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시무룩하게 넋이 나가간걸 보고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뻔했다. 그때 정미가 시원과 눈이 마주쳐 졌다. 정미가 어느새 초췌한 얼굴로 변해있었다. 허탈한 듯이 헛웃음을 치면서 넋두리를 했다.
“이 나이에 이게 망신이야. 일찌감치 정리했어야 했는데. 이게 뭐야! 본처도 후처도 아니고. 내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창피해서 정말! 설마 내한테도 불똥이 튈까?”
정미는 혹시라도 불똥이 튀어 신랑에게 발각된 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즐기는 동안에도 늘 이런 불상사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서방이 있는 여자라면 당연히 심각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바람을 핀 남자도 정미와 같은 입장 일 것이다. 정미 신랑은 어떨지 모르지만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배우자의 불륜을 아무도 용납해주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정미 신랑 같은 바람둥이가 더 유별나게 집안 단속을 한다고 들었다. 만약에 배우자의 불륜을 알게 되면 더 잔인하게 처벌한다고 했다. 그건 본인이 바람난 상대에게 행했던 그 짓거리가 뇌리에 박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시원은 그 짓거리가 무엇인지 신혼 초에 경험해봐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바람둥이 남자들이 배우자가 바람이 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신혼 초에 그 짓거리라고 했다. 그 짓거리는 웬만한 포르노 영화를 능가한다고 했다. 그들은 배우자에게 얻지 못한 쾌락을 발가락 틈새 때까지 욕구하고 또 충족시켜준다고 했다.
정미 신랑이 행했던 그 행위를 정미와 근식도 똑같이 했기 때문에 정미가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원은 또 그들이 했던 행위를 상상하며 헛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때 정미 눈에서 불이 켜졌다.
“잠깐! 그런데 그 놈이 왜 그렇게 날 뗘? 이해가 안 되네. 만약에 그 놈 때문에 피해를 보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어디 있어. 하는 짓 보니 아주 심각한 바람둥이 더만”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미간을 좁혀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추궁 받는 기분을 느낀 시원이가 벌써 해명할 말을 찾고 있었다. 왜 해명을 하려고 하는지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누님! 누님! 해서 친 동생으로 여기는 지 아니면, 그 놈의 어린 마누라를 봐서 그런지 보호 본능인지 아니면, 이 년! 정미의 그늘진 숲을 본 후 그날 그 놈에게서 느낀 오감의 꿈틀거림 때문이지는 알 수가 없지만 보호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어릴 때 복희가 오해를 해서 그 놈 귀사대기를 때리고 쌍 코피도 냈다고 하더라. 지금 복희가 해야 할 일이 그때 벌어진 일에 대한 진실을 밝히라고 압박을 하고 있어. 그리고 그 진실에 나오는 놈이 실제적으로 복희에게 쌍 코피가 터질 놈이었고”
정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시원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놈 친구들이 여자 후배를 강간하려 했는지 아니면 술을 마시고 동의해서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놈이 못하게 말리러 갔다가 하필 그때 복희가 보고 주범으로 몰아붙였다 더라. 그 일로 원수 지간이 돼 버렸단다. 그리고 그 실제 주범이 지금 시의원에 출마하려고 하고 복희가 증인이 되고 그 놈이 준 증거 자료를 들고 그때 피해를 본 여학생들을 찾아가서 그 놈이 못나오게 막으면 복희 조카가 시의원에 나올 수 있다는 말이야. 전부 그 집안 일이지”
한번 코웃음을 친 정미가 씁쓸하게 말을 했다.
“전부 그 년 집안이 시작이네. 조카만 시의원에 안 나오면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네”
시원이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도 편하고 복희도 편한데 지금 제 발등 제가 찍고 있는 중이야”
그때 정미가 문자가 왔는지 민망한 눈으로 시원을 한번 보고는 회신을 하고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실토를 한다.
“오늘 근식이 만나기로 했는데 문상 간다네”
“어! 지현이도 간다던데. 동기 집에 상이 난 모양이다”
“그럼! 그 놈도 가겠네. 호호호”
“한번 물어 볼까”
시원이 눈이 말똥말똥하게 변해 지현이에게 전화를 하고는 눈을 찡긋해 준다.
“동생이 그 놈 태워간다네. 그 놈이 문상을 가면 본전을 건져야 일어서기 때문에 동생이 항상 잘 챙긴다더라. 호호호”
“걔들 어떤 사이인데?”
“그냥 친구지 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는 절대 아님”
조금 일찍 퇴근한 지현이가 방우를 태워 문상하러 가고 있었다.
“요즘 숙이 조용해? 전화 올 때는 귀찮더니 너무 연락이 없으니 섭섭하더라. 허허허”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방우를 본 지현이가 우물거리며 말을 했다.
“어쩌지. 너 또 섭섭하겠네”
눈치 하나는 빨랐다.
“치! 나는 이제 볼일 다 봤으니 필요 없다는 말이네. 허! 어이가 없다. 그래! 지금 내려오고 있데?”
“응! 장례식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향해 한숨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방우가 총총 걸음으로 차 옆에 서서 차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한쪽 팔을 내밀었다.
“야 임마! 유치하게 이게 통할 것 같아?”
“당연하지. 가자”
지현이가 한 술 더 떴다. 뺨을 어깨에 아예 딱 붙여버렸다. 숙이를 본 방우가 한 손을 흔들었다.
“어이! 친구 왔어. 오랜만이야”
끝이었다. 지현이가 손을 떼지 못하게 손을 꽉 잡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딱 소리가 들렸다.
“너는 이게 통할 것 같아? 어이구!”
방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문할 때 숙이는 혼자 하게 했다. 지현은 졸지에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잔을 채워주는 신세를 처음으로 하고 나왔다. 뒤따라오던 숙이 손바닥이 또 방우 등을 가격했다. 획 돌아서 콧방귀를 날렸다. 그런데 지현은 왠지 기분이 꿀꿀했다. 사랑놀음에 이용 당하는 기분이었다. 문상 온 사람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근식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근식아!”
목소리가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손을 흔들고 있는 지현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근식에게 뛰어가려는 데 방우 손이 그대로 지현이 손에 걸쳐져 있었다.
“야!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상가에 와서. 새끼가 쪽 팔리게 그게 뭐야! 그 손 놓고 가! 임마! 그리고 왔으면 여기 와서 인사부터 하고 가야지. 새끼가 예의도 없이. 자! 한잔 받아! 새끼야”
벌써 근식이가 쫓아왔다.
“야! 상가다. 참아!”
방우가 눈을 잠시 감았다. 근식이가 숙이에게 다른 데 앉으라는 눈짓을 급히 보내고 방우 팔을 꿰차 당기고 지현이가 밀고 있었다. 그러나 방우 고개는 자유로웠다. 고개를 획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