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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길을 잃은 날에
작가 : 연시
작품등록일 : 2018.12.21

불에 타 죽은 고등학생이 저승에서 길을 잃은 되고
망자인 상태로 과거의 이승으로 돌아가게 된다.

과거에서 펼쳐지는 '오늘' 이야기.


*로맨스판타지 장르로 선택되었지만 '로맨스'가 주는 아닙니다.

 
타인의 몸
작성일 : 18-12-21 18:04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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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물에서 금방 빠져나온 사람처럼 온몸이 축축했고 중력은 배로 느껴졌다.

  아직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한 흐린 시야에 용이 그려진 목제 천장이 들어왔다.

 

  “아씨, 정신이 드세요?”

 

  보라의 눈앞에 불쑥 낯선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라는 반응보다 상황파악에 앞섰다.

  자신을 아씨라고 부르는 낯선 여자.

 

  “누구···.”

 

  “대장군께서 종일 돌보셨는데 어제부로 다시 궐로 돌아가셨어요. 깨어난 걸 보면 좋아하셨을 텐데요.”

 

  대장군? 궐?

  보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깨질 듯한 머리의 통증과 함께 깨문 입술이 아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든 감각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망가졌던 다리에도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보라는 일어서려는 여자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여자는 깜짝 놀라지도 않고 크게 뜬 눈으로 보라의 안색을 살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가지마.”

 

  “네?”

 

  “아파.”

 

  “어디가 아프세요?”

 

  이 여자를 붙잡아야 한다.

  보라의 머릿속엔 그 생각뿐이었다.

  자신에게 호의적이며 자신을 모시는 사람.

  어떻게 봐도 이 여자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게 뭐든.

 

  “내가 기억이 안 나서요.”

 

  “네?”

 

  여자는 그제야 놀란 표정을 짓는다.

  보라가 눈치를 주지도 않았는데 여자는 스스로 자신의 입을 막고 주변을 살폈다.

  보라는 여자의 손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침착하자, 송보라.

 

  “그쪽 이름이 뭐예요?”

 

  “어휴, 아씨···.”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짓더니 보라의 손을 꼭 쥐었다.

 

  “저는 시녀예요. 제발 말을 낮추세요.”

 

  시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보라가 놀라 딸꾹질을 했고 시녀도 황급히 보라의 손을 놓고 몸을 비켜섰다.

 

  “늘아!”

 

  비단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양쪽에 무장한 무사들을 끼고 보라의 앞까지 다가왔다.

  보라는 황급히 시녀를 바라봤고 시녀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은 것이냐?”

 

  중년 여성은 보라의 옆에 자리를 잡고 보라의 안색을 살폈다.

  시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중년 여성이 눈치를 줬다.

 

  “그만 나가 보아라.”

 

  “네.”

 

  시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방을 나섰다.

  방에는 정적이 흘렀다.

 

  “안색이 좋지 않구나.”

 

  보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해결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자신은 버스 전복 사고로 불에 타 죽었으며 저승까지 가봤다.

  저승 안내자를 만났으며 안내자가 갑자기 사라졌고 문에···.

 

  “늘아?”

 

  중년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보라는 절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무슨 말을 내뱉어도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이며, 어중간하게 실수할 바에 가만히 있는 게 나았다.

  중년 여성은 그런 보라의 손을 꼭 잡았다.

  시녀의 손을 잡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중년 여성은 보라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미안하다. 다 이 어미 잘못이야.”

 

  이 여자는 내 엄마다.

  보라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내 이름은 늘이다.

 

  “벌벌 떠는 모양새를 보니 아직도 많이 좋지 않은가보구나. 내 좋은 약을 해올 테니 몸을 충분히 쉬어두게 하여라.”

 

  보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 여성은 생각보다 빨리 자리를 떴다.

  그녀를 따르는 무사들의 칼날까지 보라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한숨 돌렸다.

 

  보라, 아니 이제는 늘이다.

  늘은 이름을 곱씹으며 천천히 자신이 누워 있던 공간을 살피기 시작했다.

  척 봐도 옛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분명 과거로 온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말투 하며 의상, 대장군이라는 직책까지.

  어떻게?

  왜?

 

  늘은 천천히 일어서다 다리가 멀쩡한 것을 느꼈다.

  굽혀도 보고 굴려도 봤지만 두 발로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멀쩡했다.

