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입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정미는 화장실에 더 자주 갔다. 그만큼 시원이는 정미 사타구니의 그늘을 더 자주 봐야만 했다. 정미가 화장실에 갔다 오면 누가 근식이를 훔쳐가기라도 하듯이 또 옆에 딱 붙어 앉았다. 복희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없어 어떻게 복희를 이기려는 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근식이가 부럽기도 했다. 방우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 싶기도 했다. 오로지 젊은 마누라 있다는 유세 말고는 등신이나 다름 없었다. 웃음도 나왔다. 잘 간수해라. 저게 증거다. 영화관도 아닌 리얼 애로영화를 보고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어 시원은 헛웃음을 치고 있었다.
화장실이 모기 집이나 되는지 화장실만 다녀오면 근식이가 또 정미 여기저기를 긁었다.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잦아지면 잦아질수록 기분이 야릇했다. 근식이 손이 자기 몸에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런 상상을 할 때 사타구니가 약간 축축한 걸 느끼기도 했다. 정미와 근식의 감칠 맛나는 한편의 애로영화를 관람했으니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이놈도 저러고 싶어할까? 고개가 슬그머니 돌아가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 주무십니까? 아니면 밥하러 가야 할 시간이 지나 걱정하고 있습니까?”
얼굴을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려 고개를 들었다. 방우가 벌써 일어서 내려 보고 있었다. 시선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염탐하듯이 내려보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세요. 대리기사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개가 더 빨리 뒤로 젖혀지다가 하필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불룩한 지점인 그 곳에 아주 잠시 시선이 머물다가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밖으로 돌렸다. 방금 애 낳아 퇴원하는 산모를 부축해 가듯이 근식이가 정미 옆구리를 둘러 싸매고 나가고 있었다. 정미 한쪽 팔이 근식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빨리 나오세요. 저 먼저 택시 타고 갈까요. 기본요금밖에 안 나오는데”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방금 전에 눈에 스쳐 지나간 정미 검은 숲 속이 점령해버린 머리 속에서 헤쳐 나오는 게 더 힘이 들었다. 같은 동성이 이 정도인데 저 놈은 어땠는지 궁금해져 방우를 쳐다봤다. 벌써 고개를 돌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뭐라고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아이 참! 할망구가 술이 약하면 조금만 마시지”
“어! 나! 괜찮아. 술 안 취했어”
“너 말고 저 할망구들”
“가서 데려와. 사람들 보잖아”
“내가 왜?”
“얼른 가! 그러는 사이에 벌써 데러 나왔겠다”
밖에 있었으면 밖에 있지 왜 안으로까지 들어와서 정말 할망구 취급을 하는지 지현이가 더 미웠다. 술에 취했는지 영화에 넋이 나갔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졸지에 제일 싫어하고 꼴불견이라 여겼던 술 취한 여자가 돼 버렸다. 방금 전까지 부러워했던 정미도 돼 버렸다. 낚시바늘에 낚여 채인 물고기처럼 빳빳이 꼬리를 치는 게 아니라 흐느적거리며 질질 걸려나가는 정미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묘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 놈의 팔은 바닷물에 식혀진 차디차고 긴 낚시 줄도 아닌, 정미 사타구니 양 갈래 사이로 수북이 덮인 검은 숲도 아닌, 온돌 매트 같은 따뜻한 감촉이 느껴지는 숲을 이루고 있는 겨드랑이였다. 겨드랑이 한 곳을 지켜야 할 팔 하나가 시원이 겨드랑이 아래에 따스하게 들어와 있었다. 끌려나가는 동안 이 놈의 팔꿈치가 젖꼭지를 한두 번도 아닌 연신 스치면서 경직되게 만들기도 했다. 부축을 빙자한 의도된 성희롱은 확실했지만 같은 입장이란 생각이 들어 끌려 가기로 했다.
“집이 어디죠? 대리운전 기사 불러야 하는데”
집에 무슨 금덩이라도 숨겨놨는지 계속 집 타령이라 기분이 살짝 상했다. 그렇다고 숙녀가 먼저 한잔 더 하고 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어! 저기 기사 있네. 아저씨! 예약 있어요. 없으면 우리 누님 좀 모셔다 드리죠”
말은 예의 있게 하지만 기분은 그렇게 썩 좋지 않았다.
“예! 예약 없습니다. 어디 가시죠?”
“누님! 댁이 어디죠?”
딱 한잔 더 입가심으로 했으면 하는 마음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멋대가리로는 하나도 없는 놈에게 한잔 더 하자고 해 봤자 정미나 복희와 같은 년으로 받는 생각만 들었다.
“너 먼저 내려주고 갈게. 같이 가자”
방우가 멈칫하며 뒤로 물러서 내키지 않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왜? 어디 갈 때 있어? 내일 경주 출장 간다며. 얼른 가서 쉬어야지”
“먼저 가세요. 간에 기별도 안 와서 저는 한잔 더 하고 가렵니다. 그럼 잘 가세요”
“야! 임마!”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는지 본인도 놀라고 있었다.
“왜요? 같이 하실래요. 진작에 말하지. 난 또 어디 영감하고 데이트 선약 있는 줄 알았네. 아저씨 죄송합니다. 빨리 따라와요. 한잔 더 하게”
걷기도 귀찮은지 멀리도 가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호프집으로 빨리 오라는 손짓만 하고 쑥 들어가버렸다. 뒤따라 들어간 시원이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고 말았다. 오밀조밀한 오색불빛이 내리는 작은 칸막이가 있는 작은 가게였다.
“괜찮죠?”
몸을 비켜 먼저 앉으라고 하고는 앞이 아닌 옆에 앉았다.
“야! 앞에 가”
“음악 소리 때문에 무슨 말하는 지 안 들려요”
“크게 하면 되지”
“옆에 다 들리는 데”
휙 둘러보면서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데 엉덩이 한쪽이 따뜻해졌다.
“좀 떨어져 앉아”
짓궂긴 짓궂었다. 더 바짝 붙어 앉았다.
“아~ 야~ 조금 떨어져. 사람들 보잖아”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바짝 붙어 앉아 잔을 부딪히고 한잔씩 하고 또 한잔씩 마실 때쯤 정미 사타구니가 불쑥 스쳐갔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남자도 아닌 같은 여자의 거기가 이렇게 가슴을 벌렁거리게 하는 건 처음이었다. 허구한날 목욕탕에서 보는 데도 기분이 야릇했다. 아래도 약간은 젖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방우가 의도한 것처럼 기분을 더 야릇하게 했다.
“정미 누님은 지금 좋겠다. 그렇죠?”
‘이런! 대답하란 말이야. 뭐야?’
갑자기 좀이 턱 멎어지면서 가슴 끝 어디선가 또 조여지는 것 같았다. 탄력이 제법 생긴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만질 뻔 했다.
갑자기 침이 꼴깍 넘어가 당황해 방우를 쳐다봤다. 눈을 꼭 감았다. 달콤한 뭔가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때를 기다리는 사이 또 정미 검은 그늘이 아른거리며 벌써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입술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시원은 입술에 힘을 거의 다 빼버리고 따뜻한 감촉을 느끼기로 했다. 그런데 옆구리에서 따스한 감촉이 스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검은 숲을 보는 것만으로 젖어지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