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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길을 잃은 날에
작가 : 연시
작품등록일 : 2018.12.21

불에 타 죽은 고등학생이 저승에서 길을 잃은 되고
망자인 상태로 과거의 이승으로 돌아가게 된다.

과거에서 펼쳐지는 '오늘' 이야기.


*로맨스판타지 장르로 선택되었지만 '로맨스'가 주는 아닙니다.

 
내일을 위한 내일
작성일 : 18-12-22 00:04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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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대장군의 거처인 ‘구천전’은 왕의 침전인 ‘구룡전’을 기준으로 천룡관 반대쪽에 있었다.

  구룡전은 천룡관과 구천전을 사이에 둔 궐내, 아니 한라 내에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대장군의 거처가 있는데도 내일이 매일 집으로 돌아가려 한 것은 오직 늘 때문이었다.

  20년 가까이 혼자 지내야 했던 늘 때문이었다.

 

  “주무십니까?”

 

  늘은 침상에 누우려다 바깥에서 난 소리에 멈춰 섰다.

  바깥에 선 것은 하담이었다.

  하담은 침소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봤지만,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기다렸지만, 침소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담은 섬돌 위에 앉았다.

  고요에 귀를 기울이자 침소에서 금방 부스럭대는 작은 소리가 났다.

  작은 곤충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일이 많은 천룡은 귀가 밝았다.

 

  “왜 대답 안 해주십니까?”

 

  늘이 천천히 이불을 걷다 다시 멈춰 섰다.

  하담은 칼등으로 바닥에 낙서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했는데, 오늘은 그곳에 안 돌아가시네요. 그곳에서 무슨 일 있으셨던 겁니까?”

 

  하담은 매번 내일이 오 가문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했다.

  늘의 걱정대로 가장 먼저 대장군이 이상한 것을 눈치챈 것은 그였다.

  하담은 대장군의 집안에 무슨 일이 있다고 단정 지었다.

 

  “너도 그만 침소에 들거라.”

 

  낙서를 멈췄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만 가라고 하였다.”

 

  하담은 칼을 칼집에 집어넣은 뒤 닫힌 문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늘은 천천히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소리가 멎자 천천히 굳어 있던 몸을 펴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그대로 문 앞에서 문을 바라보던 하담과 눈이 마주쳤다.

  늘이 깜짝 놀라 비명을 흘렸다.

  재빨리 문을 닫았지만 하담이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은 게 먼저였다.

 

  “뭐, 뭔가?”

 

  “대장군은 집안 얘기를 잘 안 하셨죠.”

 

  늘은 문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하담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을 열고 억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스승님 다음으로 저보다 친한 벗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대장군과 같은 얼굴만 하면 그만입니까?”

 

  “내 몸이 좋지 않으니 얼른 침소에 들어야겠다.”

 

  “당신은 대장군이 아니잖아.”

 

  문을 잡은 늘의 손이 떨렸다.

  역사책에 이름 한 글자도 실리지 않을 ‘오늘’이,

  그의 손에 죽음으로 인해 ‘천룡도 서하담에 의해 살해된 가짜 대장군’으로나마 실리게 되지 않을까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구십니까? 오 가문엔 두 명의 아들만이 있을 터인데···.”

 

  하담의 반문에 늘이 재빨리 자신을 변호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장난을 친다면 거기까지다.”

 

  “장난은 대장군이 그만해야 되는 거 아니야? 농 같은 거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완전히 늘이 대장군이 아니라 단정 짓고 있었다.

  늘은 눈을 감고 쌓아 올릴 것도 없이 망했음을 직감했다.

 

  “저 들어갑니다.”

 

  하담은 구천전을 돌아다니는 소수 호위무사의 눈을 피해 천천히 침소에 발을 들였다.

  배려인지, 호위무사의 눈을 피하는 것치고는 제법 여유로웠다.

  하담은 늘의 표정을 한 번 확인하곤 문을 닫았다.

 

  “밖에서 누가 볼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한테도 숨겼는데 분명 들키면 안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늘의 떨림은 멎지 않았다.

  시작이 고작 이거였다.

  하담은 늘의 떨림을 느끼고 늘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얼굴을 확인했다.

  늘의 손목을 잡고 얼굴을 들어 올리니 어둠 속에서 늘과 하담의 눈빛이 닿았다.

  하담은 잠시 말을 잃었다.

 

  “대장군에게 누이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늘이 고개를 돌려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나가.”

 

  “실례가 되었다면 몹시 송구하오나, 전 당신의 정체를 알아야겠습니다.”

 

  “나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늘이 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단도를 꺼내 하담의 목에 겨누었다.

  적어도 만만하게 보이진 않겠지.

