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머리가 왜 이렇게 어지러워? 몸도 나른하고”
구명조끼에 끈을 단단히 묶여져 갈 무렵 바다너머로 고래 박물관이 보였다.
“오빠! 저기가 고래 박물관이야? 야! 신기하다. 오빠는 고래 본 적 있어?”
계속 조잘거리는 윤부장의 말을 아예 듣지도 않고 눈만 지긋이 감고 있다가 재잘대는 소리가 시끄러운지 역정을 냈다.
“눈감고 가만히 있어. 휴대폰도 쳐다보지 말고”
“왜?”
또 눈만 지긋이 감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무슨 도 닦는 승려가 돼 있어 윤부장도 아무 말없이 휴대폰을 들고 지나치는 배도 육지도 바다도 하늘도 보이는 건 모조리 사진을 찍고 또 찍은 사진을 쳐다 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속이 미식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임신 못하게 벌써 막았는데…. 수리를 쳐다보았다.
혹시 너무 격렬해서 터졌나?
왜 이러지?
그럴수록 점점 더 미식거리다가 헛구역질도 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임신이었다.
“오빠! 오빠! 눈 떠봐. 오빠!”
그때 갑자기 꽝 소리가 들르며 수리를 두드리던 손이 수리 다리를 지나치며 다리도 따라 지나치고 있었다.
“아이! 자식이! 눈감고 가만히 있으라니까”
지금 이 자세?
수리가 여자였다면 윤부장은 지금 수리 젖꼭지에 입을 대로 젖을 빠는 자세였다. 검푸른 거친 파도가 작은 배의 선수를 꽝하고 들이박는 바람에 윤부장은 탄성력을 가진 고무줄이 돼 있었다.
“야! 무거워. 네 자리 찾아가. 선장님! 위험해서 안되겠습니다. 돌아가죠. 저요!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럴까. 파도도 세고 너울도 커서 너무 위험해. 용왕님이 노하신 같아. 허허. 돌아가는 게 낫겠지”
“예! 용왕님께서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다 늙은 할머니를 데려 왔으니 당연히 화가 나겠죠. 용왕님에게 모독하지 말고 돌아가죠”
연어는 지금 배 멀미에 거의 초 죽음이 돼 있어 이들이 놀리는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괴로우니 돌아가자고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에 모두 토할 것만 같았다.
수리가 휴대폰에 귀를 대고 또 열심히 떠들고 있다.
“예! 회장님! 날씨가 너무 나빠서 배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예! 예! 윤부장은 지금 배 멀미를 너무 심하게 해서 눕혀놨어요. 예! 예!”
전화를 끊은 수리가 연어를 쳐다보고는 콧바람을 내며 웃는다. 연어는 실제로 한여름 아스팔트에 꼬깃꼬깃 널브러진 지렁이처럼 꼬꾸라져 있었다.
윤부장의 이름인 연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연어는 물을 무서워했다.
이번에 연어는 처음으로 초 죽음이 뭔지 확실히 알았다.
그런데 초 죽음이라는 게 하나는 이로운 점도 있었다.
사실 이 배에 오르기 전에 부두에 서서 파도에 꼴랑대는 이 배에 오를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어느 순간에 폴짝 뛸까를 결정하는 건 어려움이 아니고 두려움이었다.
자칫 발 디딤을 잘못했다가는 바로 배와 부두 사이인 짙은 갈색 바다로 쏙 빠질 것만 같았다.
초 죽음이 되니 폴짝 뛸 일은 없었다. 그냥 업히는 걸로 모든 두려움을 피했다.
이번 출장을 계기로 연어는 바다에 대한 환상이 싹 사그라지고 말았다.
붉은 빛으로 바다를 색칠한 해 뜨는 동해 바다.
방금 체험했다.
서산에 걸쳐진 붉은 태양이 여기 동해도 떠있었다.
붉은 바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비틀거리는 등에 업혀 이 사람이 옛날에 답안지를 훔쳐보듯이 살짝 고개를 돌려 바다를 쳐다 봤다. 도화지가 된 파도는 붉게 물들여져 정말 환상적이었지만 도화지 속에 자신의 모습을 모델로 넣자고 누군가가 제안하면 단호히 거절하기로 했다.
쳐다볼 땐 아름다웠지만 그 속에 들어가는 순간 두려움밖에 없었다.
거의 업히다시피 질질 끌려 세관을 통과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쫙 풀려버렸다. 다시 업혀야 했다. 차로 바로 가지 않고 2층에 있는 카페로 울러 매고 가서는 시원한 얼음 물로 가지고 왔다.
“고생했다. 못 올라갈 줄 알았지만 그래도 갔다는 시늉은 내야지. 만약에 네가 없었으면 아예 가지 않았을 거다. 돈 주고 시키는 사람이 턱 하니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안 가겠어. 허!”
‘허!’라는 헛웃음에 윤부장도 어이가 없어 멀뚱히 쳐다 만 봤다.
‘그럼! 내 때문이란 말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 말고는 아무 짓도 하기 싫었다.
냉수도 입에 넣어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온 몸에서 기가 다 빠져 나간 것 같았다. 마주보는 것도 귀찮아 눈을 감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을 뜰 힘도 없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몸에서 조금씩 엔도르핀이 도는 것 같아 눈을 떴다. 그때까지 이 사람은 부스럭거리며 계속 무슨 서류를 읽고 있었다.
“뭐해?”
“응! 내 본업 중. 이제 괜찮아졌어? 일어날까?”
성질머리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일어섰고 따라 나섰다.
따라 나서면서 살만했는지 차 안에서 많은 회상을 했다.
부두서 20분 거리도 되지 않는 이사람 사무실까지 도착하는 데 오늘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머리 속에서 꿈틀대던 과거들은 지난 세월의 수많은 주마등처럼 숱하게 지나쳐 가며 많은 시간을 소중히 차지하고 있었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커피부터 가져 오라하고는 자기 책상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간혹 책상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책꽂이에서 두터운 책을 꺼내 열심히 페이지를 넘겼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 갔다 가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카페에서 긁적이던 서류도 옆에 펴 놓았다. 궁금해서 보려고 해도 맞은 편 책상에 앉은 탓에 커다란 모니터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할 일이라고는 방금 전에 한 커피 타다 준 비서 역할이 전부였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는 키보드를 두드렸다가 책을 펼쳐 보다가 뒷덜미를 강하게 눌렸다가 한 숨도 내쉬었다가 별 짓을 다하고 있었다. 모니터 너머로 그런 모습을 보고는 가끔 비웃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그랬으면 나도 저도 답안지 던져주고 받는 불편은 없을 것 아니냐?
등신! 화도 났다.
수업 시간에 가끔 나타나지 않아 여자인 자신이 대리 출석도 해주었다. 그때 무슨 짓을 했는지를 떠올리면 당장 나가고 싶었다. 그가 가 아닌 저놈이 교실에 없을 땐 여지없이 그 양아치인지 양아영인지 그년도 없었다. 무슨 조강지처라고 바람난 년 놈들을 대신해 대리 출석에 대리 시험까지 쳐 줬는지 한심스럽기만 했다.
회사에 가서 이런 대형사고를 어떻게 보고할 지에 대한 걱정은 까맣게 사라졌고 오로지 저놈과 그년만 경멸하다가 춘곤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최근 며칠 동안 저 놈에게 정력? 을 쏟아 부은 짓도 한몫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