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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정의
작가 : 박파제
작품등록일 : 2018.12.15

고등학교 옥상에서 한 남학생이 추락했다.
즉사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고는 목격자의 증언으로 사건이 된다.
살인미수 용의자로 지목된 고등학생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공소 제기한 검사가 내 동거인이다.

 
동거의 정의 3
작성일 : 18-12-17 20:50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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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은 단골 국밥집에서 먹었다. 서비스로 나온 수육을 잘도 씹으며 또 콩나물이냐고 투덜거리는 고준서에게 차마 네 전화번호가 삭제돼서 같은 씨도 안 먹힐 핑계는 댈 수 없었다. 날달걀 하나를 깨 뚝배기 안에 넣는다. 휘젓지 않고 콩나물만 빼 접시에서 식힌다. 토렴한 밥알 위에 오징어 젓갈을 올린다. 입김 한 번 불지 않고 입으로 직행한다. 뜨겁다가 천천히 맛을 느낀다. 잘게 부서져 밥인지 죽인지 분명하지 않은 내용물과 함께 아까의 치욕도 같이 삼킨다. 역시 콩나물국밥엔 오징어 젓갈이지.

 

  “그럼 증거만 찾으면 되나?”

  “애당초 증거 찾으면 게임 끝.”

 

  고준서가 깍두기를 요란하게 베물며 대답했다. 박성우가 고소된 뒤, 여론은 사건과 별개로 술렁였고 제2의 피해자가 없는지 물색하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 누군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어디 다쳤다는 이야기보다 누가 누굴 때렸다는 이야기에 더 비통해하고 집중했다. 익명의 장에선 그럴 만했다고, 살인미수 용의자이자 학교폭력 피해자인 동준을 두둔하거나 동조하거나 고도의 돌려까지 식으로 작성한 글들이 분당 한 번꼴로 올라왔다.

 

  “근데 이 변호사님은.”

 

  뚝배기를 깔끔하게 비우고 트림까지 장렬하게 뱉은 고준서가 언제 불평했냐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뭘 믿고 김동준이 범인 아니라고 그렇게 확신한대?”

  “뭐.”

  “이 변호사님 촉이야 귀신 같아서 가끔 사무실에서도 써먹고 그런 건 알죠. 근데 그건 밥값 내기 때 사다리 탄 거고.”

  “.....”

  “입사하고 한 번 안 걸렸으니까 인정. 인정은 하는데 정황이 김동준 범인이라고 가리키다 못해 멱살 잡고 흔들잖아. 뭔 자신감인가 해서.”

  “그냥.”

  “그냥?”

  “그냥 내 촉이 그래서도 맞는데, 검사 측이 보낸 증거 있잖아.”

  “응, 동영상이요.”

  “처음엔 저쪽도 뚜렷한 증거는 없어 보이는데 누구 놀리나 뭐 다른 패가 있나 했거든. 근데 김지빈이 나한테 고소하라고 보낸 동영상이 아니라고 했어.”

  “그게 왜요?”

  “김지빈이 그렇게 말한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두 가지거든. 정말 제출용이었거나 확인용이거나.”

  “그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알았던 거지, 걘. 박성우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그런 증언이 담긴 정보를 보낸 거.”

  “일부러? 왜요?”

  “역으로 동준의 피해를 입증하려 했다든가.”

  “에이.”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든가.”

  “무슨.”

 

  정확히 뭔지는 이제 알아봐야지. 식탁에 수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준서는 정수리 위로 깍지를 끼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건 진짜 똥촉이네. 믿지 마요, 그거.”

 

 

  *

 

 

  사무실 소파에서 자는 건 이제 도가 텄고 공용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하는 것도 나름 익숙해졌고 좀 심각하다 싶을 땐 근처 사우나에 갔다. 당분간 쥐죽은 듯 살려고 노력하는 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줬던 직원들은 얼마 안 가 사건이 해결되기 전, 사건이 해결되고, 사건이 해결되고도 내가 김지빈의 집에 들어갈지 말지를 안주 삼아 내기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변호사가 아니라 잠복 형사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가출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나마 형사는 공권력이 있어서 변호사에게 협조할 필요는 없다고 내쳐질 시간에 하나라도 더 조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학생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더 이상의 출입을 금지한 학교에서 터덜터덜 빠져나오며 들은 만남인지 이별인지 헷갈리는 가사의 노래가 가슴을 쥐어뜯는 동시에 아, 어차피 사랑이구나. 깨닫는다.

 

 

  사랑 좋지.

