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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언틸던
작가 : Indignation
작품등록일 : 2018.11.4

동이 트기 전까지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미스터리 sf)

 
4. 입막음
작성일 : 18-12-21 00:11     조회 : 297     추천 : 0     분량 : 9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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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저녁까지도 정전은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냉장고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몇 개는 벌써부터 상해가고 있었다.

  전자레인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인지라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아침에 먹다가 남은 차가운 스프와 샐러드를 그대로 먹어야 했다. 어차피 전기가 들어왔다고 해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 불만인 눈치였다. 원장이 곧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라는 전혀 못 믿는 것 같았다.

 

  “저렇게 말해놓고 화장실도 여태 수리되지 않았잖아?”

 

  확실히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페리는 기상벨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남자 숙소로 뛰어갔다. 원래 이러면 안 되지만 케인처럼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이다. 이상하게 최근 들어서는 다 걸리고 혼난 것 같지만.

 

  방안에는 크고 작은 코고는 소리와 함께 모두 곤히 잠들어있었다. 오랫동안 본 얼굴들이 각 침대마다 보였다. 바로 보이는 침대에는 코비가 혼자 자고 있었고 뒤쪽에는 토트와 그레고리가 누워있었다. 덩치가 큰 토트는 걸맞은 소리로 코를 골았다. 그에 비해 왜소한 그레고리는 아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그 맞은편의 아래층에는 데이비드가 긴 다리를 침대 밖으로 던져놓은 채로 자고 있었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보니 예전에 여자애들도 많았을 때 제일 인기가 많았던 애였다. 그레고리와 코비가 그녀의 발소리에 반응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밑에서는 위층에 케인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페리는 바로 사다리를 타고 케인의 침대로 올라갔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건만 역시나 비어있었다.

 

  페리는 바로 복도로 달려 나와 주변을 살폈다. 종종 아침에 복도를 돌며 점호를 하는 원장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평소처럼 게으르길 바라며 곧장 뒷문으로 달음박질쳤다. 문을 열자 그다지 상쾌하지 못한 공기와 함께 모래알이 눈에 들어왔다. 페리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골칫덩어리 소꿉친구를 찾았다.

 

  옥상부터 찾아보려 했지만 올라갈 때 쓰는 사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발을 구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일정한 간격으로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소리가 나는 곳에 가보니 케인이 벽 아래에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페리는 다가갈수록 커지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걸었다. 굉장한 소음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케인은 어디서 찾았는지 주먹만 한 돌을 들고 벽에 구멍 난 부분을 열심히 쳐대고 있었다. 돌이 벽에 부딪칠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페리는 자신의 존재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열중하고 있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케인!”

 

  케인의 어깨가 휙 돌아갔다. 페리는 순간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케인이 돌을 자신을 찍을 것처럼 들고 서있었다. 돌가루로 더러워진 얼굴 사이로 보이는 충혈한 눈이 소름끼쳤다.

 

  케인은 잠시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페리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렸다.

 

  “잠깐만. 잠깐 멈춰봐!”

  “조금만 더하면 돼! 조금만 더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케인은 페리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그 말대로 벽에 생긴 찰과상은 제법 넓어져 있었다. 반대편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주먹 하나는 들어갈 수 있을 크기였다. 어떻게 이런 괴력을 저 얇은 팔에서 발휘했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이래 가지고 당장 탈출은 무리였다.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꽤 파들어간 것 같지만 전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작업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벌써 아침이었다.

 

  상태를 보니 언제부터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제 아침이야! 원장이 일어났을 거라고. 들키면 어떻게 될지 너도 알잖아!”

 

  페리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안 먹힐 것 같았지만 역시나 전혀 들어먹지 않았다. 케인은 이 벽을 다 허물기 전까지 손을 멈추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너희, 뭐하는 거야?”

 

  그때, 뒤에서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렸다. 페리는 뒤를 돌아보며 아까 남자숙소에서 누가 일어나려고 했는지 파악해두지 않은 걸 후회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코비였다. 최초에는 멍한 눈으로 지켜봤지만 곧 사태를 깨닫고 그 조그만 눈이 동전만큼 커다래졌다.

 

  “설마 탈출하려는 거야?”

