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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봐도 애 엄마가 너무 이뻐.'
수현을 가만 보던 애란이 시형을 부른다.
" 야. 저 율이엄마 어떤 거 같니?"
" 수현 누나요? 뭐가요?"
" 누나라고 불러?"
" 매니저들끼리 쉬면서 얘기할 때 아무래도 누나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친해졌죠. 워낙 잘 챙겨주세요."
" 그러니까 호칭이 왜 그러냐고. 애 엄마면 그냥 율이엄마라고 하면 되지."
" 에이~ 무슨 율이 엄마라고 그래요 버릇없이. 제가 나이도 더 적고 애 엄마 같지도......"
" 애 엄마 안 같으면 어떤데? 그래 내가 궁금한 게 그런 거야. 남자가 볼 때 어떠냐고. 애 있고 없고를 떠나서."
" 있는 애를 어떻게 없다고 그래요."
" 넌 애가 융통성이 부족한 거니 상상력이 딸리는 거니."
" 누나가 너무 상상력이 풍부하신 거 아니세요?"
" 묻는 말에 나 대답하지?"
" 음...... 대화하다보면 재미도 있고 배려심도 많고 무엇보다......... 얼굴은 정말 웬만한 연예인 뺨치잖아요. (싱긋) 가끔 대화하다 넋 넣고 볼 때도 있다니까요. 피부 보셨죠? 가까이서 보면 실핏줄이 보일 정도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매일 샵 갔다 오냐고....."
" 그만그만! 말 안 할 것같이 그러더니 너 아주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다?"
" 누나가 성의 없이 대답하시면 싫어하실까 봐요."
" 말은 잘한다. 가만 보면 너 여우 같다니까."
"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전 우직한 곰과라고요."
' 내가 여우가 아니라 네가 미련곰탱이지. 이 말까진 안 했는데 얼굴이나 뭐나 너보다 훨~씬 낫다.'
애란은 다시 한번 수현을 뚫어질 듯 노려본다.
' 분명 뭔가 이상해. 아무리 친한 누나 동생 사이라고 해도........ 설마 그래도 애엄만데 리안이 바보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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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마지막 신이....... 수현 씨 미안해. 워낙 애란 씨가 인터뷰며 이것저것 생각 없이 스케줄을 많이 잡아놨더라고 (속닥속닥)"
" 어쩔 수 없죠."
" 너무 걱정 말아요. 멀리서 따는 거라 절대 다 칠일 없을 테니. 몸 부딪힐 없어요."
" 네."
오늘 촬영장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은석의 마음을 알았지만 율이의 마지막 촬영 날 특히나 애란 과의 신 때문에 수현은 그럴 수 없었다. 집에서 은석과 연습을 많이 했지만 수현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율이 외려 그녀의 손을 잡는다.
" 율이 하나도 안 무서워. 인재 아빠가 이렇게 샥~하면 된댔어."
" 율이 화이팅!"
" 응 엄마 율이 잘하고 올게요."
율이 자리를 떠나고 홀로 남은 수현의 옆으로 은석이 다가온다.
" 걱정되지?"
" 응...... 이럴 줄 알았으면 연기시키지 말걸 그랬나 싶어."
" 어떨 때 보면 율이가 자기를 키우는 거 같다니까. 후후 너무 걱정 마 바로 내가 연결하는 부분이라 알아서 잘 치고 들어갈 테니까."
" 근데 저기 지 대표님이랑 같이 온 외국인들은 누구야?"
" 나랑 같이 일했던 그리고 일할? 사람들."
" 그래?"
- 조금 전 -
은석과 노감독이 율의 촬영 문제로 대화하는 동안 수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세트장 입구를 서성인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지 대표와 같이 들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 어머 수현 씨 아~맞다 내 정신 좀 봐. 오늘 율이 마지막 촬영이죠?"
" 네. 벌써 그렇게 됐어요. 후후"
" 누구?"
" 아~ 우리 소속 아역 어머니."
" 오우~ 말도 안 돼. 이렇게 아기 같은데 아이 엄마라는 거야? 그런 못씁짓을 한 사람이 누구지?"
" 피터 무슨 소리야. 수현 씨는 너보다 한살이나 많다고."
" 거짓말. 또 리안처럼 날 속이려는 거지?"
" 리안보다 누나 맞아요."
" 우리 말을 알아들은 거야? 한국 사람들 영어 잘한다더니 정말이었네?"
" 그러니 내가 말조심 하랬잖아."
피터의 말에 안젤라가 기다렸다는 듯 쏘아붙인다.
" 미안해요. 기분 나빴다면 대신 사과할게요."
" 전혀요. 어려 보인다면 칭찬인걸요. 후후"
안젤라의 말에 수현이 미소짓는다.
" 세뇨리타~ 당신의 남편은 참 행복하겠어. 이렇게 천사 같은 당신과 아침에 함께 눈 뜰 수 있으니."
" 미안하지만 세뇨리타도 아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마주하는 건 내 사랑스러운 아이뿐이야. 난 이혼했어."
가녀리지만 당찬 그녀의 말대꾸에 피터는 호기심이 생긴 듯 한 발 더 다가선다. 그 앞을 막아선 건 은석이었다.
" 여기까지."
