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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4
작성일 : 18-12-20 14:18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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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 허전했다. 아무리 더듬거려도 잡혀야 할 게 잡히지 않았다. 사무실을 발칵 뒤졌지만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잠행할 때까지는 있었는데.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정신이 없었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기억의 기억까지 쭉 이었다. 잘 때 빼곤 웬만해서 안 풀었다. 시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감쪽같이 잃어버리는 능력이 있어 소중할수록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이마를 짚고 발을 굴렀다. 머리를 쓸어 넘기자 옆자리에 앉은 변호사가 힐끔 훔쳐봤다. 뭐가 없어요?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나는 혼잣말인 것처럼 대답했다.

 

  “목걸이.”

 

  잘 안 들렸는지 네? 하고 되묻는다.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추궁하는 눈빛이 됐다. 입술은 초조하게 떨렸다. 눈치 없게 아무 막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주먹으로 입을 막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여 미치겠다는 얼굴을 보며 사과했다. 그리고 학교 후문을 생각했다. 급하게 넘긴 했는데 그때 빠뜨렸나.

 

  무조건 찾아야 한다.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당장 학교로 떠날 태세를 취했다. 고준서가 안절부절못하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감정 결과 나왔대요.”

 

  작게 탄식했다. 하필 이런 때 목걸이가 사라져서. 꼭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징조가 좋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고준서의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 창문에 관자놀이를 받았다. 고준서가 잠깐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곧 거둬지고 도로 위를 부드럽게 질주했다. 난방 때문에 풍경이 희미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이제라고 말하기는 용납할 수 없고 그저 오늘은 막막했다. 분노는 사람을 허망하게 하고 그래서 무기력하게 만든다.

 

  “왜 그래요?”

  “몰라.”

 

  참 좋은 단어. 귀찮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마법의.

 

 

  *

 

 

  결과지가 든 봉투를 싣고 오면서 한 마디의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수다스러운 고준서의 입이 나의 분위기로 꽉 억눌렸다. 답답한 기색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미안했고 그렇지만 애써 밝은 척하고 싶지 않았다.

 

  고준서의 재판 준비로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헤어졌고 새삼 그는 내 조수가 아니라 같은 변호사임을 자각했다. 비슷한 처지끼리 서로서로 돕고 그러는 거지 뭐, 나 때도 도와줘요 그럼. 하고 능구렁이 담 넘듯 말해서 너무 편해져 버렸다. 눈에 강한 자부심이 서렸던 고준서의 말처럼 그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싶다.

 

  “아, 맞다.”

 

  벼락에 맞은 듯 머리가 번득였다. 사무실 책상에 봉투를 내려놓고 허벅지를 쳤다.

 

  “전화번호.”

 

  다시 묻는다는 것을 깜박했다.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라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연락처를 쭉 넘기다 보면 김지빈의 번호가 있었다. 이 녀석 것도 있는데 싶은 것이었다.

 

  다 바쁘게 살아가는 틈에서 혼자 늘어진 것 같은 내가 소파에 앉았다. 나를 두고 언제 집에 들어갈까 내기를 걸던 직원 중에 재판이 끝나도 가출 신세일 것이라는 파에 속했던 직원조차 생각보다 긴 내 사무실 생활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슬슬 접을 시점이었다. 접는다는 건 김지빈에게 굽힌다는 소린 아니고 더 이상의 민폐를 끼칠 수 없었다. 또 어디로 가야 하나. 다음 생이 기어코 존재한다면 바람이 되고 싶다. 모로 가도 집이니까.

 

 

  *

 

 

  충치 치료한 왼쪽 이빨이 찬 것만 닿으면 시리다. 차가운 음식을 모두 오른쪽으로 씹는 습관이 생겼다. 양치할 때는 뜨거운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찬물을 하염없이 흘려보낸다. 그러나 사무실 화장실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

 

 

  수지에게 문자가 왔다. 그렇게 호언장담했지만 유일하게 내 처지를 모른다. 알리지 않았다. 초반에는 겸연쩍었고 지금은 후회됐다. 김지빈을 같이 씹고 뜯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게 이토록 입이 간질간질할 일인가.

 

  요즘 읽고 있다는 소설의 구절이었다. 나는 긴 이야기를 보면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비교적 짧은 시나 에세이를 선호했다. 바빠서 책 같은 건 못 읽는다는 핑계를 대진 않는다. 읽을 사람은 다 읽더라고.

 

  「당신은 뭐 선행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되나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악행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죠.」

 

  로스 맥도널드가 쓴 블랙 머니 中에서.

 

 

  읽지 않았으니 전후 내용은 깜깜하다. 하지만 이 타이밍에 이런 글귀, 속에서 미세하게 요동치는 물결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글에 대한 답장 대신 화제를 돌렸다. 내가 수지에게 할 수 있으며,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다.

 

  ‘목걸이 사라졌어.’

 

  칠칠치 못하니까 잃어버리기나 한다고 꾸짖기부터 할 줄 알았다. 기분이 발등 위로 가라앉다 못해 그래서 발등을 찍고 싶었다.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답장을 바란 문자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 내가 그런지 수지가 그런지 또한 모른다는 생각. 머리가 좀 쑤실 때 전화가 왔다. 수지였다.

