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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유해화합물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이건 금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의 정의를 다르게 쓰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5화. 운명의 수레바퀴
작성일 : 18-12-15 00:36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4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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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영화는 객관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때려 부수기만 했다. 주인공은 성질이 나쁜데 이상하게 정의롭고 적을 시원하게 이길 정도로 강하진 않았고 길거리 시민보다는 우수했다. 길거리 시민이 마동석이었으면 모르겠지만.

 

 그러나 선은 내용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개연성이고 심미성이고 작품성 같은 것보다도 영화의 핵심은 2시간 동안 단절된다는 것에 있다. 오늘 같은 경우엔, 열대야에서.

 

 마지막 기승을 부린다는 더위를 피해 온 심야의 영화관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영화엔 별로 관심 없었는지 앞자리 커플은 내내 꼭 붙어 입술을 맞추고 손을 만지다 나갔고, 친구로 추정되는 남자 셋은 돈 아깝다고 짜증 섞인 욕을 내뱉었다.

 

 눈을 감고 있던 선의 어깨를 누군가 톡톡 건드렸다. 벌써 청소하는 건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낀 남자가 품에 팝콘 통을 안고 서있었다.

 

 “얼마 전에 우주랑 클럽에 있었죠?”

 

 들뜬 목소리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빛내는 상대는 아무래도 기자나 팬으로 의심스러웠다.

 

 “아니요.”

 

 일어서 나가려 하자 남자는 당황한 듯 어어, 거리며 따라왔다.

 

 “아니, 나 수상한 사람은 아니고.”

 

 남자는 속닥거리듯 말했는데 그게 더 수상해 보였다. 선이 발걸음을 멈추지 않자 약간 뛰다 시피해서 앞을 막아섰다. 이미 다 빠져나간 영화관의 출구 길엔 두 사람 밖에 없었다. 남자는 마스크를 내리고 선을 쳐다봤다. 그래도 모르겠냐는 눈이었다.

 

 동요도 하지 않는 선의 눈동자에 남자가 모자까지 좀 더 들춰 올렸다. 깨끗하게 드러난 얼굴은 딱 떨어지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나 몰라요? 우디? 정세민? 미남 래퍼 우디? 더 히든 레이블 간판스타 겸 보스.”

 

 무대에서 능글맞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매직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여자들이 등을 돌리거나 팔을 뻗어왔다. 아현에게 들어보니 유명한 팬 서비스라고 했다. 붉은색 티를 입은 등에 사인을 해주던 남자가 떠올랐다.

 

 “아. 매직?”

 “응응. 기억나죠?”

 

 세민은 좀 전에 제 입으로 늘어놓은 자기 자랑은 전혀 창피하지 않은 듯 했다.

 

 “다행이다. 영화 재밌게 봤어요? 왜 혼자 왔어요? 우주 짱 바쁘죠?”

 

 게다가 사교성도 어마어마하다. 말도 많고.

 

 원래대로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올리고도 쉴 새 없이 떠드는 세민에게서 나는 지나치게 달콤한 팝콘 냄새에 쳐다보니 통은 깨끗하게 비어져 있었다. 계속 말한다고 버리는 걸 까먹은 것 같아 대신 버려줬다.

 

 “오. 감동.”

 

 어느 포인트에서죠?

 

 “별 일 없으면 햄버거 같이 먹을래요?”

 

 선은 큰 고민 없이 고갤 끄덕거렸다.

 

 “말 편하게 하세요.”

 

 세민은 기쁜 얼굴로 조금 붕붕 뛰었다. 투명하게 온 몸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활동 비수기라 사람들이 알아볼까 싶어 연예인인 척 좀 숨기면서 나와 봤는데 아무래도 너무 쉰 것 같다, 예전에는 롱패딩을 끝까지 잠그고 걸어 다녀도 알아봤는데 라고 한탄하다, 금세 이 노래 들어봤냐며 차의 오디오 볼륨을 높여 따라 부르는 산만함이 오늘 본 영화 못지않다. 우주가 회사 형들 다 진짜 재밌고 돌아이 같아, 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차에서 주문한 햄버거를 받아들고 근처 야경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주차했다. 세민은 얌전히 햄버거를 먹는가 싶더니 흘러 나오는 우주 노래에 눈을 반짝하고 물었다.

 

 “혹시 우주 새 앨범 작업하는 노래 들어봤어?”

 “네.”

 “끄. 나도 듣고 싶은데! 녹음실 오기 전까지 절대 안 들려줄 거래.”

 

 음악에 관해서 고민이 많고 자기 확신이 적은 편이라 우주는 본인이 원하는 일정 이상의 완성도가 있어야 들려줬다. 선은 시작부터 함께해서 아예 논외의 대상이고, 레이블의 형들은 편하게 대해주지만 우주에겐 존경하는 선배들인지라 아직까진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래요.”

 “안 그래도 예뻐 죽겠는데.”

 

 눈만 봐도 애정이 샘솟는다. 앞에 있었으면 아이 안은 아빠처럼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적댔을 것만 같다. 얼른 듣고 싶어라. 발을 동동거리던 세민은 갸웃거리다 말고 무언가 번뜩 떠올랐는지 손뼉을 쳤다.

 

 “혹시 너 피아노 쳐?”