" 리안!!"
안젤라가 리안의 목을 휘감으며 뜨겁게 포옹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현이 놀란 토끼 눈에서 점차 도끼 눈으로 바뀌는 모습에 지 대표는 웃음이 났다.
" 후후후 수현 씨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 안젤라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속닥속닥)"
지 대표의 말에 수현은 어안이 벙벙하다.
" 안녕하세요."
그 순간 누군가 지 대표에게 인사를 건네곤 옆에 있던 수현에게 눈인사를 한다.
" 어머 주연 씨."
" 혹시 지금 바쁘세요?"
" 아니 이제야 한가해진 듯해요."
" 그럼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 영광이죠."
' 꾸~욱'
어느새 혼자 남은 그녀에게 피터가 다가와 손가락으로 수현의 볼을 누르고 있다.
" 뭐지? 치워."
" 어떻게 이렇게 모차렐라 치즈 같아?"
" 푸하하하"
" 왜 웃어?"
" 아니 이런 데서 동서양의 표현이 다르단 걸 느끼는 게 웃겨서."
" ?"
" 우리나라에선 찹쌀떡이라고 표현하는데 모차렐라란 말을 들으니 너무 낯설고 웃긴 거 같아."
" 촤쉘떠?"
" 아니 찹쌀떡."
피터가 아무리 수현의 발음을 따라 해보려 하지만 도무지 쉽지 않다.
" 아~ 한국말은 왜 이렇게 어려워~"
" 한국말 어렵지?"
" 너무 어려워."
" 근데 한국여자는 더 어려워. 그러니까 나한테 이러지 마. 헛수고야."
" 이혼했다고 하지 않았어? 설마 나를 보고도 그냥 거절할 일은 없을 테고 한국에선 한번 결혼하면 다른 사람 안 만나?"
" 아니 그것보다 까칠한 내 멋진 남자친구가 너를 죽일 거 같거든."
" 아하. 남자친구가 있다는 거군 아쉽네. 근데 죽인다고? 나를 어떻게 알고? 아무리 내가 유명해도 보지도 않고 죽여?"
그 순간 은석이 피터의 어깨를 잡아끈다.
" 이렇게 보고."
" 설마........"
" 응 맞아. 그러니 너는 더 이상 이 여자에게 접근금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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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다 보면 내가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나를 마시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 쨍그랑'
" 아이고 또 시작이여 또 시작."
" 아니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저 지랄이데."
" 그 왜 있잖어. 권 회장 아들 들어오고 난 후로 더 그런다니께."
" 허긴 속이 속이것어. 남편이 잘 챙겨 주길 혀 그렇다고 지 배로 낳은 자식이 있기를 혀. 쯧쯧쯧."
하루가 멀다 한 주정에도 같은 여자로서 동정심이 들어설지 그들은 혀를 끌끌 내두를 뿐이다. 이때 민영의 등장은 그녀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 많이 드신 거 같은데 그만하시죠."
" 이제 오니? 어때 그 사람 입속 혀처럼 놀아주니 너한테도 콩고물이 떨어져 할 만하지? 그래도 너무 믿지는 말렴. 그 사람은 자기 자신 말고 믿는 사람이 없어."
" ............."
" 그리고 한 가지 더 여기서 네가 가져갈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거야. 그 사람이 너에게 준 모든 것들은 다시 다 내 품으로 돌아올 테니까."
" 없습니다."
" ?"
" 그 사람이 저에게 준 것 단 하나도 가지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 그럼 뭐야! 네 속셈이 뭐길래 내 눈앞에서 이렇게 알짱대며 내 속을 뒤집냔 말이야?!"
" 오고 싶어 온 것도, 있고 싶어 있는 것도 아니란 거 당신이 더 잘 알잖아. 아니면 당신도 권 회장의 개 일뿐인 건가?"
" 후후후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밥그릇까지 내어줬으니 어쩌면 너보다 더 비참한 개가 나일지도 모르겠구나. 크크크"
민 여사는 그의 말에 이제야 자신의 처지가 제일 비참했다는 걸 깨닫는다. 권 회장의 꼭두각시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걸.
" 모든 걸 돌려드리겠습니다."
" ?"
" 단 한 가지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 ?"
" 그저 제가 원하는 거, 그 하나만 도와주십시오."
"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나를 떠보라고 권 회장이 시켰나?"
" 더 이상 당신에게 숨기는 거 없습니다. 이 하나만 약속한다면 권 회장이 아닌 당신의 충성스러운 개가 되어 드리죠.."
" ..........그게 뭐지?"
" 제 사람들만 지킬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 네 사람이라면............."
" 내 가족. 그들만 권 회장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그 다음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위험할지도 모를 일인데?."
" 더 이상 방법이 없더군요. 그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방법이."
" 후후후 그렇다면 너는 나와 한배를 탄 거로군. 같은 생각 같은 뜻을 품었으니."
민 여사에게 말했듯 물러설 곳도 그리고 나갈 곳도 없는 민영에겐 마지막 도박과도 같은 선택이었다. 민 여사 역시 그의 손을 잡는 건 모험과도 같은 일. 하지만 어쩌면 서로가 갖은 카드를 제일 잘 이용할 수 있는 만남이 아닐까 생각하는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