 

 

  삼십 넘게 산 이때까지 제대로 해보지 못했지만.

 

 

  *

 

 

  잠행하기로 했다. 때는 주말, 하교 시간을 훨씬 넘긴 밤이었다. 손전등을 챙기는 나를 바라본 고준서가 요즘 누가 그걸 써요? 하고 비웃더니 핸드폰을 건넸다. 여기 다 있잖아, 비싼 값 해야지. 나는 솔직히 별거 아닌데 입술을 오므리고 감탄했다. 어깨를 으쓱인 고준서가 먼저 닫혀있는 후문을 넘었다. 상대적으로 힘겨워하는 내 손을 잡고 착지시켰다. 초등학생 이후로 담장 같은 건 넘어본 적이 없다. 진짜 형사라도 된 기분이다. 실상은 수상쩍은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옥상으로 가는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수사 단계에서 지긋지긋하게 봤던 곳이지만 피해자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란 이중적인 사실을 안 이상 사건 현장도 또 하나의 시선으로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화단에는 못 보던 초록 잎이 돋았다. 무고한 동준이 풀려날 때 꽃봉오리가 맺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이곳에서야 올려봤을 하늘을 나도 올려다봤다.

 

  별 한 점 없이 깨끗한 칠흑은 그 어떤 거짓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아무것도 없네요.”

 

  고준서가 이마에 손을 얹고 미간을 쭈물거리다 난간 밑을 바라봤다. 고준서의 절반까지 닿는 난간에서 바짝 고개를 숙이면 떨어질 것 같다. 이 위에 앉아 바람을 쐬는데 누가 등을 밀어 추락했다. 추락하기 전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혹은 함께 있는 줄 몰랐다. 주변엔 CCTV 하나 없고 어떠한 흔적도 없다. 한숨을 내쉰 고준서의 입김이 공중에 흐트러지는 것을 머리를 굴리며 보고 있었다.

 

  “이 변호사님.”

 

  고준서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췄다.

 

  “박성우 뭐에 맞아 멍들거나 베인 상처 있었나.”

  “아니.”

  “잘도 떨어졌네요.”

  “뭐?”

 

  고준서가 긴 팔을 뻗어 난간 밑을 가리켰다. 핸드폰 불빛을 아래로 쏘았다.

 

  “저 2층의 창문턱 15cm는 돼 보이죠?”

 

  그를 따라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차가운 난간에 몸이 달라붙었다.

 

  “저 봐, 여기서 담배도 피우나 봐요. 감시카메라도 없겠다 아주 안성맞춤이네.”

 

  2층 복도에 있는 창문이었다. 고준서의 말대로 턱이 좀 나와 옥상에서 떨어질 때 자칫 부딪쳐 상처가 생길 정도로. 그 위에는 세 개비의 담배가 있었다. 길이는 다양했지만 전부 타다 말았다. 나는 뭐라 뒤를 잇는 고준서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옥상을 내려와 2층까지 뛰었다. 턱이 있는 창문을 단숨에 찾아 열려고 했다. 추운 날씨 탓에 얼어서 잘 열리지 않았다. 뒤따라 쫓아온 고준서가 작게 다그쳤다. 갑자기 뭔데, 놀랐잖아요. 하고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은 얼굴로 말하는 고준서의 옆구리를 찔렀다.

 

  “열어봐 좀.”

  “아, 진짜.”

 

  이게 뭔 상관이 있냐고요. 항의의 뜻이 담긴 말투로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몇 번 덜컹거린 문이 열렸다. 나는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크로스 가방에서 장갑과 비닐봉지를 꺼냈다.

 

  “무슨 도라에몽이에요? 그냥 루미놀도 꺼내지 왜.”

  “너 자꾸 시끄럽게 할 거면 가.”

  “뭐래 진짜 섭섭하게. 내가 다 했거든요. 담배도 내가 찾았고 창문도 내가 열었고.”

  “알았어, 알았어, 잘했어.”

 

  장갑 낀 손으로 잡은 담배 세 개비를 봉투 안에 넣었다. 무슨 행동인지 나조차도 뚜렷하게 알 수 없다. 가끔 신기처럼 몰려오는 촉이 발동해서 실행에 옮겼을 뿐인 내 손목을 잡은 고준서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 누구야. 뒤에서 우릴 부르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건물을 빠져나와 후문으로 도망치자 쫓던 발걸음 소리는 사라졌다. 그래도 급하게 담을 넘고 담을 넘어서도 뛰었다. 고준서가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 없으면 어쩔 뻔했어요.”

 

  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

 

 

  담배를 감식반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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