 

  코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페리는 또 다른 사람한테 들킬까 걱정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케인은 그냥 음... 밖을 좀 보고 싶어 하는 거야.”

 

  자신이 생각해도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아무리 멍청해도 지금 상황을 보고서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코비는 하얘진 얼굴로 뒷걸음치다가 돌아서 달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다. 페리가 곧장 그를 덮쳐 모래바닥 위로 얼굴을 묻어버렸다. 코비는 모래바닥에서 어푸어푸 대며 발버둥 쳤다.

 

  일단 제압은 했다지만 둘의 체격을 비교했을 때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이미 반쯤 벗어난 코비가 그녀를 떼어내고 있었다.

 

  “으극. 케인! 좀 도와줘!”

 

  뒤에 상황은 신경 쓰지도 않고 케인은 여전히 기계적으로 돌덩이를 벽에 내리치고 있었다. 코비가 마침내 떨쳐내고 역으로 그녀를 땅에 눕혔다.

 

  “저리 꺼져!”

 

  그제야 케인의 눈이 이쪽으로 살짝 돌아갔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케인은 손에 들린 돌과 페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망설이고 있다. 페리는 알 수 있었다.

 

  기묘한 배신감이 치밀었다. 걷어차인 것에 화가 난 코비가 손을 들어올렸다. 페리는 얼굴 위로 팔을 교차하여 충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눈을 꼭 감았다.

 

  “으아아악!”

 

  비명소리는 자신의 입에서 터져 나오지 않았다. 곧 배를 고통스럽게 짓눌렀던 무게가 사라져버렸다.

 

  페리는 슬며시 눈을 떴다. 케인이 다급하게 뛰어오는 게 보였다. 옆에서는 코비가 왼쪽 팔을 부여잡고 모래밭을 구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페리,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페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차분한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 케인은 죄책감과 피로로 점칠 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페리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그렇게 피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지?”

 

  케인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코비가 한참 떨어진 곳에서 훌쩍거리며 겁에 질린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실패한 모양이었다.

 

  케인은 가만히 쳐다보다가 옆에 떨어져 있는 돌을 주워들었다.

 

  “더, 던지지 마! 워, 원장님한테는 이르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는데?”

  “바로 믿을 수야 없지.”

 

  케인이 그렇게 말하며 코비 앞으로 걸어갔다. 코앞까지 다가간 그는 거친 돌의 표면을 코비의 얼굴에 대고 문질러댔다.

 

  “그 정도면 됐어!”

 

  깜짝 놀란 페리가 다가와 말렸다.

 

  “다음엔 코뼈가 나갈 거야.”

  “아, 알았어.”

  “팔에 대한 변명은 알아서 해.”

 

  돌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케인이 말했다. 코비는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갈색 머리털이 온통 흙에 더러워져 약간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자.”

 

  케인이 앞장섰다. 떨고 있는 코비의 곁을 지나면서 페리는 손수건을 떨어뜨렸다. 코비가 얼떨떨하게 쳐다보자 혀를 비쭉 내밀며 말했다.

 

  “피나 닦고 와, 멍청아.”

 

  둘은 바로 맛없는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달려갔다. 원장은 다행히 오늘도 점호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너 어디 갔던 거야!”

 

  식당에서 만난 사라와 타이니는 그녀를 보자마자 일어나 외쳤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라진 친구 때문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타이니는 반쯤 울고 있었다. 원장에겐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말에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아침에 한 짓을 들키면 보통으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

 

  자세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먼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케인도 오랜만에 같이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라의 무시무시한 눈초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맛은 없었지만 즐거웠던 아침식사를 마치고 둘은 숙소로 돌아갔다가 기도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원장이 직접 참여하지 않는 시간이라서 그다지 빠져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아이들도 이 시간은 대게 자유롭게 보냈다.

 

  페리는 주변을 슥 살피고 책방에 들어섰다. 왠지 도둑이 된 것 같아 이상한 느낌이었다. 책방은 케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먼저 도착해있던 케인이 낡은 주황색 소파에 앉아 자랑스럽게 말했다.

 

  “말했지? 아무도 없다고.”

  “난 뭐라고 한 적 없어.”

 

  머리카락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내며 페리가 대답했다.