 

 선은 햄버거를 먹는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양손으로 제 볼을 감싸며 눈을 깜빡이다가 세민은 히죽거리며 콜라를 마시는 선을 자세히 살폈다.

 

 영입 당시 작업 방식에 대한 얘기를 물었을 때 우주는 망설이다가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연주를 해주고 흐름 진행이나 가사 설정에도 영감을 주는 사람.

 

 세민이 여자 친구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고갤 저었다. 그 눈이 뭔가 말하려다 마는 눈이라 얼마 뒤 술자리에서 축하주에 이미 눈이 풀린 우주를 데려 나와 우유를 사 먹이며 은근슬쩍 다시 물었다. 어떤 사람이냐고.

 

 우주의 답으로 추측했던 이미지가 있었다. 선은 길들어지지 않는 고양이 같은 눈매와 음영이 짙은 눈동자가 합쳐져 반항심과 경계심이 가득한 아이처럼 보였다. 화사하고 씩씩한, 혹은 여리여리한 타입일 거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물어 보고 싶은 건 한 가득이지만 세민은 인내하기로 했다. 딱 하나만 물어야지.

 

 “우주 어떻게 생각해?”

 

 레이블 애들한테 너무 물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시어머니처럼 말했다. 미묘하게 날카로웠던 말투를 못 느꼈는지 선은 덤덤한 얼굴로 다 먹은 햄버거 포장지를 접어 봉투에 버렸다.

 

 “꽃을 피울 선인장이요.”

 

 사막의 태양처럼 건조한 목소리임에도 확신이 느껴졌다.

 

 “기대되고 기다려져요. 앞으로 더.”

 

 세민은 씩 웃었다.

 

 “동지네.”

 

 자식 자랑을 들은 부모의 기분으로 순간 뿌듯했는데,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마냥 좋은 답은 아니었다.

 

 우주의 답은 훨씬, 더 개인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더 이상 캐물어서 곤란하게 만들 수도 없고 괜히 이상한 말이라도 꺼내면 안되니까.

 

 “내 신곡 들어볼래?”

 

 세민은 단순한 사람이었다. 블루투스 되어 있는 핸드폰에서 제 신곡 파일을 찾아 재생시켰다. 선은 노래를 빨리 이해했다. 개인적인 호불호는 낮은 편이었고 곡 자체를 분석하는 머리가 비상하고 감각이 좋았다.

 

 말이 잘 맞는 상대를 만나 신난 세민과 달리 선은 배도 부르니 졸음이 슬슬 눈꺼풀을 감기게 했다.

 

 “근처 택시 타는 데 내려 주세요.”

 “응? 아냐.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

 “아니에요. 집이 외곽이라 택시 타고 가는 게 편해요.”

 “너무 늦었어. 위험해.”

 

 철부지 애 같다가도 단호한 아빠 같은 면이 있는 세민은 그냥 보낼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밀어 붙였다. 선은 결국 주소를 불러줬다. 흥얼거리며 운전하다 문득 옆이 지나치게 조용하다 싶어 보니 선은 잠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 나니 눈코입이 올망졸망 모인 작고 하얀 얼굴은 밤비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쩐지 낯익은 느낌. 연예인을 닮았나? 예쁜 얼굴이니까.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우주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고, 동시에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농담도 잘하고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있다. 차가운 인상이 웃을 때면 눈 사이로 새싹이 돋는 모습처럼 폭 빠지게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한 우주, 진짜 파이팅이다ㅡ 세민은 주먹 꽉 쥐고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에 안개까지 가라앉은 고요한 거리에서 네비게이션은 길 안내를 멈췄다. 제대로 온 건가. 어깨를 흔들자 선은 거북이처럼 끔벅끔벅거렸다.

 

 “감사합니다.”

 “여기 맞아?”

 

 창 밖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얼굴이 얼른 침대에 눕혀줘야 할 것 같다.

 

 “들어가서 푹 자.”

 “네. 들어가세요.”

 “아. 맞다, 이름이 뭐야?”

 

 매번 다른 이야기 한다고 제일 중요한 걸 제일 늦게 묻는다. 이걸 알아야 우주한테 가서 만났다는 증거로 내밀 텐데.

 

 “선이요, 독고 선.”

 

 문이 닫혔다. 곧 이어 영화 죠스 등장 음으로 해놓은 벨소리와 함께 블루투스 된 차의 화면에 이름 두 글자가 떠올랐다.

 

 세민은 머리를 핸들에 박았다.

 

 “-어디야?”

 

 머리를 박으면서 전화를 받았는지 상대의 음성이 나붓이 차안에 가라앉았다.

 

 “-듣고 있어?”

 “작업실이야?”

 “-응.”

 “온아.”

 

 최근 들어 거의 부른 적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그의 이름. 이제는 그도 잘 응답하지 않는 그의 이름.

 

 핸들을 꽉 잡았다. 그새 조금 밀려간 안개 덕에 보이는 길거리는, 언젠가 걸은 적이 있었다. 온의 가방을 잡고 뛰어가며.

 

 음악을 그만두었던 그를 회사로 영입한 건 세민이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중에 전화할게.”

 

 바닥에서 그를 끄집어내기 위해.

 

 엉킨 붉은 실을,

 굴러가기 시작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세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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