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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Pay first.
작가 : 바울
작품등록일 : 2018.12.1

인기 없는 작가와 찌질한 팬의 아슬아슬한 관계 유지.

 
#12
작성일 : 18-12-17 23:46     조회 : 249     추천 : 1     분량 :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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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옛날 일 (5)

 

  "네. 네, 그럼."

 

  전화는 끊겼다. 그 긴 시간 내내 죄송하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었다.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그녀의 작품이 결말도 없이 끝나는 순간이다. 주인공은 이제 막 행복해지려고 했는데. 결국 고통만 죽어라고 받고는 어떤 보답도 받지 못했다. 지금의 고아 씨처럼.

 

  회사가 망했다. 연재를 시작한 지 고작 3개월 만의 일이다. 이 작은 사이트가 급하게 웹툰을 들여왔던 건 유입인구를 늘리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다. 편집자는 계약 당시 회사 운영이 어렵다는 말은 전혀 꺼내지 않았었다. 되려 회사의 성장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만 줄곧 늘어놓았었다. 하긴 어느 멍청이가 망해가는게 뻔한 사이트에 연재하고 싶을까. 고아 씨처럼 속는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계약서 어디에도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처리해준다는 말이 없다. 처음 계약서를 받을 땐 그런 어처구니 없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타이밍이 너무 잘 맞길래 하늘이 내려준 일인 줄 알았더니, 완전히 썩은 동아줄이었다.

 

  떠오르는 생각도 말도 없어 끝없이 담배만 태운다. 쉴새 없이 내뿜는 연기가 작은 단칸방 전체에 가득 찬다.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시야가 뿌옇다. 눈은 왜 이리 따가운지 미친 듯이 비벼대도 가라앉질 않는다. 눈동자가 연기 속에서 시뻘겋게 타들어 가고 있다.

 

  마지막 한 개비마저 다 태우고 나면 새삼스런 외로움이 돌아온다. 어물쩍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 모든 틈을 막는다. 창문을 닫고 이불을 덮었는데도 찬 바람이 드는 것 같아 태아처럼 몸을 움츠린다. 다 끝났다. 학교도 인간관계도 미래도 없다. 남은 건 자취방에 남은 고아 씨와 낡은 태블릿뿐이다. 지금 고아 씨가 눈물을 흘린대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애인이 있었으면. 부모가 있었으면. 단 한 명이라도 괜찮으니 팬이 있었으면.

 

 

  - 고아 씨 (18)

 

  "조심히 들어가세요."

 

  고개 한번 까딱이곤 인사는 끝이다. 승아는 못내 아쉽다는 듯 자꾸만 돌아본다. 그 미련이 인파 속에 사라질 때까지, 고아 씨는 그저 가만히 서서 지켜본다.

 

  내 뱉는 숨에 하얀 김이 짙게 낀다. 아직 네 시도 채 되지 않았다. 하루 일을 끝내기엔 이르지만 시작하기도 모호한 시간. 만남이 끝날 때쯤엔 스트레스가 가득 찰 줄 알았는데, 그리 나쁘지 않다. 정말로 데이트라도 끝낸 것 기분이다.

 

  그림의 유포고 뭐고, 그런 건 아무 걱정할 필요 없었다. 앞으로도 이전과 똑같이 대하면 그만이었다. 작가와 팬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다 보면,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언젠가는 서로의 연락이 뜸해지고 관심이 끊길 것이다. 그리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힐 때쯤엔, 사실상 없던 일이 되겠지. 자신은 아무 문제 없이 지금의 생활을 이어나갈 것이고, 승아는 승아대로 다른 여자에 빠져 떠나갈 것이다.

 

  인생이 무너져버릴 것 같던 그 커다란 실수가 하루하루 떨어지는 시간에 꾸덕하게 말라 희미해진다. 더 이상의 위기의식은 없다. 어느 정도의 선만 유지하면 필요 이상으로 잘 대해 줄 필요도 없다. 모든 게 잘 해결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 한켠이 찝찝한 거지.

