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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짜여진 판을 뒤엎으러 왔습니다.
작가 : 단추씌
작품등록일 : 2018.12.2
짜여진 판을 뒤엎으러 왔습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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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하나뿐인 어머니를 여읜 화연.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어 답답해 하는 명복. 파란만장한 조선 궁궐 안에서 둘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7화. 너라는 존재 자체가 그저 한 없이 고맙다.
작성일 : 18-12-17 23:02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7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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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여기는 무언가 으슥한 곳 같습니다"

 

 궁에 돌아가려면 제일 빠른 길이니 화연은 군말 않고 나섰지만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여기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고종의 목숨은커녕 자신의 목숨조차 제대로 부지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이곳이 제일 빠른 길이니 어쩔 수 없구나. 그냥 내 뒤에 잘 붙어 있거라"

 

 고종은 뒤따라오는 화연의 손을 꼭 잡고 어두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행여나 험한 골목에서 인기척이라도 내면 위험해질세라 등불도 들지 않은 채 시력에만 의존해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갔다.

 

 그렇게 둘이 손을 놓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가던 중...

 

 "아앗...!"

 

 화연이 구멍에 발을 잘못 디뎠는지 순식간에 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때문에 고종은 순식간에 화연의 손을 놓쳐버렸다.

 

 "...!"

 

 "...하! 폐하!"

 

 "너 어디에 있는게냐?"

 

 "여기 구멍에 있습니다! 저 좀 꺼내주세요!"

 

 고종의 뒤에서 화연의 소리가 났다. 결국 고종은 서책들을 놔둔 채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

 .

 .

 

 "화연...!"

 

 구멍 안은 마치 소굴처럼 지나치게 밝았다. 그리고 그 밝은 와중에 화연이 입이 막힌 채로 묶여 있었다. 화연의 주변에는 도적떼들로 득실거렸다.

 

 "네놈들은 누구냐?"

 

 "폐하라? 이 계집이 약간 정신이 돈 건지...아니면 정말로 네가 폐하인지 알 길이 없구나"

 

 고종은 화연을 살짝 쳐다봤다. 묶여 있기에 도움은 커녕 목숨조차 부지하기 힘들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

 

 저런 시정잡배들과 싸움을 하고 싶지않았지만,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벌어놔야 했다. 시간을 벌 수 있을 만큼 벌어야 화연이 탈출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남의 소굴을 침범해놓고 이리 물으면 나는 뭐라 해야 하느냐?"

 

 "일부러 그랬겠느냐"

 

 "등불 하나만 들고 다녀도 이런 실수는 없었을 것이다"

 

 "등불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

 

 "그깟놈의 사정, 내 알바 아니다"

 

 "후...계속해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꼴을 보아하니 그냥 싸움이나 한 판 하는 편이 나을 거 같구나"

 

 "몸이 근질거렸는데 마침 잘됐구나"

 

 패거리들은 순식간에 고종의 주위를 에워쌌다.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판국에서 고종은 오로지 화연의 탈출 여부만 걱정 되었다.

 

 '폐, 폐하...!'

 

 이제는 입도 막혀서 눈으로밖에 부탁하지 못하는 저 애처로운 모양새가 참으로 답답해 보였다.

 

 '그만 하십시오...!'

 

 '됐고, 밧줄이나 최대한 풀어보아라. 시선은 내가 끌 테니 저놈들 몰래 풀어보아라'

 

 '폐하는요....'

 

 '궁중 최고의 무인한테 무술조차 안 배웠을까?'

 

 고종은 그리 눈짓하고는 시정잡배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쓱 훑어보았다. 덩치며 눈빛에 살기가 넘쳐흐르는 그들이었지만, 고종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조소를 띄었다.

 

 '싸움에만 굶주린 머저리들 같으니...그저 머릿수만 많으면 유리하다 여기는가 보지'

 

 "저놈 눈빛하고는...!"

 

 "밟아 버립시다 형님!"

 

 순식간에 시정잡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고종의 눈빛에 움츠렸던 자들조차 머릿수에 기세등등해져서 달려들었다.

 

 "커헉...!"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고종의 뼈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라 그들이 다치는 소리였다. 평소에 목검 하나는 가슴에 품고 다니던 고종이 목검을 꺼내 그들의 급소를 정확하게 찌른 것이다.

 

 급소를 어찌나 정확히 가격했는지, 다시 일어나 덤비는 즉, 간땡이가 팅팅 불어터진 자는 없었다. 정신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나머지는 바닥에 쓰러져 끙끙 앓았다.

