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느끼는 살벌함에 떠는 기분과 정 반대의 기분으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그 동안 직장에서 무시 당했던, 이부장과 앞에서 떨고 있는 박대리에 대한 응징, 어떤 식으로 나올지 받았던 궁금해하는 사람처럼, 천군마마가 나타난 것처럼, 떨고 있으면서도 말똥말똥한 눈으로, 언제쯤 쾌감에 사로잡힐지 기대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엉거주춤하게 소파등받이에 등을 바짝 붙여 거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김소장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들릴 듯 말 듯 수리가 묻는다.

　“제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어디다가 함부로 그 따위로 말을 해요? 댁에 가시면 부인과 자식에게도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최대한 예의를 갖춘 정중한 목소리지만 내용은 모욕적인 명품 말만 어디서 구입해온 것처럼 쏙쏙 골라서 했다. 박대리는 지금 ‘잘못 지정했다 와 잘못 건드렸다’만 떠올랐지 선택권은 본인인 박대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공포에 휩싸여 망각하고 있었다. 그때 박대리 정신을 더 혼란하게 하는 말이 들렸다.

　“뭐 하시는 분입니까? 남의 회사에 오시면 최소한 인사를 하고 관동성명부터 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입니까? 부모님이 가르치지 않았다면 학교에서라도 배웠지 않았겠습니까? 학교를 안 나왔다면 당신 회사의 상사들에게는 배우지 않았겠습니까? 제 말이 틀렸나요?”

　분명한 건 기 싸움을 하자고 먼저 주먹을 휘두르는 짓인 선방은 아니었다. 따지는 것도 아니었다. 훈계였다. 훈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너도 같아’란 메시지를 던지는 눈초리가 박대리에게 향했다.

　그 뒤에 나올 말인 새끼나 자식을 박대리가 먼저 예상했는지 양손바닥이 딱 붙어진 채 허벅지 사이로 잽싸게 도망쳤다.

　이 사람 말 중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는 데는 순희도 동의를 하지만 말하는 방법에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박대리도 순희도 코를 막고 말았다.

　김소장이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어제 밤에 배속에 들어간 술안주들이 분해작용을 한 모양이었다. 배 속에 쌓인 가스가 붕 소리와 함께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김소장은 놀란 토끼 눈으로 뜨고만 있었지 방금 전에 보여줬던 호기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말 그대로 살벌한 분위기였는데, 순희가 벌떡 일어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고 싶은 심정을 가질 만큼,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뀔 기회였다. 김소장은 방귀 하나로 항복을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이 기회를 살려 정적을 완전히 깨야 했지만 박대리는 벌벌 떠느라 이런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순희도 난생처음 맞닥뜨린 험상한 분위기에 오금을 저리다가, 김소장을 몰아붙이는 수리 말에 긴장이 느슨해졌다가, 다시 긴장했다가, 약간은 갈팡질팡하는 상태였지만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는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만큼이나 손도 같이 떨렸다. 허둥대며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려고 애를 썼지만 손이 떨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여자라고 무시하며 호랑이라도 잡을 기세로 눈알을 부라리고 고함을 지르던 놈이 앞에 있는 사람 입에서, 만약에 무슨 소리던 한 소리만 높은 음성으로 내면, 바로 잽싸게 등뒤에 숨어 눈알만 말똥말똥 내밀며 추세를 살필 것처럼 보였다.

　비겁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순희도 떨리고, 바로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은 같았지만 용기를 내었다. 그러나 손 따로 마음 따로인 것 같았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려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는지 수리가 먼저 순희에게 명함을 건넸지만 떨리고 있는 건 순희와 똑 같았다.

　‘그 18년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기분 나쁘게 예쁘네”

　잠시 수리는 차에 치일 뻔할 때를 떠올리며 눈을 마주쳐 확인하려고 했지만 눈동자가 흔들리며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순희는 그렇게 큰 소리를 치면서 손은 왜 이렇게 떨어? 이 사람도 겁 먹고 있거나 아니면 알코올 중독자가 분명해. 순희가 눈을 똑바로 뜨고 수리를 한번 더 관찰하려고 하다가 어느새 바로 눈앞에 와 있는 수리를 보고 김성태처럼 방귀를 뀔뻔했다.

　“견적을 보냈던 대표 정수리입니다. 방금 뵈러 가는 중이었는데 오신다고 해서 차를 돌려 왔습니다.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초면에 너무 긴장하게 해서 죄송도 하구요. 허허허!”

　어이 씨! 예고도 없이 바로 눈 앞에 나타나면 어떻게? 그러나 이렇게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순희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떨리는 손으로 명함을 건네며 수리 눈을 다시 마주친다. 그 순간에 수리에 대한 온갖 상상들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팔색조, 카멜레온, 고장 난 용수철까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다시 김소장 눈을 사늘하게 쳐다보며 묻는다.

　“아직 제 질문에 답을 하시지 않았는데 불편하면 명함이라도 주시죠. 누군지는 알아야죠.”

　머뭇거리던 김소장이 명함은 주지 않고 같이 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이었다. 자격증을 임대해 차린 신생회사지만 엄연히 경쟁사다. 속속들이 파보면 이 회사도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자격증이 부족해 임대했을 거란 확신을 수리는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배에서 만난 다른 회사 직원들을 만나보면 자격증이 없는 직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김소장은 불법을 운운하고 있다. 사실상 수리는 밑져봐야 본전이었다. 가진 자와 가진 것 없는 자의 싸움에서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하지만 그렇다고 가진 자에게 피해가 전혀 없을 리는 없다. 이 정도는 김소장도 모를 리는 없다. 명함을 보던 수리가 순희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물었다. 순희 엉덩이가 들썩했다.