  대장군 대신이더라도 오 가문의 사람인데 함부로 죽이지는 못하겠지.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도 두려움이 식지 않았다.

  늘의 떨림은 여전히 하담에게 전해졌다.

  하담은 단도를 내려다보며 두 손을 들었다.

 

  “알았습니다. 더 묻지 않겠습니다.”

 

  하담은 천천히 물러섰다.

  늘은 그가 일어설 때까지 그를 노려보는 눈을 감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이미 자리 잡은 늘이었다.

  그는 완전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밖에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스승님은 알고 있습니까?”

 

  “넌 대장군의 벗이지 내 벗이 아니지 않느냐. 한 번만 더 내 말에 거역했다간 벙어리로 만들어버리겠다.”

 

  하담의 속눈썹에 깊은 달빛이 내려앉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문을 닫고 기척을 감췄다.

  늘이 문에 기대 다시 주저앉았다.

  매일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한다면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

  뛰는 심장 소리가 늘의 죽음을 재촉하는 초읽기 같았다.

 

  그날 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궁은 겉보기완 달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궁은 평화로웠다.

  내일이 습격당한 지도 보름하고도 며칠이 지났는데 궁에 있는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늘을 대했다.

  대장군의 자리에서도 의심할 자를 쉽게 좁힐 수 없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

  늘은 차츰 그 세계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언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해 다시 운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석곤에게 무술을 배웠다.

  석곤은 이제 실력이 늘만 하지 않다며 손사래 쳤지만, 늘은 한라의 무술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늘은 이 세계의 무술에 적응해야 했다.

  검을 쥔 무사들 앞에서 장기인 태권도를 선보일 순 없었다.

  적어도 몸이 용의 피를 물려받았다면 적응하는 데 도움 정도야 받겠지, 싶은 늘이었다.

  체육계에 그나마 발을 담고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정말 쉬는 동안 몸이 다 굳으셨군요.”

 

  현생의 운동은 다 쓸모없던 건지도 모른다.

  현직 장군 앞에선 어린아이에 불과한 몸짓이었다.

  승리의 기쁨을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늘이 좌절했다.

  그나마 칼을 잡는 법엔 익숙해져 칼을 떨어뜨리지 않을 정도까지 온 게 다행이다.

 

  “그러게.”

 

  보호를 받으며 무술을 배울 동안 하담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그날 이후 곧장 어디론가 또 원정을 떠났다.

 

  “열둘의 나이에 가장 먼저 암살을 배우던 자가 맞습니까?”

 

  껍질은 그렇습니다만, 머리는 망자의 것입니다.

  늘은 생각을 삼키곤 말을 돌렸다.

 

  “대장군이란 원래 이렇게 한량한 자인가?”

 

  “저랑 수련만 하기엔 몸이 근지러우십니까?”

 

  “대장군의 직책에 대한 의문을 품을 뿐이다.”

 

  “이대로도 좋습니다만, 원한다면 원정을 보내드리지요.”

 

  석곤이 늘에게 종이를 하나 흔들어 보였다.

 

  “그건 뭔가?”

 

  “임무 서찰입니다.”

 

  “그 임무가 뭐냐 물은 것이다만.”

 

  “대장군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러 간 가엾은 세 천룡이 있긴 합니다만.”

 

  “그놈들이 나 대신 간 거라고?”

 

  늘은 저도 모르게 현실 말투로 되물었다.

  아차 싶은 찰나에 석곤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화나셨습니까?”

 

  석곤은 대장군의 흉내를 내는 늘이 그저 귀여워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늘이 생각한 시나리오와는 달랐다.

  어떤 의도가 담긴 물음은 아니었다.

 

  “오래 갇혀 계셨을 텐데 답답하셨겠죠. 대장군이 된 마당에 보호만 받고 있으니, 자존심도 상하셨겠고요. 어차피 세 천룡도 임무를 대충 마무리했겠지만, 예상보다 복귀가 늦어지고 있으니 임무 매듭짓는 셈 치고 한 번 다녀오시죠.”

 

  석곤은 늘의 등을 밀며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늘의 한 마디에 제멋대로 해석을 끝낸 석곤은 늘을 궐 밖으로 내보낼 셈이었다.

  늘은 딱히 거절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석곤은 일사천리로 늘이 사용할 말까지 준비했다.

 

  “최근 한라의 무사가 구룡성에 몰린 것을 알고 구룡성과 떨어진 한라 국경 근처에 자잘한 도적들의 침입이 많아졌습니다. 뒤늦게 차지한 문호 쪽의 국토지요.”

 

  “대장군이란 이런 도적패를 잡으러 가는 것인가?”

 

  아니겠지.

