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제품을 구매하려면 25억이라 했는데 그 돈이 있어?”
김성은이 미심쩍은 척한 눈으로 임정훈을 힐끗 쳐다보고는 묻는다.
“그래서 이 분께서 오셨죠. 이 분이 우리 회사에서 전량 구매했습니다. 임사장님도 형님 회사에 판매를 하면 최소한 10억은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서로 나눠 가지면 되죠. 간단하잖아요. 그러니 형님이 빨리 서둘러 주셔야 합니다”
“알았네. 내가 자재부에 공 부장하고 잘 알고 지내니까 서두르겠네. 그 대신에…”
김성은이 잠시 머뭇거리는 척하며 임정훈의 눈치를 살폈다.
“허허! 염려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챙겨 드릴게요”
고동우는 영업을 하면서 이런 일을 흔한 일인지라 흔쾌히 대답을 해주고 김성은을 안심시켰지만 김성은은 말로만은 만족하지 않는지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붉은 임정훈이 얼른 눈치를 채고 안심시켜 준다.
“요즘 한창 돈 들어갈 때죠. 염려 마십시오. 제가 섭섭지 않게 미리 드리겠습니다. 그 돈은 여기 고사장님이 나중에 증산해주시고. 그러면 되겠죠? 고사장님!”
“예! 당연하죠. 형님!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챙겨 드리겠습니다”
임정훈과 고동우의 영업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고동우가 입증을 해주는 자리였다. 임정훈의 건설을 하면서 로비나 뒷돈을 줄 때 액수가 커야만 했지만 고동우는 그렇지 않았다. 오가는 액수의 차이가 큰 만큼 임정훈은 한 묶음 뭉텅 돈을 주지만 고동우는 그와 반대로 간 맛을 보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 자리는 고동우의 판단이 옳은 자리였다.
미리 준비해 온 돈봉투를 임정훈이 보는 앞에서 김성은에게 전달되었고 아주 잠시 그 돈봉투는 식탁 위를 오가다가 보는 눈이 많은 혜택을 누려 바로 김성은 주머니로 들어갔다.
“아이! 이러면 안 되는데…”
“형님! 집에 가실 때 형수님에게 맛있는 거 사다 주세요. 얼마 안됩니다”
“참! 공영식 부장과 자리 한번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사실상 미끼는 벌써 고동우가 던졌으니 이젠 임정훈이 나설 순서를 지켰다.
“예! 제가 빠른 시일 내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지금 우리 공장도 발등에 불 떨어졌습니다. 공장도 돌려야 하고 판매도 해야 해서 그 제품을 빨리 구입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히려 더 급합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내일이라도 되겠습니까?”
김성은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휴대폰을 들고는 공 부장에게 전화를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일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답은 임정훈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확실한 매듭이 필요했다.
“저! 내일 확실히 자리를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구매하겠다는 확답만 받는다면 제가 바로 현금으로 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고동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바로 번졌고 김성은은 호기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약조를 하고 집으로 가던 김성은은 집 근처에서 봉투를 열어보고는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조금 두텁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35년 동안 근무한 직장에서 받은 한달 급여의 두 배는 더 넘었다. 얼른 전화를 걸었다.
“고사장! 너무 부담되는데”
“형님!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약만 성사하게 해 주십시오. 열 배 드리겠습니다. 그러데 형님! 대단한데요. 배우 해도 되겠습니다”
살짝 미간을 좁히고는 노려 보는 듯이 쳐다 보고는 웃으면 말한다.
“그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네. 지금 우리도 공장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그 제품이 급해. 그건 절대로 걱정 안 해도 돼”
부담되고 불길한 예감이 든 마음과 달리 입은 또 그의 성격답게 위풍당당하기만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지만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액수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세상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사업을 하는 친구들의 얘기 속에는 항상 리베이트가 있었다. 간혹 공 부장이 있는 부서에서도 회식 때면 자기들이 결제를 하지 않고 거래처에서 결제를 한다는 소문은 관행처럼 들렸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면서 그런 차별을 받은 건 자신은 생산직이고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에 미치니 아무런 부담도 들지 않았다. 물론 죄책감 같은 건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단, 공 부장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고민으로 몰려 왔고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몇 시간 되지 않는 그 밤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북적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어학 연수를 간 애들이었다. 이 돈으로 그냥 보내버려? 되돌려줘? 숱 하게 갈등을 겪어야 했다. 밤새 갈등 속에는 공 부장이란 사람이 아예 없다가 새벽 넋에야 그 이름이 ‘아차!’와 함께 번개처럼 번쩍 떠올랐다. 자신과 공 부장의 관계!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은 과거가 바로 어제처럼 떠올랐다.
공 부장을 떠올리기에 앞서 그 패거리들과 창훈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패거리들은 어릴 때부터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다. 솔직히 눈꼴 사나운 패거리들이었다. 간혹 시험 성적을 보면 그들끼리 답안지를 돌렸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에 우르르 몰려갔다. 솔직히 눈꼴 사나웠다.
그 후에 입사하고 6년 정도 지났을 때 지금은 부장인 공영식이 입사를 했고 그가 신입 사원 때였다. 술자리에서 항상 나오는 어디 출신이냐를 묻는 자리에서 자신의 고향과 출신을 얘기했을 때 그 패거리 중 한명인 마 수리를 아느냐고 물었고 그때 뭔 놈의 수리수리 마 수리 나며 모른다며 어떤 사람인지 되물었다.
한동안 그 놈에 대한 악감정으로 공영식이 신입 사원 때 많이 괴롭혔다. 그리고 창훈이도 마찬가지다. 동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가끔 회사에 들리면 그 놈들의 패거리 소속이라는 악감정으로 외면해버렸다. 계약을 못하게 방해도 했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에 미치자 얼른 고동우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고동우는 그날 밤에 임정훈과 한잔 더 했다. 그 자리에서 김성은에게 준 돈을 임정훈에게 또 받아 챙기고 자기가 짜놓은 판대로 본사에 보고하기 위해 새벽에 KTX을 타고 서울로 가서 본사 앞에 있는 사우나에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임정훈이 눈을 떴을 때 김성은으로부터 전화가 수백 통은 와 있었고 문자도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