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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미완성 원고
작가 : 심해해삼
작품등록일 : 2018.12.22

사라진 소설가와 남겨진 미완성 원고
7일의 여행과 7가지 기묘한 이야기

대학생 찬기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여자 친구인 효정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괴짜 소설가인 효정의 삼촌이 실종됐으며, 효정에게 삼촌이 남긴 미완성 원고가 상속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삼촌을 잘 따랐던 효정은 유작은 절대 남기지 않겠다는 삼촌의 유지를 받아 들여 직접 미완성 원고를 완성하기로 마음먹는다. 삼촌 전국을 돌면서 갖가지 기이한 이야기를 채집하고 이를 소설로 가공하는 작업을 했는데, 효정 역시 방학 동안 삼촌을 따라 전국을 여행하면서 갖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미완성 원고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한다. 찬기는 효정과 동행하기로 마음먹고, 둘은 기차 여행 티켓을 끊은 뒤 7일 동안 전국 곳곳을 돌며 기이한 이야기를 뒤쫓는 여정을 시작한다.

 
2. 매월이 (1)
작성일 : 18-12-22 00:16     조회 : 327     추천 : 0     분량 : 4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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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월이

 

 

 

  철컹거리는 기차 소리에 찬기는 잠에서 깨어났다. 무심결에 창밖으로 표정을 돌리자 어디인지 모를, 단조로운 도심 풍경이 이어졌다.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에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바로 옆에 앉아 조용히 졸고 있는 효정의 온기가 살갗에 와 닿았다.

 

  “군산은 아직 멀었어?”

 

  이른 새벽에 출발한 탓에 피곤했던 것일까, 효정은 잠기운이 섞인 몽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찬기는 그런 여자 친구의 모습이 귀여워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아직 더 가야 될 거야. 좀 더 자. 도착하면 깨울게.”

 

  효정은 짧게 고개만 끄덕이더니 다시 찬기의 어깨에 기댄 채 잠에 빠져들었다. 찬기는 다시 잘까 하다가 그냥 무심히 지나가는 창 밖 풍경에 눈을 맞췄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효정에게 빌린 미완성 원고를 읽고 또 읽었다. 뭔가 하나 같이 믿기 힘든 이야기들뿐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그들은 원고의 첫 번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전라북도 군산으로 가고 있다. 과연 미완성 원고에 있는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가서 천천히 알아 보면 되겠지. 무엇보다 지금은 여행을 떠난다는 나른한 설렘을 조용히 즐기고 싶었다.

 

  찬기는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직 군산에 도착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그냥 눈을 감았다. 덜컹거리는 기차 진동이 규칙적으로 등허리를 훑었다.

 

 

 

 * * * * *

 

 

 

  “으아! 덥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효정은 찌는 것 같은 더위 속에서 투덜거리기 바빴다. 찬기 역시 효정과 별 반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일찍 서두른다고 새벽 기차를 타버린 탓에 가장 더운 시간에 도착했다. 역전으로 나오자마자 몰려온 숨 막히는 열기 때문에 황량한 회색 사막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우선 택시부터 잡자. 오늘 만날 사람은 어디에 산다고 그랬지?”

 

  찬기는 더위에 헥헥 대면서 효정에게 물었다. 효정 역시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다.

 

  “엊그제 통화했을 때는 군산항 근처에 산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택시 타고 가면 꽤 나올 거야. 군산역이랑 군산 시내는 한참 떨어져 있거든.”

 

  “그냥 택시 잡자. 나 지금 에어컨 아래로 들어가지 않으면 당장 이대로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릴 것 같아.”

 

  찬기는 여기까지 말하고서 역전 택시정류장으로 무작정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효정은 짧게 한숨을 쉬고는 찬기를 뒤따랐다. 다행이 택시 안에는 에어컨 바람이 빵빵했다. 찬기는 땀을 닦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 역시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으면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없다니까. 그래서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골동품이나 미술품을 판매하는 미술상이라고 하던데?”

