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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꽃구름처럼
작가 : 멀이
작품등록일 : 2018.12.10

[재상여주/가인남주/달달과 가벼움을 지향/하지만 장담 못하겠음]


'눈 떠보았더니 글쎄 내가 소설 속 주인공!'
뭐하세요?
이란 소설이 유행하고 있대.
그래서요.
모름지기 유행은 따르라고 있는 법 아니겠어?
어디 계속해 보시지.
-잠깐만 책 사러 나갔다 올게.
이것들은 다 누가 처리하고요?
미래의 나! 부탁할게!
야, 서하령! 주인님! 아가씨! 거기 안 서!

>진짜 이렇지는 않습니다.

 
8화
작성일 : 18-12-17 14:20     조회 : 240     추천 : 0     분량 : 7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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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의외라고 할 것도 없이, 가장 질 나쁜 소문은 어느 한 곳에 고여 있곤 하였다. 아주 은밀하게 다른 곳으로 퍼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알아채기란 쉽지도 않을뿐더러, 공유하는 것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사람은 몇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안에서 고이고 썩어 들어갈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 소문의 한 조각이라도 주워들었다는 것은 세류로선 굉장히 큰 일 중 하나였다.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웃어가던 소문은 담벼락을 넘어 문을 지키고 서 있던 이에게까지 들려왔다.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이라는 것은 이럴 때 꽤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닐까. 나름 실없는 생각이 끊어진 이유는 입을 타고 오르내리는 이름이 그에게 아주 낯익었기 때문에.

 

 국혼을 준비하는 것 같더라, 은밀하게 움직이더라, 하루 낮을 사람을 물리고 같이 있었다더라. 장계 핑계를 대고 침전에도 찾아가지 않던가.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차는 말들에 곧장 뛰어들어 성을 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자신의 위치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세류는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을까? 아래에서 속닥거리는 말이 위에까지 올라가는 것은 누군가 말실수를 할 때를 제하고는 없지 않나?

 

 복잡해지는 머리를 쥐어 싸매던 세류는 한동안 이어지던 철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제 아가씨가 궁에 머문 날짜를 가만히 셈해보았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망할 황상이라며 중얼거리는 것을 몇 번을 보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겨우 멈춘 세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력한 자신이 이토록 짜증났던 적이 또 있었던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봄바람보다 가볍고 날카로운 말들은 정답게 궁 안을 휘젓고 있었다. 세류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요즘 우리 가인이 이상하다. 주변 눈치는 기가 막히게 살필 수 있는 이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대체 왜? 짐작 가는 것을 떠올리려 머리를 굴렸으나, 별달리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그랬기에 하령은 직접 부딪치기로 마음먹었다.

 

 “세류야.”

 

 생각보다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넓은 집에서도 행동반경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가 자주 올 법한 길목을 막아서고 하령은 세류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세류는 말없이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자신을 부르는 대답을 대신했다. 왜 그러세요? 자신을 보고 희미하게 웃는 이의 표정을 샅샅이 뜯어보던 하령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총총 다가와 세류의 볼을 감싸 끌어내렸다.

 

 “웬만하면 그러려니 할 건데요, 지금 뭐하십니까?”

 “말 안 듣는 가인 얼굴 보기?”

 “아가씨.”

 “무슨 일 없어?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하겠지.”

 

 그러니까 어서 말하지 않겠니? 빤히 마주보는 시선에도 드리워진 그늘은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얘가 왜 이러지. 힘든 일이 있어도 알아서 꾹꾹 눌러 참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축 처져 있는 것도 보기 힘들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던 세류는 제 볼을 감싼 작은 손을 마주 쥐고 떼어내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가씨, 지금 무슨 소문이 도는지 아세요?”

 “잠깐만. 나 짚이는 게 너무 많아. 기다려봐.”

 “그건 또 몰랐네. 제가 아는 건 조만간 처녀단자를 올린다고 하는 건데요. 맞습니까?”

 “아, 그거? 말도 마. 음, 나중에 알려줄게.”

 

 엄청 복잡하거든. 대강 정리가 된다 싶으면 알려줄 테니까, 얼굴 좀 펴줄래? 붙잡힌 손을 좌우로 흔들거리며 애교 가득하게 웃는 자신의 아가씨는 정말 모르시나보다. 깊은 한숨과 함께 목구멍에 걸려 잘 나오지 않던 말이 겨우겨우 흘러나왔다.

