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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미완성 원고
작가 : 심해해삼
작품등록일 : 2018.12.22

사라진 소설가와 남겨진 미완성 원고
7일의 여행과 7가지 기묘한 이야기

대학생 찬기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여자 친구인 효정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괴짜 소설가인 효정의 삼촌이 실종됐으며, 효정에게 삼촌이 남긴 미완성 원고가 상속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삼촌을 잘 따랐던 효정은 유작은 절대 남기지 않겠다는 삼촌의 유지를 받아 들여 직접 미완성 원고를 완성하기로 마음먹는다. 삼촌 전국을 돌면서 갖가지 기이한 이야기를 채집하고 이를 소설로 가공하는 작업을 했는데, 효정 역시 방학 동안 삼촌을 따라 전국을 여행하면서 갖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미완성 원고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한다. 찬기는 효정과 동행하기로 마음먹고, 둘은 기차 여행 티켓을 끊은 뒤 7일 동안 전국 곳곳을 돌며 기이한 이야기를 뒤쫓는 여정을 시작한다.

 
1. 사라진 삼촌, 그리고 남겨진 원고
작성일 : 18-12-22 00:15     조회 : 518     추천 : 1     분량 : 7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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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라진 작가과 남겨진 원고

 

 

 

  “이번 기차 여행 말인데, 그래서 어디로 갈지 정했어?”

 

  방학 시작을 자축할 겸 만난 자리에서 효정은 다짜고짜 이 말부터 꺼냈다. 메뉴판을 보면서 오늘은 무슨 안주를 시킬까 고민하던 찬기는 잊고 있었던 약속을 뒤늦게 떠올렸다.

 

  찬기는 방학이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기차 여행을 가고 싶다고 줄곧 효정을 졸라 왔었다. 그리고 여행 계획은 자신이 세울테니 걱정할 것 없다며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기말고사와 레포트 준비로 지금까지 기차 여행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는 효정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아, 미안. 깜빡했다.”

 

  찬기가 너스레를 떨자 효정은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래서 너한테 뭘 못 맡기겠다니까! 여행 계획은 직접 짜고 싶다며 자신만 믿으라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군대에 있을 때부터 여자 친구랑 손잡고 기차 여행 가보는 게 꿈이었다며? 몇 달 전부터 여행, 여행 노래를 부르더니 그걸 까먹어?”

 

  찬기는 핏대를 세우는 효정의 모습을 보고 조용히 한숨만 쉬었다. 효정은 평소에 친절하고 사근거리는 성격이었지만, 화를 낼 때면 웬만한 유격 조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쏘아 붙이곤 했다.

 

  “진짜 미안해! 잘못 했어! 하지만 방학은 이제 시작이잖아? 지금이라도 천천히 알아보면 늦지 않을 거야. 고작 7일 떠나는 건데 여행 계획 세우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겠어?”

 

  찬기는 간절한 마음으로 효정을 달랬다. 어찌됐든 여행을 떠나자고 한 것도 본인이고, 그 약속을 까먹고 있던 것도 본인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효정은 여전히 토라진 얼굴로 찬기를 쏘아보더니, 가방에서 낡은 종이 파일을 꺼냈다.

 

  “됐으니까 이거나 한 번 읽어 봐.”

 

  찬기는 엉겁결에 효정이 건넨 종이 파일을 받아 들었다.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제법 묵직했다.

 

  “이게 뭐야?”

 

  “삼촌의 미완성 원고야.”

 

  그 말에 찬기는 반사적으로 파일 아래쪽을 눈으로 훑었다.

 

  정종균.

 

  이 세 글자가 얼마 안가 그의 시야를 붙들었다.

 

 

 

 * * * * *

 

 

 

 

  정종균.

 

  약 1년 전, 군대 후임이 건넨 책 한권을 통해 그는 정종균이라는 작가와 처음 만났다.

 

  찬기는 원래부터 독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책과 관련된 과제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몇 권을 깨작거리며 읽는 게 전부였다. 입대한 이후에도 이건 딱히 달라지지 않아서 시간이 남으면 그냥 운동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후임이 책 한권을 열심히 읽는 걸 우연히 보게 됐다. 기묘한 그림이 그려진 표지였는데, 제목도 괴상망측했다. 그 후임은 평소에도 책을 좋아해서 자주 읽곤 했는데, 그날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처럼 절박하게 책의 겉표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찬기는 슬쩍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책이 길래 그렇게 열중해서 보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해 할 수 없는 대답만 돌아왔다.

