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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카이샤하스 제국 1권 ; 아이린 황비 폐하
작가 : Hella
작품등록일 : 2018.12.10

카이샤하스 제국의 황태자, 카우라 카이샤하스.
안하무인 독불장군인 그는 사실 남몰래 사랑하던 기억속 소녀가 있었다.

자그마한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데려온 새어머니가 그 소녀였다는거...?

아니, 저기요, 아버지. 계급장 다 떼고 얘기해 봅시다.
당장이라도 아버지 멱살잡고 패륜을 저지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에 한껏 비뚤어졌지만, 어느새에 그는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이건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카이샤하스 제국 황궁에 여러분을 꼬셔서 데려가기위한 달콤한 첫걸음이에요.....ㅎ

정치물과 전쟁물에 로맨스 두방울 뿌려 봤습니다. 심심해보여서 브로맨스도 한스푼 넣었고요, 오만사람들을 다 끌어모아 얽어놓는 바람에 등장인물 많습니다.

난 코난같은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읽어주는것만도 고맙습니다. 제가 꿈이 좀 커요ㅎ

언제나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1막;궁전_4화
작성일 : 18-12-14 02:40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9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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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렌스는 황족들이 식사를 하는 홀 앞에 섰다. 황제의 행차에 깊이 고개를 숙여 보인 궁인 두 명이 그에게 홀의 문을 열어주었다. 넓은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던 다섯 아들들이 모두 일어나 로렌스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황태자의 빈자리는 정말 눈에 잘 띄었다. 이제는 익숙해 질 법한 일이었지만, 로렌스는 오늘따라 '아들의 부재'가 특히 더 기분이 나빴다.

 

  "로렌스."

 

  로렌스의 저조한 기분을 알아차린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로렌스는 자연스레 황태자의 빈자리에서 시선을 떼고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아이린이 미안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이린에게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든 로렌스 스스로가 미워지게 만드는 미모였다. 로렌스는 어두운 표정을 최대한 수습하려고 노력하며 대답했다.

 

  "그래. 다들 앉아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아들들은 앉지 않았다. 로렌스가 넓은 테이블을 돌아 자신의 자리에 앉고 나서야 아들들은 공손한 몸가짐으로 착석했다. 완벽한 궁중 예절이었다. 평소라면 흡족해야 할 일이었지만, 아들들의 그런 딱딱한 태도마저도 오늘은 불만스러울 따름이었다.

 

  로렌스의 표정이 좀처럼 풀어지지 않자 아이린이 그의 눈치를 보았다.

 

  "저, 로렌스……."

  "응. 그래. 괜찮아."

 

  로렌스는 황제였다. '황제'라는 자리에 있다, 라는 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로렌스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상대는 단 한 명이었다. 아이린, 그녀만이 유일했다.

 

  로렌스는 자신이 그 정도로 아끼는 아이린을 감히 '황태자' 따위가 거스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황자들을 식사자리에 부를 때 아이린을 보냈던 것이다. 아이린이 황제의 말을 전달한다는 것은, 표면상으로라도 황비의 말을 따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카우라는 따르지 않았다. 로렌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는."

  "……."

 

  아이린은 입을 열지 않았다. 로렌스는 화를 열심히 참아낸 무표정으로 아이린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녀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의 눈을 피하자 로렌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다들 기다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 로렌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황자들도 급히 기립했다.

 

  "폐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시온이 듬직하게 상체를 숙여보였다. 로렌스는 시온의 찰랑거리는 금발을 눈에 담고는, 자리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물론, 카우라는 시온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말싸움과 몸싸움이 있지 않는 이상 카우라가 시온을 순순히 따라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로렌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내가 직접 가지."

  "로렌스."

 

  이번엔 아이린이었다. 그녀가 로렌스의 손을 잡았다. 로렌스가 그녀를 돌아보자 아이린이 촉촉한 눈동자를 내리깔며 말했다.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일이 아니야."

  "아직, 황태자님이 절 불편해 하시는 것 알아요."

 

  죄 없는 아이린이 미안해하자 로렌스는 더욱 화가 나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감히, 황태자 따위가. 로렌스는 화가 난 눈으로 아이린을 노려보지 않기 위해 애써 시선을 테이블로 돌렸다.

