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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Pay first.
작가 : 바울
작품등록일 : 2018.12.1

인기 없는 작가와 찌질한 팬의 아슬아슬한 관계 유지.

 
#10
작성일 : 18-12-13 23:45     조회 : 265     추천 : 1     분량 : 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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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고아 씨, 강승아 (16)

 

  주말인데도 사람 하나 없다. 낡은 걸 넘어서 황폐한 인테리어다. 저 위에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전등이 어서 도망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계산대에서 꾸벅꾸벅 졸던 노인은 어서 오시라는 인사말도 없이 느릿하게 일어난다. 노인 뒤로 엉성하게 갈긴 메뉴판이 보인다. 주스 하나 없이 커피 종류뿐이다.

 

  "에스프레소요."

 

  엄청 쓰다던데. 정말 그걸 좋아하시나? 승아는 의아해한다. 하지만 곧 작가님이니까 하며 납득한다. 잘 어울리기는 한다. 고아 씨가 한 마디 덧붙인다.

 

  "카푸치노 좋아하세요?"

 

  "엄청 좋아하죠."

 

  물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딜 가도 보이는 메뉴지만 굳이 주문해 본 적은 없다. 지금은 '마실 것도 없이 거품만 잔뜩 껴 있는 걸 왜 먹느냐'라는 말을 못 할 뿐이다.

 

  인테리어만 봐선 잔이나 제대로 닦여 있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멀쩡한 커피가 나왔다. 이 작은 잔은 고아 씨에게. 머그잔은 자신에게. 이제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얘기하면 될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이젠 눈을 피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고아 씨가 승아를 보고 있질 않았다.

 

  준비 된 커피를 손도 대지 않고, 관찰하듯 응시만 하고 있다. 덩달아 승아도 잔을 못 건드린다. 설마 커피에 이상한 거라도 섞여 있는 건가. 그 외엔 달리 저렇게나 보고 있을 이유가 안 떠오른다. 조마조마한 표정의 승아가 고아 씨의 눈에 들었다.

 

  "카푸치노 좋아하시면, 혹시 에스프레소도 좋아하세요?

 

  느닷없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다. 말의 사소한 높낮이 차이에 쿵 내려앉은 심장이 튀어 오른다. 뇌를 밀어내곤 머리를 차지한다.

 

  "네 에스프레소도.. 좋아해요."

 

  작가님을요. 입이 근질거린다. 발 끝이 오그라들고 부르르 떨렸다. 갑자기 바뀐 태도에 직면할 때마다 당연히 들어야 할 의심이, 꽉 찬 설렘 사이에 낄 자리가 없다.

 

  "그럼 저랑 바꿔먹죠."

 

  흠칫한다. 카푸치노도 거품뿐이라며 마셔본 적 없는 승아가 에스프레소 같은 도전을 해봤을 리가 없다. 당연히 에스프레소가 얼마나 쓴지도 모른다. 저 작은 잔 안에 담긴 진한 액체가 아메리카노 한 잔에 담긴 쓴맛이 농축되어 있는 거라 생각하면 차마 마실 엄두가 안 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좋아한다고 뱉은 말을 주워담을 명분이 없다. 저도 모르게 부들거리는 손으로 잔을 교환한다. 이런, 냄새만 맡아봐도 알 것 같다. 이 진한 갈색 빛은 독을 가진 생물이 으레 드러내는 화려한 색 같은 것이다.

 

  고아 씨는 머그잔을 받자마자 한 모금 홀짝인다. 방금은 손도 대지 않더니, 역시 이 잔에 뭔가 더러운 게 껴 있나? 잔은 깨끗하고 커피 위에 떠다니는 건 커피 기름 뿐이다. 마셔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위생적으로는 그렇다. 미각에는 다른 문제다. 마음속으로 두어 번 심호흡하며 준비한다. 이젠 도전해 볼 수 밖에. 자주 마셔본 척, 여유롭게 잔을 들고 딱 반 모금 입에 머금는다.

 

  커피를 도로 뱉어버리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고아 씨가 있기 때문이다. 쓴 것에 약한 승아치곤 대단한 참을성의 결과다. 이 커피만 이렇게나 쓴 건지 아니면 다른 카페에서도 비슷한 건진 몰라도, 이건 사람 먹을 만한 게 못 된다. 독을 가진 생물도 결국 요리 해버린 게 사람이지만, 커피 열매는 어지간히도 사람에게 먹히기 싫었나 보다. 억지로 삼켜 본다. 그러고는 인제야 도로 태연한 척한다. 고아 씨의 표정이 살짝 변해있었다. 딱 티 날 정도로만 크게 뜬 눈.

