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닭들은 그들의 운명은 피할 수가 없었다. 간택 받을 순서는 제일 토실한 놈부터였다. 힘세다고 모이를 제일 많이 뺏어먹은 놈부터 엄벌을 내리기나 하듯이 순희 손에 쥐어진 칼이 날렵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조금 이상했다. 스치기만 해도 섬뜩한 눈매를 드러낼 때도 있었고 바보처럼 비실비실 웃을 때는 희멀거니 윤기 없는 눈을 내놓기도 했다.
그때마다 칼날의 끝은 극과 극의 장면을 연출해냈다.
새 언니가 이런 신기한 장면을 보고 다듬던 닭을 은근슬쩍 순희 도마 위에 뒀는데도, 칼질 황홀경에 빠진 아낙처럼 아무런 군소리 없이,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더니 도마가 무슨 동네 북 인줄 알고 장단까지 맞춰가며 강약도 조절하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세 마리의 닭에 인삼이며 재료와 찹쌀을 넣을 때도 과격했다가 순했다가, 가마솥에 넣을 때도 사정없이 내던지는 건 아니지만 두 마리는 조금 거칠게, 한 마리는 살포시 넣었다. 특히 한 마리는 넣을까 말까 주뼛주뼛 망설이기까지 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넣었다.
손을 털털 털고 있는 모습에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 새 언니가 처음부터 다시 동영상을 그려봤다. 목을 꺾을 때 정말 살벌하게 비틀어버렸다. 간혹 이럴 때가 있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일관되지 못한 칼질은 처음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옆으로 봤지만 순희는 벌써 사라진 뒤였다. 밥상 옆에 벌렁 누워 뭐가 그렇게 좋은지 히죽이 웃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새 언니와 어머니가 끓은 삼계탕을 밥상에 올려놓을 때가지 이런 식의 무언의 시위는 단 한번도 거르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밥상 앞에 두고 눕는다는 등등 이러쿵저러쿵 입을 대지 않았다. 이 집에서 삼계탕 하나만큼은 순희를 따라갈 요리사는 없었기 때문에 예우를 해줘야만 했다. 폴폴 끓어오르는 증기를 따라 따스한 인삼 냄새가 순희 코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고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새 언니가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장롱에서 얇은 이불을 꺼내 덮어주면서 말했다.
“오늘 우리 아가씨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
“그래요. 엄청 피곤해요. 깜빡 졸았는데도 개운하네.”
새 언니의 측은지심을 싹 사라지게 하고 ‘이런 야시(여우)같은 년’이 나올법한 순희의 돌발적인 행동! 간혹 있었다. 말 그대로 잠시 졸았을 뿐인데 깊은 잠을 잔 것처럼 개운해진 순희가 턱이 빠지던 입 꼬리가 찢어지던 둘 중에 하나의 참사가 벌어질 정도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일어났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고 하루 종일 긴장한 탓에 굳었던 어깨도 먼지가 날릴 정도로 풀고 있었다. 날개 짓으로 어깨를 풀고 새 언니 옆에 앉아 개구쟁이처럼 눈을 삐딱하게 흘기며 물었다.
“언니! 맥주 한잔! 오케이?”
새 언니 화색이 달라졌다. 일찍 말하지 란 표정. 깍쟁이.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있었다. 오빠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서 냉장고에서 한 병을 꺼내와 벌써 뚜껑을 땄다.
“나도 한잔 해야겠다. 그렇잖아도 목이 바싹 타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런데 너는 어쩐 일로 술을 다 찾아?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순희가 두 잔을 연거푸 홀짝, 홀짝 마시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장황하게 설명할 태세다. 턱과 입술부터 스트레치 한다. 준비 땅! 숨 한번 고르지 않고 오늘 있었던 일들이 터진 봇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처음 몇 마디만 TS검정이 나왔다. 그 다음부터는 전 가족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호기심과 의심만 불러 일으키는 말만 하고 있었다. 거긴 뭐 하는 회사인지 궁금해 하는 표정은 없고 그 놈이 누구냐는 표정들뿐이었다. 광고가 제법 길었다. 말똥말똥한 시선들이 순희 눈만 향했고 귀들은 쫑긋 세워져 있었다.‘
“완전히 깡패 소굴 있지. 직원들이 사람이 아니었어. 덩치가 우리 집보다 더 컸어. 아까 얘기한 거기 우두머리 있잖아. 똑 같았어.”