 

 “혹, 내정되었다던 그 황후폐하 되실 분이 아가씹니까.”

 “…올해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최악이야. 내가? 누구랑? 뭐를 해?”

 “아가씨가 황상과 혼례요.”

 “세류, 네가 날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그건 진짜 재미없어.”

 “걱정하는지 알면 좀! 걱정 안하게 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아가씨 이야기를 왜 밖에서 들어야 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전부 말해줄 수는 없잖아. 너도 내게 말하지 않는 것이 있을 것 아니야.”

 “전 없습니다. 아가씨는 아니죠. 나랏일이라, 한낱 가인에게는 전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까.”

 “세류.”

 

 거기까지 해. 웃음이 피어나던 얼굴이 차츰 굳어져갔다. 무언의 경고에도 세류는 막힌 둑이 툭 터지듯 입을 열어 말을 쏟아냈다. 고이고 또 고여 어둡기 그지없는 감정을.

 

 “굳이 알려주실 의무는 없으시죠. 하지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아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뭘 그렇게 짊어지고 다니세요. 그렇게 제가 못 미더우세요? 그렇습니까? 아니면, 제가 흔히 말하듯 신분이 낮아서?”

 “뭘 그렇게까지 비약을 해? 말했잖아. 복잡하다고. 결론이 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상의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고민 정도야 나눌 수 있는 거죠. 그냥 아가씨는 제가 못미더우신 것 아닙니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을 내렸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해.”

 

 채 정리되지 못한 말이 날카롭게 흩어졌다. 실체가 없음에도 또렷한 상처를 남기고서야 자취를 감추는 말의 끝에는 희미한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인 건데.

 

 “아가씨가 그토록 끔찍하게 여기는 백성들 때문이겠죠.”

 “너는, 내가-!”

 

 버럭 뱉은 말은 끝을 맺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너는, 내가. 주먹을 쥐고 숨을 고르던 하령은 눈을 감았다.

 

 “가. 나 지금 너 보면 더 화낼 것 같아.”

 

 너는 내가, 너를 위해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아? 눈을 감았음에도 잔상처럼 남은 반짝이는 머리칼이 눈꺼풀 너머에서 하늘거렸다.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마님들께 소식이 닿았을 것입니다.”

 

 기어이 포탄을 던지고 물러나는 세류의 뒷모습에 하령은 제 입술을 짓씹었다. 저 동그란 머리통을 때리고 나면 기분이 좀 풀릴까.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손에 잡히는 것은 죄다 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꾹꾹 참고 난간을 움켜쥔 하령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정말 싫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제 갓 스물을 넘은 아가씨 취급이지. 달리고 달려도 끝까지 쫓아오는 그림자가 다시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에도, 손끝이, 생각이 너무나 시려왔다.

 

 ❀

 

 「멍청한 짓거리는 잘 보았다. 굳이 걸음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으니, 답은 없어도 된다.」

 

 와. 멍청하대. 멍청한 자식을 두어서 참 기분 좋으시겠어요. 빈정거리는 말은 목 끝에서 달랑거리다 다시 겨우 목구멍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절로 구겨지는 표정을 애써 필 수 있었던 것은 대신들이 모여 있는 정전이었기 때문에.

 

 “후사를 보셔야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근본 없는 이를 어찌 국본의 곁에 세운단 말이오!”

 “애초에 근본이라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반타작 난 나라에서!”

 

 개싸움일세. 관복조차 제대로 통일하지 못해 색색의 빛깔이 찬란히 빛나는 정전은 말 그대로 개싸움의 진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황제와 재상, 말단과 몇몇 중신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말을 보태고 서로 삿대질을 하며 싸우는 것을 그 누구도 말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쩐다. 청개구리 기질이 불쑥 나오는 것만 같았다. 걸음 할 필요도 없으시다, 제 아비를 엿 먹일 기회가 잘만하면 찾아올 수도 있겠다. 찬찬히 머릿속으로 셈을 해본 하령은 어린 아이가 말을 할 때 손을 드는 것처럼 손을 번쩍 들고 입을 열었다.

 

 “죽어도 좁혀지지 않을 것이니, 절충안을 건의합니다.”

 “말씀하시게.”

 “먼저, 처녀단자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후사를 낳아야 한다 지지하는 쪽의 얼굴이 활짝 폈다. 아직 안 끝났는데.

