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춘희, 겨울에 피는 꽃
작가 : 최선영
작품등록일 : 2018.11.17

1950년대 '여성국극'이라는 가장 핫한 문화 아이콘이 있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 스타였던 한 여성 남장배우가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던 한국근대사처럼 그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60여년 만에 도착한 편지를 따라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여성국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19. 바람에 나부끼는 꽃(2)
작성일 : 18-12-19 19:52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461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열중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유진은 할머니의 오랜 파트너였던 민정란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민정란은 처음에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말을 많이 아끼고 있었고, 특히 정인철에 대해 질문했을 때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음,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쭤 볼게요. 이번에 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정인철과 같은 사람인가요?”

 

 “나는 몰라요. 그냥 춘희 언니가 만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 이름이 정인철이었다는 것밖에는…….”

 

 “한번은 보셨을 거잖아요? 할머니가 만났다는 분이요. 이것 좀 봐 주시겠어요?”

 

 유진이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정인철의 과거 모습을 정란에게 보여주며 다시 물었다.

 

 “여기, 이 사람이요.”

 

 태블릿의 사진을 본 정란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그를 알아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잘 모르겠어. 그게 언제 적인데, 아직 기억을 하겠어? 잠깐 봐서 알지도 못해.”

 

 “다시 한 번만 봐주세요. 혹시 다른 단서가 될 만한 기억 같은 건 없으세요?”

 

 “없어. 나는 국극에 대한 인터뷰라고 하니까 피디양반을 만나서 얘기한 거지, 이렇게 춘희 언니의 개인사에 대해 얘기하는 거라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민정란은 거리를 두려는 듯 갑자기 존대를 하기 시작했다. 유진은 지금 당장 매달릴 수 있는 곳이 민정란의 기억뿐이라 그녀를 더 이상 곤란하게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일이다 보니,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할머니를 알고 계신 분들이 많지 않아서요. 제가 너무 제 마음만 앞세웠습니다. 아버지께서 할머니의 일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아버지라면……?”

 

 “음… 아버지는 전쟁 통에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가 지금까지 당신을 유복자로 키운 걸로 알고 계셨어요.”

 

 전쟁 통에 사별했다는 말과 유복자라는 말에 정란의 얼굴이 충격을 받은 듯 굳어졌다. 이를 알아차린 유진은 정란이 아버지에 대한 관심을 보이자,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술술 풀어냈다. 물론 안타까운 사연에 맞게 표정도 그럴싸하게 지어보였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국극 배우라는 것도 모르셨어요. 워낙 할머니가 말씀도 없으셨기도 했지만 목에 상처가 있으셔서 배우라고는 생각도 못하셨던 것 같아요.”

 

 “상처? 어쩌다가?”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할머니는 뜨거운 여름에도 목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가제손수건을 두르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더 할머니의 얘기가 궁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란은 유진의 말이 길어질수록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유진은 그런 정란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동요하는지 궁금했다.

 

 “혹시라도 무언가 더 기억나는 게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유진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명함을 정란의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정란은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내가 할 말은 다했어요. 그러니 이제 찾아오지 말아요.”

 

 유진은 찾아오지 말라는 정란의 말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인사를 하고는 집 밖을 나왔다. 정란은 유진이 남기고 간 명함을 들어 쳐다봤다.

 

 “임…유진…….”

 

 유진의 이름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부른 정란의 얼굴이 회한으로 가득 차 보였다.

 

 *

 

 춘희는 정란이 동천을 위해 인터뷰 진행을 한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저 극장에서의 이 만남이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다.

 

 어차피 제가 먼저 인철에게 말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지금은 뭐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정란아, 오늘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언니!”

 

 춘희는 자신의 팔에 매달리듯 팔짱을 껴오는 정란의 모습에 동요하는 인철이 신경쓰여 얼른 그녀의 팔을 빼내며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여기 기자님하고는 우선 내가 먼저 얘기하는 게 좋겠어. 그러니 넌 오늘 그만 들어가.”

 

 정란은 입을 삐죽이며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 단호한 춘희의 모습에 이내 극장을 나섰다. 정란이 사라지고 남은 춘희와 인철 사이에는 적막만 가득했다. 그리고 그 적막을 깬 건 춘희였다.

 

 “저한테 궁금하고 하실 말씀 많은 거 아는데, 제가 먼저 얘기할게요. 제 얘기 먼저 들어주세요.”

 

 인철은 딱히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춘희는 긍정의 대답이라 생각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자리를 옮겨서 얘기해요.”

 

 인철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혼란스러운 눈으로 제 앞의 낯선 여인의 모습을 한 춘희를 쳐다보기만 했다.

 

 인철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있던 춘희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자 서너 발자국 뒤로 인철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춘희는 걸음을 옮기면서 머릿속에서 하나, 둘 정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이런 자리가 없었다면 어쩌면 자신은 이런 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었을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춘희는 그렇게 체념과 함께 묵묵히 종로 한복판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인철이 저를 따라오는지도 확인했다.

 

 춘희가 인철을 데려온 곳은 지금 자신이 지내고 있는 돈의동 집이었다. 대문 앞에 선 춘희는 인철을 한번 쳐다보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루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 춘희는 방에서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마루에서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부터 고민이 되었다.

 

 반면에 춘희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 선 인철은 정갈하게 꾸며진 작은 마당과 집을 둘러봤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춘희가 제가 아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그녀가 멀게만 느껴졌다.

 

 어느새 춘희는 신발을 벗고 마루위로 오른 후였다. 인철과 눈이 마주치자 춘희가 입을 열었다.