 

  “여기는 내가 대충 치워놨어.”

  “오. 네가? 대단한걸.”

 

  그녀의 빈정거림에도 케인은 아랑곳 않았다. 근처에 널브러진 의자다리 사이에 걸린 거미줄에 질색하며 페리도 소파에 다가가 앉았다. 확실히 다른 곳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바로 앞에 뚫린 창문에서 태양빛이 들어와 그녀의 다리를 비추었다. 그녀는 노랗게 빛나는 다리를 신기하게 보다가 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우리의 탈출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듣고 싶은 게 있어. 그게 뭔지는 알지?”

  “음...”

 

  케인은 조용히 신음했다. 그는 그녀의 집요한 시선을 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미안해.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맹세코 다시는 너와 상의 없이 일을 벌이지 않을게.”

 

  페리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소파 맡은 편에 있는 창가에서 들어온 빛이 그 미소를 반짝이게 했다.

 

  “좋아. 답변 자체는 만족스럽네. 그런데 대체 얼마나 그 벽을 쳐댔던 거야? 너 손! 아까 화장실 간다고 한 게 이것 때문이었어? 밥 먹을 때도 어색하더니만.”

  “됐어. 됐어. 괜찮다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알았어... 어젯밤에 점호 끝나자마자 나왔어.”

 

  케인은 자신의 손을 잡아 빼서 살피는 페리에게 식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거의 소파의 끄트머리까지 가서야 멈췄다.

 

  “그래서 당장 오늘 혼자서 나갈 생각이었던 거야?”

  “아무 생각 없이 나갔던 건 아니야. 우리가 오로라를 발견했을 때 있잖아. 그게 사라지고 나서 잠깐 뒤에 헬리콥터 한 대가 지나가는 걸 봤어. 아주 멀리였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정말로. 거짓말 아니야.”

 

  페리도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게 오로라였지?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런 얼굴하지 마.”

  “너도 아까 만만치 않았어. 뭐, 그래도 고마워.”

 

  안심이 되었는지 케인이 솔직하게 웃음 지었다. 페리도 응어리진 것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일단 코비를 조용히 시켰지만 오래 가진 않을 거야. 언제라도 원장에게 알려서 토트 녀석들이랑 비슷한 상황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 빠르게 행동해야 돼.”

  “그렇지만 어떻게 할 생각이야? 정말 벽을 허물려고?”

 

  페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벽이 저 손에 의해?

 

  “왠지 모르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오늘밤이라도 가능할 거라 생각해."

 

  그 말을 듣고 페리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혀로 입술을 훑자 침에 젖은 입술이 반짝였다. 케인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불안한 듯 다리를 떨고 있었다.

 

  “코비가 그 입을 오래 다물고 있어주지 않을 거란 건 동의해. 하지만 이번처럼 무작정하는 것 안 좋아. 당장 오늘 밤? 그건 너무 일러. 케인,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시간은 만드는 거야. 생겨나는 게 아니라고.”

  “도대체 뭘 하려고?”

 

  케인이 아미를 좁히며 물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페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겠지. 그리고 난 사라와 타이니한테도 이야기해야 돼.”

  “걔넨 대체 왜? 난 너만 있으면 된다고!”

 

  페리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하지만 곧 머리를 흔들며 열을 식혔다.

 

  “너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고... 아니, 알 리가 없지. 넌 아니겠지만 나는 걔네들도 소중해. 둘 중에 누굴 선택할 거냐고 는 묻지 마. 화낼 거니까. 데려가겠다는 것도 아니야. 단지... 먼저 말해주고 싶어서 그래.”

 

  심통이 났는지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리를 소파 위로 올리고 무릎을 팔로 감싼 채 가만히 있었다. 어린애 같은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케인은 한참을 째려봤지만 결국 수긍했다.

 

  “...알었어.”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페리는 재빨리 화재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봤던 게 오로라라고 했지?

  “그때 말해주지 않았었나? 맞아. 오로라야. 그게 마음에 들었나 보네. 네가 뭔가 기억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정도면. 이곳에서 나가면. 그것보다 더 멋진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거야. 약속할게. 꼭 보여줄게.”

