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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유해화합물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이건 금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의 정의를 다르게 쓰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7화. 쉽지 않은.
작성일 : 18-12-17 14:48     조회 : 213     추천 : 0     분량 : 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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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뚫어지겠어요, 공주님.”

 

 아빠의 말에 아현은 캄캄한 액정에게서 시선을 뗐다. 아냐, 하며 애써 마음도 부정해봤다. 한가하면 머릿속은 더 어지럽기만 하다. 차라리 쉴 새 없이 바쁜 게 다른 생각을 잊는데 도움이 된다.

 

 그 날 밥 먹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고기를 굽는 데 가면 이야기를 나누거나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고, 파스타 같은 이태리 음식은 너무 데이트 분위기 내는 것 같고, 고민하다 깔끔한 초밥으로 선택했다.

 

 방으로 되어 있는 가게라 처음엔 좀 어색할까 고민했는데 그는 세심하게 챙겨주면서 이것저것 물어오고 얘기를 잘 들어줬다. 처음 만난 날 입은 옷도 예뻤는데 오늘 옷도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줬다.

 

 그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지금 제 앞머리가 갈라진 건 아닌지, 입술에 뭐가 묻은 건 아닐지, 얼굴이 빨개지진 않았을지 신경 쓰여 얼굴을 자꾸 숙이게 됐다. 팽팽 고무줄처럼 늘어났던 자신감이 탄력을 잃고 쪼그라들었다.

 

 “저기.”

 “네? 아, 죄송합니다. 계산 도와드릴게요.”

 

 아현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번쩍 일어나 계산대 앞에 섰다. 빠르게 계산하고 카드를 돌려주자 남자는 아현을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그제야 아현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반듯한 얼굴에 깔끔하게 입은 옷과 단정한 머리 스타일까지 흔히 말하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훈남이었다. 그런 것보다 긴장되어서인지 얼굴 근육이 조금 파르르 떨리는 게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 아닙니다.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아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는 주머니에서 비타민 음료를 꺼내 건네주고는 나갔다. 듬직한 등하며 돌아보다 눈이 마주치자 다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이 순박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 괜찮은 것 같은데.”

 

 돌아보니 흐뭇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에게 비타민 음료를 내밀었다.

 

 “아빠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응원할 건데 널 기다리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사람은 좀 미울 것 같아. 남자는 진짜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다 해 주거든. 간도 빼주고 달도 따줘.”

 “아빠처럼?”

 “그럼.”

 

 아빠는 어딜 가도 ‘사랑꾼’으로 유명하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도 12시 전에는 칼같이 귀가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간식 같은 걸 까먹지 않고 사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포장해오고, 길거리를 다닐 때면 손을 꼭 잡고 다니고, 엄마를 꼭 이름으로 부른다. 것도, 우리 주현이라고.

 

 아이들 이름에 ‘현’이 있는 건 항렬자여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아이인데 아빠의 성은 이름에 다 들어가니 엄마의 것도 하나씩은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서다.

 

 아빠 같은 남자가 이상형이 된 건 아주 오래 전이다. 그래서 여태 남자를 못 만났다. 잘생기고 키 크고 몸 좋은 걸 바라지 않아서, 그저 오랫동안 자신을 따뜻하게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왜 자신은 이렇게 핸드폰만 보게 된 걸까. 외모적인 이상형만 따져도 방금 나간 남자가 훨씬 가까웠다. 탈색한 머리도, 피어싱도, 모델 같이 가늘고 얇은 선의 몸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레이블 소속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번뜩 든 생각이 레이블 아래의 클럽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이라 그렇게까지 챙겨준 걸까 했고, 그게 아니면 팬 관리인가 싶기도 했다.

 

 후자의 의심은 지웠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그는 아예 인물 검색에서 사진이 나오지 않았고 몇몇 후기에서도 글로만 볼 수 있었다. 클럽 공연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입장할 때 핸드폰을 맡겼다 공연이 끝나면 일괄적으로 나눠 주는 시스템이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일체 찍지 않고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는 정식 출시된 것도 없고 프로듀서나 작곡가의 명함으로 사는 것 같았다.

