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눈으로 봐요?”

　묻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순희 눈동자가 지금까지 봐온 최고의 풍경을 가진 소재거리나 되는 것처럼 눈이 카메라 렌즈가 돼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지금 순희 눈에서 나올 최고의 아름다운 눈빛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저 사람 눈에서는 나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와중에 지금까지 갈고 닦은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해 꼬셔 버릴까도 같이 생각하느라 정신이 엄청 바쁜 중이었다. 당연히 혼자 두고 줄행랑을 쳐버린 박대리 때문에 뿔이 나 있는 순희 심정이 담긴 묻는 말은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순희도 수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직장에서 봐온 남정네들. 멀리까지 필요 없고 원수 같은 이완호나 박한철은 입만 야무졌지 덩치는 새 발에 피에 불과했다. 단지 그들이 가진 장점은 직장이 대기업이니 돈만 조금 더 많이 번다는 것뿐이지 이들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고 있다는 건 마음이 끌린다는 것인데 어쩐지 자존심이 상해 온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순희의 의심이 가져온 추상적인 환상이 아닌 숨어있는 점쟁이 기질일 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벌써 내 마음을 읽었나? 어이 씨! 쪽 팔려! 저 눈 속에 마음을 쳐다보는 거울이라도 있나? 순희 머리가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돌아갈 때 수리는,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마추어였나? 너무 강적을 만났나? 허긴 그들은 이 사람에 비하면 예쁜 축에도 못 들어가는 그저 평범한 얼굴이었지. 그리고 이런 여자들의 마음을 잡으려면 피곤해서 쉬운 상대만 고르긴 했지. 그랬던 내가 왜 무모한 도전을 시도 하려고 할까? 차이면 망신을 떠나 일감도 끊일 수도 있는데. 나도 늙었나? 감이 떨어졌나?

　이런 생각을 각각 하면서 서로의 눈을 예의주시하며 경합을 벌이다가 물러서는 사람은 순희이었다. 직장에서 이런 식으로 남자 직원이나 상사와 눈싸움을 벌인 결과로 얻은 피해는 항상 순희 몫이었기 때문에, 슬그머니 발걸음을 치며 물러났다. 그러나 더 무서운 상대는 발 밑에 있었다.

　“으악~~ 엄마야!”

　외마디 비명이 순희 발 밑으로 가는 걸 본 수리도 비명소리를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놈의 굼벵이가 지금까지 여기서 뭐해. 남들은 가로수에 매달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데. 야! 임마! 빨리 나가.”

　지금까지 당한 무시보다 더 심한 모욕적인 말이었다. 이 말은 남들 갈 때 뭐하고 지금에야 꿈틀거리며 나왔냐는 불평으로밖에 들리지 않은 순희가 수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도 지렁이를 굼벵이로 개명까지 해서 빗대고 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저보고 굼벵이?”

　두 주먹을 옆구리에 올리기까지 했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렁이를 맨 손가락으로 집어서 화장실로 들어 가버렸다.

　‘아~~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엄연히 내가 갑인데. 저 놈도 나를! 너 어디 두고 보자.’

　옆구리가 최소한 10cm가 더 날씬해질 정도로 주먹으로 밀어 넣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초 만에 바로 나왔다. 조금만 더 있다가 나왔으면 완벽한 곡선을 가지 옆구리가 탄생했을 텐데, 아쉬움을 달래려고 숨을 빨아들여 밋밋한 복근에 삼 두 복근을 키우고 난 뒤 따지려고 했다. 복근에 힘을 주고 있었다. 꼴에 청결은 아는지 지렁이 만진 손을 바지에 썩썩 문지르고 있었다. 여기서 순희는 기분이 또 살짝 나빠졌다. 볼 일을 마치고 손을 씻고 분명히 수건으로 손을 닦았는데 무슨 이유로 바지에다가 손을 닦는단 말인가? 휴지를 쓰지 않고 손으로 닦은 기분을 들게 하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숙녀 앞에서 하는, 뭐 저런 놈이 있어? 단지 오해였다.