이 뒤로도 앞과 마찬가지로 장황한 이야기가 엄청나게 쏟아졌지만 주인공은 언제나 딱 한 명이었다. 그럴수록 식구들의 미간도 고개도 바쁘게 찡그려졌다가, 돌아갔다가, 했다. 순희 꼬리가 너무 길었다.
“아가씨! 그 사람에게 관심 있지? 바른대로 말해. 내가 막 설렐 정도로 이상한 징조가 보여.”
어머니 미간이 바로 찌그러졌지만 관심은 보이고 있었다. 그건 수리에 향한 관심이 아니고 순희가 시집갈 나이가 지나간다는 걱정에서 비롯됐다.
“나이는 몇 살이래?”
“응! 내하고 동갑이래. 그런데 완전히 산적이야. 직원들도 그렇고. 언니도 보면 기절초풍할걸.”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오빠가 끼어든다.
“그건 몇 천 번도 더 얘기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병 더 꺼내 오면서 물었다.
“오늘 우리 순희 많이 놀랬던 모양이구나. 그런데 얼마나 덩치가 크길래? 황소만하더냐?”
그때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서 봤던 수리에 대해 말했다.
“말도 마라. 자네도 한 덩치 하지만 그 놈은 두 배나 더 되는 것 같더라.”
그때였다. 반쯤 앙칼진 소리가 순희 입에서 나왔다.
“아니! 엄마도 참! 왜 자꾸 그 놈, 그 놈이라고 해. 그래도 회사 대푠데.”
“허허허! 어머님! 저도 밖에 가면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우리 결혼할 때 장모님이 저보고 소 도둑놈 같다고 했습니다. 허허허! 등치도 좋고 대표고 뭐 사위 감으로는 만점이네요. 순희야! 잘 해봐라. 허허! 그런데 나이도 어린 놈이 대단한데. 직원이 열한 명이면 임금 비도 만만찮을 건데. 그 놈 그거 금 수저 물고 태어난 모양이지.”
또 순희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예민한 반응이 나왔다. 오해하기 딱 좋은 적극적인 두둔이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나이 어린 사람이 대표면 전부 금 수저 물고 태어났나? 오빠 사고 방식이 이상해. 우리 오빠답지 않게.”
이 말은 새 언니와 어머니에게 의심만 더 불러 일으켜 준 셈이 되고 말았다.
“아가씨! 그 금 수저를 아가씨도 물어요. 우리 아가씨 정도면 손가락만 까딱해도 될걸요.”
이야기가 슬그머니 결혼으로 흘려 들어갔다가 순희 표정이 난처해졌다가 웃었다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싫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은 오빠가 물었다.
“고향은 어디래?”
맥주 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순희 손이 턱으로 옮겨졌다. 팔꿈치는 밥상 위에 괴어졌다. 싫지 않은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오빠를 쳐다본다. 순희 뇌 기능이 잠시 중단됐다. 새 언니는 술기운에 크게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순희 입만 주시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도리도리 하듯이 머리를 흔들며 툭 튀어난 입으로 대답을 한다.
“저 오늘 맞선보고 온 게 아니고 실사 다녀 왔습니다 요! 넘겨짚지 마시구려. 업무 차 다녀왔는데 제가 어찌 그분의 고향을 알게 사옵니까 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딸꾹질이 나왔다. 새 언니가 배를 잡고 웃으며 흥을 돋우었다.
“아가씨! 다 그래요. 저도 오빠와 업무용도로 만났다가 연예 용도로 바뀌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순희가 제대로 말려들고 있었다.