  늘은 그르렁거리며 고개를 한 번 흔드는 말 앞에서 놀라 뒷걸음쳤다.

  아직 옛 무술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는데 기마라니.

  늘은 좌절했다.

  이곳으로 온 순간부터 매 순간이 죽는 순간 같았다.

 

  “설마요. 대장군이란 전쟁에서 빛을 발하는 통솔자이자 우두머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도적패는 옛 문호의 사람들입니다. 문호는 얌전히 한라에 스며든 자와 반기를 든 자들로 나뉘었죠. 혜성이 멋대로 흥분해 나간 것뿐이라 대장군의 임무를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문호가 연관된 임무면 그게 무슨 임무든 나서고 보는 혜성이었다.

 

  “이 임무가 몇 날 며칠이 걸린단 말이냐?”

 

  지금 저 문을 열고 세 천룡이 돌아오는 게 늘이 바라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다.

  석곤이 턱을 쓰다듬으며 얕은 한숨을 흘렸다.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골치 아픈 일에 엮이기라도 한 걸까요?”

 

  “아니라고 해···.”

 

  “예?”

 

  늘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을 황급히 주워담았다.

 

  “내 일 적응 차 가보도록 하겠다. 내일이 하는 일을 나도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거니까.”

 

  이건 주워담을 수 없었다.

  늘은 주먹 쥔 손을 뒤로 숨기고 석곤을 바라봤다.

  그래도 석곤이 함께 가면 뭐라도 해결되겠지, 싶은 늘이었다.

 

  “저는 다른 임무가 있어 자리를 비울 순 없습니다.”

 

  석곤 없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늘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상장군이 항상 나를 보필하라 하였는데, 혼자 가야 하는 것인가?”

 

  “제가 오 가문의 무사를 대동시키겠습니다. 길을 안내할 자가 필요하니까요. 일단 무기고로 먼저 가시죠.”

 

  늘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길을 잃을 일은 없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늘은 궁을 안내받을 때 한 번 봐두었던 무기고로 향했다.

  대장군만 쓰는 전용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곳엔 전투 시 필요한 갑옷과 무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게, 내일의 솜씨는 아니었다.

 

  늘은 가만히 무기를 돌아보다 푸른빛을 띠는 얇고 날카로운 검에 시선을 뺏겼다.

  칼자루를 쥐자 묵직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 칼은 휘두름이 가볍고 고요해 내일을 고요한 학살자라고도 부르게 만든 검이었다.

  손잡이를 잡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희생자의 죄악감이 느껴졌다.

  손가락 모양대로 푸른 수정이 박힌 칼자루는 잡는 느낌이 좋았다.

  늘의 마음에 쏙 들었다.

  무사를 데리고 온 석곤이 무기고로 들어왔다.

  늘은 옆구리에 낀 칼집에 검을 집어넣고 돌아봤다.

 

  “갑옷부터 입으시죠.”

 

  늘이 머뭇거리고 있을 필요가 없이 석곤이 갑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몸에 사람을 한 명 더 얹은 느낌이었다.

 

  “아직은 몸이 완쾌되지 않은 것 같으니 조심해서 타세요.”

 

  무기고 앞에선 말 두 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을 감싼 마구가 화려했다.

  늘은 높은 안장을 보며 속으로 기함했지만, 역시 석곤의 도움으로 무리 없이 올라탔다.

 

  말을 타본 적이라곤 제주도로 간 수학여행, 가족여행 때.

  딱 두 번뿐이었다.

  늘의 무게가 말에게 전해지자 말은 두어 번 뒷걸음질 치다 멈춰 섰다.

  말의 숨소리가 발을 타고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기마 체험과는 다르다.

  늘은 고삐를 쥐고 없는 더위를 찾아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조심하십시오.”

 

  “말을 탄 지 시간이 꽤 지나 낯설구나.”

 

  “말 한 필로 이동하기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어림도 없는 투정이었다.

  석곤은 호위에게 늘의 안전을 부탁하고선 늘과 호위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그들을 바라봤다.

 

  처음엔 속도가 꽤 붙지 않아 안정적으로 탈 수 있었다.

  좁은 보폭에도 몸이 들썩거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늘은 옆에서 나란히 움직이는 호위를 힐끗거리며 떨리는 손을 멈추지 못했다.

 

  말이 한 번이라도 발을 헛디뎌 낙마한다면, 목숨은 없다.

  정신 바짝 차리자.

  이곳에 옥란은 없다.

 

  늘은 최면을 걸며 호위를 따라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위에서만큼은 늘의 떨림도 속수무책이었다.

  늘의 말이 호위보다 조금 빨라지는 것을 느끼면 호위 역시 속도를 높였다.