　“제 혼자 있어서 수건 쓸 일도 없고 해서 서너 달 걸어놨더니 시커먼 걸레가 됐네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안주임님에게 굼벵이라고 하겠어요. 이 놈이 선인장이 먹을 영양제를 모조리 뺏어 먹어서 미워서 그랬습니다. 방금 봤죠. 저렇게 비만인 굼벵이 본 적 있습니까? 내년 여름에 저 놈이 가로수에 매달리면 가로수가 부러질 겁니다. 분명히.”

　이 놈아 굼벵이가 올해 떠들려고 나왔지 내년을 위해 나왔냐?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다시 화장실에 가서 손부터 다시 씻는 일이었다. 수돗물이 옷에 튀길 정도로 털어놓고 ‘아이구 더러운 놈! 무식한 놈! 지렁이를 굼벵이라고 해? 멍청한 놈.’

　다시 손을 씻고 나올 때는 수리와 똑같이 바지에 닦으며 나와서 제대로 교육을 시키기 시작한다.

　“이봐요. 저건 굼벵이가 아니고 지렁이잖아요. 어떻게 굼벵이와 지렁이를 구분도 못해요. 그리고 수건 좀 깨끗이 씻어 걸어 놓으세요.”

　머쓱하게 입술만 툭 밀던 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검색만 하고 있었다. 수리가 지남철이나 된 듯이 딸려 가 컴퓨터 뒤에 선다.

　“이 봐요. 굼벵이 맞잖아요.”

　수리는 진지하게 말을 하지만 순희 귀에는 장난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한숨 소리가 길게 이어지면서 ‘그래! 내가 졌다. 이놈아’ 이 말은 못하고 포기한 힘 빠진 소리로 인정해주었다.

　“맞아요. 얼마 많이 먹였으면 저렇게 피둥피둥한 굼벵이로 됐는지. 다이어트 시키세요. 가로수 다 뿌려지겠어요. 그나저나 실험실이 어디죠? 저는 실험실 확인하러 왔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예상했던 대로 수리는 위궤양에 걸린 듯이 명치 아래가 뒤틀리고 있었다. 올 것이 왔구나. 머리도 흔들 했다. 이런 실사에 어느 정도 만성이 돼 무덤덤해질 때도 되었지만 막상 코앞에 닥치면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처럼 항상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특히 실험실에서 온 남자 직원과 달리 여직원이 실험실에 들어가자고 하면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돼 이런 증상이 더 심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은 수리만 받고 있는 게 아니었다. 순희도 괜히 말했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수리와 똑 같은 증세의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라도 제품 특성이나 분석 방법을 물어보지나 않을 지, 그때는 어떤 식으로 저놈처럼 능구렁이가 돼 은근슬쩍 넘겨야 할 지,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공만 화학이고 배우기만 했지 실무에서는 단 한번도 등록금의 값어치를 발휘한 적이 없었던 순희는 그저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했고 수리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씩 거래처나 지인들이 컴퓨터가 고장 났다며 이것저것 물어볼 때 겪은 난감한 입장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지금 두 사람은 이 실사를 요식행위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특히 순희가 더 간절했다.

　그러나 결정적은 말 실수로 제 무덤을 파 버렸다. 눈 앞에 보이는 순도 측정기가 어릴 적 가져 놀던 꼬마 인형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그리운 사람을 돌연히 만난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루만지기까지 했다.

　“어머! 학교에서 썼던 것과 같네요. 어! 이 수분분석기도 제가 썼던 거네요.”

　갈수록 태산이었다. 어떤 질문이 쏟아질지 수리는 바짝 긴장했다. 순희 시선에 끌려가듯이 따라가는 수리 눈동자엔 오로지 조바심뿐이었다. 추억 살리기를 여기서 멈추게 하지 않으면 이런 저런 질문에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무지가 바로 들통이 날 것 같은 위기감에, 어떻게 해서던 실험실에서 나갈 방법을 모색하던 중, 이거다 싶어 물었다.

　분석이 시작되면 서너 시간이 걸리는데 순희가 과연 남의 회사에서 그러고 싶어할까?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비장의 무기를 빼낸다.

　“분석 한번 해 보시겠어요? 시료가 많이 있는데.”

　걸음도 시야도 정신도 전부 멈춰버린 순희가 수리를 멀뚱히 보고만 있다. 수리도 마음은 불안했지만 마주보고 있는 건 그대로 유지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참! 예쁘다.’