 

 쓰러진 자들을 뒤로 하고, 고종은 화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밧줄을 푼 화연은 고종의 얼굴을 매만졌다.

 

 "...무슨 짓이냐"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잘 다치지 않은 자는 상처 하나에 쉽게 회복하지 못합니다.

 

 근데 하물며 이 나라의 국본이신 폐하는 어찌 되는 겁니까?

 

 귀하디 귀하신 옥체라서 무릎 깨지는 일 또한 흔하지 않으셨을 텐데...

 

 상처 입으셨으면 그 아픔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진정으로 걱정하는 화연의 눈빛에 고종은 얼굴을 화연 쪽으로 바싹 들이밀었다. 거리가 가까워이자 화연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내뺐다.

 

 "무, 무슨 짓입니까?"

 

 "네 눈에는 이게 다친 얼굴로 보이는가 보다?"

 

 고종의 말처럼 그의 얼굴에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마치 싸움을 언제 했냐는 듯이 시치미를 떼는 듯한 얼굴이었다.

 

 "몸은...괜찮으십니까?"

 

 "다행히도 아픈 데는...윽!"

 

 순식간에 고종의 몸이 중심을 잃으면서 옆으로 기울어졌다. 깜짝 놀란 화연이 그를 부축해 바닥과 충돌하는 일은 겨우겨우 막았으나, 고종의 옆구리는 핏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폐, 폐하!"

 

 "소란 떨지 마라....일단 여기서 나가서 가까운 여관...윽"

 

 "아, 알겠습니다"

 

 화연은 구멍 밖으로 재빨리 올라가 고종을 끌어올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쓰러진 자들밖에 없는 곳에 누군가 저벅저벅 들어왔다.

 

 "쯧쯔...저놈들 제대로 잡아놓으면 내 뭐 좀 알아보려 했더니만 시키는 일도 못 하느냐?"

 

 "으윽...순지...형님"

 

 "됐다, 그냥 계속 누워있거라. 내 힘 닿는 곳까지 저들을 추적해서 알아낼 테니"

 

 순지는 구멍 위로 뛰어오르더니 곧 사라졌다.

 .

 .

 

 '괜찮으십니까?"

 

 "으응....괜찮지...다"

 

 상처로 인한 고열인지 이마가 불덩이였다. 결국 화연은 손수 물수건을 가져다 고종을 간호했다.

 

 "대충 지혈은 됐습니다 폐하...그럼 쉬세요"

 

 "어디 가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밖으로 나간 화연은 아까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 이유는...

 

 "찾았다"

 

 고종이 놓고 간 서책들을 다시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아까 화연이 부축했을 때조차 고종은 서책들을 찾았다.

 

 '서, 서책들이 발에...'

 

 '발에 채이십니까? 옆으로 잠시 밀어두고 다시 걸어가십시오'

 

 '가, 가지고 와야...하는 거 아니냐?'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말씀 마시고 제게 기대십시오'

 

 화연은 서책의 먼지를 털어내고 품 안에 넣었다. 잠깐이지만 책쾌들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이보게..."

 

 화연이 돌아가려는 찰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누, 누구십니까?"

 

 "그저 힘 없는 늙은이라네..."

 

 낡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사내는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밤이 깊으나 말동무는 없어 적적해 자네에게 말을 걸었네"

 

 "저...어르신 저는 일찍 가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만 대답해주게....자네의 고향은 어디인가?"

 

 "갑자기 고향을 물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면 그들은 언제나 고향을 추억하며 얘기한다네...그래서 자연스레 고향을 말하면 그 고향에서 이 사람은 어떤 식으로 살아갔었나...이런 생각이 든다네"

 

 "그래서요?"

 

 "자네가 시간이 별로 없다 하니 자네의 고향을 알게 되면 나는 밤 동안 자네의 삶을 더듬어 보면서 간접적으로나마 대화할 수 있게 되며, 더 이상 적적할 건 없지 않겠는가?"

 

 듣고 보면 묘하게 일리 있는 노인네의 말이었다. 어차피 알려주지 않으면 화연을 붙잡으며 귀찮게 할 것이 뻔했기에 화연은 노인에게 한 마디만 던졌다.

 

 "저는 산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산의 이름은 백태산이었지요"

 

 "백태산이라...험한 지형이었소?"

 

 "아니요...아녀자도 뛸 수 있을만큼 평평하고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르신"

 

 그 말을 끝으로 화연은 지붕 위로 뛰어올라 빠르게 사라졌다. 화연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사내는 낡은 누더기를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고향이 백태산이라...예전에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들어서 그런지 이름이 낯설지가 않구나..."

