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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왕비님의 알바일지
작가 : 박티티
작품등록일 : 2018.12.7

만년 배우 지망생 희우는 오늘도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낙담한다. 그러던 와중 왕비역을 구한다는 알바 공고에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하는데, 뭐? 진짜 마왕이 왕비를 구하는 거였다고? 1년의 계약기간동안 마왕성에서 벌어지는 왕비님의 흔한 알바일지

 
#8-나도 마왕은 처음이라서요.
작성일 : 18-12-17 20:27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3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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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서야 희우는 기억해냈다. 어제 디노에게 뭔가 물어보려다가 까먹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잊어버린 질문이 바로 합방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도.

 ​

 "...왜 이런건 미리 말을 안해준거에요?"

 ​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오..라면서 방을 정리하고 떠난 로나의 뒷모습이 왜 그리 수줍었는지 희우는 모른다. 아니, 모르고 싶다. 하지만 알 것 같다. 저런 어린애-실제 나이는 로나가 훨씬 더 많지만-조차 내가 오늘 밤 거사를 치룰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이가 없고 창피하다. 희우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디노를 흘겨보았다.

 ​

 "아하하, 깜빡했어요. 나도 마왕을 처음 해보는거라서."

 ​

 아까 보이던 날카로운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이었던처럼, 속 편하게도 '아하하'하고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디노야말로 연기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가 긴 목깃의 단추를 푸는 순간, 희우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

 "뭐, 뭐하는거에요?"

 "뭐하긴요? 옷 벗잖아요."

 "왜, 왜 벗냐구요!"

 "이런 차림으로 잘 수는 없잖아요. 가뜩이나 쇼파에서 잘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허리 아픈데."

 ​

 예상외의 대답에 희우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못한다. 디노는 거추장스러운 망토와 예복 상의를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길쭉한 쇼파 위에 드러누웠다.

 ​

 "뭘 그렇게 걱정해요. 설마 내가 진짜 그렇고 그런 짓이라도 할까봐요?"

 ​

 아니었나? 희우는 갑자기 묘해진 분위기에 멋쩍어져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이거 완전 악덕 고용주 취급이네. 저 그런 마족 아닙니다만?"

 "하지만 아로닌이..."

 ​

 딱 붙어있던 희우의 입술이 그제서야 떨어진다. 희우는 억울하다는 듯 웅얼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

 "2차 각성을 하려면... 그게 필요하다고 했단 말이에요."

 "뭐가요?"

 "그거 있잖아요."

 "그거 뭐요?"

 ​

 놀리고 있다. 이 새... 아니 이 자식 날 놀리고 있어. 희우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있는 디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빠직하고 끊어지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또 마음을 읽힌것인지, 디노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합방이요? 뭐, 그렇다고는 하는데 어디까지나 전설이에요."

 "전설이요?"

 "원래 마왕비는 대부분 귀족들의 딸들 중에서 정해져요. 그런데 만약 그 중에서 진짜 운명의 상대가 없어봐요. 그럼 2차 각성은 평생 물건너간거잖아요. 각성은 때되면 하는거에요. 다만 그 시기를 몰라서 그렇지."

 ​

 듣고보니 그것도 그렇다. 디노가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말을 잇는다.

 ​

 "난 그냥 지어낸 얘기일거라고 생각해요. 인간계에도 그런거 많다면서요. 미신이라던가?"

 "그건 그런데..."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그런 사이도 아니잖아요. 1년 뒤면 빠이빠이 할 비즈니스 관계지."

 ​

 맞아, 그랬지. 희우는 거듭된 디노의 설명에 완전히 마음이 놓였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긴장이 풀리자 그제서야 피곤함이 느껴지는듯 희우도 결국 침대에 아무렇게나 걸터 앉는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하다.

 ​

 "그런데 그 1년 있잖아요. 1년 뒤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1년 뒤?"

 "즉위식도 해 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다 내 얼굴을 봤잖아요."

 ​

 즉위식이라 쓰고 대국민사기극이라 읽는 그것을 하는 통에 이미 온 국민이 자신을 왕비로 알고 있는 지금, 희우의 걱정은 그것이었다. 만약 1년 뒤 자신이 알바를 그만두고나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인가. 냉정히 말하면 희우 입장에서는 내 알바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 선망에 찬 눈빛들을 보고나니 영 신경이 쓰인다.

 ​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 말아요. 설마 그런 대책도 없이 이런 일을 꾸몄겠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

 디노는 갑자기 말없이 희우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피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희우는 뭔가 실수한 것 같아 머쓱해졌다. 너무 오지랖이었나. 디노는 쿠션을 끌어당겨 목 아래에 집어넣으며 말한다.

