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검정료 몇 푼 준다고 그 피해 액을 우리보고 배상하라고 해? 창피하지도 않아?”
문득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이 사람의 인간성에 측은함을 느낄 때가 떠올랐다. 그때 김소장이 데려와 동석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검정회사가 아닌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대화 중에 의견이 잘 맞아 대화의 깊이가 깊어질 무렵이었다. 그때 김소장은 소외 돼 있었다. 한창 대화가 무르익을 때 김소장이 돌연히 대화를 차단시켜버렸다.
그때 차장이 느낀 김소장이란 사람은 깊이 있는 대화에 참여할 만큼 소양을 갖춘 사람이 아니란 걸 느꼈다. 거기다가 비겁한 면도 보였다. 얼마나 급했으면 자신의 무지를 방어하지 위해 굉장히 빠른 소리로 허둥대기까지 했다.
철판 갉는 소리로 소름을 끼치게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급했으면 저랬을까 하고 차장은 그때를 연계시켜 쳐다본다. 그때 이 사람에게 느낀 건 자격지심을 숨기기 위해 허세를 품에 안고 사는 사람이라고 판단을 했다.
몇 푼이란 그 몇 푼을 위해 이렇게 또 본성을 드러내는가?
창피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계약은 자기가 제의한 대로 한 게 아니었나?
스스로 알아서 꼬리를 내린 게 아닌가?
다른 회사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계약한 것 아닌가?
왜 갑자기 돌변 할까?
빙그레 웃으며 차장이 말한다.
“피해준 건 아는 모양이죠? 준비하고 계십시오. 정리 끝나면 청구하겠습니다.”
“지금 협박하는 거야? 그렇게 해. 나도 가만히 안 있어. 부장한테 확실히 전해.”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 차장은 잘 알고 있었다.
제발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내용이다.
차장은, ‘미쳤냐? 네가 하면 되지!’
쾌재를 외칠 정도로 반가운 말이었다. 만약에 차장이 김소장이 부장과 작당해 한 짓을 모른다면 소장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고 두둔도 해줬을 것이다. 소장 말대로 용역 비를 몇 푼 준다고 책임까지 물린단 말인가 라며 같이 흥분을 했을 것이다.
자잘한 사고에 대해 검정 회사에 대고 배상을 하라고 누가 검정을 하려고 하는 지도 고려 해 볼 문제이기도 했다. 차라리 용역을 맡기지 않고 직원들이 직접 배에 가서 검정을 하면 가장 안전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이부장 같은 인간이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부장이나 김소장이 일체 개입을 하지 않고 이런 사고가 벌어졌다면 회사도 피해를 보지만 검정회사도 하나의 선의의 피해 회사이기도 하다. 잠시 송차장은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이부장을 살리기 위해 살리기 위해 김소장 회사를 내친다는 지저분한 생각도 하고 있어서였다.
김소장이 비장의 무기를 던졌다고 판단했는지 송차장을 자리에 홀로 두고 자기 자리로 가서 씩씩대기만 하고 있었다. 올 때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였듯이 지금도 그랬다. 송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올 때 여직원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배웅을 했다.
차장이 공장에 도착했을 때는 자재과 직원 전원이 부장만 쳐다 보고 있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이부장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일이던 사고가 나야 전부 관심을 가지듯이 이 부서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송차장도 잠시 담당을 해서 검정 업무를 알게 되었지, 만약에 옆에 앉은 누군가가 담당이었더라도 정년 퇴직할 때도 모르고 퇴직했을 것이다.
검정이란 일은 이 회사에서는 손톱의 때보다도 더 미세한 분야라서 직원들은 이런 업종이 있다는 존재 자체도 모르다가, 지금 난리가 난 후에 관심들을 갖게 되었다. 전 직원이 부장 통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대충 들어도 부장과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김소장인 걸 알아차린 송차장이 눈을 마주친 이부장에게 머쓱하게 고개만 숙이고 공장장 실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뒤늦게 송차장이 쳐다 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이부장이 손짓으로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문은 닫힌 뒤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걸 보면 염장이 부글거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형식적으로나마 책상 앞에 와서 악수도 하고 덕담도 잠시 나누기를 바랬던 것 같았다. 고개만 숙이고 나가는 그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걸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송차장이 공장으로 급히 내려온 이유가 본인 때문이라는 걸 까맣게 망각한 채 오로지 자기는 절대 지키지 않는 형식적인 예의인 깍듯한 인사를 하지 않은 사실에만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었다. 그럴 처지가 아닌데도 말이다. 화가 날 때로 난 부장이 화풀이할 때는 박대리밖에 없었다.
“박대리! 박대리 어디 갔어?”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송차장이 공장장과 마주보며 앉아있다.
“고생했네. 그 사람 난리를 부리지?”
“분위기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는 성격은 그대로더군요. 제가 살짝 떠봤는데 궁지에 몰리니 검정료 그거 몇 푼 된다고 배상을 하냐며 난리를 쳤습니다. 그 사람 말대로 검정료 그거 몇 푼 된다고 우리가 전액 배상하라고 하겠습니까? 사람이 지저분하더군요. 그나저나 다른 회사를 지정하라고 하는데 공장장님도 들으셨죠?”
“그래! 나도 들었어. 그런데 그 사람 참 웃기는 사람이네. 이번에 사고가 난 화물 하나만 보면 그 사람 말대로 몇 푼 안되지만 수출입하는 다른 화물 전체를 보니 천만 원이 넘던데. 그게 몇 푼이 안 된단 말이야. 웃기는 사람이군.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어. 나는 공장에 있어도 이유를 전혀 몰라.”