 

  효정은 그러면서 보란 듯이 미완성 원고를 꺼내 펼쳤다.

 

  “주로 일본 쪽 물건을 취급하는 사람인데, 잘은 모르지만 삼촌이랑 예전부터 나름 안면이 있었던 것 같아. 삼촌은 뭔가 괴상망측하고 사연 있는 물건을 좋아해서 이상하기 짝이 없는 물건을 한 가득 수집하곤 했거든.”

 

  잘 접힌 종이 파일 옆으로 한 사람이랑 주고받은 것 같은 내역서와 영수증이 다발로 묶여 있었다. 골동품 수집이라니. 괴짜 소설가에게는 은근히 어울리는 취미다. 찬기는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군산 풍경을 바라보며 짧게 웃었다.

 

  택시는 골목길을 굽이굽이 달리더니 깔끔하게 지어진 한옥 앞에 멈춰 섰다. 겉에서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저택의 규모는 으리으리했다. 효정은 앞장서서 대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문 앞에 있는 인터폰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조세욱 선생님을 뵈러왔는데요.”

 

  목소리는 곧 아는 채를 했다.

  <어제 전화하신 정작가님 조카분이시군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얼마 안가 대문이 열리더니 반백발의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올린 여인이 두 사람을 반겼다.

  “안 그래도 우리 바깥양반이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계셨어요. 많이 덥죠? 얼른 들어와요.”

 

  말하는 걸 봐서는 오늘 만나기로 했다는 미술상의 아내인 것 같았다. 효정과 찬기는 쭈뼛거리며 중년 여인을 뒤따랐다. 집주인의 직업 덕분인지 집 안에는 오래된 그림 액자와 골동품으로 가득했다. 여인은 그들을 대청마루로 안내했다.

 

  “여보, 손님 오셨어요.”

 

  여인이 나지막이 남편을 불렀다. 그러자 드르륵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인이 얼굴을 비췄다. 나이 때문인지 얼굴에 주름살과 검버섯이 가득했지만, 눈빛 하나는 무서우리만큼 또렷했다. 노인은 찬기와 효정을 보고는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반갑소. 내가 조세욱이오.”

 

  세욱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그는 몇 번인가 마른기침을 쿨럭쿨럭 뱉어냈다.

 

  “집 주인 된 도리로 마중 나가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보다시피 걷는 것이 힘들어 이렇게 앉아 있는 건 이해해주시오. 여보, 수고스럽겠지만 손님들에게 드릴 과일이랑 마실 것 좀 꺼내오겠소?”

 

  세욱의 말에 여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종걸음으로 대청마루를 떠났다. 세욱은 한 번 숨을 고르더니 효정을 향해 물었다.

  “그래, 정작가님이 오랜 시간 출타중이라고?”

 

  “네. 정확히는 행방불명이세요.”

 

  세욱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 생각이지만 아마 지금쯤 남미의 정글 속에 있을 거요. 한 번 쯤 뱀 공주의 유적을 직접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거든. 내가 거기 가면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경고했는데, 분명 부주의하게 굴다가 바깥 시간을 잊어버린 것이겠지.”

 

  “뱀……뭐요? 그런 유적이 남미에 있다는 건 처음 듣는데요?”

 

  찬기가 묻자 세욱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당연하지.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것 자체가 불법이거든. 솔직히 나도 우연한 기회에 그곳이 어디인지 알게 됐을 뿐, 직접 가본 적은 없소.”

 

  “네? 불법이요? 그럼 선생님은 그런 곳을 어떻게 아신 거예요?”

 

  “글쎄. 떳떳한 일이 아닌지라 대놓고 말하긴 조금 그렇소만.”