 

  "정말 잘 드시네요. 거짓말일 줄 알았는데."

 

  문맥 상 승아를 시험해 본 모양이다. 그리고 멋지게 통과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깨가 으쓱한 기분은 나쁘지 않지만, 시험을 통과했으니 이제 다시 바꿔 줬으면 좋겠는데. 고아 씨는 머그잔을 아예 양손으로 잡고 있다. 넘겨 줄 의사가 전혀 없는 모양이다. 반 모금 마셨는데도 아직 한 모금 반 정도는 남아있다. 이 이상은 도저히 무리다. 티 나지 않게 커피잔을 옆으로 밀어 두려 했다.

 

  "전 너무 써서 못 먹겠던데."

 

  뭘? 에스프레소를? 충격적인 발언에 움직임을 멈추고 어벙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에스프레소가 써서 못 먹는다고? 그럼 대체 왜 시킨 거지?

 

  말투만 들어서는 고아 씨가 작은 미소라도 지어야 어울릴 것 같지만, 여전히 굳은 표정 그대로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머그잔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걸 승아는 전혀 눈치 못 챘다. 고아 씨의 속내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 사실은 처음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때부터 그랬다. 티 나는 허세부터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당황하는 표정, 그 중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참으며 기어이 목으로 넘길 때가 절정이었다. 머그잔을 너무 꽉 잡은 나머지 잔이 깨지지 않을까 싶었다.

 

  혼란스러움에서 못 빠져나오는 승아에게 잠시 쉴 시간을 주고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당장 창문만 열어도 시끌시끌한 밖에 비해 이곳은 조용하다. 사람이라곤 자신과 승아, 그리고 계산대에서 졸고 있는 노인뿐이다. 사람 많은 카페는 딱 질색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중고등학생 무리와 신기한 동물을 보는 듯한 남자들의 시선, 개중엔 고아 씨도 들릴 정도로 크게 수군대는 작당들도 있었다. 소름이 돋아 바로 카페를 벗어났었다. 조용한 곳을 찾았으니 오래 걸은 보람이 있다. 앞으로도 종종 들러야지. 승아와 함께? 글쎄. 그건.. 모르겠다.

 

  둘 사이의 침묵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 있고,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승아는 전적으로 후자다. 제정신을 찾은 승아는 어느새 길어진 침묵에 불안해진다. 예상치 못한 타격에 페이스를 잃었지만 이젠 정말로 제대로 된 얘기를 하고 싶다.

 

  "그.."

 

  밖을 향한 고개는 그대로 둔 채 시선만 돌려 승아와 눈을 맞춘다. 재미없는 얘기면 다시 돌려 버릴 거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사람을 절로 움츠러들게 하는 시선이다. 고양이보단 차라리 살쾡이에 가깝다.

 

  "초커가 참 예쁘네요."

 

  고아씨는 당장 대답하진 않는다. 칭찬거리를 찾느라 그렇게 우물쭈물했나. 신경 써서 고른 초커를 칭찬해주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고마워요."

 

  심드렁한 단답쯤이야. 말을 꺼내면서부터 각오해뒀다. 그 뒤에 맘이 시큰한 것 역시도.

 

  "그 초커.. 혹시 E사 초커에요?"

 

  살짝 놀랐다. 밖을 향한 고개가 승아에게 돌아갔다. 초커 브랜드를 알아보는 남자라니 이렇게 생소할 수가. E사의 초커가 맞기는 맞다. 흔한 로드샵 제품과 다른 점은 중앙에 박힌 로고뿐이지만, 예민한 피부의 고아 씨가 유일하게 애용하는 브랜드다. 안 그래도 얇은 걸 가져와서 로고마저 작은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돌 같은 고아 씨의 표정에 의아함이 덧붙는다.

 

  "어떻게 알았어요? 보통 초커 브랜드 같은 건 있는 줄도 모를 텐데."

 

  "초커 좋아하니까.. 그림 그리면서 자료 같은거 많이 찾아봤거든요. 그 브랜드 제품이 다 예쁘길래 하나씩 그려봤었는데, 오늘 작가님이 매고 계시길래.."

