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뭐가 묻어 있어서.” 그는 얼른 그녀 이마에서 손을 땠다.
“미안.. 내가 깨운 거 아니야?” 시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수지는 씽긋 웃고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눈을 깜빡 깜빡 거렸다. 그와 같이 나란히 누워 처음 아침을 맞이하는 이 어색한 순간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순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그저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시후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보는 수지를 바라봤다.
예전 태이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볼 때면 항상 코를 찡긋한 체 빙그레 웃던 미소를 똑 같이 수지에게 미소지었다..
'지금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를 바라보고 있는걸까~?'
'아님 태이를 닮은 수지를 보고 있는걸까~?'
'지금 수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수지랑 같이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아~.'
그 둘은 그렇게 한참동안 각자의 생각에 빠져 서로를 묵묵히 바라봤다.
“링 링 링” .......
수지의 전화벨 소리가 둘 사이의 침묵을 깼다.
“아저씨 전화에요.”
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세요.. 네 아저씨. 시후씨 여기 있어요. 잠시 만요. 바꿔 드릴게요.”
그녀는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듯 얼굴을 붉히며 전화기를 시후에게 건넸다.
아저씨랑 통화하는 시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알겠어.. 바로 집으로 갈게.”
# # #
“쿨럭 쿨럭”
짙은 병색의 기침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여보”
시후 집을 다녀온 정애가 다급하게 방문을 열었다.
“당신 친구 강기남씨, 태이아빠 말에에요.”
그는 기침을 하다 너무나 오래 만에 듣는 기남이라는 이름을 듣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정애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기남씨가 태이 말고 쌍둥이 딸이 있었나요? 혹시 어릴 때 잃어버렸다든지 하는.."
"갑자기 무슨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거야? 태이는 외동딸이었어. 그리고 기남이가 태이를 너무 사랑해서 동생이 생기면 사랑이 나뉜다고 한명 더 낳는 건 어림도 없었어. 갑자기 왜 그게 궁금한 거요?”
“쿨럭 쿨럭”
그는 터져 나오는 기침을 겨우 참으며 정애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갑자기 궁금해서.”
‘그럼.. 쌍둥이도 없다면 진짜 태이를 닮은 애란 말인가? 어쩜 그렇게 똑 같을 수 있지? 죽었던 애가 살아 돌아 올리는 없고.. 혹시 그때 죽지 않았단 말이야? 아니야, 그것도 역시 불가능해.'
그녀는 혼란 스럽다는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빛이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구 흔들렸다.
“조사해봐야겠어.”
“뭘 조사한단 말이야? 당신 무슨 짓을 꾸미는 건 아니지? 난 당신을 한번 용서하지. 두 번은 절대 용서하지 않아!"
태섭이가 있는 힘을 다 모아 소리쳤다.
“쿨럭 쿨럭, 쿨럭 쿨럭”
“당신은 기침을 그렇게 하면서도 왜 담배를 못 끊는거에요. 저한테 역정 내지 말고 당신 건강이나 잘 챙기세요.”
정애가 아주 쌀쌀맞게 그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오래 살면 뭐 하나? 이제 시후도 혼자서 회사를 잘 운영해 나가니...이제 이 세상에는 아무 미련이 없어.”
“당신은 평생 당신 아들만 신경 쓰는군요. 혼자 남을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거죠?”
그녀는 빈정대는 말투로 그를 쏘았다.
“낮에 볼일 있어서 밖에 나갈 거니 저 찾지 마세요.”
“탁”
그녀는 냉정하게 말하고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쿨럭 쿨럭”
태섭이는 담배를 꺼내 태우며 깊은 숨을 내 쉬었다.
기남이와 태섭의 우정은 정말 진했다.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같은 시기에 군대를 다녀오고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시기에 결혼을 했다.
단지 기남이네가 자신들보다 일년 늦게 아이가 생긴 것이다.
“기남이 이 친구 아주 예쁜 딸을 낳았어.”
“딸아이 이름 태이 어때? 태어날 때부터 이쁘다 라는 의미로 태이?“
태섭이가 자신의 생각이 아주 만족스러운 듯 기남에게 제안했다.
“이름은 아내랑 상의해서 지어야지. 일단 고려는 하겠어.”
“나는 아들이고 자네는 딸이니 다음에 애들 커서 결혼하면 그땐 우린 친구가 아니라 사돈이 되는거야."
태섭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게 되면 재미겠는데.”
그렇게도 원했던 딸을 아내가 낳아줘서 기남이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하하하....”
기남이의 웃음 소리가 태섭의 귀를 울렸다.
“기남아.. 이 친구야...왜 그리 빨리 떠났어? 그것도 어린 태이까지 데리고..."
“쿨럭 쿨럭”
‘나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그는 한번 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는 뿌연 연기를 내 뿜었다.
“....미정아....”
오랫동안 그의 가슴깊이 묻어 두었던 시후 엄마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