　이 마음뿐이었다. 그때 순희는 정신을 번개처럼 차린다. 난감한 듯이 울상이 돼 쳐다보는 여인의 눈을 보면 안아주고 싶어했던 수리였는데, 기회가 너무 일찍 날아갔다.

　“학교 다닐 때 징그러울 만큼 만져서 근처에 가기도 싫어했는데 뭘 또 만져요. 실험하면 지긋지긋합니다. 나가요. 기름 냄새도 맡기 싫어요.”

　이렇게 말한 순희도 어디서 이런 기치가 발휘되었는지 놀라고 있었고 수리도 이 기치에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수리가 은혜를 갚을 일밖에 남지 않았다. 순희 마음이 바뀌기 전에 바로 뒤로 돌아서 실험실에서 나가야 한다. 순희도 같은 마음이었으니 당연히 획 돌아서 쪼르르 수리 뒤를 따라 나왔다. 실험실에서 나온 순희는 혹시라도 회사 제품에 대한 성분이나 분석 방법을 물어볼 까 싶어 바로 튀어 나갈 태세로 인사부터 한다.

　“그럼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상투적인 인사를 하고 나갈 때 수리가 따라 나오는 걸보고 한번 더 상투적인 인사치레인 괜찮다는 말을 하고 순희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희에게는 고단한 하루였다. 가로수 잎사귀를 팔랑거리게 하는 바람에게 빌 만큼 긴장되고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짓는 순간이다. 손바닥을 부채 삼아 지나가는 바람을 얼굴로 불러 들여 깊숙이 빨아 당겼다가 다시 내보낸다. 숨통이 조금은 뚫린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변 어디에도 차가 보이지 않았다. 박대리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원이 아예 전원이 꺼져 있다. 어이가 없어 한참 동안 길가에 서서 헛웃음만 치고 있었다. 수리가 사무실 정리를 마치고 나오다가 순희를 본다.

　“어! 아직 안 가셨어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있던 순희가 수리가 묻는 말은 듣지 못하고 씩씩대고만 있었다.

　“안주임님!”

　약간 높은 음성을 듣고 고개를 돌린다. 한눈에 이상하다고 느낀 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위에 주차한 차들을 살핀다. 순희가 허탈한 듯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수리가 다시 주차해둔 차들을 살핀다. 여기에 주차하는 차들을 대충 알기 때문에 순희 차는 없다는 걸 바로 알아챈다. 이게 왠 떡이냐! 수리는 내심 쾌재만 부르고 있다.

　“타시죠. 모셔다 드릴게요.”

　뒷문으로 간 순희 손이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게 수리 눈에 들어왔다.

　“옆에 타세요. 제가 안주임님 비서인줄 알아요? 이건 제차입니다. 안주임님 기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조수석에 타세요.”

　농담할 시점이 아니었다. 꽉 깨물어진 안주임 입술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 수리가 바로 후회를 한다. 문을 열다 말고 순희 쪽으로 쫓아가 뒷문을 열었지만 순희가 조수석 문짝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잡아 당겨 열고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도 벌써 차고 대기 중이다. 영부인을 태운 기사처럼 후다닥 쫓아가 운전석에 앉아 사과부터 할 태세로 머리를 조아린다.

　“빨리 출발이나 하세요.”

　그러나 수리는 출발하지 않고 앞만 보고 있다.

　“뭐해요? 출발 안하고.”

　“아.. 예… 가열을 시켜야 해서. 가다가 퍼지면 안되잖아요.”

　순희가 고개를 뒤로 돌려 뒷자리를 한번 획 둘러 본다. 그리고는 수리 눈이 꼼짝도 못하게 잡아놓고 야단부터 치고 있었다.

　“차는 똥차라도 청소 좀 하고 다니세요. 무슨 쓰레기 하치장도 아니고. 이게 뭐에요.”

　‘아! 정말 잔소리 심하네. 불붙는 가슴에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어버리네. 어떤 놈인지 고생 꽤나 하겠다. 오르지도 못할 나무 일찌감치 꿈도 꾸지 말자’

　씁쓸하게 틀어지는 입술을 슬쩍 훔치면서 곁눈질을 하던 수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눈이 있었다. 잔소리를 해 놓고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시험하듯이 수리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계속 관찰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