 

  그쯤 되자 옆에 있던 효정이 눈치를 줬다. 더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때마침 세욱의 부인이 과일과 주스가 든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세욱은 찬기와 효정에게 과일을 권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정작가님은 내 오랜 고객이자 동시에 벗이었소.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아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조카 분이 오셔서 조금은 놀랐다오. 그래, 정작가님이 남긴 미완성 원고를 완성하고 싶다고?”

 

  효정은 머뭇거리다가 가방에 있던 미완성 원고를 꺼내 양 옆으로 펼쳤다.

  “삼촌이 사라지고 이 원고가 제게 상속되었어요. 여기에는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와 어떤 식으로 재구성할지 구체적인 계획안까지 같이 있었죠. 하지만 삼촌의 원고에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았어요. 괜찮으시다면,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제 방식대로 미완성 원고를 완성시키고 싶어요.”

 

  세욱은 뭔가 잠시 생각하더니 얼마 안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기꺼이 도와드리리다.”

 

  그 말에 효정과 찬기는 서로를 보며 안도의 눈길을 주고받았다. 찬기는 미리 받아 놓은 녹음 어플을 실행시키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지금 하실 이야기를 녹음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둘은 준비가 끝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 세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욱은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내가 아직 10대 소년이었을 적에 겪은 일이오.”

 

 

 * * * * *

 

 

  당시 군산은 일제가 수탈한 물자가 오가던 중심지였소.

 

  난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어난 세대요. 우리나라 조선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경술년 그날 영영 망해버렸다는 말만 어른들에게 들었지. 그때만 해도 난 아버지가 지어주신 조세욱이란 이름보다 츠기오란 일본 이름으로 더 자주 불려 졌소.

 

  당시 우리 집안은 무척 가난했소.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장에 내다 팔거나, 바닷가 근처에서 고기를 잡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었지.

 

  속없는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렸을 적의 나는 독립운동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었소. 오히려 정반대라면 정반대였지. 나라가 독립을 하든 말든 나 같은 무식한 가난뱅이들은 크게 뭐가 달라지기나 하겠느냐고 늘 생각하고 다녔었거든.

 

  그런 내게 일본에서 온 부자들은 동경의 대상이었소.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나라. 내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을 그들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오.

 

 일본인들이 자가용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날이면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어 하던 일을 전부 내팽겨 치고 달려가곤 했지. 친일파라고 욕해도 좋소. 아무튼 나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어떻게든 일본인들의 눈에 들어 출세하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오.

 

  집도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던 내게 일본인은 진창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이나 다름없었소.

 

  일본인들처럼 잘 살려면 일본인들이 쓰는 말을 익혀야 한다, 나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소. 그래서 일본인들이 자주 오가는 시장 바닥을 기웃거리며 아득바득 일본어를 배웠지.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난 머리가 좋은 편이오. 얼마 안 있어서 나름 몇 마디 정도는 거리낌 없이 주고받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됐거든.

 

  어느 날, 딱 봐도 귀부인인 것 같은 여자가 시장 골목에서 조선인인 가게 주인과 말이 통하지 않아 낭패를 보고 있는 걸 발견했소. 난 직감적으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음을 알아챘지. 난 중간에 끼어들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소. 그러자 그 귀부인은 남편이 주문한 술을 가지러 왔는데, 조선인이 도통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난감하다고 하더군.

 

  나는 곧바로 이 말을 통역해서 가게 주인에게 전달했다오. 그때서야 가게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큼지막한 항아리를 들고 왔지.

 

  딱 봐도 혼자 들고 갈 정도의 크기가 아니었소. 난 여기서 기지를 발휘해 직접 들어다주겠다고 말했소. 안 그래도 이 술을 어떻게 들고 가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던 귀부인은 내 호의에 곧 바로 응했지.

 

  귀부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당시 군산 시내에서 부자로 유명한 마쓰다 집안의 저택이었소. 으리으리한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그냥 바로 머리털이 바짝 서더군. 근처를 지나갈 때 담벼락 너머로 힐끗 힐끗 보긴 했지만 막상 들어와 본 적은 처음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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