 

  겨우 식기만 정렬되어 있는 말끔한 테이블이었다. 식전 음식을 차리려던 시종들은 평소와 달리 험악한 분위기에 다들 구석에 일렬로 서서 대기하고 있었고, 평소 로렌스를 두려워하는 황자들은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시온만 힐끔거리며 마치 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경직되어 서 있었다.

 

  여러모로, 기분이 많이 나쁜 날이었다. 물론, 그 기분 나쁜 이유를 들자면 아까 레이에게 보고받은 카우라의 예절 수업이 주축이었다.

 

  붉은 정원에서 막말을 한 벌로 이루어진 카우라의 예절 수업은 엉망진창이었다고 했다. 카우라는 수업을 건성으로 들었으며, 레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고, 붉은 정원에서의 무례한 언사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클라우디아가 본디 병약하였고, 카우라를 낳은 뒤로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카우라는 어렸을 때부터 안하무인하고 폭력적인 아이였다.

 

  불행하게도, 어린 나이에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진 클라우디아가 갑작스레 서거한 이후로 물건을 던지거나 사람을 다치게 한 일은 없었지만, 한 번 말을 안 듣기 시작하면 끝도 없었다. 그나마 카우라가 말을 들었던 사람은 레이안 공작 한 명뿐이었는데, 이제는 그의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할까.

 

  "제가, 다음에 황태자님과 이야기 해 볼 게요……."

 

  아이린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자처하는 사람처럼 괴롭게 이야기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꼭꼭 눌러 내뱉는, 다짐이 담긴 말이었다. 로렌스는 그녀의 말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당신이 이야기 할 필요 없어."

  "그래도 해 볼게요."

 

  아이린이 황제의 커다란 손을 붙잡은 자그마한 손에 힘을 주었다.

 

  "오늘은, 식사 하셔요."

 

  황자들은 두려워하고, 로렌스는 화가 났다. 아이린은 로렌스가 카우라를 찾아 나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물론, 황자들도, 궁인들도 다 아는 사실이긴 했다. 로렌스가 직접 카우라의 방으로 향하고, 시온이 따르고, 황자들이 따르고, 결국 아이린까지 따라가야 하겠지. 카우라는 아이린과 황자들이 보는 앞에서, 혹은 그들이 바깥 복도에서 대기하는 상황에서 로렌스에게 온갖 험한 말을 듣게 될 것이었다.

 

  아이린은 어젯밤 보았던 클라우디아의 초상화와, 그 초상화를 찾아왔던 카우라를 떠올렸다.

 

  아이린은 클라우디아의 초상화를 보며 느꼈던 위안과, 그녀를 찾아가고 싶어지는 외롭고 슬픈 마음을 기억했다. 아이린은 황궁에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위태로울 때 남몰래 초상화를 찾아갔다. 마찬가지로 친어머니 없이, 아버지의 사랑 없이, 황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카우라도 그런 마음이 들 때 클라우디아의 초상화를 찾아갈 것이다.

 

  아이린은 적어도 오늘은, 카우라가 황후의 초상화를 찾아가지 않길 바랐다. 하루쯤 외로웠다면, 하루쯤 슬펐다면, 다음날은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슬프고 난 다음날이 꼭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슬프지는 않기를 바랐다.

 

  아이린은 카우라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린은 자신의 아들이 슬프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생선 요리를 준비시켰어요."

 

  아이린이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아름답게 웃어보였다.

 

 

 

 

 *

 

 

 

 

 똑똑.

 

  카우라는 벌써부터 기분 나쁜 표정으로 방문을 돌아보았다. 어제 아이린이 자신의 방문을 노크하고 '은쟁반에 얹어진 통닭구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폭탄을 던져버린 이래로, 가만히 생각해 본 결과 자신의 방문을 손수 두드릴 사람은 황제와 황비, 그리고 시온과 레이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카우라에게 그 네 사람은, 지금으로선 하나도 달갑지 않은 존재들임에 분명했다.

 

  그 네 사람이 아니었다면 고귀하신 황태자의 귀에 저런 둔탁한 소리를 들리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종들은 노크하지 않고 문 밖에서 조심스럽게 아뢰었을 것이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왔다든지, 심부름한 물건을 가져 왔다든지 하는 보고 따위를 말이다.