 

 “어제 그러셨죠? 저희 집도 모르겠다고. 여기가 제 집이에요.”

 

 춘희의 말에 인철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짐작하고 있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깊은 곳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다 말씀 드릴게요.”

 

 인철은 춘희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방안은 뜨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잠시만 계세요.”

 

 춘희는 따뜻한 차라도 내와야 할 것 같아, 인철을 두고 방을 나갔다. 그 사이 인철은 방을 둘러보았다. 방에서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그제야 이곳이 춘희의 방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춘희는 부엌에서 따뜻한 꿀 차를 준비해서 방안으로 향했다. 방으로 향하는 춘희의 마음은 복잡했다.

 

 다시 찾은 사랑이 깨어질까봐 두려워 온 몸이 경직되었다. 춘희의 눈이 금새 뜨거워 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노크한 후 들어간 춘희는 맨 바닥에 앉아 있는 인철의 뒷모습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인철의 앞으로 다가가 인철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인철은 차를 마시지도 않았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춘희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춘희는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자신이 어떻게 고향을 떠나왔는지부터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상황만 얘기해야 하는 것인지, 지금까지도 갈피를 못 잡고 갈등하고 있었다.

 

 “음…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내가 <동천>의 춘우에요.”

 

 역시나 인철은 짐작하고 있었는지 잠깐 눈썹만 움직일 뿐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춘희는 그와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그를 쳐다보면 눈물이 나올것만 같아서 얼른 고개를 내렸다.

 

 “인철씨가 일본으로 가고…….”

 

 그때 인철이 춘희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왜 말 안했어? 말 할 기회가 없었다고는 하지 마. 우리가 재회한 후로 시간은 충분히 많았으니까.”

 

 인철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잔뜩 묻어있었다. 왜 원망이 묻어나는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춘희는 저를 몰아붙이는 인철이 서운해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얘기해요? 당신은 국극을 안 좋게만 보는데… 당신의 그 악의적인 기사들을 내가 봤는데…”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래도 말을 했어야지. 언제까지 말 안하고 있으려 했는데?”

 

 “처음부터, 처음부터 말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공연하는 도중에 당신을 발견하고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르고 당신을 쫓았던 거고요.”

 

 “그런데?”

 

 춘희는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도 차분하게 말하는 인철이 야속했다.

 

 “그런데 당신이 우리 극단사람들에게 맞는 모습을 봤는데 어떻게 내가 당신한테 말해요? 당신이 그렇게 경멸하는 <동천>의 그 춘우라고 어떻게 말해요?”

 

 인철은 처음 춘희와 재회하던 날이 떠올랐다. 춘희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조금이라도 당신 옆에 있고 싶었어요. 누구보다도 노래하는 나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숨기는 나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가장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당신이었는데, 그 사람이 나를 경멸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했나요?”

 

 춘희는 인철에게 물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게 맞았느냐고. 그리고 묻고 싶었다. 당신은 내가 숨겨 온 진실을 알고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냐고. 당신이 나를 내칠까봐 두려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나는 당신이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게 무서워요.”

 

 “내가 지금 널 어떻게 보는데?”

 

 “나를 경멸하잖아. 나의 진심 따위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그러고 쳐다보잖아.”

 

 “내가 왜 널 경멸한다고 생각하지?”

 

 “그건… 내…내가 남장배우니까…”

 

 춘희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렸다.

 

 “임춘희, 날 봐. 하나만 물어볼게.”

 

 “……!”

 

 “지금까지 너한테 나는 어떤 사람이지? 도대체 나는 너에게 뭐였어?”

 

 “…….”

 

 “잘 생각하고 대답해. 그 대답에 따라 나도 다음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화가 난 인철의 목소리에 춘희의 눈물이 저절로 멈췄다. 춘희는 저를 꼿꼿이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너무도 차가워 몸이 떨려왔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9 19. 바람에 나부끼는 꽃(2) 2018 / 12 / 19 233 0 4611   
18 18. 바람에 나부끼는 꽃(1) 2018 / 12 / 17 253 0 4409   
17 17. 동백아가씨(5) 2018 / 12 / 17 239 0 5252   
16 16. 동백아가씨(4) 2018 / 12 / 12 238 0 4419   
15 15. 동백아가씨(3) 2018 / 12 / 12 237 0 3968   
14 14. 동백아가씨(2) 2018 / 12 / 11 234 0 4008   
13 13. 동백아가씨(1) 2018 / 12 / 9 243 0 4030   
12 12. 춘우(春雨)(5) 2018 / 12 / 9 259 0 4113   
11 11. 춘우(春雨)(4) 2018 / 12 / 8 231 0 4165   
10 10. 춘우(春雨)(3) 2018 / 12 / 7 245 0 4443   
9 09. 춘우(春雨)(2) 2018 / 12 / 6 222 0 4716   
8 08. 춘우(春雨)(1) 2018 / 12 / 4 250 0 4331   
7 07. 춘희(4) 2018 / 12 / 4 260 0 4936   
6 06. 춘희(3) 2018 / 12 / 1 244 0 4588   
5 05. 춘희(2) 2018 / 11 / 30 225 0 4086   
4 04. 춘희(1) 2018 / 11 / 28 238 0 4697   
3 03.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3) 2018 / 11 / 28 253 0 4794   
2 02.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2) 2018 / 11 / 27 249 0 4075   
1 01. 피처럼 붉디붉은 동백꽃(1) (1) 2018 / 11 / 26 426 2 391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그녀에게
최선영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