 

  초커를 그렸다? 아니 그 전에 승아가 그림을 그린단 얘기는 처음 듣는다.

 

  "초커를 그렸어요?"

 

  추궁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변명식이다. 승아는 괜히 쩔쩔맨다.

 

  "초커만 그린 게 아니라 초커를 맨 여자 그림을.. 아니 여자 그림만 그리진 않아요. 남자도 가끔 그리는데, 음.."

 

  "그림 그리신단 얘기는 왜 안 하셨어요?"

 

  그야 실력이 좋았다면 승아 쪽에서 먼저 말했을 것이다. 둘 사이의 정말 찾기 힘든 공통점인데 그걸 말하지 않았을 리가. 말하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그림이 부끄러워서다. 이 정도의 그림은 고아 씨의 것에 비하면 초라할 뿐이다. 승아는 궁색하게 말을 늘어뜨린다.

 

  "제가 안 했나요? 하하.. 하.. 근데 정말 잘 그리는 게 아니라서 말하기가 좀.."

 

  남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게, 흔치 않은 일은 아니다. 평소라면 고아 씨도 대충 듣고 넘길 얘기였겠지만 운 좋게도, 지금 고아 씨는 승아의 관찰력에 조금은 감탄 중이었다. 같은 관심사라는 주제가 흥미롭게 다가오기 딱 좋은 순간이다.

 

  첫 마디부터 고아 씨의 질문을 끌어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결과가 예상보다 좋아 도리어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대화에서 뒤따라올 말은 하나밖에 없다.

 

  "그림 보여줄 수 있어요?"

 

  역시나. 승아가 그림 그린다는 말을 할 수 없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다만 지금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털어냈다. 그러니 딱히 억울할 일은 아니다. 휴대폰에 담아둔 그림이 몇 장 있기야 있다. 하지만 이걸 작가님에게 보여 줄 용기가 없다. 보고 실망할 바에야 차라리 계속 궁금한 게 낫지. 오늘로 거짓말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제가 찍어온 게 없어서.. 죄송해요. 맘 같아선 보여드리고 싶은데.."

 

  이 놈 봐라.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보니 분명히 거짓말이다. 보여주기 싫은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자기 그림에 자신이 없어서겠지.

 

  어떤 기색도 없이 무덤덤한 고아 씨의 표정에 승아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고아 씨는 고민한다.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부탁하는 건 고아 씨의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자신감 없는 사람은 그냥 두고 싶지도 않다. 자신마저 자신의 그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그림을 사랑하지 않는다. 팬과 작가를 떠나 일종의 선배로서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도와줘야 할까? 괜한 오지랖일까?

 

  하. 앓느니 죽지.

 

  "그럼 지금 하나 그려줄래요?"

 

  "네?".

 

  "맘 같아선 보여 드리고 싶으시다길래.. 싫으면 말고요."

 

  이 입이 문제다. 늘 쓸데 없는 말을 뱉고 다니는 이 망할 주둥아리. 갈아 낄 수 있다면 갈아끼고 싶다. 싫으면 말구요 라는 말은 여지를 준게 아니다. 도리어 압박에 가깝다. 도망칠 곳이 없다. 이빨로 뿌린 씨앗을 거둘 시간이다.

  표정관리까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거진 우는 표정으로 네 라고 대답한다. 고아 씨도 이번엔 살짝 양심통을 느낀다. 하지만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가방에서 작은 수첩 하나와 펜을 꺼내 건네준다. 받는 손에서 망설임이 느껴진다. 아예 우겨 쥐어주었다. 이젠 그릴 일만 남았다.

 

  "그럼 뭘 그릴까요?"

 

  사실 뭘 그려도 상관없다. 고아 씨는 그저 승아가 남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그려달라 할까 싶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저 심약한 애한텐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효과는 더 클 것이다. 이제 승아를 똑바로 마주 본다. 그간 했던 그 어떤 인위적인 말투보다 더 부드럽게 얘기한다.

 

  "절 그려주세요."

 

 .

 
작가의 말
 

 1화부터 8화까지 쭉 추천을 눌러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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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8-12-14 04:34
 
고아씨의 그림에 대한 관념, 과연 프로네요. 감동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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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18-12-14 23:49
 
저도 언젠간 저렇게 말해보고 싶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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