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로맨스
해에게서 소년에게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류 도진과 그의 단 하나뿐인 해에 관한 이야기.

 
6화. '너'라는 색.
작성일 : 18-12-13 21:52     조회 : 213     추천 : 0     분량 : 406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언제였을까. 도진의 키가 갓 자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더위에 지친 도진이 다 큰 진돗개와 함께 흙바닥에 누워 있었다. 흙은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한 느낌으로 열을 식혀 주었다.

 

  물뿌리개를 들고 가던 해가 그에게 물을 부었고 흠칫 놀란 그가 해임을 확인하고서는 기분 좋게 웃었다.

 

  「바다보다 더 시원하다.」

 

  괴롭히는 것인데도 그는 속 좋은 소리나 했다. 재미없어서 몸을 돌리려고 한 찰나 그가 해의 발목을 잡았다.

 

  사시사철 손발이 차가운 해와는 달리, 태양의 열기는 다 흡수한 것만 같은 뜨거운 손바닥이었다.

 

  「그래도 바다에 놀러가자. 해야.」

 

  무덤덤하게 내려 보는 해의 시선에, 그가 번쩍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덕에 놀란 개가 웡! 하고 짖었다. 그는 나무 밑에 내려놓았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젖은 티셔츠에는 흙이 잔뜩 묻어 더러워졌는데도 몸을 돌려오는 그의 얼굴만은 깨끗하게 반짝였다.

 

  그가 내민 것은 투명한 포장지로 감싸져 있는 물감과 붓, 팔레트였다.

 

  「오늘 운동회였는데, 너 주려고 일등 했어.」

 

  몇 주 동안 그렇게 뛰어다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성장통 때문에 무릎이 아파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이제 색깔도 칠할 수 있으니까 직접 보고 오면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해의 그림은 언제나 아득한 빛과 그것을 둘러싼 검은 선들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흔한 크레파스 한 번 가진 적이 없었다. 모노크롬의 세계에서 그녀는 숨 쉬어 왔다.

 

  그 세계에 어느 날 뛰어든 도진은 색을 부어 넣는다. 오색찬란한 광채가 그녀를 감싸는 건 순식간이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006

 

 

  해는 익숙하지 않은 넓은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별안간 일이 끝나고 선우가 갈 데가 있다며 차에 자신을 태웠다. 그때 이상하다 생각했어야 했다. 공항에 발을 내딛고 나서는 티켓이 꽂힌 여권을 받아들고 물어볼 틈도 없이 입국장에 들어서야 했다.

 

  가장 좋은 등급의 좌석이 오히려 불편해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야 했다. 이 일의 주동자일 게 분명한 류 도진을 만나면 멱살이라도 잡겠다는 투지를 불태웠지만 겨울옷을 입고 내린 해를 습기로 뭉친 더위가 공격했다.

 

  공항에 내리자 사람 좋은 얼굴을 한 퉁퉁한 외국인 아저씨가 자신의 이름이 알록달록하게 적힌 스케치북을 안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차 안 에어컨은 쌩쌩했고 도착한 방 안 역시 시원했다. 어질어질 거리는 머리를 조금 진정시키고 나자 의자에 예쁘게 준비해놓은 옷이 보였다. 마음에 안 들지만 입을 수밖에 없었다.

 

  “똑똑.”

 

  귀찮은 얼굴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문을 열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우스꽝스러운 하와이안 셔츠 차림도 훌륭하게 소화한 도진이 있었다.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어이가 없어 해는 정말 싫다는 얼굴로 침대에 앉았다.

 

  “놀랬지? 서프라이즈로 해주려고 일부러 말 안 했는데."

  “납치로 신고할 뻔했어."

 

  헤-하고 입을 크게 벌리며 웃는 그가 그녀를 바라보더니 어느새 꺼내든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금방 제지당했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도진이 항의했다.

 

  “왜! 오늘 진짜 예쁜데.”

  “더워서 입은 거야.”

  “잘 어울리는데.”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복숭아 뼈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옷자락을 그가 매만졌다. 보들보들한 감촉의 원피스는, 그녀가 입는 평소 옷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옷은 명도가 아주 낮은 색들뿐이었다. 검은색, 짙은 회색, 어두운 감색. 고채도와 고명도일 밝은 파란색 계열의 비치 원피스는 온전히 그의 취향이었다.

 

  “가자.”

 

  도진이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해는 손을 힐끗 보고는 가뿐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는 혼자 일어날 수 있어.”

 

  단순한 친절이 아님을 알면서도 선을 긋는다.

 

  리조트 바깥으로 나오자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에 에메랄드 물결들이 반짝이며 넘실거렸다. 한 폭의 명화 같은 풍경이었다. 야자수 나무 아래 캐노피까지 달린 하얀 침대가 놓여 있었다. 보기만 해도 낭만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흡족한 얼굴의 도진과 달리 해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예쁘다, 그치?”

  “싫은데.”

  “진짜 예쁜데. 그림 같다. 여기 해변이 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잘 안 온대.”

 

  도진은 침대에 앉아 톡톡 옆자리를 두드렸다. 해는 마음 같아서는 땅바닥에 앉고 싶었다. 그가 "얼른."하며 팔목을 잡아 그녀를 옆에 앉혔다.

 

  조금 낮아진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정경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저도 모르게 한참 바다를 보던 해가 고갤 슬쩍 돌리니 도진은 기다렸다는 듯 씩-웃었다.

 

  “밤에는 침대 주변에도 다 물이 찬대. 얕아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이긴 한데 그래도 이 침대가 섬처럼 느껴진다고 아저씨가 그러더라.”

