했지만 어찌됐든 그 집안의 적자였소. 마쓰다 어르신은 대놓고 표현하진 않으셨지만, 나라도 신지 도련님을 챙겨줘서 다행이라는 눈치였다오. 다른 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지. 덕분에 나는 글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배울 수 있었소.”

 

  세욱은 몇 번인가 목을 가다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 * * *

 

 

  그날은 마쓰다 어르신의 생신이었지.

 

  하루 종일 집안이 찾아오는 손님들로 저택이 떠들썩했다오. 우리 하인들은 손님을 맞는데 정신이 없었지. 역시 명문가의 생신은 다르더군.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갖 부자들과 고관대작들이 마쓰다 어르신을 뵈려고 줄을 섰지. 그들이 들고 온 선물만 해도 한 창고를 가득 채울 정도였소. 이름 난 악단까지 불러서 쿵짝쿵짝 온 종일 시끄러웠다오.

 

  겨우 저녁 무렵이 돼서야 숨 돌릴 틈이 났소. 마쓰다 어르신은 조금 한가해지자 날 부르더니, 잠시 고민하는 얼굴로 생신 잔치 때 하고 남은 음식을 신지 도련님에게 전해달라고 일렀소.

 

 아무리 미워도 자식은 자식이었나 보지. 제 아무리 속물이라고 해도 다 같이 흥겨운 날에 아들 하나만 외따로 두는 건 마음에 쓰였을 거요.

 

  그 말에 난 별 생각 없이 음식들을 준비해 별채 앞으로 갔소.

 

 그리고 신지 도련님의 이름을 크게 불렀지. 하지만 답변이 없었다오. 평소라면 그냥 문간에 음식을 두고 갔겠지만, 그날 나는 분위기에 취해 술 한 잔을 걸치고 있던 상황이었소. 무엇보다 나름 신지 도련님과 친분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라 설마 이런 걸로 뭐라고 하겠냐는 생각에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오.

 

  복닥복닥한 저택 분위기와 달리 별채 안은 고요했소. 나는 음식을 들고 신지 도련님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지만, 답변은 없었다오. 잠이라도 주무시는 건가 싶었지.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열어주지 않았던 안방을 향해 바로 직행했소.

 

  “신지 도련님! 츠기오에요. 저 왔어요! 어르신이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하셔서요. 지금 주무세요?”

  닫혀 있던 안방 문을 열면서 일부러 어르신이라는 대목에 힘을 주었다오. 만약에 뭐라고 하면 마쓰다 어르신의 심부름이었다고 핑계를 댈 요령이었지. 문을 열자 묵은 공기 안에서 신지 도련님의 몸에서 나는 씁쓰레한 냄새가 훅 밀려왔소.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곱게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었소.

 

  나도 모르게 놀라서 헛, 하고 숨을 삼켰지.

 

  나는 뒤늦게 서야 매월이의 존재를 기억해 냈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그때는 해도 남자와 여자는 내외하던 시대였소. 남자가 멋대로 여자 머무는 방이 찾아오는 것도 흠이 될 수 있었지.

 

  그래서 황급히 나가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소.

 

 매월이가 미동조차 하지 않는 거요. 나는 술기운에 흔들리는 정신을 가까스로 가다듬고 매월이를 다시 바라봤소. 부드럽게 내려앉은 눈 꼬리, 다홍색의 화사한 저고리, 곱게 땋은 머리카락……그 모든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오.

 

  그 여인은, 그 여인은, 그 여인은 그림이었소.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을 데려다 놓았을 정도로 정교한 그림이었지.

 

  지금이야 어딜 가든 사진 한 장 보는 게 어렵지 않지만, 그때는 칙칙한 흑백 사진이 전부였던 시절이었소. 마침 술기운이 어른어른 올라오던 차라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진짜 사람인 줄 알았다오. 봄이 배경인 것인지 꽃나무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새까지 앉아 있었다오. 그림 속 여인은 꽃나무 그늘 아래 앉아 누구를 기다리는 지 다소곳한 모습으로 눈을 차분히 감고 있더군.

 

  “츠기오냐?”

 

  때마침 신지 도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소.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음식을 놓칠 뻔 했지.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뒤를 돌아봤소. 그러자 신지 도련님이 나른한 표정으로 히죽 히죽 웃고 있는 게 보였지.

 

  “이놈아, 인기척이라도 하지. 무슨 괭이 새끼마냥 살금살금 들어와. 뒷간 갔다 오니까 방에서 발소리가 나서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다. 그래, 아버지가 내게 뭐라도 가져다주라고 하시든?”

 

  다행이 신지 도련님은 나를 혼내지신 않으셨소. 신지 도련님은 나를 지나쳐 그림 앞에 주저앉으셨소. 그리고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긴 담뱃대를 줍더니 익숙한 자세로 뭔가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소.

 

 나는 어렸을 몇 년 전 자살한 외삼촌이 그와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는 걸 몇 번인가 본적 있어서 바로 알아봤소. 그건 분명 아편이었소. 난 그때서야 뒤늦게 도련님의 몸에서 나는 씁쓰레한 냄새의 정체를 알아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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