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마음은 수리와 달랐다.
원래의 모습이 악인이던 선인이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주고 싶어하고 있었다. 연어처럼 원래의 고향으로 찾아 가게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행한 이 사람의 모습은 이 사람 소유가 아닌 그 사람의 심장에서 전이된, 그 사람이 소유하고 싶어했던 그 사람의 작품 중 하나라는 생각이 연어 머리에 문득 들었다.
고개를 획 돌렸다. 순간 놀랬다. 눈물이 보였다.
“왜 울어? 생긴 꼬락서니하고 어울리지 않게. 뚝 그쳐! 이제 잊을 때도 됐잖아?”
민망한지 얼른 눈물을 닦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변명을 하고 있다.
“내가 무슨 눈물을 흘린다고? 허허! 그 참 별일 다 있네. 그 사람 눈이 갑자기 떠오르네. 어이 씨! 재수없게”
손끝엔 연어의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었다. 지금 오빠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그 사람의 영혼에서 나오는 눈물 같아 심장에서 또 도려내고 싶어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이 사람 심장에서 영원히 떠나 달라고 연어는 화를 내고 있었다. 세상사람들 전부 손가락질해도 모처럼 회귀한 사랑에 소매치기의 심장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삼십 년이 넘은 세월 동안 오빠 심장에서 살았으면 이제 떠날 때가 됐다.
오빠도 나머지 인생이 내일이 될지 삼십 년이 될지 자신이 설계한 작품 속에 살 기회를 줘야 한다. 그 속에 연어도 남고 싶어했다.
만약에 당신이 떠나지 않으면 나의 심장을 오빠에게 주고 만다는 심정으로 연어는 수리 가슴에 손을 얹어 두고 있다. 아주 잠시 얼굴이 발개진 걸 봐서는 어색하고 민망한 듯이 보였지만 연어 손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살포시 잡아 당겨 자기 가슴에 파묻힐 정도로 세게 잡아 당겨 올려 놓는다.
연어는 심장이 살아 숨쉬고 있는 걸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누군가의 다른 심장도 느껴졌다. 다른 하나의 심장을 내보내려고 연어는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그 속에는 제발 나가달라는 간절한 부르짖음 같은 걸 수리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그의 고통스러워하던 눈빛이 다시 되살아나 들어오는 것 같아 수리는 움찔했다.
수리 기억에서 다시 끄집어 내진 그 사람의 눈빛은 선하기만 했다.
소매치기인 그 사람은 회장님 가방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었을 지도 모르고 덥석 잡았고 수리는 죽을 줄도 모르고 덥석 차버렸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도 고동우의 일당들처럼 치밀한 계획 아래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건 절대로 우발적인 충동에서 벌어진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부분은 수리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을 날렵하게 걷어찰 수 있었던 건 그 사람이 소매치기를 위해 연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운동이 다른 곳에 쓰여질 뿐이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필이면 그 사람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동우 일당은 운이 나빴다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가 있다.
만약에 김경일과 고동우를 응징하는 자리에 자신이 직접 있었다면 그들의 운명은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소매치기가 당한 것처럼 우발적이던 치밀한 계획적이던 두 사람은 더한 고통 속에 살고 있었을 것이라 수리는 장담하고 있다. 그 소매치기는 일면 불식의 사람이지만 고동우와 김경일은 아니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씁쓸한 마음을 가져서인지 아니면 동정심이 들어서인지 가슴이 아려온 수리 눈시울이 정말로 젖어가고 있었다. 아마 그 소매치기와 일당들 모두가 한꺼번에 몰려 온 것 같았다.
“그런데 너는 왜 흘리냐? 나는 이유가 있어서 찔끔 나왔다 손치더라도 너는 왜 흘리냐?”
“오빠 따라 강남 왔다. 왜? 안돼?”
“여기가 강남이잖아. 내가 울산에서 왔지 네가 왔냐?”
콧방귀를 한번 심하게 치고는 비꼬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나를 여기 보낸 사람이 오빠잖아. 어떻게 내 혼자 여기 버려 둘 생각을 다 했어? 입사를 시켜줬으면 같이 있었어야지”
“전세비가 비싸서 그랬다”
“그럼! 나는?”
“신랑이 돈 잘 벌었으니까 여기 살지. 내 같은 놈과 살았으면 여기 못 버텨. 이번에 실망 많이 했지? 따듯하게 못해줘 미안해. 우리 일이 이래. 끝까지 입 조심해야 해서….”
“항상 미안해. 미안해. 이제 미안해 할 짓 하지마”
“언제 또 볼 날이 있을까? 허허! 또 도둑놈들이 나타나면 또 만나겠지?”
“아이 씨! 내가 실수 했네. 오빠 가슴에서 방금 도둑 놈을 빼 냈는데.. 다시 집어 넣을까?”
“그래! 오늘 밤만 넣어줄래?”
“아이 씨! 엉큼하기는 …. 이제 그런 농담도 하지마. 참! 이거! 잊을 뻔 했네”
회장님이 준 봉투를 다소곳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툭 던지듯이 건네 준다.
“아니! 너 가져. 나는 이 돈은 필요 없고 일감만 주면 돼”
수리가 손사래 살짝 치며 거절을 한다. 손에 쥔 봉투를 힐끗 보던 연어가 인상부터 찡그린다. 명절 날 신랑이 회사에서 떡값을 적게 받아와 건네 준 봉투 속을 쳐다보는 것처럼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댄다. 무슨 놈의 떡값이 이렇게 적어와 똑 같은 표정이었다
“허긴! 봉투가 너무 얇아. 회장님도 주시려면 좀 많이 주시지 너무 가볍더라. 그래도 내 봉투가 아니니 내가 가질 수는 없고 빨리 받아. 나! 팔 아파”
“가볍던 무겁던 그 봉투는 필요 없고 일감 줄 거야? 말 거야?”
“솔직히 말해봐. 내가 또 보고 싶어서 일감 달라고 하는 말이잖아. 일은 하기 싫지? 오빠는 공부하는 걸 싫어하듯이 일도 싫어할 걸”
말투도 한쪽으로 치켜 올려진 입술도 분명히 비꼬고 있었지만 이 모습에 다시 과거로 회귀한 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입가에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소가 번지게 하고는 진심인지 거짓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마음을 드러내 놓는다.
“당연하지. 몰래 죄짓는 것처럼 조마조마해서 좋았다. 허긴 죄지은 것 맞지만 남몰래 숨을 필요 없이 공식적으로 만나서 정말 좋았다. 확실한 출장이란 가면을 아주 요긴하게 방패막이로 잘 썼다. 그렇지? 허허”
연어가 수리 등 짝을 한대 세게 치고는 노려보고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가 야단치듯이 말을 한다.
“어이! 정말 못 말려. 엉큼한 것 알아줘야 해”
“피차일반이야. 임마! 내 자취방 부뚜막 다 닳은 거 알고 있지? 네가 그랬어”
“아이! 정말!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얼른 내려가”
“정말 간다. 잡지마”
“그래! 빨리 가! 참! 이 돈도 가져가. 십 원이라도 부담스러워”
“그 참! 말 많네. 딴 소리 하기 없기 다. 이리 줘”
연어가 건네 준 돈 봉투에서 한 장을 빼네 보여주며 빙긋이 웃는다.
연어가 깜짝 놀라서 다시 봉투를 가로 채려고 한다.
수리가 봉투에 뺀 한 장을 흔들면서 약 올리듯이 웃으며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