 

 

  *

 

 

  재판은 되풀이됐다. 김지빈이 제출한 증거는 모두 정황에 불과했다. 나한테 보낸 동영상도 마찬가지로 치부됐다. 하기야 그 동영상으로 박성우의 실체를 까발렸으니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상 공판을 말아먹은 셈이다. 게다가 판사는 누가 봐도 수긍할 정확성을 논하는 이 판에 얼마 없는 FM이었다. 명백한 증거가 없는 이상 동준에게 유죄를 판결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확실히 검사 측에 기세가 몰려있었다. 동준의 범행이 아니라면 결국 박성우나 경비원이 거짓 증언을 했다는 건데, 이쪽은 1이고 저쪽은 2니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노랑머리의 증언도 의심은 되나 분명한 판단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박성우가 그러할 만한 계기가 딱히 없었다.

 

  동준이 밀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닌 박성우의 계기만 찾아도 승산이 있는데.

 

  “그게 뭐냐고 그니까.”

 

  검사 측은 역시 보복심리에 대한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다. 정황상 불분명하지만 그럴듯한 동기였다. 동준은 나날이 수척해졌고 진짜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않아서 그 고운 미소조차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막 헤집자 몇 가닥이 빠졌다. 잠을 설치면 그랬다. 새삼 소파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한참 수사 기록을 생각해서다. 고준서는 산발이 된 내 머리를 대신 가지런히 정돈했다. 너저분한 꼴을 못 보는 성격답다. 순간 단발머리를 아예 숏컷으로 자를까 생각했다. 이 길이마저 관리가 어려웠다. 나 하나 어떻게 하지 못하면서. 명치가 답답해 짓눌렀다. 고준서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는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는가 싶더니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여 운을 뗐다. 있잖아요, 혹시. 고준서가 어떤 소리를 할지 대충 예상이 갔고 지금은 듣고 싶지 않아 손을 저었다. 바로 옆에 있는 모퉁이를 돌아 화장실로 피신했다. 거울에 낯선 얼굴이 비쳤다. 며칠 사이 피부색이 하얗게 질렸다. 마른 입술엔 색깔이 없다.

 

  세면대 물을 틀고 얼굴을 적셨다. 정신 차리라고 자신을 나무랐다.

 

 

  휴지를 몇 장 뽑아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 기운 차렸기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는데 이게 직방인 것 같다. 고준서에겐 세면대가 고장 났다고 해야지. 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고. 그럼 걔는 또 무신경하게 믿을 거다.

 

  나는 다시 모퉁이를 돌아 고준서에게 가려던 참이었다.

 

  “그걸 왜 그쪽이 갖고 있어.”

 

  좀 전까지 나를 갉아먹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

 

 

  고준서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김지빈과 그런 김지빈을 몰래 주시하는 내가 놓인 자리는 살얼음판 같았다. 쟤는 왜 저기서 저러고 있어 무섭게. 김지빈과 고준서가 아는 사이였나, 궁금하지만 다가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마 발을 뗄 수 없어 관망했다. 고준서가 말했다.

 

  “무슨 상관.”

 

  쟤는 또 말투가 왜 이렇게 날이 서 있어. 먼저 시비 건 쪽은 김지빈 같지만.

 

  고준서는 신경이 예민해진 한 마리의 고양이, 아니 재규어 같고 고준서가 재규어라면 김지빈은 곧 으르렁댈 것 같은 호랑이 같다.

 

  뭐 때문에 눈을 부라리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지 내 딴에는 알 도리가 없다. 김지빈은 말하기도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상관있지.”

 

  특유의 정답지 못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김지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깐 검사복을 걸쳐서 못 봤는데 재판이라고 옷은 또 보기 드문 정장 차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말에 실리는 분위기가 짙었다.

 

  “내 건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몸을 움찔거렸다. 저 말이 김지빈한테 나온 소리인가 아니 김지빈한테 나올 소리인가. 그리 오래 같이 살진 않았지만 김지빈이 그저께 뭘 봤고 어제 뭘 먹었고 알고 싶지 않아도 꿰뚫을 수밖에 없는 나였다. 내가 아는 김지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런 소유욕을 낼 사람이 아닌데, 못 본 사이 그새 변했나. 당황하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고준서가 어리둥절하게 대답했다.

 

  “당신 거라고?”

 

  도대체 뭐길래 그게. 고준서가 들고 있던 물건을 김지빈 앞으로 내미는 것을, 목을 쭉 빼서 바라봤다. 손아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희미하게 매달려 달랑거리는 저 금테 저거.

 

  “내 목걸이잖아.”

 

  분명하다. 후문부터 거기 가는 길까지 살피고 사무실을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한 목걸이가 고준서에게 있었다. 반가운 것도 잠시 어이가 없었다. 김지빈 말을 곱씹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네 것이라고?

 

  더는 숨을 이유가 없다. 나는 쿵쾅대는 심장만큼 빠르게 위태로운 그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 변호사님?”

 

  고준서의 부름과 김지빈의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준서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낚아챘다.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그의 손을 등지고 김지빈을 잠깐 바라봤다. 무표정한 김지빈은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벌렸다 다물었다. 다시 짧게 한숨을 뱉었다.

 

  “잤어?”

  “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기가 막힌 기분이 들었다. 집안 대대로 이어진 수전증 때문인지 손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나가더니 저놈 집에서 잤냐고.”

 

  김지빈이 어떤 뜻으로 무슨 권리로 말하는지 알 수 없었고 대신 발끈한 고준서를 제지했다. 나갈 땐 아무 소리도 없더니 그 후로 연락 한번 없더니 만나 한다는 소리가. 이쯤 되니 섭섭해서 미간이 찌푸려진다.

 

  고준서의 손목을 잡고 김지빈을 지나치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늘 그랬던 것처럼.”

  “이하원 너 진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김지빈이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뒤따라오는 고준서의 손목이 뜨거웠다. 근데 내 손이 뜨겁다고 고준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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