　“안주임님! 지금 뭐 하자는 짓입니까? 저 사람은 왜 데려왔어요? 이게 예의입니까?”

　그때 김소장이 벌떡 일어서며 또 고함을 내질렀다.

　“저 사람이라니? 이 새끼가 겁 대가리 없이….”

　그러나 김 소장이 할 수 있는 어떤 말도, 욕도, 딱 여기까지였다.

　시장만 다를 뿐이지 이권싸움에서만큼은 달인들이 바로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수리는 ‘아차!’하고 있었다. 번지수는 잘 찾아왔지만 더 이상은 멈춰야 했다. 가장 먼저 고등학생 때 실수가 떠올린다. 가서 겁만 주라고 했는데 융단폭격을 퍼부은 바람에 오히려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치욕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앞에 있는 이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느니 삶의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수리는 먼저 들은 소문과 지금 행태에서 치를 떨고 있는 중이었다. 일렬로 서서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안주임님! 우리회사에 일을 주려면 지금 이 사람을 밖으로 나가게 해주시고 아니면 전부 다 나가주십시오.”

　이 와중에 박대리는 상사인 자신을 부르지 않고 순희만 찾는 말을 듣고 무거운 돌덩이를 내리 놓은 듯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박대리의 비겁한 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이었지만 순희도 무섭고 당황한 바람에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대리는 쾌변을 한처럼 후련한 속을 느끼고 있었다.

　박대리 입장에서는 김소장은 이부장 사람이지 자기 사람은 아니었다. 초년병. 그러니까 신입사원 때 따라 다니던 그때의 이미지가 김소장 머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 지금도 가끔씩 데리고 다녔다는 그 생각만하고 함부로 대할 때가 있었다. 김소장도 지금 바로 정리가 되고, 내쫓는 결정도 자신이 아닌 순희가 몫이 돼버렸다.

　그러나 순희가 이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이런 걱정이 단지 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천군마마를 만난 것 같이 뿌듯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말이 들리고 있었다.

　 “경호야! 저 사람이 우리 집에 불지른단다. 타 죽지 않으려면 알아서 처리해라.”

　김소장의 자존심이 당장 나가라며 혼 줄을 내는 것 같았다. 벌떡 일어서려고 했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가을 수수가 끝난 논에 홀로 꼽혀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발을 떼지 못한 채, 바람에 흔들린 듯 비틀대며 돌아서 수리를 노려 보고 있었다. 수리는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린다.

　그때 이경호대리가 돼버린 성호가 들어왔다. 다시 방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 건, 연장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한 아주 심각한 패륜이란 걸 수리도 잘 알지만 누가 먼저란 질문을 허공에다 대고 마음 속으로만 던진다.

　이건 꼭 김성태소장에게만 던지는 게 아니다. 이 나라에서 갑 질 하는 자들과 그들의 종인 법에 던지는 것이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불륜과 로맨스로 갈라지는 이 나라의 풍토에 대한 울분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경호가 동생들을 입구까지 열중쉬어 자세로 세워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배웅을 해준다. 이런 치욕은 태어나 처음 맛본 김소장이 길가에 서서 부들부들 떨다가 분을 삭히려고 하는지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문소장! 지금 어디야? 내가 지금 할말이 있는데 회사로 갈까?”

　문소장은 김소장과 같은 회사에 입사 동기였지만 진급에 눈이 멀었던 김소장이 보기 싫어 다른 회사로 가버린 사람이었다.

　이 업계에서만큼은 자칭 대부로 호령하고 있다고 자부해왔던 김성태가 문전박대보다 더한 수모에 치를 떨면서 문소장에게 이런 놈은 업계에서 매장해야 한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리는 크게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에 차에 오른 후에 통화를 했으면 고래고래 울분을 터트렸을 것이다.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이 놈들은 한 주먹에 싹쓸이 했을 거라고 떠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리란 놈도 직원들도 덩치 하나로 사람을 공항상태에 밀어놓기에 충분했다. 김성태는 자기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흥분해 낮은 소리도 떠들다가 문상권이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에 전화를 끊고 차문을 열고 있었다.

　 “저기요. 아저씨!”

　오른 발과 엉덩이가 차 속으로 반쯤 들어간 상태였다. 김성태가 얼굴을 뒤로 돌렸을 때 눈에 들어는 건 자칫 얼굴끼리 접촉 사고가 날뻔한 경호의 서슬 푸른 눈뿐이었다. 다행히 얼굴이 아닌 뒤통수만 반쯤 열린 차문 모서리에 부딪혔다. 험담뿐만 아니라 위협적인 말을 하다가 현장에서 바로 들켰기 때문에 변명 같은 건 아무짝에 쓸데없는 짓이었다. 김성태가 초점 없는 눈이 성호에서 경호가 된 이대리를 향해 있었다.

　“아저씨! 그 참! 말 좀 살벌하게 하지 맙시다. 사장님이 저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지만 제가 어떻게 아버지 같은 분에게 폭력을 쓰겠습니까? 보아하니 배에서는 한번도 뵙지 못한 것 같은데 만약에 우리 회사에 해코지를 하면 그땐 저도 못 참습니다. 방금 들었던 말은 못들은 걸로 할 테니까 절대로 통화 하신 말씀대로 그런 불상사는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회사가 먼저 아저씨 회사에 손댄 건 아니잖습니까? 우리는 남의 밥그릇 뺏고 하는 그런 야비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럼! 조심이 가십시오.”

　처음부터 끝까지 동종업계의 대부에 위한 우대는 전혀 없었다. 하다못해 선배로써의 우대마저도 없었다. 어찌된 판인지 경로우대조차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