  누워 있을 때 느꼈던 통증은 단순한 뻐근함이었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과거로 오며 완전히 다른 몸이 됐다.

  늘은 방 안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다가 아까 그 시녀를 찾기 위해 방을 나섰다.

  낯선 공간이었지만, 딱히 헤맬 공간은 아니었다.

  자신을 구원해줄 시녀만 만나면 그만이었다.

 

  긴 건물을 지나쳐 다리 밑을 지날 때, 늘이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짧은 탄식과 함께 비틀거리는 늘을 붙잡은 건 그 날 밤 늘을 불길 속에서 구한 남자였다.

  남자 뒤로 수많은 무사가 줄지어 섰으며 갑옷을 입은 차림새가 심상치 않았다.

  남자는 상기된 얼굴로 늘을 살폈다.

 

  “늘아, 괜찮은 것이냐?”

 

  늘은 처음 보는 남자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폈다.

  또 모르는 사람이군.

 

  “삼일 밤낮을 깨어나지 않기에 걱정했다.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남자는 늘을 꽉 껴안았다.

  늘은 상체에 가해지는 차가운 갑옷의 압박에 작게 기침을 쏟아냈다.

  그때 무사들의 어깨너머로 시녀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늘은 저도 모르게 자신을 껴안은 남자를 밀치고서 눈으로 시녀를 쫓았다.

 

  “늘아.”

 

  남자는 뒷전이던 늘이 시녀를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첫발에 휘청거리던 늘의 모습에, 남자는 대신 아픈 듯이 인상을 쓰며 그녀를 받치는 시늉을 하다가 늘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누이가 뭐가 그리 급하다고···.”

 

  “대장군, 궁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누이가 깨어났는데 이 정도면 기류왕도 봐주지 않겠어?”

 

  “아무리 기류왕께서 대장군의 편의를 봐주신다지만, 상장군 눈에 거슬리기라도 하시면···.”

 

  “아버지가 뭐, 날 죽이기야 하겠어?”

 

  대장군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을 보지 않는 늘의 뒷모습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깨어나 줘서 고맙다. 누이야.”

 

  시녀야!

  늘은 괴상한 호칭을 붙이며 시녀의 뒤를 쫓았다.

  주변을 걸어 다니던 무사들이 한 번씩은 늘을 훑을 정도로 늘은 ‘몸의 주인’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늘의 애타는 부름에 뒤늦게 뒤를 돌아본 시녀가 기겁했다.

  늘은 갑작스러운 뜀박질에 터질 듯한 숨을 한 번에 몰아쉬며 허리를 숙였다.

 

  “아씨! 괜찮은 겁니까?”

 

  시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살폈다.

  보는 눈이 많았다.

 

  “일단 유성각ㅡ늘의 처소ㅡ으로 돌아갑시다. 네?”

 

  시녀는 늘의 숨을 진정시키고서야 늘을 유성각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늘은 왠지 모를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온몸이 간지러울 정도였다.

 

  “아씨,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시녀는 늘을 침상에 앉히고 아이를 달래듯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어쩐담.”

 

  시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곤 늘을 똑바로 올려다봤다.

 

  “아씨 이름은 기억하시죠?”

 

  “아까 엄마 같은 여자가 나를 보고 늘이라고 하더라.”

 

  시녀는 늘의 대담한 말에 입술을 잠시 물고선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아까 다녀가신 분은 아씨의 어머니이신 오서해라고 합니다. 집안사람들은 꼭 기억해두세요. 아씨 이름은 ‘오늘’입니다.”

 

  “성이 오씨야?”

 

  “예. 오 가문의 장녀이십니다.”

 

  “나는 공주야?”

 

  시녀도 참다못해 고개를 푹 숙였다.

  늘은 백지장 그 자체였다.

  어디서부터 그를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

 

  “왕족은 아니십니다. 상장군께서 다스리는 용의 가문이시죠.”

 

  “상장군? 용의 가문?”

 

  “상장군은 한라의 최고 무사입니다. 무사 중에 으뜸이죠. 아씨의 아버지이기도 하고요.”

 

  “한라···? 여기가 한라야?”

 

  늘은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이름을 직접 듣다니 현실인가 싶다가도 꿈인 게 확실하다 자신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평소엔 자각몽을 꿔본 적도 없다.

  이럴 땐 리얼리티 체크를 해야 한다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늘이 손바닥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눌러봤지만, 통과하지 않고 꺾이는 게 현실이 분명했다.

