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성행위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순간을 한번도 상상하지 않았다면 자신을 철철이 속이는 거짓이었다.
“아니! 도와주지 말라고 난리치고 있을 걸. 지금. 빨리 집에나 오라고”
“그러게요. 분명히 그런 말을 했을 거에요. 남자도 아닌 여자 후배를 왜 돕냐며 난리를 쳤을 거에요. 이런 일을 상상하면서요”
잠시 말을 멈추고 헛웃음을 치고 자신을 성토하듯이 말을 했다.
“오늘 일로 저를 헤픈 여자로 보지 않았으면 해요”
수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영이가 이 말만 하고 잠이 들었는지 돌아 누워 있었다.
아영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수리가 한숨을 깊이 내쉬며 허탈한 듯이 피씩 웃는다. 그 동안 가슴 깊이 잔재했던 이 년이라는 호칭이 이 녀석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말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에 연어와의 사이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 녀석이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 이순간도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사물에 대한 갈망이 바탕이 되었고 지금은 눈 앞에 보이는 외적인 사물에 대한 사욕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기이하게도 시발점이 같았다.
수리의 마음을 가지고 싶어하듯이 남의 물건을 탐낸 것이다.
억울하겠지만 남편에게 공조했기 때문에 공범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때는 마음을 가지려 했고 지금 석유화학제품의 근원인 돈을 가지려 한다.
그 돈의 주인은 아영이가 아니라 어떤 직장이던 직원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어인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 돈인 석유화학제품은 이미 분실된 물건으로 보험처리가 완료돼 연어 회사에 손해 배상을 한 상태다.
그 제품은 임자 없는 수십 억대의 문서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물건에 불과하다.
먼저 가진 자가 임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도 먼저 가질 수는 없다.
만약에 누군가가 섣불리 달려들다가는 예전의 수리와 연어와 아영처럼 어느 누구 하나 서로의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뿔뿔이 헤어지는 것과 같은 결과만 가져온다.
다시 정상적은 법적 절차를 밟으면 모든 일이 정상으로 돌아가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와 있고 이 일로 수갑을 찰 사람이 너무 많이 나온다.
양아영과 김경일의 사욕으로 친구며 후배며 사랑이 공중분해 되듯이 이들의 남은 삶도 공중분해 된다.
아영은 연어 때문에 수리 마음을 가지지 못했고 수리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연어 6촌 오빠 때문에 오해를 해 냉정히 돌아서버렸고 연어는 이유도 모른 채 수리와 멀어져 버렸다.
연어도 아영을 못마땅해하고 경계를 했던 건 사실이었고 그렇게 서로 멀어졌다.
무엇이 이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고 무엇이 이들을 다시 모이게 했을까?
수리가 분명히 알듯이 아영이도 분명히 알고 있다.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영아! 일어나!”
연어처럼 혼자 두고 집에 가지 않았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른다.
그건 아마 오래 전에 연어 옆에는 보호해 주는 6촌이지만 오빠가 있었고 이 친구는 그런 오빠가 없어 생긴 보호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어는 화물의 주인이라고 해도 그의 소유가 아닌 그만두면 아무 관련이 없는 회사 소유므로 아무런 득도 실도 없다. 그러나 이 친구는 다르다. 말 그대로 신랑은 수갑차고 이 친구는 깡통 찬다.
“안가고 왜 있었어?”
오래 전에 깨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밤새도록 수리가 깨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아마 후자가 맞을 것이다. 아직 깔끔한 마무리는 짓지 못했으니 아영은 갈 수가 없었다.
“가장 깔끔한 건 회사를 넘겨”
전혀 놀라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언제까지?”
“그건 내가 결정할 사안은 아냐. 그 대신에 신랑이 나서줘야 해. 작은 회사들을 신랑 회사로 합병부터 해. 그게 살아남을 길이란 건 알고 있지?”
입술을 지긋이 깨문 아영이가 이마를 받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목소리가 약간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눈물을 감추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수리가 잠시 흔들릴 뻔 했다.
“섭섭하지만 고맙네요.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말이죠?”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아마 학창시절에도 이렇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서로 떳떳한 선후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연어도 자신도 발벗고 나서서 아영을 도왔을 것이다. 또 실수를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어. 반출된 제품을 다시 보세장치장으로 되돌리면 바로 탄로가 나. 만약에 보세장치장에 되돌려 보관을 하더라도 보관과 관련된 모든 비용은 신랑뿐만 아니라 도둑질에 동참한 회사가 모두 책임져야 해. 도둑맞은 회사에서 그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뭐 되는지 알지? 어디 버릴 때도 없어. 가장 큰 문제는 너무 큰 회사를 건드린 거지. 그 회사가 그 제품에 관해서는 가장 많이 수입하는 회사잖아. 작은 회사들은 그 회사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어. 일단 올라가서 가만히 있어. 조만 간에 이런 내용이 공문으로 갈 거야. 그때 신랑을 설득시켜. 절대 나서지마. 괜히 신랑한테 오해 받을 빌미간 줄 뿐이잖아. 그렇잖아도 시끄러워질 텐데. 가만히 있어”
아영도 그 말에는 공감을 했다. 이 일이 벌어지고 남편은 계속 밖으로 겉돌고 있었다. 이런 말을 먼저 했다가는 오해만 살 뿐이지 덕이 될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김경일이가 떠올랐다.
“참! 경일이 오빠는 어떻게 할 거에요?”
“야 임마! 네 걱정이나 해. 그 놈에 대해서는 신랑한테 상세히 얘기해줘. 언제 또 배신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이번에 합병할 때도 그 놈은 넣지 마라고 해”
“오빠하고 친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
“너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없던 일로 할까?”
“협박이군. 알았어. 그런데 정말 궁금하게 있는데… ”
수리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짜증스런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을 했다.
“알면 뭐하게. 나는 아무 힘도 돈도 없지만 내 건드리면 백배 천 배로 앙갚음해준다. 오래 전에 자네 신랑 같은 놈 때문에 내가 홀딱 망했어. 그래서 괜한 의협심만 가지고 산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네. 알았어. 더 이상 안 물을 게. 그럼 오빠 말대로면 인수합병부터 하고 다시 회사를 되돌려준다는 말이지?”
수리가 이 말에 듣고 싶은 말이 확실히 아는 라는 걸 느끼게 할 정도 눈살부터 찌푸렸다. 실망스런 얼굴로 아영을 쳐다보고 생각하고 있던 말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