 

 ……이걸 보려고 팬카페에 가입까지 했다. 연예인을 따라다닌 적도 없고 짝사랑 경험도 없다. 그래서 아현은 이 마음이 더욱 감당이 안됐고 쉽게 생각했다. 잊어버리자, 하고.

 

 “딸, 오늘 늦을 거야?”

 “쪼끔?”

 

 아현은 일이 끝나고 약속을 잡았다.

 

 “아빠가 데리러 갈까?”

 “아냐. 일찍 자. 택시타고 올 건데 무서우면 전화할게.”

 “깨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꼭 전화해.”

 

 아현은 손에 물기를 털어내곤 아빠 품에 안겼다가 가게를 나왔다. 올려 묶은 머리카락에선 갈비 냄새가 났다. 씻고 가기엔 벌써 시각이 10시라 아현은 그냥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예대지만 음대를 다니는 선과 달리 아현은 미대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 미술 학원을 다녔다. 4년을 본 선생님들은 다 예뻐해줬고 그 중에 고 2부터 전담으로 가르치던 여섯 살 위의 남자 선생님인 진석과는 남매처럼 친하게 지냈다.

 

 “아현아!”

 

 술집 입구에 들어가 둘러보는데 진석이 크게 부르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아현에게로 쏠렸다. 맞은편에 얼른 착석하곤 눈을 흘겼다.

 

 “쌤, 일부러 그런 거죠?”

 “엉. 예쁜 제자 자랑할라고.”

 

 진석은 장난스럽게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었다. 연어샐러드를 시키고 소주를 기울이며 지난 추억을 꺼내니 술술 술이 넘어갔다.

 

 “그 때 기억나? 별똥별 떨어진다고 애들이랑 전부 옥상 올라가서 기다리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어서 애들 다 자고 있는데 너랑 나랑 본 거.”

 “와. 맞아요. 그 때, 진짜 소리도 못 낼 정도로 놀랐잖아요.”

 

 원래 전공을 회화를 하다 다른 애들보다 조금 늦게 조소로 바꾼 아현은 정말 열심히 했다. 같은 경험이 있는데다 첫 제자라 더 애틋한 마음으로 진석은 많이 공감해주고 상담도 들어주고 조언도 해줬다. 진석은 지금 아현이 다니는 대학교의 선배이기도 했다.

 

 “학년 올라가니까 더 재미없지?”

 “네. 와, 전공 진짜 과제 엄청 내주고. 미술학은 외울 거 너무 많고.”

 

 울상으로 하소연 하는 아현을 보고 진석이 키득 웃었다. 보기와 다르게 대충하는 게 없다. 좋게 말하면 성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요령이 없다. 꾀부리는 아이들 틈에서 그런 면이 예뻤다. 토실토실한 두 볼로 잘 웃던 귀엽고 풋풋하던 소녀가 단숨에 이렇게 장미꽃 같은 분위기를 품어내는 어른으로 성장한 게 아직도 신기했다.

 

 “남자는 없고?”

 

 평소 같았으면 절레절레 했을 아현이 멈칫 잔을 잡았다. 잔에 담긴 물결에 그의 얼굴이 일렁거렸다. 봄눈 같고, 겨울꽃 같은 미소가.

 

 “오. 누구야.”

 “없어요.”

 “아닌데, 방금 찔끔했는데.”

 

 아현은 술을 들이켰다. 비어진 잔에 속이 후련해야 하는데, 그를 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뜨끈했다.

 

 “남자는, 마음에 없는 여자한테도 잘해줘요?”

 

 진석은 처음 듣는 아현의 남자 이야기에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뭐 어떻게 하는데?”하고 경청의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일이 있어서 절 좀 도와줬거든요. 부축도 해주고, 걱정도 해주고. 다음에 만나서 밥 먹자고 하니까 밥도 같이 먹었는데. 내가 잘 먹는 거 있으면 바로 더 갖다 주고, 걷다가 신발 끈이 풀리니까 묶어도 줬어요.”

 “응.”

 “근데 진짜 연락을 안 해요. 하루에 세네번 와요. 먼저 보자고도 안 하고.”