 

  늘이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침소로 다가오는 여러 발소리가 들렸다.

  시녀와 늘이 동시에 문 쪽을 돌아봤다.

  시녀가 다급하게 늘의 손을 붙잡았다.

 

  “아씨, 제가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절대 이 가옥 밖을 나가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시녀는 크게 뜬 눈으로 늘을 바라보다가 늘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황급히 침소를 빠져나갔다.

  늘은 멍하니 시녀가 사라진 문을 바라봤다.

 

  “내가 이름을 안 물어봤네···.”

 

 

 

  시녀의 말대로 시녀는 매일 아침 늘을 찾아왔다.

  늘의 전담 시녀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늘의 기억을 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당하는 중이었다.

 

  “아씨는 어차피 가옥을 나가시지 못하니 이 정도면 괜찮을 겁니다.”

 

  “근데 나는 왜 못 나가는 겁니까?”

 

  “아휴, 아씨. 저 같은 아랫것들한테는 존댓말 쓰는 거 아니래도요.”

 

  “그래도 입에 붙게 연습은 해야지.”

 

  말투까지 가르침 받은 늘은 제법 시녀와 친해졌다.

  그녀의 이름이 ‘왕옥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씨는 이 집안의 수치라고 여겨집니다.”

 

  늘은 입을 다물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여태까진 그저 설화를 듣는 기분이었고 단순히 상황 파악과 적응을 위해 듣던 내 소개였다.

  남의 가정사일 뿐이었지만, 그 얘기를 듣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수치라니.

 

  “오 가문에서는 여성이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저도 들어서 알고 있지만, 아마 그래요. 아씨가 오 가문의 장녀로 태어났고 유감인지 다행인지, 쌍둥이였죠. 혼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도련님은 혼자 태어난 걸로 되었고 아씨는 숨겨 없는 사람이 되셨죠.”

 

  늘은 답하지 않고 옥란을 멍하니 쳐다봤다.

 

  “지금 대장군이신 내일 도련님이 아씨의 쌍둥이 남매예요. 한날한시에 태어나셨죠.”

 

  옥란이 늘의 표정을 보고선 살짝 머뭇거렸다.

 

  “괜찮으세요?”

 

  “얘기해.”

 

  옥란은 왠지 모르게 실수한 것 같은 기분에 늘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상장군께서 내린 명령이에요. 내 자식은 장남 오내일과 차남 오모레뿐이다. 이 가옥에 있는 오 가문 사람들을 제외하면 한라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씨의 존재를 모른다고 봐야겠죠.”

 

  “나는 없는 사람인 거네?”

 

  “상장군 말씀으로는 그렇···죠.”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늘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피비린내로 가득한 한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삶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찾을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죽지 않기 위해 앉아 있으면 되는 삶인 거다.

  너무 간단한 일이었는데 마음 한쪽이 허탈한 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 몸을 동정이라도 하는 걸까?

 

  “오 가문은 한라에서 이름을 떨친 가문이에요. 용의 피를 물려받아 무예를 위한 신체를 타고났거든요. 한라에서는 무술 실력이 곧 명예고 자존심이에요.”

 

  가장 위험하다고 기록된 시대가 한라시대였다.

  하필 그곳으로 오다니.

  그 끔찍한 운명에 늘이 중얼거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모두가 오 가문의 무사를 떠받드는 대신, 그 삶이 평화롭지만은 않아요. 적들이 존재하니까요. 오 가문만 꺾으면 한라에서 제일 센 무사가 되는 거니 위협이 어디서나 도사리죠.”

 

  “그런 가문에서 내가 여자로 태어났으니 수치라는 거야?”

 

  “상장군께선 아씨가 약점으로 잡힐 걸 걱정하셨고 마님도 여자인 아씨를 노리고 적의 습격을 받을까 걱정하셨죠. 아씨를 지키려고 숨기는 것에 동의하신 거예요.”

 

  얌전히 지켜진다면 문제가 없는 얘기였다.

 

  “옛날에 나는 어땠어?”

 

  “네?”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 그걸 수긍하며 살았냐고.”

 

  옥란은 늘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모신 아씨는 말 수가 적으셨고 가옥에서 나가신 적이 없었죠. 그걸 수긍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제가 보기에는 삶을 포기하신 분 같았어요. 여태까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옆에서 보면 제가 다 눈물이 났어요. 너무 안쓰러워서.”

 

  “그렇구나.”