 ​

 "자, 왕비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퇴근하시죠."

 ​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디노는 진짜 잠이라도 들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

 ​

 **

 ​

 ​

 ​

 ​

 ​

 낯설은 호칭과 어법도 며칠 사이 꽤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로서 마계에 온지도 1주일. 즉위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왕비가-알바이긴 하지만- 된 건 나흘째다. 그것은 결계가 부서지고 히로칸이 쳐들어오는 소동이 있었던 것도 벌써 4일 전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마왕성을 둘러싸고 있던 결계는 회복되었고 히로칸의 공격으로 훼손된 부분도 복구되었지만, 성 안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쉽사리 가라앉을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희우가 성 안을 돌아다니거나 산책을 하면서도 쉽게 느낄 수 있었는데, 시종들이나 귀족들이 여럿이 모이기만 하면 즉위식 날에 대해서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

 "즉위식 날 마왕성의 결계가 부서지다니, 이런 망신이 어디있어?"

 "약골이 마왕이 돼서 그런거 아니야?"

 "거기다 인간 왕비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왠 인간이야?"

 "못 들었어? 인간계에서 만난 운명의 상대라더만."

 "그나저나 댄스파티는 어떻게 되는건가? 다시 안하는거야?"

 ​

 비록 디노가 진짜 남편도 아니고 자신이 진짜 왕비인 것도 아니지만 이런 얘기를 듣게되니 희우로서는 아무래도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그리고 그놈의 댄스파티는 다들 왜 그리 못해서 안달인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더니, 아무리 마계고 왕성이라지만 호사가들은 어디에나 있나보다.

 

 희우는 처음에는 그런 구설수들을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만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리다보니 무시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거기다 날이 갈수록 그 뜬소문들은 점점 더 진화한다. 마왕이 무능해서 결계가 부서졌다, 인간 왕비가 와서 그런거다, 결계 복구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더라 등등. 희우는 걱정스러워진 나머지 디노에게 소문에 대해 털어놓았지만, 의외로 당사자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

 ​

 "아하, 그래요?"

 ​

 아하, 그래요라니. 너무 싱거운 반응에 희우는 오히려 김이 새버렸다.

 

 "그런 헛소문이 퍼지는데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요?"

 "사실이 아닌걸요. 그리고 결계 복구는 끝났으니 곧 그런 소문도 사라질거에요."

 

 결계 복구로 바쁜 며칠을 보내고 오랜만에 가진 오후의 티타임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정원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디노는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말은 항상 과장되고 왜곡되기 마련이죠.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요. 나 반대하는 마족들 많다고. 그런 뒷담화 들어본게 하루 이틀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왜 마계가 재미없었다고 했는지 알겠죠? 코찔찔이때부터 맨날 이렇게 안주거리로 씹고 맛보고 뜯기며 살아봐요. 차라리 아무도 날 모르는 곳이 낫지."

 

 화려할줄만 알았던 왕족의 삶도 결코 녹록치 않음을 몸소 체험해보니 그가 왜 인간계까지 왔는지 이해가 된다. 디노는 언짢은 듯한 희우의 얼굴을 보고 의외라는듯 물었다.

 

 "희우씨, 배우 지망생이라면서요?"

 "맞아요."

 "나중에 유명한 배우가 되면 그 때도 별별 소문이 다 따라다닐걸요? 미리 체험한다고 생각해봐요."

 

 그것도 그렇네. 이럴때 보면 그래도 300년이란 세월을 허투루 산 건 아닌것 같다. 디노는 깔끔하게 정리를 끝낸 뒤 화제를 바꾼다.

 ​

 "그동안 별일은 없었죠?"

 ​

 희우는 그가 묻는 별일이라는 것이 사라진 방패에 대한 것임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로닌은 만약 희우가 방패를 흡수한 것이라면 몸에 무슨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라고 당부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동안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혹시나 해서 로나에게 매일 나 달라진거 없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오늘도 너무너무 아름다우신데요!' 였을뿐. 이런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싶어 희우가 잠자코 있자, 디노는 고민스러운 콧소리와 함께 고개를 기울여 손에 기댄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입을 열었다.

 ​

 "아무래도 알로시네를 만나러 가야겠어요."

 "알로시네는 어디 있는데요?"

 "그들은 북쪽 늪지대에 살아요. 여행갈만한 곳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군요."

 "어... 저도 가는거에요?"

 "당연하죠. 희우씨가 이 사건의 핵심인데."

 ​

 사건의 핵심이라니. 무슨 범인 취급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설마 되돌릴 수 없으니 물어내라거나 하진 않겠지. 희우는 들리지 않는 한숨을 차와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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