  카우라가 대답이 없자 문 밖에선 역시나,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카우라는 들어오라고 말해주는 것도, 직접 일어나 문을 열어주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물론 둘 다 시온을 방 안으로 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는 제발 시온이 그대로 유턴하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주기를 바랐다.

 

  그래주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시온은 카우라가 대답이 없자 스스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우라는 짜증스런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시온은 방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카우라를 발견하고는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왜 말이 없어?"

  "네가 찾아오면 좋아서 얼른 들어오라고 할 줄 알았냐?"

  "물론 그건 아니었지."

 

  시온은 카우라의 짜증이 다분히 묻어나는 말투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느긋한 제스처였다.

 

  "왜 왔어?"

  "축하해주러."

 

  얜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카우라가 눈썹을 찌푸렸다.

 

  "뭘."

  "형이 아버지께 대판 혼나지 않은 것을."

 

  시온은 자연스럽게 다가와 카우라의 책상 모서리에 기대어 섰다. 시온은 멋들어지게 웃어보였다.

 

  크-.

  카우라가 봐도 잘생긴 얼굴이긴 했다.

 

  친모의 사촌오빠인 로안 대공작의 새하얀 이미지를 너무 닮아서, 그 기다란 신장에 비해 심히 가녀려 보여 문제였지.

 

  카우라는 로안 대공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욕심이 많고 야망이 큰 로안 대공작은 답지 않게 곱상한 얼굴을 가지고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로안이 하는 짓을 보면 '이 사람, 욕심이 좀 과한데?' 싶다가도 그 커다란 눈망울을 그렁거리면 없던 동정심마저 생겨나게 만들었다.

 

  시온은 로안의 그 커다란 눈망울을 닮지는 않았지만, 하얗게 보일 정도로 밝은 빛깔의 하늘색 눈동자는 꼭 같았다. 시온의 어머니, 레베카가 그 눈동자였다. 그리고 레베카는 누가 로안의 사촌동생 아니랄까봐, 시온을 황제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는 여자였다. 아무것도 모를 어린 시절, 카우라는 자신을 노려보던 하늘색 눈동자를 똑똑히 기억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라도, 소름이 끼치고 안 끼치고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카우라는 시온의 금발도, 하늘색 눈동자도, 완벽한 몸가짐도, 꼰대 같은 잔소리도 전부 싫었다. 이복동생이 황제가 되기를 꿈꾸고, 자신이 황태자 자리를 뺏기고 싶지 않고, 그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카우라는 그냥 시온의 모든 것이 싫었다.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결론적으로 싫은 건 싫은 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그렇게 싫어해 마지않는 이복형의 방에 와서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기대 있는 시온의 능글맞음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났다. 차라리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결코 휘지 않는 카우라의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따라해 낼 수 없는 싹싹함을 겸비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 당연한 것도 축하하러 오다니, 할 일이 어지간히도 없나봐?"

 

  카우라가 빨리 좀 나가달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시온은 그 말을 듣고 방문을 향해 걸어가긴 커녕 아주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당연하다니. 어머니가 형이 혼나지 않게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는데."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내가 없는 곳에서 걔는 또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기에 네가 이런 말을 해? 카우라가 얼굴을 찌푸리자 시온이 씩 웃어보였다.

 

  "아버지가 발 벗고 나서서 형을 멱살 잡아 끌고 오려는 걸 간절히 매달려서 말리셨어."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갈 기세셨는데 말이야. 시온의 감탄어린 말에 카우라가 혀를 찼다.

 

  "쓸데없는 짓을 곧잘 한다니까."

  "혹시, '카이샤하스 제국어'에 존댓말이 있다는 걸 잊어버린 거야?"

 

  시온의 돌려 까기에 카우라가 한껏 구겨진 얼굴로 발길질했다. 꺼져, 제발 좀. 꺼져버려.

 

  "나가. 나가."

  "아이고, 아이고! 궁전 사람들! 황태자가 사람 패요!"

  "나가!"

 

  카우라의 발길질을 피하며 몸을 뒤로 빼던 시온이 결국 책상에서 내려와 발을 딛고 섰다. 시온은 카우라의 발에 채인 하얀 바지를 털며 투덜거렸다.