 

  “미치광이의 일기를 보고 있습니다.”

 

  미치광이의 일기. 이 한 마디가 무슨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찬기의 뇌리에 깊이 파고들었다. 후임은 히죽 웃더니 미련 없이 보고 있던 책을 찬기에게 건넸다. 그리고 찬기는 책을 받은 그 자리에서 쉬지 않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미치광이의 일기. 그날 본 정종균의 작품은 딱 그 정도로 축약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정종균이라는 작가는, 보편적인 윤리관이나 사회적인 금제 자체를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소설을 이루고 있는 문체는 담담했지만 하나 같이 질척질척한 광기로 뒤틀려 있었다.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살갗을 휘감고 있는 것 같은 불쾌감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다음 번 휴가 때, 그는 평소와 달리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종균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란 책은 모조리 빌려서 몇날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읽었다. 책 내용이 재밌거나 감명 깊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정종균이라는 작가가 쓴 문장 하나하나가 그를 붙잡고 그대로 저 깊고 음습한 곳으로 끌어 내리는 것 같았다.

 

  효정과 사귀 게 된 것도 사실 작가 정종균의 공이 컸다.

 

  제대 한 뒤에 복학한 그 첫날, 교양수업 강의실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3인 1조가 되어 각자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강의였는데, 인원수가 맞지 않아 효정과 찬기만 얼떨결에 2인 1조가 되었다.

 

  “전 신효정이라고 해요. 1년 정도 휴학을 해서 지금은 23살이고요.”

 

  2학년이라고 해서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과 동갑이었다. 거기다 초면이라 어색할 텐데 효정은 먼저 사근사근 말을 걸어왔다. 키는 조금 작았지만, 얼굴이 동그랗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전반적으로 귀여운 인상이었다.

 

  “혹시 이번 우리 과제 말인데요, 어떤 작가로 하실지 생각해 두신 게 있나요?”

 

  처음만난 그 날, 효정은 그에게 물었다.

 

  학교는 봄을 맞아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둘은 볕이 좋은 자리에 앉아 과제에 대해 의논했다. 하지만 효정이 대뜸 묻자 찬기는 순간 할 말을 일었다. 남자답게 대화를 주고하고 싶었지만, 평생 책이라는 것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지라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뭔가 마땅한게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문뜩 예전에 읽었던 정종균의 책이 떠올랐다.

 

  “정종균이라는 작가 아세요? 군대에서 읽었는데, 뭔가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는 거드름을 피며 살짝 아는 척을 했다. 그러자 효정이 깜짝 놀라 말했다.

 

  “어머, 그 작가 좋아하세요?”

 

  그녀는 반색하며 말을 이었다.

  “저희 외삼촌이세요!”

 

 

 

 

 * * * * *

 

 

 

  “사실 피가 이어진 삼촌은 아니에요.”

 

  과제를 같이 하기 위해 다시 만난 카페에서 효정은 자신의 외가 내력을 설명했다.

 

  “저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재혼하셨어요. 삼촌은 외할머니가 재혼할 때 따라 왔다고 해요. 이후에 성도 외가에 맞게 바꾸고, 호적도 완전히 외할아버지 쪽으로 옮겼지만 처음에는 외가 식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대요.”

 

  거기까지 말하고서 효정은 뭔가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적부터 워낙 괴팍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데다가, 외할아버지의 전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은 삼촌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나요.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아요. 삼촌이 워낙 괴짜거든요.”

 

  그 말을 들은 찬기는 가만히 맞장구쳤다.

  “예상대로네요. 솔직히 그럴 줄 알았어요.”

 

  효정은 찬기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기까지 했다.

 

  “하하하. 책만 봐도 예상이 되죠? 그러다가 늦둥이인 우리 엄마가 태어나면서 그럭저럭 서로 안부는 묻는 사이는 되었죠. 큰삼촌과 작은삼촌은 따지고 보면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어찌 됐든 우리 엄마는 반쪽이라도 같은 피가 섞였으니까요. 그래도 아직은 외가에서 큰삼촌은 아웃사이더로 통해요. 괴팍한 성격은 여전한데다가, 결혼도 하지 않고, 뭔지 이해할 수 없는 글이나 쓰고 다니니까요.”