송차장이 이해를 한다는 듯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이런 사단(事端) 벌어졌답니다. 박대리가 검정회사 담당자에게 아주 모욕적인 욕을 했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 입니다. 박대리가 자기 잘못을 공장장님에게 이실직고 보고 할 리는 없지요. 허허허”
대충 짐작간 깊은 내막은 단지 짐작이고 감사 중이기 때문에 송차장은 말을 아꼈다. 만약에 이 자리에 이부장이나 박대리가 있었으면 방금 송차장이 한 말만 가지고 두 사람은 평생을 비웃음거리로 술 안주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골탕을 먹이면 안 되지. 그 놈들도 이해가 안 되는 놈들이네.”
“그 회사 소장 말로는 박대리가 거의 인격모독 수준으로 욕을 했다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도 불뚝했습니다. 젊은 혈기에 절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모욕이더군요. 그랬다고 해서 하던 일을 던져버리고 나가면 안 되죠. 이해는 가지만 그런 회사를 믿고 계속 할 수는 없잖습니까? 본사에서 당장 바꾸라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며칠 뒤에 수출도 해야 하는데 급하게 됐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공장장이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면서 어처구니없는 듯이 말한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정말 개탄스럽네. 똑 같은 놈들이야. 당장 찾으라니. 유예기간이라도 줘야지. 허허. 그나저나 누구에게 시키지? 박대리에게 시키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군. 제 입맛에 맞는 회사를 고를게 아닌가?”
송차장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숙여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한다.
“우선 견적부터 받는 게 좋겠습니다. 견적서부터 받죠.”
“그래야겠군.”
고개를 끄덕인 공장장이 자재과에 전화를 한다. 순희가 전화를 받는다.
“안주임! 이부장 올라 오라고 하세요.”
“자리에 안 계십니다.”
“그럼 박대리 올라 오라고 하세요.”
“안 계십니다.”
공장장 표정을 보는 차장도 불편할 정도로 일그러진다.
“다들 어디 갔어? 그럼! 안주임이 와야겠네.”
바르르 떨리는 숨소리와 함께 차장이 들어도 간담이 서늘한 정도의 소리로 안주임을 호출한다. 올라오다가 안주임이 나자빠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리도 장단을 맞추려고 헛웃음을 치려고 했지만 헛웃음을 치기도 전에 순희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안주임! 지금 각 검정회사에 견적서 내라는 공문을 보내세요. 본사 지시니까 서둘러.”
즉각적인 조치에 송차장 속이 후련했다. 방금 전의 소장의 오만한 태도가 떠올라서였다. 그런데 순희 얼굴이 얼어붙어 있었다.
“왜?”
공장장이 짤막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검정회사를 몰라서… 아닙니다. ”
갑작스런 지시에 당황도 했지만 그보다는 공장장도 차장도 상사지만 직속 상사인 부장과 대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공장장님! 부장님이……”
공장장 인상이 찌그려졌다.
“그 사람 자리에 없다며? 박대리도.”
순희는 공장장 지시보다 항상 자기를 멸시하는 눈으로 보는 이부장의 서명! 즉! 윤허 없이 보냈다가 닥쳐올 멸시의 시선을 떠올리고 있었다. 난처한 얼굴로 차장을 쳐다본다.
“허허! 걱정 마세요. 공장장님 지시입니다. 어차피 안주임이 보낼 거잖아. 본사에서 지시가 내려왔으니 얼른 보네.”
순희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차장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공장장도 눈짓으로 승낙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순희에게 있었다. 부서는 같지만 통관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업무를 하기 때문에 검정회사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는 게 문제였다.
당연히 전화나 팩스번호도 모른다.
그래도 어차피 본인이 해야 할 일인데 앞에 했던 말인 ‘몰라서..’란 말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최근에 부쩍 부장에게 여자라는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의기소침한 증상까지 생겨서 자동적으로 나와버린 말이었다. 후회하고 있는 마음이 얼굴로 나타나 차장 눈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안주임! 탱크터미널에 전화해서 검정회사 전화번호를 전부 다 받아…. 요. 부장님에게는 내가 얘기할 테니 걱정 말고. 본사에서 급하다고 재촉을 하는데 부장님도 박대리도 자리에 없는 걸 어떡해?”
시선을 공장장에게 향하기도 전에 공장장이 차장 말대로 하라고 해 순희는 “아! 예”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순희를 보던 차장은 울산에 근무할 때 순희가 떠올라 빙그레 웃었다. 이전에 같이 잠시 근무할 때 앳된 순희가 아니었다. 존칭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차장도 조금은 난감했다. 순희도 민망했던지 쑥스럽게 웃으며 알겠다고 하고는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혀 인사를 하고 공장장 실을 나갔다. 신입사원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허허! 공장장님! 안주임 나이가 서른은 됐죠? 저하고 잠시 근무를 할 때 신입으로 알고 있는데.”
공장장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같이 근무했었어? 그럼 통관업무도 할 줄 안다는 말이잖아. 박대리 혼자서 힘들어하던데 같이 하면 되겠네.”
세상물정 모르는 공장장 같아 보이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다. 이부장도 박대리도 다른 업무는 공장장에게 보고하지만 자기들끼리 작당해 저지른 도둑질은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이 사실은 차장도 어림짐작만할 뿐이었고 순희에 대한 생각과도 마찬가지였다.
순희는 이부장이 자재과로 오자마자 그의 손끝을 거부한 죄로 눈밖에 튕겨나가면서 그들만의 치밀한 아르바이트에서 다행히 배제되었지만 불행해도 업무에서조차 소리 소문 없이 배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