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악귀(惡鬼)
작가 : 하형
작품등록일 : 2018.12.5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해, 사람들은 그 날을 '해가 타락한 날'이라고 기억했다. 세상은 혼돈에 휩싸였고, 난생 처음보는 악귀들이 대지를 점령하고 시작하는데...
한 편, 부유한 가정에 자라 기사단에 입단했던 파사르는 해가 타락하며 생겨난 의문의 질병에 걸려버린 어머니에 의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어머니마저 직접 죽여야 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파사르는 그 날 이후로 질병에 걸린 '비어있는 자'들과 '악귀'들의 몰살하는 데 온 생을 바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인간들의 모든 대지를 빼앗겨 버린 후, 마지막 남은 도시이자 천연의 요새 '테라피노'에서의 최후의 항쟁을 이어가던 인간들에게 그간 자취를 감추던 신이 나타나는데...

 
11화
작성일 : 18-12-14 17:55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400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차가운 냉기가 담긴 하얀 숨결이 투구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차디찬 음성에 닿자마자 야수귀들은 있는 둥 마는 둥한 꼬리를 배때기에 달라붙을 정도로 말아 넣고 몸을 떨었다.

 그것은 악귀로써 난생 처음 겪어보는 공포였다. 본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악귀는 눈을 뜬 순간부터 인간을 죽이는 것이 가장 큰 본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관계에 우위에 있어야 할 자신들이 먹잇감이 되 버린 것이었다.

 끊임없이 예열하기 위해 움푹움푹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던 목구멍은 빳빳하게 굳어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공격을 위해 단단히 밀착시켜 놓았던 네 다리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금이 저리는 공포에 힘을 주면 줄수록 애먼 소변만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양 옆으로 치워버린 파사르는 눈앞에 굳어있는 야수귀에게 검을 겨눴다.

 정상을 벗어난 개수에 크기가 모두 제각각인 눈동자에 비치는 기다란 장검의 끝이 눈알의 중심에 위치한 미간을 뚫고 들어갔다.

 운이 좋게도 죽음에 대한 고통은 없었다─전쟁터에서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고 숨을 멈춘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두개골을 파고든 검을 빼내자, 칼날의 너비와 동일한 크기에 구멍이 뚫린 이마에서 피가 울컥하고 쏟아졌다.

 그리고 그건 베이고 찔려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르는 방법만이 다를 뿐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마침내 파사르의 검이 멈추었을 때, 파사르가 지키고 있는 길목에 숨통이 붙어있는 악귀들은 보이지 않았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단순한 동작─목을 베는 일 따위─을 반복한 파사르는 즐비한 사체 한가운데에 서서, 두터운 판금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숨 한 번 껄떡이지 않고 있었다.

 파사르는 굴속에 숨어들어 있는 훈련생들에게 ‘악귀들을 학살하는 존재’라는 ‘학살자’란 별명이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톡톡히 보여주었다.

 

 길목은 다시 고요를 찾았으나, 주변 일대에서는 아직 소란스런 전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틀릿의 손목 부분에 둘러져 있는 동물의 털로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낸 파사르는 칼날을 어깨에 기대고는 투구 속 어둡게 가려진 눈동자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축축한 굴들 속에서 숨을 죽이고, 빠끔히 눈 어귀만을 내밀고 자신의 동태를 살피는 훈련생들의 시선들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둠 안에 숨은 고양이들의 눈가는 두려움에 떨고 있기도 했으나, 어리석게도 갖지 말아야 할 동경심이 담겨있는 눈빛들도 섞여 보였다.

 

 “저도 당신들과 같은 한낱 인간입니다. 신체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죠. 학살자를 진정한 학살자로 만드는 것은 지옥과도 같은 이곳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목숨줄을 수도 없이 내놓으며 쌓아올린 경험과 부단한 노력입니다. 절대로 자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이 훈련소에서 배운 장난질은 여기선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해가 사라진 밤을 이곳에서 넘기고 싶다면 진이 빠질 때까지 발버둥 쳐야할 겁니다.”

 

 파사르가 내뱉은 말은 실전을 경험한 이만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었고, 여태껏 살아남은 이들이라면 당연히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검은 장미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기척을 숨기고 웅크려 있던 사마귀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외면의 조합에서 나온 학살자들과 같이 홀로 싸우는 대단한 인물은 아니긴 했지만, 사마귀라는 별명이 생겼을 만큼 갖은 생사를 넘나들은 학살자였다.

 그가 뼈저리게 공감하는 내용이라면, 멋모르고 바깥구경을 나온 풋내기들에게는 뼈와 살이 되는 말이었다.

 

 이렇게 1차 전투는 끝이 났다. 해가 사라진 긴 밤에는 약 2번에서 3번 정도의 악귀들의 습격이 이루어졌다.

 첫 번째 습격은 짐승의 형태를 띤 야수귀들의 공격이고, 두 번째 습격은 야수귀보다 모든 능력에 있어 밑을 웃돌고 있어 한결 수월한 인간의 형태를 띤 인형귀들이 다수였다.

 세 번째 습격은 물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에 가까스로 넘어온 악귀들을 상대하는 것인지라 습격이라기보다는 그 날의 전투를 마무리 짓기 위해 학살자들이 직접 수색을 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쌉싸름한 피냄새를 등에 업은 이른 아침─이제는 아침이라 부를 수 없었지만─의 쌀쌀한 공기가 옛날 일을 떠올리게 하는 안개를 데려오자, 파사르는 찌릿할 정도로 저려오는 왼쪽 팔 전체를 슬며시 쓰다듬었다.