 

  이렇게 말하고서 효정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래도 전 모든 것을 떠나 순수하게 삼촌이 좋아요. 다른 사촌들은 삼촌이 미쳤다고 하지만, 고리타분한 어른들보다 말이 훨씬 잘 통하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틈만 나면 삼촌네 집에 놀러가곤 했죠.”

 

  추억에 젖어 있는 그녀는 순수하게 행복해 보였다.

  “삼촌은 여행을 좋아해서 젊었을 때부터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셨는데, 한가할 때면 여행 기념품을 보여주면서 그때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어요. 나이답지 않게 어린애 같은 구석도 있어서 같이 장난을 치거나 간식을 나눠 먹으면서 놀았던 적도 많아요.”

 

  그러고는 마주 보고 있는 찬기를 보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일렀다.

  “삼촌의 작품은 하나 같이 어딘가 괴상망측해서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드문데, 정말 엄청난 인연이네요. 우리 뭔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 한 마디 때문이었을까, 찬기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효정을 향해 기울었다. 둘은 2주 동안 과제를 같이 한다는 명목 하에 매일 만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말을 놓기 시작했고, 과제가 끝난 이후에도 종종 만남을 이어갔다. 특별한 이유 하나 없이 그냥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거나, 할 릴 없이 함께 교정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벚꽃이 막 질 무렵, 찬기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힘겹게 고백했다.

 

  효정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짧은 키스로 대답을 대신했다.

 

  “언제 우리 언제 자기네 삼촌 뵈러 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만난 건 전부 자기 삼촌 덕분이잖아. 감사 인사라도 해야지.”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찬기는 언젠가 애교를 듬뿍 담아 물은 적 있다. 하지만 의외로 돌아온 효정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건 좀 힘들겠는데?”

 

  “왜? 혹시 낯을 좀 가리시는 성격인가? 아니면 조카가 벌써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다면서 섭섭해 하시려나?”

 

  효정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 삼촌 몇 년 동안 행방불명 상태거든. 어디에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우리 가족도 몰라.”

 

 

 

 * * * * *

 

 

  “너희 삼촌은 분명…….”

 

  “행방불명 되셨지. 그런데 오늘 삼촌의 변호사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어. 만약 삼촌이 정해진 기간 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삼촌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가지고 있는 재산을 정해진 사람들에게 상속 되도록 예전부터 이야기가 되어 있었나봐.”

 

  말을 잇는 효정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오늘 변호사에게 들은 소식 때문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변호사가 그러는데, 삼촌이 내 앞으로 자신의 미완성 원고를 남겼다는 거야. 삼촌이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모아놓은 습작이나 배경 자료 같은 거 말이야. 그런데 이렇다 할 지시 사항 하나 없어. 그냥 나한테 맡기면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라는 말만 했다는 거 있지? 웃기지 않아?”

 

  말을 잇는 효정의 눈시울은 어느 새 붉게 젖어 있었다.

  “삼촌은 절대 자신은 미완성 유작 같은 것은 남기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씩 가라 앉아갔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책임을 저야 한다나 뭐라나. 죽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면 그만큼 무책임한 것도 없다고 하셨어. 그래서 이번에 행방불명되었을 때도 막연히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이나 갔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뭐야? 변호사? 자신이 죽었다고 판단? 미완성 원고? 귀띔도 한 번 해주지 않더니……이렇게……무책임하게…….”

 

  효정의 말은 이윽고 올라온 울먹거림에 묻혔다. 찬기는 갑작스러운 그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어?”

 

  그는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 파일을 꽉 틀어쥐었다.

  두껍고, 무거웠다. 지층처럼 쌓여 있는 종이와 종이가 엉성하게 묶인 채 호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삼촌은 절대 미완성 유작 같은 것은 남기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그랬다며. 어떻게 보면 너는 삼촌이 절대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 물건을 가지고 있는 셈 이잖아. 이 미완성 원고를 혹시 그냥 태워 버릴 거야?”