 

 “다만 모든 이들을 살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흘끗, 황제의 면상을 찬찬히 뜯어본 하령은 미간을 좁힌 채 머리를 굴리는 중인 것을 알아채곤 다시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처녀단자를 올릴 수 있는 이들을 정해두도록 하죠.”

 

 근본을 주장하던 이들의 얼굴이 활짝 폈다. 다시 왁자지껄 너구리 떼들이 말을 가로채기 전에 하령은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일단 각 지역의 유지들의 자녀. 현재 관직에 재직 중인 이들의 자녀는 제외할 것. 형평성입니다. 더불어 관직에 재직 중인 이들의 형제자매 역시 제외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재직 중인 이들도 제외.”

 “남는 사람이 있겠소?”

 “그거야 공문을 내리면 알게 되겠죠.”

 

 황제의 옆자리는 그 누구라도 탐을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현재 이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의 직계 가족은 죽어도 안 된다, 못을 박은 하령은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외로 기울였다. 문제 있습니까? 소문은 다른 소문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최고였다. 난 이제부터 우리 가문에서 황후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던 사람이다.

 

 “장난하나?”

 “제가 저녁에 미리 귀띔해드리지 않았나요?”

 “사고 칠 것이라 말만 해두고?”

 “잘 풀렸으면 그만이죠.”

 “대체 어디서 잘 풀렸는데.”

 “황상.”

 “그래.”

 

 말이나 들어보자. 흉흉한 기운이 넘실거리며 숨통을 죄어오는 것만 같아, 하령은 제 목덜미를 손끝으로 쓸어내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뿐만 아니라 황제한테도 엿을 먹이는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지어졌다.

 

 “제 아비를 장인으로 모실 수 있으신가요?”

 “뭔 헛소리야. 나 재상과 혼인 안 해.”

 “저도 황상 백 명을 줘도 안합니다.”

 

 뭐, 이것저것 제약을 걸어두었지만 머리를 굴리는 것이 일상인 이들은 그 틈을 다시 파고들어 기회를 잡으려 할 테다. 그 틈을 이용하는 것은 하령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껄렁한 자세로 짝다리를 짚은 하령은 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이름이 무어라 하셨지. 아무튼 그분, 양녀로 들여 달라 청할 생각입니다. 뒤지면 아이 못 낳은 서씨인 사람이 하나쯤은 있겠지. 가능하시면 황상께서 직접 명을 내려주셔도 좋고요.”

 “…응?”

 “도저히 방법 못 찾겠으니까 편법이라도 이용해야죠, 뭐 어떡해. 저도 마음에 안 들어요. 일단 자주 노출시켜서 인식부터 바꿔가야지.”

 “재상, 그거 아시는가? 지금 목적이 조금 바뀐 것 같네만.”

 “압니다.”

 “아, 그래.”

 

 안다니 내 할 말은 없지. 퍽 순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를 버려두고, 아비에게 보내는 짧디 짧은 답을 써 내린 하령은 익숙하게 그림자 하나를 붙잡고 강제로 서신을 떠안겨 주었다. 어차피 이건 나랏일이고. 나름의 변명을 중얼거리며.

 

 그리고 그동안 세류와 하령은 서로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절로 싸늘해진 분위기를 읽은 다른 사람들 역시 두 사람을 가까이 붙여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묘한 대치는 하령의 부친이자 전 재상인 람이 수도인 경으로 올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늦었고.”

 

 왜 아무도 오늘 아비가 도착한다는 말을 내게 하지 않았을까. 사실, 시시콜콜 사정을 다 알려주는 것을 부탁하지 않은 제 잘못도 있었지만 하령은 손쉽게 남 탓, 그 중에서 얼굴만 고운 가인 탓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루 밤은 꼴딱 새고, 그 다음날은 쉬고. 간혹 이틀 밤을 새기도 하고. 들쭉날쭉한 일정 덕에 지금이 어느 날인지조차 간혹 헷갈려, 하령은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대문을 넘었다.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내려는 듯 허리를 곧게 펴고 자박자박 걷던 하령을 불러 세운 것은 그의 아비였다.

 

 “이제 막 퇴청하던 길이었으니 더 낫겠지. 지금 궁에 들어갈 것이다. 따라오너라.”