  멈출 수도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궐 대문을 나서자 호위는 앞장서 길을 뚫었다.

  늘의 앞에서 흔들리는 말꼬리가 심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늘은 허리를 숙이고 말에게 ‘천천히, 천천히.’하고 중얼거렸다.

  긴장으로 인해 늘의 다리가 모일수록 속도는 빨라졌다.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속도로 반나절을 달렸다.

  가는 동안 장애물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늘은 발로 말을 제어하는 법을 짐작했고 앞선 호위를 따라 고삐를 당기며 말을 멈춰 세울 수도 있었다.

 

  그들이 멈춰선 곳은 마을 외곽에 있는 우물 앞이었다.

  늘은 다리 사이가 찢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리를 어정쩡하게 벌리고 걷자니 이곳이 땅이 아닌 것 같았다.

 

  “국경까지 쉬지 않고 나흘은 가야 합니다. 넉넉잡아 일주일이겠지요.”

 

  안내 무사의 말은 늘에게 큰 타격감은 없었다.

  긴장으로 늘의 온몸이 굳은 걸 눈치챈 안내 무사가 편하게 바닥에 앉았다.

 

  “체력은 비축해두셔야 합니다.”

 

  그가 늘에게 주먹밥과 감자를 건넸다.

  늘도 그를 따라 우물에 기대앉았다.

  돌아가면 말을 타는 법부터 배우겠다 다짐한 늘은 학구열에 불타올랐다.

 

  그렇게 질주했다 쉬기를 세 번쯤 반복했을 때였다.

  네 번째 휴식 때, 숲에서 멈춰선 늘은 살짝 어지러운 것을 느꼈다.

  비틀거리는 늘을 부축한 것은 호위였다.

 

  “여기서 잠깐 눈 좀 붙이시죠.”

 

  “괜찮네.”

 

  눈감은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하고 싶지 않았다.

  풀린 다리로 개울 앞에 몸을 앉히니 피로가 엉덩이로 쏟아졌다.

  피로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었다.

  늘은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벚나무의 꽃을 보며 평화를 느꼈다.

  호위도 있는데 이 정도면 자도 되지 않을까.

  뭐든 눈 뜨고 불타 죽은 그때보다야 낫겠지.

  자면서 죽는 게 훨씬 내게 이롭지 않을까.

  자신과 타협하던 늘의 코끝으로 벚꽃잎이 떨어졌다.

 

  호위는 썰어 놓은 당근을 말에게 먹이며 늘의 안색을 확인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아 창백했고 장시간 이동으로 지쳐 보였다.

 

  그때, 낯선 기척을 느낀 호위의 낯빛이 바뀌었다.

  호위는 늘에게 나지막이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흘렸다.

  늘 역시 묘한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 몸에선 그런 기척이 잘 느껴졌다.

 

  내일이 습격당했을 때와 같은 빛이 어디선가 반짝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전에 그것은 그대로 늘을 향해 날아왔다.

  늘이 놀라 고개를 꺾으니 활은 타고 온 말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르렁거리던 늘의 말이 놀라 어디론가 뛰어갔다.

  제대로 묶어두지 않았던 탓이었다.

 

  늘은 말의 꽁무니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나무 기둥에 몸을 숨겼다.

 

  쉬.

  다른 기둥에 기댄 호위가 칼을 꺼내 들었다.

  호위와 눈이 마주친 늘은 숨을 죽였다.

  긴장감이 눈 속을 파고들었다.

  이상하게 힘이 빠지는 와중에도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칼집에서 살짝 나온 칼날이 이를 드러낸 짐승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오순도순, 알콩달콩, 행복해 보입디다. 뭐, 우리도 좀 나눠 먹읍시다.”

 

  도적패였다.

  적어도 열댓 명 정도는 돼 보였다.

  호위는 입술을 물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수적으로도 열세였고 대장군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대장군도 진짜가 아니라···.

 

  “웬 놈이냐.”

 

  늘이 검을 겨눈 채 그들에게서 모습을 드러냈다.

  호위가 이마를 짚었다.

 

  늘도 자신을 알 수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둥 뒤에서도 살의를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여차하면 호위를 데리고 남은 말 한 필로 도망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도적패에 가장 앞서 나와 있던 우두머리가 눈을 옅게 뜨며 늘을 흘겼다.

  차려입은 갑옷 하며 손에 쥔 푸른 검의 모양새를 보아하니 구룡성의 대장군이었다.

  큰 전투는 없었지만, 구룡성의 대장군은 문호의 땅을 차지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자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이게 누구야, 구룡성의 왕자님 아니신가?”

 

  도적패는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웃었다.

  늘의 표정은 긴장으로 차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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