 

 화연에게 고향을 물어온 사내는 다름아닌 그녀의 뒤를 쫓고 있는 순지였다.

 

 .

 .

 .

 

 "폐하...폐하"

 

 "으음...무슨 일이냐?"

 

 "벌써 날이 밝았습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날이 밝았다니? 도대체 왜 날이 밝았으며, 여기는 어디란 말이냐?'

 

 일어나면서 보인 것이 단아함이 묻어나는 자신의 처소가 아닌 소박한 숙소인 걸 알고 고종은 당황해 몸을 일으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으키려 했으나 옆구리의 아릿한 통증으로 인해 다시 자리에 누울 수 밖에 없었다.

 

 "아니 폐하! 그리 일어나시면 옥체가 상하질 않습니까?!"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 것이냐..."

 

 "어제 기억 안 나십니까? 폐하께서 어제 시정잡배들과 싸우고 나서 부상을 입어 여기로 오지 않았습니까?"

 

 "아아...기억이 하나 둘씩 돌아오는구나"

 

 사실 일어나자마자 어제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긴 했었다. 그래, 어제 시정잡배들과 멋있게 한 판 붙는 것까지 기억난 것은 좋았다.

 

 '근데 왜 하필 멋 없이 무너졌던 것이냐!'

 

 하나도 안 다쳤다고 얼굴까지 들이밀었건만...결국 돌아오는 것은 옆구리의 치욕스러운 통증뿐이었다.

 

 '멍청한 자식...어쩌자고 그 통증 하나 참아내지 못하고 여인에게 기대었단 말이냐!'

 

 어제 일을 회상하니 고종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얼굴이 빨개진 게 보일 것만 같아 고종은 서둘러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폐, 폐하?"

 

 "하아...어제 내가 추태를 보여 굉장히 미안하구나"

 

 "추태라니요?"

 

 "그까짓 통증을 참아내지도 못하고, 나는 정녕 추태를 부리기 위해서 태어난 것인가..."

 

 "폐하"

 

 갑자기 낮아진 화연의 목소리에 고종은 이불을 살짝 내려 화연을 빼꼼히 쳐다 보았다. 고종의 시야에 화가 난 듯한 화연이 오롯이 담겼다.

 

 "추태라니요...당치도 않습니다"

 

 "그, 그럼?"

 

 "어제 폐하께서 멋있게 똭! 하고 물리치셨을 때....그때 참 멋있으셨습니다"

 

 "그, 그러하냐?"

 

 "네, 그전까진 폐하를 주군으로 섬기게 된 것에 불만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습니다. 이리도 멋진 사람을 가까이서 보필할 수 있으니까요"

 

 쉬지 않고 몰아치는 칭찬 세례에 다른 의미로 얼굴이 붉어진 고종이 또 한번 이불을 걷어올렸다.

 

 "맞다, 폐하. 그리고 이 서책 어제 찾으시기에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이불을 내려보니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서책을 들고 환하게 웃는 화연이 보였다. 순간, 고종은 앞뒤 안 재고 화연의 팔을 끌어들여 화연을 안았다.

 

 "폐...하?"

 

 "고맙다...참으로 고맙다..."

 

 내 호위무사가 되어줘서 진정으로 고맙다...

 

 내게로 와줘서 정말로 고맙다...

 

 나를 그리도 추켜 세워줘서 너무나도 고맙다...

 

 너 덕분에 내가 숨통이 트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즐거움을 알게 되었구나

 

 "무, 무엇이 그리도 고마우십니까?"

 

 "너라는 존재 자체가 그저 한 없이 고맙다"

 

 고종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화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러나, 부끄러움과는 그 근본이 달랐다.

 

 제 존재 자체가 고맙다니요...

 

 무엇이 그리도 고마우셨습니까?

 

 일평생 존재가 고마웠던 적이 없는 저였는데...

 

 무엇 때문에 그리 한 없이 고마워하시는 겁니까?

 

 화연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이 고종의 한 마디에 녹아 버렸다. 그 녹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화연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져 흘러내렸다.

 

 .

 .

 .

 

 "...영, 자영아!"

 

 "아...! 어머니"

 

 "무엇을 그리도 골똘히 생각하고 있느냐?"

 

 "아...그게"

 

 실은 어제 낮에 다녀가셨던 분이 제게 입궐을 권해 오셨습니다.

 

 저는 입궐하면 일평생이 편할 것 같아서 그 제안을 수락했고요...