 

  눈을 반짝이며 그는 그렇게 말했다. 페리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둘은 기도시간이 끝나기 전에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코비가 아직까지 입을 나불거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일과표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수업 같은 건 쉴 생각인 것 같았다. 어차피 의미는 없었다.

 

  식사도 따로 준비할 게 없었으니 저녁에 청소하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결국 페리는 남는 시간 동안 침대에서 뒹굴 거리기로 했다. 몸이 노곤했다. 아무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어울리지 않은 행동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침 일찍 어디를 나가던데... 어디 갔던 거야?”

 

  막 눈을 감으려 하는데 위층 침대에서 머리 하나가 불쑥 내려와 물었다. 타이니였다. 긴 밤색 머리칼이 밑에 있는 침대까지 닿을 듯 말 듯 했다.

 

  “어? 으응... 화장실에 갔었어. 아무래도 어제 수프를 너무 마셨나봐.”

  “으이그. 그럴 줄 알았어. 맛도 없는 걸 왜 그렇게 먹어댄 거야?”

 

  건너편 침대에서 사라가 말했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말이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둘을 바라봤다. 사라는 언제나처럼 엄지손톱을 씹으며 낡은 잡지를 읽고 있었다. 타이니는 얼굴을 갸우뚱하며 자신을 보는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러다가 빵 하고 웃음이 터뜨렸다.

 

  “왜 웃어?”

  “그냥. 웃겨서. 그냥.”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어대던 타이니는 잠시 후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왔다. 페리는 자신의 침대로 올라오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다.

 

  “페리. 무슨 걱정 있어?”

 

  타이니는 그 동그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래 보여?”

 

  페리는 금방 대답할 수 있었지만 그 간극은 피할 수 없었다. 작은 탐정은 예리하게 그걸 포착했다.

 

  “응. 절대로 있는 것 같아. 있지. 말해주면 안 돼? 네가 정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난 듣고 싶어.”

  “그게...”

 

  그녀는 계속 뜸을 들였다.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서로 상처입지 않고 이 상황에서 회피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뭐야? 뭐하는 건데? 우리 애늙은이 보모께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거야?”

 

  그때 사라도 이 흥미진진한 상황을 놓칠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잡지는 침대 위에 던져뒀는지 빈손이었다. 이 말괄량이 소녀를 잊고 있었다. 앞머리 밑으로 반짝이고 있는 초록색 눈에 한숨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언젠가는 얘기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갖춰지면 적당한 때를 잡아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게 이렇게 꼬일 줄이야.’

 

  아직은 숨기려고만 하면 숨길 수 있었다. 둘 다 사려 깊은 친구들이니 이 이상은 파고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망하긴 하겠지만. 페리는 그 표정들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결심을 굳힌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열렸다.

 

  “알았어. 하지만,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야. 그래서 알려주려고 하지 않은 거야.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각설하고 어서 얘기해봐.”

 

  사라가 재촉했다.

  사정을 설명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규모가 커서 그렇지 이야기할 것은 별로 없었다. 요는 ‘이곳에서 탈출할 것이다.’였다.

 

  “그게 정말이야..?”

 

  타이니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사라는 턱을 밑으로 내린 채 동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둘을 살피면서 페리는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서 너희들도 원한다면 같이 갈 수 있어. 이... 밖으로.”

 

  그녀는 햇살이 달구고 있는 모래벌판을 떠올리며 말했다. 사실 페리도 이 계획을 낙관적으로만 보기 힘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꽤 회의적이었다. 절대로 잘 될 것 같지 않은 계획이었다. 아마 이 둘도 똑같은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 좀 해볼게.”

  “나도...”

 

  둘은 각자의 침대로 돌아갔다.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페리는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한 채 누워버렸다. 얼마 뒤 점심시간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려댔기 때문에 그녀들은 어색한 몸짓으로 숙소를 빠져나왔다.

 

  식당은 비어있었다. 남자아이들은 단체로 식사를 거부할 셈인 것 같았다. 그래도 코비는 올 줄 알았는데 어쩌면 원장이 준 간식으로 연명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식사시간도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케인을 찾아봤지만 식당에는 보이지 않았다. 포크로 옥수수 알들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 사라가 침묵을 깨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더니 입술을 비틀며 말을 꺼냈다.