 

  적어도 고아 씨에겐, 오늘 만남으로 승아와 고아 씨 사이에 이성적인 관계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더는 그 꼬맹이를 수많은 팬 중 하나라고 부를 수는 없게 되었다. 이걸 대체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 년 동안 활동하며 의도적으로 팬을 만난 적은 딱 두 번이다. 4년 전쯤의 팬 미팅과 오늘. 그 두 차례의 만남에 모두 승아가 있다. 4년이나 차가운 반응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좋아 죽겠다는 저 태도를 의식해본 적은 없다. 오늘 승아가 고아 씨를 그리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그랬을 것이다. 적어도 팬이라면, 고아 씨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작풍이 비슷해질 정도로 따라 그린 사람은 처음 본다. 승아가 보여준 게 아무리 잘 그린 그림이라 해도, 그게 전부였다면 지갑에 넣을 생각까진 못 했을 것이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분다. 길가에 그저 멍하니 서 있기엔 부적절한 날씨와 복장이다. 이제 어디로 간담. 원래 어디서든 대충 시간을 보내다 클럽이라도 갈 셈이었지만 영 끌리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폭발할 만큼 쌓였으면 모를까 원래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다. 지금은 조용한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카페로 다시 돌아가야 할까.

 

  "고아 양?"

 

  그때 느닷없이, 누군가 고아 씨의 이름을 불렀다. 소스라치게 놀란 고아 씨는 저도 모르게 몇 발자국 뛰고는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 뒤로 겨눈다. 정작 이름을 부른 남자는 당사자보다 더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다.

 

  "고아 양! 고아 양! 나예요 나. 나, 박 사장이에요."

 

  키는 작고 인상은 푸근하다. 뿔테 안경에 풍성하게 내려오는 턱수염이 매력적인 그 남자는 얼마나 놀랐는지 눈이 빠질 듯하다. 고아 씨는 경계를 풀지 않는다. 정말 낯이 익긴 한데, 누구였더라. 눈을 가늘게 뜨고 거리를 유지하던 고아 씨는, 곧 나지막한 '아' 하는 깨달음과 함께 스프레이를 내린다.

 

  "박 사장님?"

 

  박 사장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곤 곧바로 사과를 덧붙인다.

 

  "갑작스럽게 미안해요 고아 양. 내가 그렇게 놀라게 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 놀라게 하셨네요. 그래도 죄송해요. 수염 때문에 못 알아뵀네요."

 

  박 사장은 이해한다는 듯이 털털하게 웃는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여전히 거침없는 말투에 도리어 반가워하는 눈치다. 고아 씨도 경계심을 풀고 다시 몇 걸음 다가간다.

 

  "잘 지냈어요? 고아 양. 요즘은 바쁜가 봐요. 우리 규리 양이 고아 양 모셔오라고 난리에요."

 

  묵직한 중저음과 부드러운 말투에 고아 씨는 익숙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바(bar)에 간 지도 꽤 오래됐다. 최근엔 잘 들르지 못했지만, 몇 개월 전만 해도 이따금 그곳에서 작업을 하거나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곳에서 안면을 튼 사람들도 몇 있다.

 

  "네 요즘은 좀. 규리는 남자친구 생겼나요?"

 

  "아뇨, 고아 양이랑 결혼할 거라는데요?"

 

  말을 마치자마자 박 사장은 크게 폭소한다.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웃음소리. 바에 가면 하루에 서너 번은 꼭 듣는 박장대소다. 그리운 기억이 고아 씨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보냈다. 그래도 겉으론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게 전부였지만. 박 사장의 커다란 손에서 몇 개나 되는 비닐봉지가 흔들린다.

 

  "장 보셨네요."

 

  "이제 슬슬 오픈해야죠. 우리 작가님들 마감하다 도망칠 때 다 됐는데."

 

  또 다시 예의 큰 웃음. 이번엔 고아 씨도 큽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게 한다.

 

  어디든 들어갈 곳을 찾고 있던 차에 잘 된 일이다. 바에 같이 가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자 박 사장은 아이처럼 좋아한다. 드디어 규리 양에게 어깨 펴고 말할 면목이 생겼다면서.

 

  왜 진작에 이곳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10여 분을 걸어 도착한 이곳은 구석진 골목길에 숨어 있는 작은 가게다. 소위 아는 사람들끼리 입소문을 타고 오는 곳으로, 특히 일하는 시간이 일정치 않은 프리랜서들이 많이 찾곤 했다. 바텐더로 일하는 직원의 유별난 붙임성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남몰래 가슴앓이한다는 말도 얼핏 들었다.

 

  박 사장이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아 씨도 뒤따른다. 달큰한 복숭아 향이 나는 것 같다.