 

 쉽사리 꺼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기에 자영은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이 이야기를 하면...우리 모녀의 이별을 고하는 것이 될 텐데 어찌하면 좋을까...

 

 "어머니...오늘은 장사를 이만 접고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무슨 이유라도 있는게냐?"

 

 "네, 안대 보관함이 아직 다 완성되지 못했고,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어서 말입니다"

 

 평소에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장사를 접고 들어가잔 소리가 없었던 자영이었다. 그렇기에, 무언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자영의 어미는 서둘러 비단을 한 곳에 모아두고 장사를 접었다. 딸아이의 간절한 부탁이었기에 장사를 접는 그녀의 손길에는 한 치의 미련도 묻어나지 않았다.

 

 .

 .

 .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장사를 접으라 했니?"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영의 눈에 눈물이 솟구쳤다. 저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날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또 다시 궐의 사람이 올 때면 그때는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자영은 어미의 품에 스러져서 한 없이 울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 눈빛이, 그 손길이 너무나도 다정해서 서러웠다.

 

 '그 손님을 연모하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자영이 흘리는 눈물의 연유를 지레짐작한 어미는 그저 아픈 사랑이다 생각하고서는 자영을 부드러히 달래 주었다.

 

 "어머니...흐윽"

 

 "그래그래, 아가...무슨 일이기에 그리 서글피 우니?"

 

 "이제...저희는 얼마 안 있어서 갈라져야 합니다"

 

 그저 흔한 사랑앓이라 생각했던 어미에게 참으로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

 .

 .

 

 "아니...아니 된다 자영아..."

 

 "어머니 흐윽..."

 

 지아비를 잃고 나서 삶의 이유가 된 여식이었다. 말하는 것이 영특해 하루하루 키워가는 재미가 있는 아이였다. 힘들고 고단한 삶에서 단비가 내린다면 그건 다름 아닌 자영의 존재였다.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민자영' 세 글자를 말할 터였다.

 

 그런데...갑자기 궁이라니...떠나야 한다니...

 

 자영의 어미에겐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어머니...자주 오겠습니다. 궐 안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그때는 모셔오라 하겠습니다"

 

 "아니, 이 어미는 그런 부귀영화 다 필요없다. 어미가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은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사실 그리 말하는 어미도 알고 있었다. 자영은 평범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참으로 영특하고 똑똑해 생각하는 것조차 남들과 달랐다.

 

 그러나, 남들과 다르면 꼭 해를 입는 법.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쩌면 자영에게는 높으시고, 생각 많으신 양반들 틈바구니가 더 적격일 터였다.

 

 그러나, 사람의 이기심이란 참으로 간사한 지라...그 사실을 알고서도 차마 떠나보낼 수 없었다.

 

 자신이 움켜쥐면 움켜쥘 수록 자영만 힘들어질 게 뻔한데도 차마 움켜쥔 그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놓으면 끊어질까봐...

 

 힘들게 맺은 모녀 간의 인연이 너무나도 쉽게 사라질까봐...

 

 고되고 빛바랜 지난 날들 안의 그나마 찬란했던 추억이 날아갈까봐...

 

 "어머니...죄송합니다. 불효녀를 용서해 주시어요"

 

 한참을 울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울고 있는 여식이 보였다. 자신이 놓아주지 않아 죄책감에 힘들어 하는 여식의 모습은 참으로 애처로웠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언젠가 날아갈 줄은 알았지만 그날이 이리도 빠르게 올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리 고되고 평범한 나날들 중 갑작스레 찾아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무런 예고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 찾아온 이별은 억장을 무너트렸다.

 

 그.러.나

 

 '하늘이 정한 거라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겠지...'

 

 놓고 싶지 않지만 놓을 수 밖에 없는 인연...

 

 놓아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여식...

 

 어미는 여식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혹녀아 궐 안에 있는 사이 잊을세라, 놓칠세라...그렇게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자영아..."

 

 "예, 어머니"

 

 "너라는 존재 자체는 내게 고된 가뭄 속의 단비였단다..."

 

 "어머니..."

 

 "궐 안에 들어가서 힘들거든...이 어미를 생각해주렴"

 

 "...흑...끄흑..."

 

 "세상에서 온 마음 바쳐 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계속해서 상기해 주렴"

 

 너라는 존재가 어떤 이에게는 심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렴...

 

 너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빛이 나서 그 빛을 쫓았다는 존재가 있었다는 걸 명심하렴...

 

 너라는 존재가 한 없이 고맙고 안쓰러워 눈물 흘리던...어미라는 존재를 기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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