 “흠.”

 

 아현은 말릴 틈도 없이 술을 따라 또 마셨다. 진석이 내민 물컵을 벌컥 벌컥 마시고는 탁, 소리 나게 바닥에 내려 놨다.

 

 “왜 그렇게 다정하게 하냐 이거에요! 왜 그렇게 예쁘게 웃어주고, 왜 사람 설레게.”

 

 분노해서 높이진 목소리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세상을 반짝 반짝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면,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 역시 사랑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생각나는 건 비단 코끼리뿐만이 아니다.

 

 “김 아현씨, 고생 좀 하겠네요.”

 “놀리는 거죠?”

 “아니. 응원하는 거야.”

 “그 사람 저한테 관심은 있는 것 같아요?”

 “솔직하게? 아니면 희망차게?”

 

 아현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폈다.

 

 “희망차게.”

 

 한동안 못 벗어나겠네. 진석은 웃으며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아무나 그렇게까지 챙기진 않지. 너한테 돈 뜯어갈 거 아니면.”

 

 돈은 엄청 많은 것 같던데ㅡ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일하는 사람인 거면 진짜 엄청 바빠서 핸드폰도 잘 못 볼 수 있어. 아니면 예술 계통 직업이면 집중할 땐 아예 꺼놓는사람도 있고. 영화 하는 형은 시나리오 작업하면 보름씩 연락 안 돼. 한 번은 여자 친구가 딴 살림하는 거 아닌가 하고 겨우 찾아내서 갔는데 더벅머리로 수염도 안 깎고 퀭해진 형 보고 밥 해주고 왔대.”

 

 레이블 소속 가수들이 인터뷰한 내용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종종 있었다. 꼭 시간에 비례해 성과를 내는 건 아니겠지만, 저만큼 일하는 데 못할 수는 없다고. 보면 기겁할 거라고.

 

 “먼저 고백하면 지는 것 같고, 잘해주면 이용할 것 같고, 될까 안 될까 확률과 가능성 따져서 다가가지 말고. 이왕이면 줄 수 있는 건 줘봐. 남자는 그러면 밑바닥 나오거든. 우위에 점했다고 쉽게 생각하거나 우습게보고 막 대하면 마음 딱 접으면 돼. 그 시간이나 정성 아까워하지 말고. 누굴 진심으로 만나서 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젠가 그런 사람 만나.”

 “쌤.”

 “응.”

 “처음으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무한 거 아냐? 원래 좀 괜찮지 않니?”

 

 진석은 작은 눈을 크게 뜨며 깜빡였다. 그 모습에 아현이 웃음을 터트리자 그걸로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사실 진석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냥 있어도 웃는 것 같이 눈꼬리가 조금 처진 작은 눈과 보조개가 매력적이고 서글서글하고 편안한 성격까지 합쳐져 고백하기 없기라고 결의한 소녀들 사이에서 연예인 같은 존재였다. 그 중에서 샘 많은 회화과 몇몇은 진석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아현을 미워하기도 했다.

 

 “슬슬 갈까.”

 “제가 살게요.”

 “어이구. 제자한테 얻어 먹을만큼 가난하지 않습니다.”

 “고민 상담료인데.”

 “담에 밥이나 사. 비싼 거 먹을 거야.”

 

 진심을 담아 크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현을 보고 진석이 농담도 못하겠다는 듯 "어유."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석이 화장실 간 사이 입구에 선 아현은 고민했다. 술집과 멀지 않은 곳에 레이블 회사가 있다. 한 번 연락해볼까. 12시가 조금 넘긴 했지만 잘 것 같진 않은데. 찾아가는 건 좀 그런가. 핸드폰을 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릴 때였다.

 

 “김 아현?”

 

 누군가 저를 불렀다.

 

 

 

 

 
작가의 말
 

 예전엔 사랑을 할 땐 번지점프한다는 마음으로 뛰어들었어요. 가끔은, 헛디뎌서 떨어지기도 하고요.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지나보면 줄은 다 있더라고요. 지금은요? 그 앞에서 머뭇머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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