 

  도진은 어디에 숨기고 가져 왔을지 모를 하얀색 꽃들로 만든 머리띠를 그녀의 머리에 올려두었다. 신의 축복을 받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해는 순간 말을 잃고 행동을 잊은 듯했다.

 

  “밤에도 나오자.”

 

  그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해에게 밀려 들어왔다.

 

  해변에 있는 시간은 아주 평화로웠다. 도진은 수영하고 오고 해는 무릎을 모아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둠이 나붓이 깔리자 해를 픽업하러 온 아저씨가 바비큐를 구워 주었다. 약간 곁들인 와인은 달콤했다. 푸짐한 저녁이었다. 좀 이따가 데리러 오겠다고 도진은 해를 방에 데려다 주었다. 씻고 나온 해는 옷을 갈아입고서 침대에 걸터앉아 맞은편 거울을 바라보았다.

 ​

  옅은 분홍 빛깔의​ 롱 드레스를 입고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한 여름 밤의 꿈을 꾸고 있는 여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다.

 

  “진짜 웃기네.”

 

  말과 달리 그녀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배는 부르고, 앉은 침대는 폭신하고, 방 안을 이루고 있는 모든 물건들은 고급스러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갖춰져 있는 완벽한 편안함이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똑똑.”

 

  조금 더 편하게 옷을 갈아입은 도진을 따라 해는 밤바다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모래사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바닷물로 채워져 있었다.

 

  먼저 들어간 도진의 발목이 젖었다. 긴 치마 끝을 조금 끌어올려 바닷물로 들어가려는 해를 도진이 번쩍 안았다.

 

  “야, 류 도진.”

 

  당황한 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에 내려주었다.

 

  “그래도 밤 바닷물은 조금 차가워.”

  “그런다고 안 죽어. 걸을 수 있어.”

  “응, 그러니까 내가 안아서 옮겨도 안 죽어.”

 

  이상한 논리로 반박하는 도진은 자신의 답변이 꽤 그럴싸하다 생각했는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 더 말하려는 해에게 도진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

  푸름을 머금은 어두운 하늘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별로 그득했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찬연함에 도진과 해는 정신을 뺏겨 고개가 꺾일 정도로 올려보았다.

 

  “해야.”

 

  나지막한 그의 음성에 해는 일부러 고갤 돌리지 않았다.

 

  “응.”

  “더 많은 걸 보여줄게.”

 

  해는 손바닥을 접어 주먹을 꾹 쥐었다.

 

  “나 때문에 놀러 다니는 게 쉽진 않지만, 그래도 네가 좋은 걸 놓치는 건 싫어.”

 

  별들이 노래하는 것 같은 밤하늘, 달콤한 내음을 풍기는 밤바다, 세상에 단 하나뿐일 것 같은 바다 위의 침대. ㅡ 그녀 인생에는 절대 없을, 아름다움이 지금 존재하고 있다.

 

  “예쁜 거도 많이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는 것도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다 네가 만들어 주고 네가 손에 쥐여준 찬란함인데.

 ​

  “더, 더 많이 행복하게 해줄 거야.”

 

  그녀는 팔을 뻗어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아."하고 아픈 음성을 내뱉으며 이마를 문지르는 그를 향해 그녀가 건조한 목소리를 냈다.

 

  “내 행복은 내가 알아서 해.”

  “진짜 해는 다 좋은데, 로맨틱을 너무 몰라. 방금 되게 나 멋있었던 것 같은데.”

 ​ “로맨틱은 무슨.”

 ​

  해는 눈앞에 있는 이 아름다움을 눈 감기로 했다. 이건 신기루다. 꿈이고, 물거품이다. 뻗으면 잡힐 것 같지만 사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것도 아니다. 모래처럼 흩어지고 바닷물처럼 빠져나갈 게 분명하다.

 

  그는 그녀에게 곧 빛이었으며 색이었다. 다채로운 세계는 빛만 잃으면 금세 흑백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 행복에서 행복해질 수가 없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8 18화. 인터뷰. 2018 / 12 / 31 238 0 8800   
17 17화. 특별한 건 오늘일까, 너일까. 2018 / 12 / 31 237 0 6849   
16 16화. 너를 그리다. 2018 / 12 / 31 218 0 6713   
15 15화. 너의 꿈, 나의 꿈. 2018 / 12 / 31 237 0 7028   
14 14화. 오빠라고 불러줘. 2018 / 12 / 31 248 0 7228   
13 13화. 백야 2018 / 12 / 28 226 0 7362   
12 12화. 배우로 산다는 것-3 2018 / 12 / 27 227 0 6433   
11 11화. 배우로 산다는 것-2 2018 / 12 / 27 225 0 5752   
10 10화. 배우로 산다는 것-1 2018 / 12 / 27 215 0 6337   
9 9화.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2018 / 12 / 27 226 0 5220   
8 8화. 빛나지 않는 해. 2018 / 12 / 24 207 0 7132   
7 7화. 나는 그대가 아프다. 2018 / 12 / 24 231 0 4747   
6 6화. '너'라는 색. 2018 / 12 / 13 214 0 4064   
5 5화. 해야 할 일. 2018 / 12 / 10 222 0 3916   
4 4화. 세상에 단 하나뿐인. 2018 / 12 / 8 236 0 5923   
3 3화. 사고 치는 사람은 따로. 2018 / 12 / 8 258 0 4568   
2 2화. 결심 2018 / 12 / 5 246 0 4676   
1 1화. 신이라 불리우는 남자 2018 / 12 / 4 391 0 427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유해화합물
llena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