 

 "규리 양. 나 왔어요."

 

  네 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에서 대학생 쯤 되어보이는 여자 하나가 걸어 나온다. 한 갈래로 질끈 묶은 머리에 촌스러운 트레이닝 차림이었다. 졸린 표정으로 크게 하품한다. 왜 이리 늦게 오시냐며 툴툴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장님, 메로x는 당연히 사오셨.. 겠.."

 

  자신의 이마를 딱 치며 깜빡했다며 말하는 사장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뒤따라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봐 버렸다. 메로x 같은 건 순식간에 잊어버리곤 입을 쩍 벌린 채 얼어붙었다. 고아 씨는 괜한 어색함에 눈을 피했다. 고아 씨 성격으론 거진 몇 개월을 못 본 사이니 무턱대고 반갑기가 힘들었다.

 

  "사장님, 아니, 언니, 왜, 말을.."

 

  박 사장은 규리의 옹알이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고아 씨와 같이 오면서 왜 말을 안 했느냐는 뜻 같다. 고아 씨와 얘기하며 오느라 깜빡 잊은 게 사실이지만, 서프라이즈라며 합리화하기로 한다.

 

  "짜잔!"

 

  뒤늦게 소개하듯 고아 씨를 크게 가리켜봤지만, 규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이 말하고도 대답을 못 들을 만큼 이미 충분히 놀란 상태였다. 충격이 끝난 뒤엔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한다. 곧 눈물까지 그렁거린다.

 

  "아 어떡해, 언니 나 진짜.. 너무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 언니 아 정말로 진짜.."

 

  말이 너무 빨라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것 같다. 원래 정이 많아 보이긴 했지만 저렇게나 자신을 반겨줄 줄은 예상 못 했다. 고아 씨도 일말의 어색함을 털어내 보려 한다.

 

  "응. 오랜만이네."

 

  대답 한 마디에 규리는 감동한 듯 입을 틀어막는다. 여전히 발을 구르고 있다. 그렇게까지 과장할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적어도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진 않다. 어느샌가 슬금슬금 다가와선 고아의 양손을 마주잡는다.

 

  "언니 오늘 진짜 잘 왔어요. 진짜 너무 예뻐요 언니. 초커도 예쁘고 그냥 다.. 예뻐요. 어떡해 나 언니 진짜 보고 싶었어요."

 

  주절주절 떠들더니 아예 고아 씨에게 안기려 든다. 아까도 비슷한 걸 보고 와서 그런지 이미지가 겹친다. 다만 승아는 저렇게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 저 노골적인 애정 표현에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고아 씨 말고는 없겠지만, 그마저도 위태위태하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혼란스러워 보인다. 박 사장은 두 딸이라도 보는 듯 흐뭇하기 그지없다.

 

  "규리 양, 고아 양한테 마실 것 좀 줘요. 규리 양 것도 같이."

 

  규리는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포옹을 풀고 주방으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얼마나 소란스럽게 준비하는지 깨지는 소리 말곤 다 들리는 것 같다. 정작 가게 주인은 느긋하게 봉투를 정리하고 있다.

 

  "아직 영업 전이니까 뭐 좀 만들어줄게요. 고아 양 달달한 거 좋아하죠?"

 

  연속으로 몰아치는 호의에 고아 씨는 몸 둘 바를 모른다. 돈도 내지 않고 그럴 순 없다며 대답한다. 얼핏 냉정한말투 였지만 박 사장은 개의치 않는다. 고아 씨가 어떤 의도로 저럴 말을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주문은 영업 시작하면 그때 하고, 우리 규리 양 자주 보러 오라고 주는 뇌물이니까 신고만 하지말아요."

 

  너털웃음. 고아 씨 앞에서 저렇게나 여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나 남자들은 더 그렇다. 고아 씨가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딱딱하고 까칠하게 굴어도 저 태도는 변하는 법이 없었다. 때문에 고아 씨도 이곳에서만큼은 마음을 열고 지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못 당해냈다.

 

  결국 고아 씨도 피식하고는 자주 앉던 자리, 바의 끝자락으로 향한다. 박 사장도 봉투에서 이것저것 챙겨 옆자리에 앉았다. 주방에선 여전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수시로 유리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들고 있길래. 고아 씨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은근히 기대 중이다.

 

 .

 
작가의 말
 

 주말 잘 보내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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