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야! 일어나! ”
이 소리와 함께 푹신한 뭔가가 머리에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깜짝 놀란 연어 눈이 번쩍 떠졌다. 그 푹신한 뭔가는 게슴츠레하게 다시 감기고 연어 눈 앞으로 하얀 천막으로 펼쳐져 내려가고 있었다.
‘어! 뭐지?’
연어가 눈을 세게 한번 감았다가 다시 펼쳤지만 그 천막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 손으로 잡으려고 하는 순간 수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스톱! 잡지마! 어이 참! 괜히 두드렸네”
‘뭐야! 뭘 어디다가 두드렸단 말이야?’
구시렁대는 쪽으로 머리를 살포시 돌려 쳐다 본 눈에는 머리는 바닥에 엉덩이는 천정으로 치켜져 올라 있었고 수리는 바닥에 머리를 쳐 박고 뭔가를 돌돌 말고 있었다.
오른 팔에 머리를 괴고 누워 고개를 돌려 뭐 하는 연어는 쳐다 보고 있었다.
머리인지 심장인지 어딘지는 모르지만 빙긋한 미소를 보내라는 지령이 내려와 연어는 그 지령에 충실히 하고 있었다.
치켜 세워져 있는 엉덩이를 멀뚱히 쳐다 보고 물었다.
“오빠! 그 먼지 묻은 두루마리 휴지로 내 머리를 두들겨 팼어??”
“아니! 책상머리에 침이 워낙 많이 흘러내려 닦으라고 살짝 던졌다. 아주 살짝”
기가 막혔다.
세게 던지던 살짝 던지던 누군가의 머리에 뭘 던진다는 건 상당히 비열한 짓이다.
그것도 잠자고 있는 어린 양과 같은 연약한, 비록 예전 애인이라 하지만 애인에게 절대로 할 짓은 아니었다.
화가 벌컥 났다.
가지고 놀다 이용 가치가 없는 폐기물이 된 기분이었다. 말 투도 시종일관으로 툭, 툭 장난 삼아 던지고 있다. 무시 당하는 기분도 들었다. 지금 혼 줄을 내지 않으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불의의 참변을 당할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오빠! 나 쳐다 봐!”
시키는 대로 잘 따르건 여전했다. 숨을 잠시 고르고 야단을 치려고 할 순간에 또 기회를 상실해버렸다.
“빨리 닦아! 책상 머리도. 너는 비릿한 냄새도 못 맡냐? 그 뭐냐? 볼에 시꺼멓게 떡 칠한 건?”
볼에 뭍은 침이야 비릿한 냄새로 알았지만 시꺼멓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꺼멓기로는 별명에서 보듯이 자타에게 공인 받은 자기가 더 시꺼멓지 내가 그럴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어 머리를 올려 확인을 하려고 하다기 기절초풍을 하고 말았다. 세상에 청소를 얼마나 하지 않았으면 책상머리에 있던 먼지가 침과 섞여 검정 물감으로 변해 있었다.
“어이 더러워”
그 말로 끝이었다. 저놈이 앞에 있어서인지 방금 정사를 치른 것처럼 나른하고 잠이 더 쏟아졌다. 책상 위에 있는 입 속에서 쏟아져 내린 검정 물감들을 쓱쓱 닦고는 다시 책상머리에 얼굴을 가져다 놨다. 비릿한 냄새가 후각을 역겹게 했지만 그 냄새를 생산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눈을 감고 책상머리에 머리를 붙이고는 어리광을 부렸다.
“오빠! 조금 만 더 잘래”
아무런 대답은 들리지 않고 프린트기 에서 종이 나오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졸았는지 잤는지는 모르지만 몇 초 동안은 이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걸 단잠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단잠을 깨우는 놈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놈이란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을 할 것이다. 기어이 깨우고 만다. 그것도 소름 돋게.
“눈 떠세요. 아가씨! 자! 그거 읽어 봐. 대충 보지 말고 상세히 봐야 해. 아주 중요한 거야”
그 말만 하고는 길게 늘어지는 하품 소리가 들려 일어서서 힐끔 쳐다보았다.
벌써 의자 등받이에 전신을 맡기고는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자식이 허긴 네가 더 힘들었지 가만히 누워있었던 내가 더 힘들었겠나?
적당히 하지!
나이도 많은 놈이! ‘피씩’ 웃음이 나왔다.
벌써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다는 증거다.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복상사가 떠올라 ‘하긴 내가 훨씬 젊지’. 큰일날 뻔 했다’.
헛웃음도 나왔다.
나이는 못 속이는구나.
프린트기로 가서 방금 출력된 서류를 들려고 허리를 살짝 구부리는 순간에 중요 부위 위 불퉁한 부위에 약간은 얼얼한 통증이 느꼈다.
무의식으로 내려진 한 손으로 그 부위를 살살 지압을 하면서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500톤 사라진 수량 중에서 0.5%인 350톤만 보험처리가 되고 금액은 12억 2천 5백 만원이었다. 이 금액을 보험 회사에 청구하면 하역 전에 선박에서 부족한 도착 수량인 240톤은 보상받을 수 있는 근거 자료로 필요하다고 상세히 두드려 놓았다. 중간에 분쟁은 짧게는 일년 길게는 삼 년 동안 파는 회사와 선주와 서로 싸울 거라고 출력을 시켜 놓았다. 나머지도 자질구레하게 적어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왠지 똥 씹은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너 같은 애송이와 말하기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또 그 놈 고대리를 떠올리게 하는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짓거리로 여겨졌다.
자존심 상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이 놈에게만 상하면 아무 관계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이해 못하고 본사에 갔다가는 또 망신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억지로라도 깨워야 했다.
“오빠! 일어나! 이게 무슨 말이야? 하나도 이해가 안 되네”
대답이나 설명대신 자기가 보던 두툼한 책 더미를 획 던져 주었다. 보험관련 책들이었다.
“너! 공부 잘 했잖아. 네가 그랬잖아. 내보고 쇠 대가리, 돌 대가리라고. 그 책보고 검토해줘. 전부 오답일 수도 있으니. 나도 내가 쓴 보고서를 믿지 못해. 그 보고서 그대로 올렸다가는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몰라. 특히 숫자 잘 봐! 너 전산과 나왔으니 계산은 잘 하겠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럼 너는? 이라고 물어보려다가 계속 웃기로 마음 다잡고 하나, 하나검토를 했다.
정말도 오답이 많았다.
어떻게 저런 놈이 자격증을 취득했는지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런 놈에게 일을 맡기는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한심했다. 할 수 없이 일어서야 했다.
학창시절에 너무 많은 대리 시험과 답안지 던져 준 게 이렇게 독이 될 줄은 몰랐다.
“야! 저기 노트북 있잖아. 여긴 오지마! 내 자리야”
어이가 없었다.
“USB에 담아줘”
“넌 없어? 기밀이 많아서”
“저리 비켜”
다소곳이 비켜 줄 놈이 아닌데 때마침 무슨 비밀전화인지 숨겨둔 또 다른 애인? (내가 애인?)이 있는지 휴대폰을 들고 아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역시였다. 금액에서 몇 개의 오답이 나왔다.
연어가 자료들을 USB에 저장을 다 하고 한참 후에 수리가 들어왔다.
“다 마쳤으면 올라 가라. 그 데이터보고 보험처리 하면 돼. 지금까지 보험료 많이 냈는데 이제 거둬들여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