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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아이어른
작가 : 세느아
작품등록일 : 2018.11.10

8년 전 입사했던 제약회사가 불법실험 때문에 무너진 이후 신창준은 그저 그런 어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앞에 나타난 한 남학생이 9년 전 보았던 아이란 걸 안 창준은 그에게 도와달라는 제안을 듣는다. 8년전 무너진 회사 때문에 그의 직장동료였던 수진은 자살했다. 처음 봤을 때 열 살이었던 아이는 이제 열아홉이 되어 복수를 하겠다고 창준 앞에서 선언한 것이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창준의 일상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30. 그녀의 장례식
작성일 : 18-12-15 12:32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4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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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을 먹기 직전 나는 그 소식을 들었다.

 귀찮아서 버티다 배가 너무 고파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라면을 뜯고 이제 막 끓기 시작한 물에 넣은 참이었다.

 "뭐라고?"

 똑똑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물었다. 너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때때로 생동감도 느낌도 없어서 마취상태의 팔다리를 만지는 것 같은 생경한 감각이 든다. 누군가 나를 만지는 것은 알아도 촉감이나 통증이 없다는 그런 사실.

 여러가지 부수적인 정보들이 내 귀로 흘러들어왔지만 들리지 않았다. 일단 알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직후였지만 난 여전히 배가 고팠다. 눈앞의 라면은 물조절에 실패한 채 면발만 퉁퉁 불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라면을 먹으면서 죽음을 생각했다. 살기 위해 먹으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라면은 밍밍한 맛이었다. 면은 툭툭 끊어졌다. 하지만 나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떠올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입속으로 꾸역꾸역 넣었다. 다 먹고 나서는 배가 불렀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오전의 일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주위의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단 한사람, 수진의 표정만은 밝았다.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은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아마도 당시에는 카메라 렌즈였을 쪽으로 시선을 둔채 웃고 있었다. 필요에 의해 얼굴과 흉부정도까지만 잘라서 쓴 사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겠지.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영정사진같은 걸 찍어놨을리 없었다. 사진 속 그녀는 웃고 있었고 나는 웃지 않았다.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잘 짜인 상황극같았다. 꿈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 빠져나올 생각을 못한 채 이어지고 있었다.

 왜 죽었니?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입 밖으로 내보냈을, 하지만 절대 답을 들을 수 없을 질문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그녀와 가까웠을까? 어쩐지 조심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아주 사소했던 하나하나까지 궁금해지고 또 알고 싶었다. 죽음이 나와 그녀 사이를 견고하게 당겨주었다. 하지만 죽음은 나와 그녀 사이에 커다란 간극을 남겼다. 더 이상 그녀는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전체적으로 선하고 티없이 맑은 얼굴선이 그랬다. 나는 마르고 힘없는 몸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너무 울어 지쳐버린 눈동자 속에 그녀의 죽음을 경계로 생겼을 깊은 그늘이 있었다. 육개장에 떠먹는 하얀 밥이 목구멍에 턱 막혔다. 우습게도 나는 그녀의 어머니 얼굴 속에서 그녀를 찾았다. 저 앞에 걸린 영정사진 속에 있는 건 그녀같지 않았다. 이미 살아 숨쉬는 그녀는 없고 사진만 걸려있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빈소에 찾아드는 이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검은색으로 옷을 맞춘다, 정도의 가벼운 지식만 가지고서 장례식장에 발을 들인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들은 이 상황과, 자신이 이런 곳에 올지 몰랐다는 것에 대한 어색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격식을 차리기보단 사진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사람들이 울면 상주인 그녀의 아버지도 참지 못하고 여러 번 어깨를 흐느꼈다. 나 또한 충격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꽃이 가득있고, 환하게 웃는 그녀의 사진 앞에서 대체 어떤 행위가 의미 있다는 건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다.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훌쩍이고 있었다. 나이든 어른들도 입을 꾹 다문 채 일회용그릇에 담긴 밥만 무표정으로 먹고 있었다. 한숨소리와 울음소리가 자꾸만 섞여들었다. 어딘가에서 그녀가 짜잔 하고 나타나지 않는 한 그 광경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이곳에선 그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나와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다는 걸 찬찬히, 그리고 빠르게 깨닫는 중이었다.

  한순간에 나락 속에 발을 담군 인간은 그 속에 빨려 들어간다.

