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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림자
작가 : 쩡이
작품등록일 : 2018.12.10

태어날 때부터 돈과 권력을 양손 가득 쥐고 태어났지만 사랑 앞에선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강희건과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롭지만 사랑 앞에선 바보 같기만 한 여자, 이연주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 답답하지만 그래서 자꾸 눈이 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지금.
저와 함께 응원하러 가시겠습니까.

 
4화. 너의 그림자.
작성일 : 18-12-13 22:07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4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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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그로부터 며칠 뒤.

 

 제 남편의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인해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조강지처가 된 연주는 그렇게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딩동,

 

 늦은 오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안 청소를 하던 연주가 갑작스레 울린 초인종 소리에 놀라 얼른 인터폰을 확인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대문 밖엔 희건의 비서가 서있었다.

 

 그녀는 놀란 얼굴을 어서 감추곤 황급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조금 더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그의 비서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 사모님,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

 

 비서의 말에 연주는 그간 경황이 없어 충전하지 못했던 자신의 휴대 전화를 떠올린 뒤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곤 걱정 가득한 얼굴로 희건의 비서를 향해 물었다.

 

 " 혹시 이사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

 

 " 아뇨, 아닙니다. "

 

 연주의 물음에 비서는 황급히 자신의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자 연주는 내심 안도하며 비서의 얼굴을 바라봤다.

 

 분명. 연주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비서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차마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무척이나 망설이고 있었다. 연주는 그런 비서의 얼굴을 바라보며 희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왜 그의 비서가 자신의 집에 방문한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희건의 비서가 연주를 향해 말했다.

 

 " 다름이 아니라 이사님께서 급히 사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

 

 연주가 의아한 얼굴을 한 채 비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이사님이라면 분명 희건을 말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희건이 왜 자신을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불러낸 것일까. '

 

 잠깐의 시간 동안 의도를 알 수 없는 희건의 행동에 대해 고민하던 연주는 이내 자신의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비서를 향해 잠시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곤 얼른 집 밖으로 나갔다.

 

 

 

 ***

 

 

 

 연주가 집 밖으로 나오자 비서는 대기 중이던 차에 그녀를 태운 뒤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희건의 비서가 운전을 하는 동안 가만히 창밖을 보던 연주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 왜 희건이 자신을 밖으로 불러낸 것일까. '

 

 답이 나오지 않는 그 고민이 연주의 머릿속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가며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연주는 일단 희건의 얼굴을 보고 난 뒤 그때 다시 생각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길고 긴 고민을 대충 마무리 지은 연주가 창밖의 풍경을 자신의 두 눈에 담았다. 그러자 연주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희건의 스캔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뒤 그녀의 얼굴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미소였다.

 

 비서는 백미러를 통해 그런 연주의 얼굴을 흘깃 바라본 뒤 내심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

 

 희건의 비서와 연주가 도착한 곳은 많은 건물이 즐비한 도심 속이 아닌 한적한 외각 지역이었다. 연주는 조심스레 차에서 내린 뒤 주변을 살폈다.

 

 온통 푸른 들과 산으로 이루어진 낯선 그곳에 따뜻한 분위기를 가진 작고 아담한 카페 하나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연주는 가만히 카페 외관을 둘러보며 비서를 향해 물었다.

 

 "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요? "

 

 " 네. 이사님께서는 브랜드 회의 후에 이곳으로 오실 예정이십니다. "

 

 비서의 대답을 들은 연주가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한 번 바라본 뒤 그를 향해 말했다.

 

 " 감사합니다, 바쁘실 텐데 어서 가보세요. "

 

 정중히 희건의 비서를 돌려보낸 연주는 곧장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카페 밖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스한 햇살 아래,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연주는 그곳에 앉아 아주 오랜만에 작은 행복을 느꼈다.

 

 

 

 ***

 

 

 그 시각.

 

 브랜드 회의를 마치고 나온 희건은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바라보며 얼른 이사실로 향했다. 평소보다 회의가 조금 길어진 탓에 지금 출발한다 하더라도 약속 장소엔 늦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희건은 자신의 발걸음을 조금 더 재촉했다.

 

 사실, 오늘. 희건이 연주를 집이 아닌 밖으로 불러낸 이유는 24시간 지속되는 강회장의 감시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희건과 지연의 불륜 아닌 불륜 같은 관계가 세상 밖으로 나온 그 후부터 강회장은 희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 탓에 희건은 예전처럼 지연의 집을 찾아가는 일도, 지연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희건은 그것이 곧 지연을 위한 일이기도 했기에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꽁꽁 숨기며 적당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려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지연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그새 다 잊은 것인지. 희건은 더이상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신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지연이 걱정된 탓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조금이라도 빠른 시일안에 강회장의 감시에서 벗어나기위해 그다지 내키진 않지만 강회장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강회장이 좋아할만한 행동. 그것이 바로 오늘, 희건이 연주를 집이 아닌 밖으로 부른 이유였다.