“언니~~ 그런 말을 어떻게.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면 안 되죠. 업무용으로 만날 거에요.”
순희 혀도 꼬여 있었다. 어머니 표정은 계속 굳어져 가기만 했다. 순희는 이미 취기에 올라 있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오빠를 보고 손을 들어 수리가 했듯이 밖으로 향해 가리켰다. 오빠가 순희 손이 간 방향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거기가 어디야? 우리 집 근처?”
“아니! 우리 회사 근처!”
오빠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순희가 말한 동네는 정씨 집성 촌으로 오빠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정수리는 건설업을 하는 정보수와 같은 집안이라는 말이고 TS건설과 TS검정이 분명히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빠가 거의 비몽사몽으로 진입해 있는 순희를 깨워 다시 물었다.
“그 회사 이름이 뭐라 했지?”
오빠 말은 이미 꿈결에 들린 말이 돼버린 순희가 옷 쪽으로 손짓만 하고 바로 골아 떨어져버렸다. 순희 지갑 속에 있는 명함을 꺼내 들은 오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 언니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여보! TS건설이 있는 젊은 친구 이름이 이경호 맞지?”
술 취한 새 언니도 순희와 같이 비몽사몽이라 명함에 있는 작은 글씨가 보일 리가 만무했다. 이름도 비슷하고 순희 마음이 들떠 있어 새 언니 마음 속에는 그랬으면 하는 바램이 더 많았고 또 그렇게 끌려가 버렸다.
“예! 경호 맞아요.”
그러나 취중진담이 있듯이 정답도 있었다. 오빠의 미간이 좁혀진 채 골아 떨어진 순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경호던 성호던 상관없지만 회사 이름과 고향과 성씨만으로도 TS 건설과 연관이 있다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한 오빠는 갈림길에 선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순희도 혼이 빠지는 힘든 하루였지만 수리도 힘든 하루였다. 실사를 나오는 건 당연했지만 이런 식의 기습은 처음이어서 사실상 많이 허둥댔다. 게다가 실정을 가장 잘아는 김소장의 방문은 전혀 예상을 못했고, 그의 말 중에 틀린 말도 없었다는 점도 긴장에 한몫을 했다. 임기웅변으로 대처한 방식은 TS건설에서 자주 본 일이라 흉내만 되면 그만이라 힘들지 않았지만 안주임이 문제였다.
화학과 출신이란 말에 긴장을 했지만 쉽게 넘어가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순간의 고통은 길고 짧고의 문제가 아니란 걸 실감한 수리는 단 몇 분의 안주임 실사에 혼 줄이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은 시뮬레이션을 숱하게 했던 과정이고 결과였지만 안주임의 출몰과 대처 방법에 대해서는 또 다른 고민을 가지게 했다. 단지 담당자라고 생각하면 수리는 당연히 이런 고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안순희란 사람 자체가 문제였다. 마음이 끌리자마자 포기를 자처할 짓을 해버렸다.
모든 여건을 봐서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걸 수리는 모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남 탓도 하고 있었다. 거만한 건 똑 같은 김성태와 박한철을 원망하고 있었다. 만약에 안주임 혼자 방문했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도 하면서, 얻는 게 있으면 잃을 것도 있다는 말을 되뇌며, 갑작스레 생긴 안주임에 대한 연모를 깔끔히 털어버리지 않으면, 개인적 망신과 연계해 사업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 안주임은 단지 업무 용도다. 수리는 이렇게 선을 그였다.
수리는 지금 거의 초 죽음이 돼 있었다. 이런 식의 기세 싸움을 당사자가 돼 직접 한 건 태어나고 처음이었다. 차라리 치고 박고 싸웠으면 이 정도로 피곤하지는 않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심하게 피로를 가져온 사람은 안순희이었다. 실사 담당자란 부담과 겹쳐진 끌림. 그리고 실망을 준 행태들. 얼마나 놀랬을까?
수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심리적 고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