 

 몇 시진만 있으면 동살이 터올 텐데, 그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것 마냥 람은 눈짓으로 하령을 채근했다. 옆에서 안색이 거멓게 죽은 채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을 보아하니 오늘 도착해 짐을 푼 모양인데. 자연스럽게 이유가 짐작이 간 하령은 한숨을 폭 내쉬곤 영 내키지 않은 얼굴로 이제 막 돌아온 집을 다시 벗어났다.

 

 “폐하께는 허락과 입적을 위한 것들을 드릴 터이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네가 뿌린 씨는 네가 거둬들여야겠지. 도와주는 것은 이번만이다.”

 “바쁘신 와중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뿐만 아니라 너한테도 할 말이 있으니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라. 청한각이든 어디든.”

 

 이참에 확실히 뜯어내야겠어.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긁고 지나갔다. 왜 저 사람이 뜯어낸다는 말은 목 줄기를 뜯어낸다는 것처럼 들릴까. 학습된 공포, 혹은 쌓여버린 두려움 때문이리라, 홀로 짐작하며 하령은 조용히 제 아비를 따라 황제가 기거하는 전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까지 얼굴을 맞댄 이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문 너머로 사라지는 그림자를 멀거니 바라보자 아까보다 더 밝아진 사위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오늘도 밤을 새는구나. 어릴 때와 같이 괜히 땅바닥의 돌을 툭툭 차며 이곳저곳 시선을 돌리다, 청한각에 가 있으라는 말이 그제야 다시 떠올랐다.

 

 “할 말,”

 

 이 뭘까. 늘 기대와 실망으로 점철된 기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데, 우습게도 매번 같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버리고 있었다. 안 봐도 뻔하지. 이런 걸로 불렀느냐, 멍청하구나. 쓸모 있는 생각을 해라.

 

 자신의 자리를 찾아 어색하게 앉자, 앉은 자리에서 그가 일하는 공간이 한 눈에 들어왔다. 늘 아래로 시선을 두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생경한 기분으로 어둠으로 둘러 싸여 있던 공간이 점차 푸른빛을 입어가는 것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문득 삐걱거리는, 나무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 끝났다. 가면서 이야기 하마.”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개처럼 보이나? 하령은 문득 드는 의문을 차마 뱉지 못하고 들리지 않을 크기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토록 커보이던 이는 세월을 먹었음에도 여전히 굳건하게 버텨 서서 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부모가 어느 순간 자신보다 작아진 것을 느끼며 아파한다는데.

 

 “사실 말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폐하께도 말씀드렸다.”

 “말씀하세요.”

 “다시는,”

 

 무감한 눈빛이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이에게 가서 멎었다. 피하기 급급하던 눈길을 똑바로 받아내던 하령은 이어진 뒷말에 자신도 모르게 무너지는 표정을 채 수습하지 못하였다.

 

 “날 부르지 마라. 경으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단순히 움직이기 싫다는 것이 아닌, 이곳에 치를 떠는 이만이 행할 수 있는 감정을 담아내며 람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그를 따라갈 수가 없어, 하령은 제자리에 박힌 것만 같이 멍하니 서 있었다.

 

 “-와, 와. 저건 생각도 못했다.”

 

 그냥 평소처럼 차라리 핀잔을 주지. 핀잔 하나 없이 내뱉는 말이 더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을 저 이도 알고 있을까? 그래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일까? 물빛을 닮은 새벽안개가, 푸른 공기가 넘실거렸다. 해는 분명 떠오르고 있을 터인데, 짙은 빛깔은 도통 가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문득, 물속에 잠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숨통을 죄고, 목소리를 먹고, 종래엔 헤엄쳐 벗어날 수도 없는. 간신히 얕은 호흡을 반복하며 하령은 얼굴 위로 손을 덮었다. 무심한,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말에 다시금 남아버린 상처 때문일까. 들쭉날쭉 거세게 오가던 숨이 손가락 사이로 힘겹게 빠져나왔다.

 

 상냥한 새벽을 기억한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라며 다정하게 읊조리던 목소리를, 세상 가장 귀한 이를 대하는 것처럼 쓰다듬던 손길을. 기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건만 훌쩍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무너지듯 그 자리에 쪼그려 앉은 하령은 입술을 벙긋거렸다. 세류야, 여기 좀 와봐. 제발 와서,

 

 이 짙은 물속에서 나를 꺼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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