 

  "루시카 공작전하의 잔소리라도 귀담아 듣는 게 어때? 이 궁에서 형을 생각해 주는 사람은 루시카 공작전하 뿐 아닌가?"

 

  시온의 직구에 카우라는 이마에 힘줄이라도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카우라가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떨자 시온은 한 걸음 물러서기로 했다.

 

  "방금 건 내가 말이 심했네, 미안. 사실은, 공작전하께서 형이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고 보고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화가 나셨다고 그랬거든."

  "……."

  "벌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 잔소리 조금 귀담아 들으면 어디가 덧나느냔 말이야. 괜히 아버지랑 밥 먹으러 간 동생들 체하게 만들지 말고."

 

  카우라는 한껏 화난 눈으로 시온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내렸다.

 

  "시비 다 털었으면 가라."

  "……웬일이야?"

 

  시온은 순간 소름이 돋아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뭐 잘못 먹었어?!"

  "너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가라고."

 

  카우라의 의욕 없는 목소리에 시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카우라는 너무 놀라 굳어버린 시온을 내버려 두고 침대로 다가갔다. 철퍼덕, 힘없이 엎어진 카우라를 보면서 놀란 시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불에 묻힌 카우라의 엉덩이를 바라보았다.

 

  "다음엔 레이 공작님 말 좀 잘 들어."

  "어-."

 

  건성으로 대답하는 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임엔 틀림없었다. 시온은 적어도 카우라가 뒤에 서 있는 이복동생을 향해 손가락 욕쯤은 치켜들 줄 알았다. 손가락 욕이 뭐야. 평소 카우라의 성격으로 보자면 시온의 하얀 제복 바지가 검정색이 될 때 까지 걷어 차여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시온은 카우라의 방을 나서며 카우라의 시중을 드는 시녀에게 물었다.

 

  "혹시 황태자 저하께서 점심식사를 안 하셨나?"

  "아닙니다. 반 시진 쯤 전에 방에서 식사하셨습니다."

  "허어. 왜 저러지……?"

 

  시온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아주 잘- 하는 짓입니다."

 

  오늘 오전, 카우라가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들은 비난이었다. 카우라는 그 말에 반발하여 나름 억울함을 토로하려 하였지만 레이의 책망하는 눈빛을 보고는 관두었다. 토로한다고 풀릴 억울함도 아니었고, 레이는 카우라가 억울해할 대상도 아니었다.

 

  "어디 가서 제 조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십시오."

 

  레이가 평소 쉬이 볼 수 없는 찌푸린 얼굴로 꾸중했다.

 

  "쪽팔립니다."

  "그런 말 안 하고 다녀요."

 

  카우라가 발끈하여 대꾸했다. 그리곤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어디 한 번 강의해 보라는 식이었다.

 

  레이는 금박으로 <카이샤하스 궁중 예법 제 16권>이라고 적힌 책을 단상에 던지듯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이미 서른 번 쯤은 강의한 내용이었다. 물론, 카우라가 17살 성인이 되고 난 이후만 따졌을 때 그랬다. 카이샤하스 궁중 예법 전권 63권의 책들은 황태자를 비롯한 황자들이 늦어도 12살이면 전부 떼어 마땅한 기본예절 책이었다.

 

  "열 살짜리 꼬맹이가 배우는 책을 끊임없이 복습하는 것이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난 복습할 생각이 없는데 자꾸 복습을 시키시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요."

 

  카우라가 당당히 빈정거렸다. 레이는 뒷목이 뻐근해져서 잠시 눈을 감았다.

 

  "카이샤하스 궁중 예법 제 16권의 제 1장. 언사. 그 조항 첫 번째."

  "고결한 카이샤하스의 축복을 받은 황제의 사적인 행동에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하아."

 

  레이는 카우라가 자동반사적으로 읊는 완벽한 문장에 뒷골이 당길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나 잘 알면서 왜. 왜 황제의 여자 문제에 대드는 거야?!

 

  "좋습니다. 더 이상 교육은 필요 없는 것 같으니 이렇게 하죠."

 

  레이는 아까 던진 예절 책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카우라의 바로 앞으로 의자를 옮겼다. 그리곤 카우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정자세로 앉았다. 그의 선명한 보라색 눈동자가 카우라를 직시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문제없습니다."

