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적과의 동침
“조센징, 죽어라!”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 돌을 벌렁코는 배를 가격하면서, 뻐드렁니가 죽은 분풀이를 했다. 벌렁코가 고함을 치자, 쇠문으로 된 사각형 창이 위로 올라갔다.
“돌이야, 돌아!”
종운이 창 안에서 외쳤다. 종운을 밀치고 민지가 얼굴을 내밀었다.
“돌이야, 정신 차려, 이봐요 우리 아들 어떻게 한거에요, 돌이야!”
“조용히 해, 안 그러면 입을 다물게 만든다.”
벌렁코가 민지 앞에서 으름장을 놓았다. 종운이 민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시게이가 문을열고 들어왔다. 나 돌의 상태를 보더니 손으로 맥을 짚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신기하군, 쓸 만해 졌는데 죽으면 재미없지, 딴 놈은?”
“히마라시를 죽였습니다, 그 놈은 막무가내라... 방법이 없었습니다.”
히마라시는 뻐드렁니의 이름이었다. 시게이는 나 돌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결국 그 놈이 말썽이겠네... 얘를 살려!”
“예? 이놈을요?”
“쓸데가 많은 놈이다, 반드시 살린다.”
“예!”
시게이는 나 돌의 맥을 한 번 잡아 보고 나갔다. 민지와 종운은 창으로 나 돌을 보고 있었다. 벌렁코는 나 돌을 끌어서 쇠문을 열고 안에 집어넣고 문을 잠갔다. 밖에서 요라한 소리가 들렸다. 벌렁코가 뛰어나갔다.
“전부 덤벼, 죽여 버린다!”
수복이 마당 가운데서 칼을 들고 마주 선 양복들에게 외쳤다. 시게이가 2층 베란다 문을 열고 수복을 내려 보았다. 양복들이 일제히 수복을 덮쳤다. 수복은 칼을 피하며 양복들을 가격했다. 양복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시게이가 벌렁코를 불러 무어라 명령했다. 벌렁코가 지하로 들어갔다.
“너희는 상대가 아니다, 뒤로 물러라!”
시게이가 2층에서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수복과 마주 섰다.
“형을 내놓으면 가겠다, 아니면 전부 죽는다!”
“형? 아, 데려올 거다, 근대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돌려줄 수가 없다.”
“헛소리 그만하고 데려와!”
“말이 걸구나, 좋게 말로 할 때 들어라,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다.”“지랄, 덤벼 쫍밥아!”
벌렁코가 나 돌을 둘러메고 와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수복이 나 돌의 맥을 잡았다. 맥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수복이 손바닥을 마주하고 뜨거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런다고 고쳐지지 않는다, 우리가 고쳐주마, 그리고 본인이 간다고 하면 보내 줄 거다, 더 이상 말썽 피우지 말고 가라!”
시게이는 종운과 민지가 있고 요코가 있는 한, 나 돌은 가지 않을 걸 알았다. 나 돌을 마음대로 부릴 수도 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수복을 상대로 싸워서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수복을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이기려면 손실을 각오해야 했다.
“내가 데려간다면?”
“못 데려간다, 우릴 전부 죽이기 전에는, 그 전에 먼저 죽겠지... 내가 나 돌을 고치고 난 후 그의 결정에 따라 같이 가던지, 말던지 하자.”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죽이려고? 이대로 납두면 죽는다, 여기서 기다리는 건 말리지 않겠다.”
“여기서?”
수복은 나 돌을 데리고 나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일단 나 돌을 살려놓고 싸워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시게이를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이는 곳에서 치료하겠다, 딴짓일랑 말아라.”
“좋다, 여기서 보겠다. 형을 내가 보는 곳에서 치료해라!”
“2층이 좋겠다, 베란다 쪽에서 치료할 거니, 여기서 꼼짝 말아라!”
시게이의 제안에 이 층을 올려 보았다. 베란다가 잘 보였다.
“내가 더 잘 고칠 건데...”
“우리가 하다 못하면, 넘겨주겠다. 죽이려고 했으면 벌써 죽였다.”
시게이의 말에 수복도 할 말이 없어졌다.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지금도 죽일 수 있는 상태였다. 종로에서 나 돌은 지금 같은 상태였다. 종운이 나 철을 불러 살렸다. 지금은 나 돌의 몸 안에 나 철이 있어 그때와는 다르지만, 어떤 작용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보겠다...”
수복은 마당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는 것으로 시게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게이가 벌렁코에게 눈짓을 던졌다. 벌렁코가 나 돌을 어깨에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수복과 떨어진 집 앞에는 양복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긴요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죽어야 정상인데...”
시게이가 팔과 다리가 테이프에 묶여 가는 미세한 호흡을 하는 나 돌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요코가 무쇠로 된 창살 안에서 나 돌을 보았다. 시게이는 요코가 잘 볼 수 있도록 나 돌을 창살 앞으로 밀었다. 요코가 문을 열라고 시게이에게 눈짓을 던졌다. 시게이가 문을 열어주자, 요코가 나와서 나 돌의 옆에 앉았다. 나 돌의 손목을 잡았다.
“죽지 않았네.....”
요코가 시게이에게 중얼거렸다. 요코가 나 돌의 목과 손목, 발목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나 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요코가 발목과 손목을 묶고 있는 테이프를 끊었다. 시게이가 괜찮겠냐는 눈으로 요코를 보았다.
“어차피 아무 소용도 없어, 살면 내 사람으로 쓸 거야.”
“살릴 수 있겠어?”
“해 봐야지...”
요코는 나 돌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붙였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긴 호흡을 들이마셨다. 시게이는 옆에서 지켜보다 나갔다.
“돌, 나야 요코! 일어나 제발...”