 

  늘은 조용히 탄식했다.

  옥란은 깜짝 놀라 손을 휘저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닙니다. 정말, 걱정되어서···.”

 

  “알아.”

 

  옥란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맑은 눈동자를 크게 떴다.

 

  “옛날의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겠지.”

 

  늘은 옥란을 위로하려는 얼굴로 웃어보였다.

 

 

  옥란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늘은 계속 옥란의 얘기를 곱씹으며 몸을 뒤척였다.

  누구의 삶이었을까?

  내가 꿰차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나는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얼마나 버텨야 하는 걸까?

  늘이 한숨을 푹 내쉬곤 꽃이 수놓인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늘아.”

 

  그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방 한가운데 긴 그림자가 누웠다.

  늘은 이불을 걷고 창문을 바라봤다.

 

  “나다. 문 열어보아라.”

 

  내일의 목소리였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턱이 없는 늘은 가만히 늘어진 그림자만 바라봤다.

 

  “빨리, 빨리! 들키면 너 죽고 나 죽는다.”

 

  죽는다는 소리에 늘은 냉큼 일어나 창문 고리를 잡아 당겼다.

  창문을 여니 저번과는 다르게 갑옷을 벗은 비단 옷 차림의 내일이 보였다.

  내일은 뒤로 기운 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간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 장군들에게 잡혀 있느라 얼마나 네가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얘가 내 쌍둥이 동생.

  늘은 천천히 내일을 살폈다.

  대장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앳된 모습이지만, 성치 않은 손 하며 다부진 체격이 제법 늠름했다.

  뚫어질 듯한 늘의 시선에 내일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이상한가?”

 

  “아니···?”

 

  하마터면 존댓말을 쓸 뻔했다.

  늘은 실수할까 싶어 말을 아끼기 위해 질문을 하지 않았다.

  현생에서 실수하면 변명으론 그만이지만, 이 시대 때는 말 한마디로 목이 날아가니 말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그게 누구든.

 

  “가자.”

 

  “어딜···?”

 

  내일이 팔을 당기자 늘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창틀을 붙잡았다.

  내일은 주변을 살폈다.

 

  “괜히 들키면 못 나가. 빨리 가자, 여기로 넘어와.”

 

  “그러니까! ···어딜?”

 

  늘은 제법 센 내일의 손길을 참아내느라 이를 악물었다.

  괜히 용의 아들이 아니었다.

 

  “오늘 축제인 걸 잊은 게야?”

 

  “축제?”

 

  “계속 유성각에만 갇혀 있으면 답답하잖아. 네가 좋아하는 원향정에서 축제 구경하자.”

 

  늘은 내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살짝 팔을 잡아당긴 것뿐이었는데 손이 쑥, 하고 빠져나가 내일의 손길을 쳐낸 모양새가 되었다.

  늘은 자신의 팔을 당황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 다시 내일을 올려다봤다.

 

  “나는···? 못 나가잖아?”

 

  “원향정에는 자주 가잖아?”

 

  늘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자 내일은 다시 웃으며 늘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라. 밖으로 빼돌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빼돌리고 싶지만.”

 

  내일이 힘을 실어 늘을 안아 올렸다.

  늘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창문 밖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옮겨졌다.

  늘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내일은 웃음을 머금은 채 늘을 잡고 어디론가 뛰었다.

 

  도착한 원향정은 큰 연못을 끼고 있는 작은 누각이었다.

  늘의 키만 한 높이의 담 너머에서 축제의 소란이 들려왔다.

  은은한 청등 빛이 원향정에 내려앉으니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늘에 가득 수놓인 별들은 빛나는 자체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늘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넋을 놓았다.

 

  “또 당분간 널 찾아오지 못할 테니 지금만이라도 이 시간을 오롯이 누이하고만 즐기고 싶구나.”

 

  “많이 바쁜 것이냐?”

 

  늘은 어색하게 말을 뱉어놓고는 남몰래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죽겠다. 누이를 보지 못하는 날들이.”

 

  내일은 너스레를 떨며 누각에 앉아 옆자리를 두드렸다.

  늘은 바쁘게 주변을 훑으며 자리에 앉았다.

  내일은 자연스럽게 늘의 손을 붙잡았다.

 

  “네가 죽는 줄 알았다.”

 

  낮게 내려앉은 내일의 목소리는 원향정에 어울리는 악기 같았다.

