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인데”
근식이가 물었다. 시선을 시원이 쪽으로 돌리고는 눈을 찡긋하고 말을 했다.
“누님도 들었죠. 어떤 시답잖은 놈이 내 회사를 자기가 인수했단다.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이런 소문이 다 들리냐. 그 놈의 조만 간에 만나서 모가지를 비틀어버려야겠어. 이런 소문은 내같이 업 하는 놈들에겐 치명적이잖아”
그때 정미가 화를 벌컥 냈다.
“어떤 새끼가 그래? 내하고 같이 가자. 나도 그런 일이 한번 있었어. 손님이 없어서 어떤 년이 자기가 인수한다는 소문을 내 한동안 홍역을 치렀어. 그런 흡혈귀 같은 놈은 모가지를 비틀어버려야 해. 이 누나가 비틀어 줄게. 말만 해”
굉장히 과격한 몸짓과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지현도 시원도 눈도 깜짝하지 않았는데 근식이만 놀라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방우가 근식을 넋이 나간 듯이 신기하게 쳐다보고 말을 했다.
“친구야! 너 살아있는 게 참 용하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때 정미가 방우를 노려보면서 검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머리를 대라고 한다.
“머리 내 앞으로 가져 와. 쓸데없는 소리하면 맞는다. 자식이 편들어 주려고 했더니 고마운 것도 모르고 어떻게 너 같은 상상만 해. 솔직히 말해봐. 방금 무슨 상상했는지”
문득 방우 머리에서 첫 이미지가 떠올랐다. 만성 스트레스 증후군에 잔소리꾼. 그 후에 떠오르는 건 그들만의 로맨스에 걸림돌로 전락돼가는 복희 여사. 질투와 시기. 소유욕.
“누님!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근식이 같은 장사를 아직도 누님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칭찬입니다. 웬만큼 젊은 여자들도 저 놈은 감당 못하는데 누님은 벌써 거의 일년 동안 마음대로 가지고 놀잖습니까. 대단하십니다. 대단해. 허허허. 아무도 우리 근식이를 넘보지 마라는 경고를 하는 것 같습니다. 또… 뭐라고 해야 하나….”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시원이 손바닥이 방우 뒷덜미를 가격했다.
“아이고 이놈아! 이놈아! 농담이 너무 지나치면 정미가 민망하잖아. 그만해”
제법 야무지게 맞은 것 같았다. 눈물이 찔끔 보였다.
“아닌데. 정미 누님이 자기 입으로는 도저히 말을 못해서 누군가가 이 사실을 전하라고 유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주 고 단수를 쓰고 있잖아요. 그 말이잖아요. 누님! 맞죠? 지금 하고 있는 액션이 그 의미죠. 시원아! 너무 마찬가지야. 너도 헛물켜지 말고 복희에게도 전해줘. 근식이한테 눈길 주지 마라고 꼭 전해라. 그 말 맞죠? 그 말인 즉! 근식이 너도 조심해. 걸리면 죽어. 한 방에 세 사람 모두 KO 시키는 중이구먼”
능글맞게 구구절절 핵심을 찌르며 가엽다는 듯이 근식을 쳐다본다. 근식이 시치미를 뚝 떼고 입술만 툭 내민다. 시원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려 잔에 담긴 소주를 방우 얼굴에 뿌리려는 모션을 취했다.
“자식이! 할망구를 가지고 놀려고 해. 왜 나까지 끼워 넣어. 나는 임자 있는 놈은 싫다. 적당히 가져 놀다가 집에 갈 땐 꼭 원위치로 꼭 두고 가. 알았어?”
“당연히 원위치에 데려줘야죠. 누님이”
“내가 왜? 어디를?”
“저희 집에요”
“이놈 벌써 술 취했구나. 너 몇 잔 마셨다고 벌써 정신 나간 소리를 해. 이제 시작인데”
시원이가 소주를 꿀떡 마시고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방우가 들어오기 전에 밖에서 전화를 제법 길게 한 모양이었다. 그 시간에 술을 제법 많이 마신 것 같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홍조로 변해 있었다. 지현이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잠든 수준이었다.
근식이와 정미는 똥 마른 개 마냥 눈치를 보면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시원이가 지현을 힐끔 보고는 방우를 쳐다봤다. 분명히 말짱한데 입만 열면 헛소리를 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차에서는 비록 과격했지만 나름 매력은 있었는데 어떤 구석이 이놈의 진실된 정체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현아! 집에 가자. 내일 경주에 출장가야 해서 일찍 들어가 쉬어야겠다. 누님들 죄송한데 저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지현아! 일어나”
지현이는 이미 잠든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방우가 업어서 데려 갈리는 절대 없을 것이고 뒤통수를 두들겨 패서라도 깨울게 분명해 보였다. 시원이도 사실 일어나고 싶었다. 바로 눈 앞에서 정미가 심해도 너무 심하게 근식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바람에 민망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거의 애무 수준이었다. 평소 이미지대로 조신하게 조심하는 것처럼 연막을 쳐놓고 틈만 보이면 근식이 허벅지를 긁고 있었다. 근식이 허벅지에만 모기가 집중적으로 포격한 줄 착각할 정도로 긁어 주고 있었다.
잔이 입에 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방우가 예측한 대로 이 중에 한 명이 자기들은 이런 사이니까 복희에게 꼭 전달해달라는 연극 같기도 했다. 정미 평소 성격으로는 연극이 분명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도 들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복희에게 전달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데는 한가지를 더 덧붙일 장면도 있었다. 오늘 정미가 확실한 연기를 하기 위해 술 힘을 빌린 게 분명했다. 들어갔으니 뱉어내야 했다. 건장한 남자도 오늘 정미 입에 들어간 소주가 들어갔다면 정미와 똑 같았을 것이다.
정미의 검은 그늘이 보이는 사타구니였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정미 치마 속이 훤히 보였다. 바로 눈앞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설 때는 새색시처럼 다소곳하게 일어서지 않고 한쪽 날개가 사라진 나비처럼 반 날개만 활짝 벌려 일어셨다. 충분히 이해는 됐다. 남자들도 이 나이면 한번에 바로 일어설수가 없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벌려 지팡이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보지 않으려면 눈을 감아야 했다. 그늘뿐만 아니라 그늘을 지은 검은 잔 잎사귀들도 보였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비정상이었다. 옆에 앉은 방우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할 때는 이상하게 젖가슴이 뻐근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얼굴이 붉게 달궈져 있는 걸 옆에 앉은 방우만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을 했을 때는 더 화끈거렸다. 아주 잠시지만 엉뚱한 생각도 했다. 여자인 본인도 야릇한 상상을 했는데 방우도 분명히 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싱거운 소리를 숨쉬듯이 하던 놈이 일체 함구를 했다. 그건 정미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아닌 자신의 성욕에 대한 예의나 배려로만 보였다. 엉큼한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