요코가 나 돌의 귀에 속삭였다. 나 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요코는 나 돌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하고 속삭였다.
“시게이가 아무리 설쳐도 우리 집안을 어쩔 수는 없어, 약혼은 없던 일로 정했어... 이 번 일만 잘 하고 나면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어... 아빠와 약속했어, 일 마치고 일본에서 같이 지낸다고... 우리는 함께 지낼 수 있어, 좋지? 나 돌...”
요코는 시게이와 헤어졌다. 요코의 집안은 일본에서 절대적이었다. 시게이의 집안은 요코의 집안과의 충돌은 피하려고 했다. 약혼을 무산시키고 로켓맨 헌트를 성공시키는 것으로 시게이의 일본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기로 정했다. 요코와 싸워서는 시게이 집안의 안위가 위태로웠다. 요코는 나 돌과 일본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돌이 일본을 위해 공을 세워야 아빠의 체면이 섰다. 시게이는 나 돌이 요코를 헤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수복의 존재도 쓸모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나 돌과 수복을 끌어들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게이는 그런 면에서 요코의 능력을 높이 샀다. 남산에서 나 돌을 꼼짝 못하게 만든 동영상도 요코의 작품이었다.
“시간을 끌면 위험해진다, 아버님을 불러서 치료시켜라!”
삼일이 지나도록 나 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복은 양복들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마당에서 삼 일을 지냈다. 시게이가 해질 때쯤 나 돌이 살아 있음을 보이려고, 나 돌을 일으켜 보여 주었다. 나 돌의 몸은 흐트러졌지만, 죽지 않았다는 건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치료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라!”
수복은 여러 가지로 고민했었다. 이 상황을 이겨내려면 모험을 걸어야 했다. 종운과 민지를 구하고 나 돌을 데려가야 시게이의 작전을 막을 수 있었다. 종운과 민지가 잡혀 있어서는 나 돌은 움직이지 않을 거였다. 요코는 설득이 불가능 하니, 나 돌 몰래 죽일 수 있으면 최선이었다. 종운을 끌어들여 방법을 모색하는 쪽으로 정했다. 수복은 종운의 특별난 재주를 믿었다. 벌렁코가 종운을 지하에게 데리고 나왔다. 종운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 있었네, 돌이는?”“위에 있는데 많이 불편해요, 아버님이 고쳐 주세요.”
“내가?”
종운은 갸웃하면서 못 한다는 말은 뱉지 않았다. 일단 나 돌을 보고 싶었다. 수복은 종운의 의연함에 마음이 놓였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종운의 능력을 믿는 것이었다.
“갑시다, 당신 손에 달렸소!”
시게이는 가능한 한 종운과 민지에게 친절하게 굴었다. 나 돌을 얻기 위해서는 가족은 필수적인 존재였다. 종운은 수복의 두 손을 잡았다. 눈을 마주하다 감고는 숨을 길게 내 쉬었다.
“잘 해보자고... 믿는다.”
“예, 아버님만 믿어요.”
종운은 수복의 손을 꼭 잡았다. 수복은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웃는 거 처음 보네, 웃는 게 좋다!”
시게이는 호의적으로 수복에게도 접근하려고 했다. 종운은 시게이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에서 벌렁코가 핸드폰으로 통화했다.
“십 분 걸린다고, 알았어..... 보고 드릴게, 알았어!”
벌렁코는 통화를 끊고 2층으로 올라갔다. 수복은 2층을 올려 보았다.
“돌이야, 돌아... 나야 아빠!”
종운은 반듯하게 누워있는 나 돌의 옆에 앉았다. 무쇠 철창 안에서 요코가 종운의 뒤에 인사를 했다. 시게이는 옆에서 종운을 지켜보았다. 종운은 나 돌의 몸을 만졌다.
“돌이야..... 아빠 왔어...”
종운은 나 돌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쇠창살 안에 검정 원피스를 입은 요코가 정좌로 앉아 있다,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했다. 종운도 얼결에 인사를 같이했다.
“누구?”
“요코라고 나 돌의 친구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버님.”
“친구, 요코면 일본 사람이네요?”
“예, 하지만 우린 친구입니다.”
“그랬구나..... 저기, 제가 치료하려면 나가 계셔야 할 건데요.”
종운이 시선을 돌려 시게이에게 나가라고 했다. 시게이가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읍하고 나갔다. 종운은 마당의 수복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창살 안의 요코에게 물었다.
“왜 갇혀 있어요?”“설명하려면 길어요, 나 돌과는 깊은 관계입니다.”
요코는 종운의 의심을 풀기 위해 묻지 않는 말을 했다.
“돌이를 살리고 봅시다.”
종운은 반가웠지만, 믿지 못했다. 사람을 보는 남다른 촉이 뛰어났다.
정신을 모으고 밀고를 읊었다.
“대길상 밀고 위장관료아 마데지불애.....”
큰 소리로 밀고를 읊자, 마당에서 수복도 같이 외쳤다. 마당의 시게이와 양복들 수복과 2층을 번갈아 보았다. 현관이 열리고 사각형이 시게이에게 인사를 올렸다. 요코의 집 앞에 검정 승용차가 일렬로 주차했다. 시게이가 집 밖으로 나가자, 승용차에서 양복들이 나와 차 옆으로 섰다. 백 명은 족히 넘었다.
“할아버지 살려 주세요, 우리 돌이 살려 주세요, 대길상 밀고 위장관료아.....”
종운이 애절하게 밀고를 읊었다. 수복이 마당에서 맞장구를 쳤다. 집 안에 밀고가 울려 퍼졌다. 요코도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웅얼거렸다.
“그만해라, 시끄럽다!”
나 철이 나 돌의 옆에 서서 종운에게 그만하라고 엄하게 외쳤다.
28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