 

 희건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차 키를 챙겨 서둘러 이사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 때였다.

 

 

 똑똑

   

 주로 잡무를 도맡아 하던 비서실의 막내 직원이 노크와 동시에 이사실 문을 벌컥 열었다. 꽤나 다급한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희건이 매서운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 무슨 일이야. “

   

 " 죄송, "

 

 날이 선 희건의 말에 비서실의 막내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희건을 향해 사과를 하려 했으나, 한 중년의 남성이 이사실로 들어와 희건을 향해 말했다.

   

   “ 오랜만이지,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

   

 뜻밖에도 연주의 아버지가 희건을 찾아왔다. 희건은 자신을 찾아온 연주의 아버지를 향해 예의 갖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비서를 향해 이만 나가보라는 말을 한 뒤 자신의 장인어른을 소파로 안내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희건의 비서가 조용히 이사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연주의 아버지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소파에 앉아 희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하네. “

   

   “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

   

 희건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자 연주의 아버지는 그런 희건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억 겹의 시간이 흘렀다.

 

 

 " 시간 괜찮으면, 나랑 술 한잔하지. "

 

 길고 긴 침묵 끝에 연주의 아버지가 낮고 단호한 음성으로 희건을 향해 말했다. 희건은 그런 연주의 아버지 앞에 서서 차마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채 대답했다.

 

 " 네. 알겠습니다. "

 

 잔뜩 굳어진 얼굴로 이사실의 문을 열고 나가는 연주의 아버지를 따라 희건 역시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머릿속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연주를 떠올린 뒤 조금 곤란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바라봤다.

 

 희건의 입 밖으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

 

 

 

 한편. 붉은 노을이 지나가고, 푸르스름한 어둠이 찾아온 그 시각. 연주는 어느새 카페 안에 앉아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희건을 기다리며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자신의 남편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혹시, 희건이 자신과의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닐까. '

 

 꼬리를 무는 걱정을 반복하던 연주는 어쩌면 지금쯤, 희건에게 연락이 온 것은 아닐까 하며 다급하게 자신의 가방을 뒤적였다. 하지만, 집에서 급하게 나온 탓에 차마 챙기지 못한 자신의 휴대 전화를 떠올린 연주는 긴 고민 끝에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직원을 향해 다가갔다.

 

 " 죄송하지만, 전화 한 통 사용할 수 있을까요? "

 

 " 네, 그럼요. "

 

 카페 직원의 상냥한 대답에 연주는 자신의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 채 희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하필이면 오늘 마저도 희건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연주는 절망이 가득한 얼굴로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곤 카페 직원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어느새 연주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오늘, 희건과의 약속이 깨진 것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두 사람이 결혼한 후 처음으로 희건이 연주를 집이 아닌 밖으로 불러낸 날이었으니까.

 

 그 탓에 연주는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희건이 자신을 부른 이곳에서 오지 않을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

 

 

 

 그 후,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일까.

 

 이제는 새까만 어둠이 카페를 전부 집어삼켰다. 그 무렵, 카페 직원 또한 퇴근을 준비하는 듯했다. 큰 키에 선한 얼굴을 가진 직원이 연주에게 다가와 그녀를 향해 다정한 말을 건넸다.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긴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곳이라서, 시내 앞까지만이라도 데려다 드릴게요. "

 

 연주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려는 카페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예의를 갖추고 정중하게 말했다.

 

 " 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

 

 " 아, "

 

 " 늦은 시간까지 실례 많았습니다. "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연주를 바라보던 직원이었다. 연주는 그런 직원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뒤 얼른 자신의 가방을 챙겨 카페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았다.

 

 

 

 어두운 밤, 그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이 여주의 머리칼을 또 한 번 만졌다. 연주는 가만히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의 머릿속에 지난밤 전화기 너머 지연의 이름을 부르던 희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연주가 지금껏 본 적 없던 희건의 얼굴이었다.

 

 늘 가면을 쓴 듯, 자신의 모습을 꽁꽁 감추고 사는 희건에게 그런 표정이 있을 줄이야. 연주는 다시 생각해도 낯설기만 한 희건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가렸다.

 

 잠시 후.

 

 연주의 작은 어깨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그녀가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이던 그때.

 

 

 

 

 

 

 연주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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