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사귀는 여자 없어요? 제 주위에 선배 좋아하는 여자 많은데~~딸꾹."
"그래??"민재는 인기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듯 빙그레 웃었다.
"선배가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요? 딸꾹."
민재는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있어."
“아 진짜요? 어떤 여자에요? 고백했어요?
그 여자는 좋겠다. 딸꾹."
그녀는 연신 딸꾹질을 해대며 혀가 꼬인 채로 느릿느릿 질문을 했다.
며칠 피곤함이 겹친 데다 술이 들어가니 빨리 취하는 것이 어쩜 당연했다.
“아직...."
“왜요? 딸꾹.”
그녀가 게스츠름하게 두 눈을 치켜뜨며 아주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여자는 연애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도 전혀 눈치 못 채는 것 같아서. 혼자 짝 사랑 하면서 친구로라도 지내는 것이 나을 지, 아님 고백했다가 차이더라도 용기낸 것이 나을 지.. 아직 고민중이야.” 민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수지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 ........”
“많이 피곤 했나봐?” 수지는 어느새 잠 들어 있었다. 테이블에 엎드려 잠든 수지의 머리카락을 민재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왠지 우울해 보인다.
"수지야. 걸을 수 있겠어?” 그녀를 깨우기 위해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깊이 잠든 모양이다. 민재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금 망설이다 수지를 등에 업었다.
"수지야~집이 근처니깐 선배가 잠시만 업을께."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민재의 얼굴에 닿았다.
"쿵 쿵"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넓고 덤직한 어깨와 따뜻한 체온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음~~~포근해~남자 향기? 시후? 김시후?’
수지는 그의 체온을 더 느끼려는듯 목을 꽉 감샀다.
'아~따뜻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민재 선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 소리쳤다.
“정신이 들었어?”
“네...선배. 정말 죄송해요. 빨리 내려주세요.”
민재는 약간 머뭇 머뭇거리다 그녀를 내려 놓았다.
“저 많이 무거웠죠? 어 휴~땀 흘린거 봐."
그의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혀 있는 것이다.
"10분동안 절 업고 걸어 오신거에요? 벌써 집 앞이네요.”
수지는 선배에게 신세를 진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 안절부절 했다
“괜찮아.. 하나도 안 무거웠어.."
미안해하는 수지의 마음을 위하는 듯 가파른 숨을 쉬며 민재는 씩 하고 웃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깨서 다행이야. 비번을 몰라서 어찌하나 했거든.“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맛 있는 밥 쏠께요.”
수지는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거렸다.
“그래.." 민재가 환하게 웃었다. 당황해 하는 수지와는 달리 그는 행복해 보였다.
“나 그럼 갈게, 전화할게.” 환하게 웃으며 민재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민재 선배 멋지다.’ 떠나는 선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갑자기 찬바람이 휑하니 불었다. 쓸쓸함이 밀려왔다.
‘보고 싶다. 김시후~보고싶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음 속 깊이 꼭 꼭 숨겨뒀던 그의 얼굴이 떠 오른 것이다.
“차 수지... 정신차려.. 지금 이 인간을 떠 올린거야?”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녀는 돌아서다 막 시동을 켜고 떠나는 자동차 한대를 봤다.
“1594”
‘낯설지 않는 번호판인데.’
수지는 냉장고 문을 열고 우두커니 서 있다 냉장고 안을 살폈다. 혹시나 남은 맥주나 소주가 있나해서 확인하는것이다.
아직 취기가 좀 남았지만 오늘밤은 모든 것을 잊고 고주망태가 되어야 잠이 올 듯 했다.
“없네.... 사러나갈까? 귀찮은데..."
냉동실 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이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있다!!”
며칠 전 시원하게 해서 마시려고 너 놓고 까먹은 맥주 2캔...
“유~후!!"
신기루를 만나듯 그녀는 기쁨의 환성을 지었다.
“어라, 이게 뭐야?"
맥주가 얼어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졌다.
“녹여야겠다...."
그녀는 맥주를 꺼내 드라이기로 녹이기 시작했다.
“흐흐.. 잠시 후면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어."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또록”
문자?
'이 시간에 왠 문자?'
수지는 마치 기다리는 전화가 있는듯 두 눈을 번득이며 재빨리 전화기를 열었다.
-김과장입니다. 급한 자금 쓰실 분 연락 주십시오.-
“우 씨~~, 안 써 안 써!!”
“또록”
또 문자??
-홍과장입니다. 저금리 대출 가능합니다―
“이것들이..웃기고 있네, 돈 뭇 갚음 장기라도 팔아먹을 놈들.."
예전 아빠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정말 돈이 수중에서 똑 떨어졌을 때 미친 척하고 전화를 걸어볼까 한 적이 생각난 수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어떻게 견뎌냈을까?”
아빠가 그리웠다.
'만약 지금 내 곁에 그 사람이 있다면....'
수지는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시후를 떠 올렸다.
‘아니야. 아니야. 아빠가 항상 말씀 하셨어. 남자가 여자를 더 사랑해야 행복하다고...'
“잊어버리자, 수지야.”
수지는 전화기를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카톡."
수지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수지야. 이제 집에 도착했어. 잘자^^-
항상 다정한 민재선배다.
-네, 선배.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잘자요. 스마일 스마일-
“근데 선배처럼 멋있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누굴까? 그 여자는 천운을 타고 났군.”
“카톡”
수지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야, 기집애. 불금인데 뭐해? 오늘 박 까칠한테서 칭찬 들었다며. 오~~~ 우리 수지 짱인데.. 주말 잘 보내셩-
소연이는 모든 걸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어 휴가를 내고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그래, 소연아.. 너도 여행 잼나게 하고 와.-
'그래, 소연아. 이제 오빠를 용서해야지. 너 자신을 위해서.'
”휴... 나도 떠나고 싶다.”
수지는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맞다. 내 맥주...오늘 2캔 다 털어 넣고 아무 생각 없이 자야겠다."
그의 얼굴이 또 아른거렸다.
“정신 나간 년!!!!!”
수지는 제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 # #
“링~~링~~ "
”음... 전화소리??“
잠에 취해 눈이 잘 뜨이지 않는다. 아침 햇빛이 너무 강해 눈이 부셨다.
“여보세요." 목이 완전 잠겨 아주 허스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수지 아가씨..."
“아...아저씨.” 그녀의 정신이 번득 들었다.
“오늘 오후 혹시 시간 되시면 문화동으로 잠시 와 주시겠습니까?” 영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무슨 일로???”
“도련님이 며칠째 식사도 제대로 안 하시다가.. 어젯밤 아가씨를 만난다고 나갔다 오셨는데 그 이후 몸 져 누우셨습니다. 혹시 어제 만나셨는지요?”
“아니요, 전 어제 선배랑 술...”
갑자기 어제 밤 눈 앞에서 떠난 자동차가 생각났다.
1594..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어제 그 사람이 집 앞에 와 있었단 말이야?
그럼 선배가 나를 집에 업고 오는 걸 다 봤단 말이야??....
“도련님이 많이 아프신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저렇게 누워만 계십니다. 무슨 마음의 병이 생긴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요?~~ 근데 제가 간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요?”
속으로는 걱정이 됐지만 퉁명스럽게 말했다.
“꼭 와주십시오. 반드시 도움 될 것입니다. 잠시라도 꼭 들러주십시오."
영감이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녀는 망설여졌다.
'가면 나를 우스꽝스럽게 생각지 않을까? 근데 어제 밤 그는 우리 집 앞에 왜 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