  늘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참기 지독한 날이었는데, 이렇게 깨어나 줘서 고맙다. 누이는 내가 꼭 지킬게.”

 

  죽음이 두려운 늘에게 지켜준다는 그의 말은 희망과도 같았다.

 

  “네가 없었다면 난 대장군이 되지도 않았을 거다. 널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내보내고 싶었으니까, 더 올라갈 거야.”

 

  늘은 조금 놀랐다.

  옥란의 말만 들었을 때는, 기댈 곳 하나 없는 비극의 인생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 사람을 이렇게 봐주는 사람도 있구나.

  이 가문에서 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구나.

 

  “아직은 그럴 힘이 없지만,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느냐?”

 

  “내 너만 믿으면 되느냐?”

 

  늘도 너스레를 떨었다.

  내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일어섰다.

 

  “모든 날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늘이 내일의 말에 미소를 짓다가 문득 죄책감이 느껴져 웃음기를 지웠다.

 

  “내 늘 얘기하던 천룡도의 벗들이 오늘 돌아왔다. 정말 재밌는 아이들이야. 누이가 용왕각을 나갈 수만 있다면 꼭 가장 먼저 소개해줄 거다. 내 벗은 누이의 벗이니까, 함께 꼭 나누고 싶다.”

 

  이것도 또한 누군가의 삶이었을 텐데.

  자꾸 제 삶과 다른 느낌, 남의 삶이라는 이질감을 지울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죽는 게 제 삶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면 죽고 싶지는 않았다.

  죽는 고통을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늘이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며 이마를 쓸어 넘겼다.

  혼자서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사실을 믿어줄 사람도 없으니 고민을 나눌 수도 없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며 고개를 돌리는데 늘의 눈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담 너머에서 늘의 관심이라도 끌 듯이 반짝이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뭐지?

 

  눈을 옅게 뜨며 정체를 확인하려 할 때 빛은 빠르게 허공으로 질주했다.

  그것은 늘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활이었다.

  신은 죽은 자에게 놀랄 시간도 주지 않고 시련을 던진다.

 

  활은 정확하게 내일의 심장을 관통했다.

  아주 가벼운 소리였다.

  사람이 이렇게 보잘것없이 죽는다는 걸 두 번이나 확인하게 된 일이다.

  늘은 입을 틀어막고 내일에게 달려갔다.

  자신이 일어나서 달려가는 순간까지 모든 게 느리게 느껴졌다.

  성숙하지 않은 마음만이 앞섰다.

 

  내일은 신음을 간신히 참고 늘의 품에 안겼다.

  늘의 온몸이 떨렸다.

  아, 아, 하고 간헐적인 모음만이 뱉어질 뿐이었다.

  네가 뭐라고 내가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 건지, 가슴이 아팠다.

  늘은 피로 물든 내일의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여기요! 여기요! 아무도 없어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목을 죄어 지르는 소리도,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도 모두 다 터질 것 같았다.

 

 
작가의 말
 

 역사적 사실이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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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연정 2018 / 12 / 31 246 0 6382   
20 오늘의 삶 2018 / 12 / 30 234 0 6128   
19 전생 기억법 2018 / 12 / 29 235 0 7493   
18 지는 오늘 오는 오늘 2018 / 12 / 29 231 0 5171   
17 두 명의 대장군 2018 / 12 / 28 228 0 7375   
16 불타는 학살자 2018 / 12 / 28 254 0 6660   
15 전쟁의 불씨 2018 / 12 / 27 240 0 5152   
14 태양과 달 2018 / 12 / 27 233 0 6349   
13 복귀 2018 / 12 / 26 236 0 5911   
12 문호 2018 / 12 / 26 225 0 8077   
11 향가 2018 / 12 / 25 232 0 5715   
10 침입자 2018 / 12 / 25 236 0 7152   
9 저승문 2018 / 12 / 24 234 0 4205   
8 풀어진 비밀 2018 / 12 / 24 240 0 5133   
7 김혜성 2018 / 12 / 23 236 0 6909   
6 천룡제 2018 / 12 / 23 223 0 6482   
5 용의 힘 2018 / 12 / 22 228 0 6398   
4 내일을 위한 내일 2018 / 12 / 22 227 0 7900   
3 대리인 2018 / 12 / 21 243 0 7408   
2 타인의 몸 2018 / 12 / 21 242 0 9104   
1 불길을 걷는 망자 2018 / 12 / 21 366 0 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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