 

  카우라가 딱 잘라 대답하고 시선을 맞추지 않자 레이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없는 황태자가 할 짓들이 아니잖습니까."

  "……."

 

  카우라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레이는 카우라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조금 화를 삭이기로 결정하고 천천히 숨을 쉬었다. 흥. 카우라가 내뱉는 콧김소리를 들을 레이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아이린 황비 마마와 혼인 하신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레이의 조용조용한 목소리에 카우라의 미간이 좁아졌다. 카우라는 기분이 더럽다는 것을 일부러 숨기지 않으며 레이를 노려보았다.

 

  "결혼식 날 부터 일 년 내내, 어떻게 그렇게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겁니까?"

 

  레이가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 괴롭혔으면 이젠 질릴 때 안 됐습니까?"

  "……삼촌이 뭘 안다고 그러세요?"

 

  카우라가 불만스레 내뱉었다. 레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카우라는 아차 싶었다.

 

  "그래, 바로 그겁니다. 제가 모르는 일이 대체 뭔지 알려주십시오."

 

  완벽히 틈새를 치고 들어오는 레이의 공격에 카우라는 말문이 막혔다.

 

  "……."

 

  완전히 실수했다. 레이가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는 것을 그가 안다면, 아마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엔 알아내고야 말겠지.

 

  물론 레이는 직접 꼬치꼬치 캐묻는다기보다 부드러운 미소로 일관하며 카우라가 어떤 행동을 하건 '그래,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일]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라는 세상 해탈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냐고 캐묻는 것 보다 그런 해탈한 눈빛이 더 진절머리 났다.

 

  카우라는 조용히 레이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까지 일 년 간 카우라의 행보에 쌓여왔던 화가 모두 풀린 온화한 표정의 레이는, 이제 카우라가 어떤 기상천외한 말을 해도 들어줄 용의가 있다는 얼굴로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수업을 안 한 다면 갈 거예요."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민 상담이라는 것이지요."

 

  레이가 싱긋 웃었다. 카우라가 인상을 구기며 일갈했다.

 

  "고민 없다니까요."

  "이야기가 자꾸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제가 궁금한 건 황태자 저하의 고민이 아니라 평소 그런 몹쓸 행동들을 하는 이유입니다."

 

  레이가 부드러운 미소로,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카우라는 결국 그의 눈빛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허."

 

  카우라를 단숨에 압도하는 무거운 목소리가 울렸다. 카우라는 멈춰선 채로 공작을 돌아보았고, 레이는 방금까지 지어 보이던 미소를 깨끗이 지우고는 의자를 턱짓했다.

 

  "앉으세요."

  "말 안 할 겁니다."

  "앉으세요."

 

  인내심 있게 반복되는 목소리에 카우라는 거역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는 결국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레이는 잠시간 카우라의 화가 난 표정을 감상하는 것 같더니 평소와 같이 차분한 얼굴로 조곤조곤 설명했다.

 

  "저는 황태자 저하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황비마마를 뵐 때 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건 황태자 저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만, 억지로 말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레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카우라의 안색을 살폈다. 카우라는 레이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굳은 얼굴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레이는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카우라의 행동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황궁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법도와 예의에 어긋난 발언과 행위를 일삼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와 아무런 연관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나 몰라라 해도 상관없었겠지만, 당신은 내 여동생의 아들입니다."

 

  레이가 단호하게 말하며 카우라를 향해 자신의 속상한 심정을 알아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카우라는 그의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워 져서 괜히 시선을 피했다. 레이는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카우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당신이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하겠다면 적어도 저를 납득시키십시오."

 

  레이가 일어나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단상에 있던 양피지와 펜을 들고 내려와 아까 앉았던 카우라의 앞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끝까지 말해주지 않는다면 당신 아버지에게 '카우라 황태자가 이제 예절 수업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다.'라고 보고할 겁니다."

 

  나름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카우라는 평소 로렌스의 말을 잘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가 무서운 기세로 불같이 화를 내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거구의 아버지. 근엄한 아버지. 그는 카우라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카우라는 입을 열지 않았고, 레이는 허튼 소리로 협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카우라는 예절 수업시간인 한 시간을 꼬박 입을 다물고 있었다. 레이는 예절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빈 양피지 종이와 수업시간 내내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예절 책을 들고 곧바로 황제에게 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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