 겉잡을 수없는 부정의 감정 속에서 태어날 수 있는건 허무와 절망. 두려움뿐이다. 이미 닫힌 귀로는 어떠한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별거 아니니까 힘내라는 말이라던가, 그조차도 알아서 시간이 흘러가면 괜찮을 거라던지 아니면 아예 그게 뭐가 힘든 건지 이해하지 못했던 사고에 이리저리 치이다 어느 순간 끊어졌을 것이다.

 희망이란 것이. 행복이란 것이. 앞으로의 미래라는 것이.

 거기까지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였다. 나는 의무감어린 숟가락질을 그만두었다.

 그 후로 숱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장례식장을 갔다. 애석하게도 누적되는 횟수 속에 그녀도 잊혀갔다. 누군가 죽고 그의 명복을 바라고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다가도 어느 날 생각했다. 이만큼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형식한번 갖추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절차를, 그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는 시간을. 그건 고인에게 정말 필요한 일일까.

 장례식장을 나오는 길목부터 공기가 바뀌었다. 때는 초겨울이었고 실내는 따뜻한 공기가, 바깥에는 제법 쌀쌀한 공기가 주위를 장악하고 있었다. 가슴 속 응어리를 뚫어줄 것 같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답답했다. 그건 집으로 오는 내내 느낀 감정이었다.

 어쩐지 지독한 피로가 몰려들어서 나는 외투를 입은 채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대로 불이 켜지지 않은 칙칙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그 현명함에 너무 의지했던 걸까? 그녀는 발밑이 무너지는 느낌에 괴로워했던 걸까? 그래서 세상을 져버렸나?

 그제서야 나는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이런 사단이 나기 전에, 나는 슬그머니 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뭔가가 이상하다. 성과는 나오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옳은 행동을 한다는, 어딘가에 큰 기여를 한다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보려하지 않는 뭔가가 사실상 본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던 것이다. 조금 이상해.

 나는 그 말을 대충 흘려듣는'척'을 했다. 나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녀가 작게 중얼거린 말은 본질에 가까웠고 그 영향력이 내 심장을 벌렁이게 했다. 나만 느낀게 아니라는 확신이 생기자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 멈추자고.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차츰 잘 모르겠다, 알아서 하시라. 라는 가벼운 이유로 프로젝트에서 내 이름을 지워갔다. 그렇게 가다보면 내 죄가 없어질거라는-당시엔 죄라고 정의하기 싫은 마음에 속으로도 생각치 않았다-얄팍한 믿음이 있었다. 수진은 내 몫까지 시간을 들였다. 내게 불평불만 한마디 꺼내지 않는 그녀를 의아하게 여겼지만 이 또한 나는 그냥 넘겼다.

 우리가 도명제약의 일원으로 있던 마지막 몇 달동안 나와 마주치면 소심하게 놀라던 그녀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항상 눈을 피하지 않아서 그때마다 조금씩 놀라던 나도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다. 우리는 친해져 서로 장난을 친 적도 있었다. 그런 일상적인 일들이 있었다는 깨달음에 나는 침대에서 퉁 하고 튕겨지듯 앉았다. 베시시 웃는 그녀의 눈가. 정말 즐거울 때 그녀의 눈은 반달을 그렸다. 모습만으로 친근함이 전해져오는, 무장해제같은 웃음이었다. 반대로 어둡게 굳은 그녀의 얼굴도 떠올랐다. 주위환경이 순식간에 바뀌던 그 시기의 얼굴. 책상을 정리하고 자료를 경찰에게 제출하고, 소지품 하나하나도 검사를 받고나서야 주섬주섬 챙겨가던 그녀가 정확히 기억났다. 나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그녀의 모습.

 스물아홉 죽음을 선택할 만큼 힘들었던 그녀. 이젠 그렇게 짐작하는 것만 가능했다.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오랜 동료의식으로라도 나만은 알아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문득 이렇게 될걸 내 스스로 알고 있었다고 느꼈다. 대충 넘긴 사소한 일들이 지금을 예견하듯 펼쳐졌다. 알 수 있었는데. 그때 놓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왜 눈치채지 못한건데.

 내가 존재했던 세상이 무너지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못했다. 곁에 있던 사람또한 지키지 못했다. 애도하거나 슬퍼할만한 자격이 내게 있나?

 어느새 눈 옆이 홧홧해졌다. 우냐고, 네가 울 자격이냐 있냐고. 다른 한구석에서 나 자신을 냉혹하게 채찍하는 시선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창피해하면서도 나는 울었다. 누가 위로해주면 안된다고 외치면서 괜찮다고 말해주길 기다렸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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