 

  “아, 답답해! 좋아. 모두 냉전에 돌입한 거지? 그럼 나부터 시작할게. 너도 알다시피 우린 언젠가 이곳을 떠나. 16살이 되는 해에 말야. 2년 밖에 남지 않았지.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아무튼, 직접 봤잖아. 재작년에 연 언니를 문까지 배웅했던 거 기억 안나? 다들 16살이 되자마자 가버렸잖아. 지금은 우리밖에 안 남았고. 그런데 굳이 탈출하려는 이유가 뭐야?”

 

  정확한 지적이었다. 사실 그녀도 가장 꺼림칙하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다. 케인도 이 점에 대해선 명확히 하지 않았다. 가장 처음에 그가 탈출에 대해 이야기 꺼낼 때도 물었고 책방을 나갈 때도 물어봤지만 말만 달랐지 ‘그래도 지금 나가야 해’였다.

 

  침묵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위태로워보였다. 크림색 머리 소녀는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없어.”

 

  마침내 열린 입에서 나온 답변은 두 소녀를 당황케 했다.

 

  “뭐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런 말을 꺼낸 거야?”

 

  타이니가 평소보다 격정적인 어투로 물었다.

 

  “역시, 장난치려는 거였지?”

  “아니. 그건 아니야.”

 

  페리가 담담히 받았다.

 

  “이건 원래 케인의 계획이었어. 그 멍청이는 혼자 떠나려고 했지.”

 

  그녀는 잠자코 그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두 친구를 응시했다.

 

  “너희도 알겠지만 케인과 나는 동시에 이 시설에 맡겨졌어. 누구한테 맡겨졌는지도 모르지만 원장의 말과 내가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이 그 애라는 걸 봐선 사실이겠지. 난... 너희들은 바보 같이 여길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그 녀석이 그렇게 혼자 가게 둘 수 없어. 가지 않아도 괜찮아.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 해도 고마워. 정말은 혼자 가기 두려워서 너희를 끌어들이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어. 타이니, 네가 예전에 말했듯이 삼분의 일로 줄이면 모든 것이 상당히 줄어드니까 말이야. 하지만.”

  “뭐야... 그런 이유였어?”

 

  도중에 말을 끊으며 사라가 말했다. 페리는 비웃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페리. 바보 같다고? 아니야.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럼 내가 바보냐? 고개 끄덕이지 마. 그리고! 네가 처음 본 사람은 걔일지 몰라도 처음으로 사귄 친구는 우리잖아. 네가 그런... 괴상한 계획을 들이밀며 혼자 떠날 거라고 하면 내가 그냥 아 잘 가! 하고 보내줄 것 같았어? 그렇게 생각했다면 섭섭하네.”

 

  뜻밖의 반응이었다. 사라가 이런 말을 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벙해졌다. 머릿속이 온통 하얀색 페인트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나도 갈 거야.”

 

  그때 울상을 지으며 타이니가 끼어들었다. 왜 자기에겐 묻지 않느냐는 표정이었다.

 

  “둘만 그런 우정이 넘치는 분위기 만들지 마.”

 

  그녀가 고개를 홱 돌리며 틱틱 댔다. 잠시 후, 셋은 식당이 떠나가라 깔깔대며 웃었다. 원장이 쿵쾅거리며 식당에 들이닥쳤다. 하지만 샤크라가 그들의 코앞에 올 때까지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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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0. 탈출(1) 2018 / 12 / 29 270 0 3610   
11 9. 도망 2018 / 12 / 29 260 0 6560   
10 8. 작전(2) 2018 / 12 / 28 249 0 3104   
9 8. 작전 2018 / 12 / 28 267 0 8211   
8 7. 의문 2018 / 12 / 28 241 0 2676   
7 6. 기만 2018 / 12 / 28 272 0 5232   
6 5. 발견 2018 / 12 / 21 288 0 8199   
5 4. 입막음 2018 / 12 / 21 298 0 9571   
4 0. 무인도시 2018 / 12 / 21 256 0 8691   
3 3. 위협 2018 / 12 / 19 261 0 8924   
2 2. 아첨꾼 (1) 2018 / 11 / 4 300 0 2836   
1 1. 사막 위에 고아원 2018 / 11 / 4 483 0 7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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