 

  그 말에 효정은 눈물을 훔치더니 조금은 진정된 어조로 대답했다.

  “오늘 하루 종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삼촌의 미완성 원고라면 상속자인 내가 어떻게든 완성을 시켜보고 싶어.”

 

  “네가? 할 수 있겠어?”

 

  찬기가 묻자 효정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흥, 나 국문과 전공인거 잊었어? 나름 예전에는 문학소녀 이야기 좀 듣고 살았어. 삼촌이 쓰다 만 원고를 정리하는 정도니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야.”

 

  그러면서 그녀는 미완성 원고를 손 끝으로 툭툭 쳤다.

  “만약 내가 이걸 완성시킨다면 어찌됐든 삼촌의 원고는 미완성으로 남지 않는 셈이지. 나중에 삼촌이 돌아와서 뭐라고 추궁해도 난 그저 상속자의 권리를 누렸을 뿐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야. 애초부터 무책임하게 이런 걸 맡긴 사람이 잘못이지.”

 

  그러보니 처음 함께 했던 조별 과제에서 발표자료 정리는 효정이 도맡아서 했었다. 글의 구상이 깔끔하다고 교수한테 칭찬까지 받았다. 일단 원고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아직 읽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그냥 내용을 정리해서 출간하는 것이라면 효정도 가능할지 몰랐다.

 

  “사실 예전에 삼촌에게 큰 은혜를 입은 적 있어.”

 

  효정은 찬기 손에 들려 있는 미완성 원고 뭉치를 지그시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유치원 다녔을 때였나? 갑자기 내가 아팠던 적이 있거든. 그런데 그때 아빠 직장이 한참 어려울 때여서 우리 집이 금전적으로 힘든 시절이었어. 그런데 삼촌이 나서서 내 병원비며, 수술비며, 약 값이며 다 대신 내주셨어.

 

  찬기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완치 된 이후에도 그 일을 들먹이면서 생색 한 번 낸 적 없었지. 돈을 갚으라는 말은 애초부터 없었고. 지금의 나는 삼촌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어쩌면 삼촌의 미완성 원고를 완성 시켜주는 것이 내가 삼촌에게 유일하게 보답하는 길일수도 있어."

 

  언제나 당찬 모습을 보이는 효정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 없이 작아 보였다. 찬기는 왠지 마음이 울컥해서 차분히 위로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뭐라도 말해. 최대한 힘써 볼게.”

 

  찬기의 말을 들은 효정은 씽긋 웃어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차 여행, 내가 계획해도 될까?”

 

  “뭐?”

 

  “이번 미완성 원고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삼촌은 작품을 구상 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겪은 경험담을 듣고 동의를 구한 다음, 정리해서 어느 정도 첨삭을 거친 뒤 소설로 재구성했지. 하지만 지금 내게 남은 미완성 원고는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조금 부족해. 아무래도 자료 녹취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네 말은, 기차 여행을 다니면서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겠다는 거야?”

  “맞아.”

 

  효정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연락이나 그런 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넌 그냥 몸만 따라 와. 혹시 기대했던 기차 여행이 되지 않을까봐 걱정 돼?”

 

  막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찬기는 여름에 기차 여행을 떠나자고 꾸준히 졸라왔다. 하지만 그는 예쁜 여자 친구와 함께 7일 동안 기차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에 로망이 있었을 뿐, 사실 이렇다 할 계획은 없었다. 아까 전에 본인이 인정했듯 여행 계획을 세운다고 큰 소리 처 놓고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정종균의 미완성 원고가 독자로서 느끼는 호기심과 기대심을 스멀스멀 부채질 했다. 과연 정종균의 마지막 작품이 효정 손에서 어떻게 가공 될지는 몰라도, 그 과정과 끝을 옆에서 지켜 볼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찬기는 곧바로 대답했다.

 

  “좋아. 대신 원고가 완성되면 제일 먼저 읽게 해줘. 남자친구로서 그 정도는 부탁할 수 있지?”

 

  찬기가 흔쾌히 허락하자 효정은 방금 전 보여줬던 울적한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해맑게 소리쳤다.

 

  “우리 자기가 역시 최고라니까!”

 

 

 

 

 

 
작가의 말
 

 * 이 소설은 원스토어 북스에서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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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 19-02-11 08:49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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