 뿌연 안개가 대기를 뒤덮는 날이면 그의 팔은 영영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 악귀를 처절하게 기억하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것은 복수 따위를 바라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일종의 공포였다.

 

 학살자들이 학살자라는 이름을 가지기 전, 명망 높은 기사단들을 모두 전멸시키며 최후의 요새 테라피노까지 인간들을 내모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악귀가 있었다.

 취명귀(取名鬼)……흔히들 야수귀(野獸鬼), 인형귀(人形鬼), 충귀(蟲鬼) 등으로 분류되는 악귀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칭호를 가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취명귀의 힘은 인간의 것으로는 감히 뛰어넘지 못할 만큼 강하고 지독했다.

 악귀들의 습격으로 벤투라가 허무하게 함락되어, 2년의 시간 동안에 피난생활 및 갖은 고초를 겪어가며 중소도시 리치타까지 쫓겨났을 적에 파사르는 몸소 취명귀의 힘을 경험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아직 벤투라의 영주소속 기사단이었는데, 더 이상 관찰해야할 영지가 없어짐에 따라 임무가 사라진 위병대에서 친위대로 전환되어 매일을 사투를 버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 무렵의 악귀들의 대대적인 공습은 달이 떠있는 낮 중에서도 구름 한 점 없는 월광이 훤한 날에만 소강상태를 이루었을 뿐 끊임이 없었다.

 인간은 계속해서 후퇴했고, 날마다 큰 인명피해를 겪으며 영토를 잃어가고 있었다.

 절벽의 도시 마운티리아, 꽃의 도시 벤투라, 음악의 도시 라일리, 왕국의 찬란한 수도 메트로폴리까지……

 각자의 영지를 잃은 귀족들과 그들의 휘하기사단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한들, 수도의 단단한 방어시설마저 함락시켜버린 악귀들의 숫자와 공격력은 감당키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왕을 포함한 왕실 가문은 살아남은 국민들과 함께 해안 도시 오프레로의 후퇴를 선언했다─지금 생각해보면 ‘국민들과 함께’라는 국왕 팔토 3세의 선언은 신의 한수와 다름없었다.

 국왕은 오프레로 내몰리고, 추후에는 테라피노로 입성하는 날까지도 자신의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부단히 목청을 높였었다.

 그에 따른 희생은 왕실기사단도 아닌 충성을 강요당한 귀족들의 휘하기사단들이 치렀다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혼란스러운 시대에 귀족들의 잔여 세력들을 제거시켜 혹시 모를 반란을 꾀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였을 수도 있었다.

 여하튼, 그 날의 국왕의 선택과 귀족들의 희생은 오늘날 행여 그들의 횡포가 심하다 하여도 쉽게 항의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갖추게 하였다.

 

 파사르는 당연히 벤투라 기사단 소속으로 퇴각 시간을 벌어야 하는 희생양에 불과했다.

 파사르는 지옥이 나날이 된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두려웠던 그 날에 정말이지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죽을힘을 다해 항쟁했다.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기사들도 어찌나 악을 썼는지 바짝 준 턱힘에 어금니가 갈리다 못해 깨지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도시의 변변치 않은 성벽과 급하게 마련한 바리게이트로는 개미떼를 이루어 몰려오는 악귀들을 막아내긴 힘들었다.

 

 기사들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퇴각명령만이 어서 귓가에 울리기를 바라고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급격하게 패배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전장에서, 바로 옆을 기대던 동료들이 잔인하게 사지가 뜯겨 죽어나가는 데도 바라는 북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전열이 뒤로 밀리기 시작하자, 기사들의 위태롭게 타오르던 마음의 심지가 끝내 꺼져버렸다.

 전혀 가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겁을 먹은 기사들은 퇴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아직 울리지 않았으나, 하나 둘 불안정하게나마 유지되고 있던 전열을 이탈해 도망을 쳤다.

 기사단으로써 하사받은 신성한 임무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불명예스러운 기사로써 낙인이 찍히는 행위였다.

 더불어 그런 행위는 고위 기사 및 기사단장의 날붙이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탈하게도 그들을 막아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열세의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숨기고 늠름하게 사기를 북돋아주고, 때론 직접 무기를 들고 나서 전세를 뒤집어 줘야 할 이들이 제일 먼저 도망을 간 것이었다.

 
작가의 말
 

 자연스럽지 못 한 부분이 있어 수정했습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1 20화 2019 / 1 / 9 277 0 3991   
20 19화 2019 / 1 / 7 281 0 3696   
19 18화 2019 / 1 / 4 270 0 3654   
18 17화 2019 / 1 / 2 259 0 2516   
17 16화 2018 / 12 / 28 233 0 3312   
16 15화 2018 / 12 / 26 246 0 3377   
15 14화 2018 / 12 / 25 241 0 3099   
14 13화 2018 / 12 / 19 248 0 3161   
13 12화 2018 / 12 / 18 250 0 3389   
12 11화 2018 / 12 / 14 243 0 4007   
11 10화 2018 / 12 / 12 247 0 3129   
10 9화 2018 / 12 / 10 257 0 3575   
9 8화 2018 / 12 / 7 253 0 3985   
8 7화 2018 / 12 / 5 259 0 3643   
7 6화 2018 / 12 / 5 223 0 3992   
6 5화 2018 / 12 / 5 285 0 3564   
5 4화 2018 / 12 / 5 253 0 3693   
4 3화 2018 / 12 / 5 265 0 3597   
3 2화 2018 / 12 / 5 235 0 4039   
2 1화 2018 / 12 / 5 247 0 4619   
1 프롤로그 2018 / 12 / 5 431 0 539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