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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유해화합물
작가 : llena
작품등록일 : 2018.12.4

이건 금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의 정의를 다르게 쓰는 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4화. 이상형
작성일 : 18-12-13 21:21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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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리는 건지, 빗소리가 피아노 소리처럼 들리는 건지. 언젠가부터 비가 오면 생각이 났다.

 

 우주는 대충 이불을 깔아 놓은 작업실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술에 취하면 아직은 새 집보다 작업실을 찾아왔다. 갈 곳이 여기밖에 없던 때처럼.

 

 알딸딸한 와중에 만졌던 파일은 컴퓨터 화면에 켜져 있고 휘갈긴 작사 종이는 그 앞에 놓여 있었다. 뻐근한 어깨를 한 번 돌리고 핸드폰을 들었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두 시까지 갈게] 연주를 도와주기로 한 선의 연락이었다.

 

 다행이다, 꺼지지 않아서. 시계를 보니 열두시가 조금 넘었다. 찬물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우산을 챙겨 들었다. 젖은 땅을 밟고 가는 슬리퍼 새로 물이 찰랑거렸다.

 

 택시에 올라타 목적지를 말한 우주는 잠시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유리로 맺히는 물방울이 얼룩처럼 시야를 가렸다. 도시는 높고 넓다. 가끔 어떻게 완성된 건지 궁금할 정도로.

 

 도착한 우주는 주택인 선의 집을 성벽처럼 감싸고 있는 대문을 바라봤다. 그 안으로 단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 언뜻 열린 문 사이로 보였던 커다란 나무만 알고 있다.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

 

 “집이야?”

 “-응.”

 “씻었어?”

 “-응.”

 

 달칵거리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것 같더니, 문이 열렸다.

 

 매번 크게 입고 다니는 반팔 티 아래 짧은 바지는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귀찮아서 두 손을 가볍게 다닌다. 비 오는 날이라고 다르지 않다. 우비라도 씌워야 하나. 노란 우비 아래 톡 튀어나온 얼굴을 상상하니 제법 잘 어울릴 것 같다.

 

 상상을 깨트리듯 선은 제 우산 아래로 성큼 들어오며 건조한 얼굴을 했다. 걸어 나오는 사이 맞은 빗방울이 머리카락에 맺혀 있어 우주는 손바닥으로 살짝 털어줬다.

 

 “우산 좀 챙겨 다녀.”

 “어차피 택시 탈 건데 뭐.”

 “감기 걸려.”

 “튼튼해. 누가 잘 먹여놔서.”

 

 선은 씩씩하게 팔을 흔들어 보였다. 근육도 살도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밥 먹으러 가자. 해장국.”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이는 선을 보고 우주는 우산을 기울였다.

 

 선은 완전히 육식파다. 해장국도 콩나물, 황태 안 좋아하고 뼈 해장국이나 선지 해장국을 선호했다. 뜨거운 건 잘 못 먹어서 밥을 말아 놓고 조금씩 덜어 먹었다. 후후 부는 것 대신 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는데 눈을 찡그리면서 한 가득 떠서 먹는 모습이 재밌었다.

 

 다 먹고 들어 온 작업실에서 선은 창가에 놓는 생수병을 가져갔다. 작은 공간이긴 해도 선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안다. 집이 생기기 전까지 두 사람에게 이 곳은 카페이자, 술집이자, 아지트이자, 자취방이었다.

 

 선은 방금 양치를 하고도 숨겨진 과자를 찾아 봉지를 뜯었다. 폭신하고 깨끗한 책상 의자에 앉아 빙글 빙글 발을 돌렸다.

 

 “의자 바꿨네.”

 “응. 네가 하도 돌려서 고장 났어. 과자 먹지 마.”

 

 우주는 입에 있는 거품을 뱉어내곤 말했다. 안 봐도 선이 뻔히 뭐하는 지 보인다는 말투였다. 회전을 멈추곤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들었다. 젖은 입 주변을 닦으며 나오던 우주가 후다닥 뛰어와 뺏었다.

 

 [난 너의 이상형이 되고 싶어.

 너를 위한 이상향도 준비 됐어.]

 

 어제 밤 술 취해 들어와 쓴 글이었다. 취중고백 같은 글은 술 깨고 보면 지나치게 달고 직설적이어서 징그럽다.

 

 “취해서 쓴 거지?”

 “왜? 유치하냐.”

 “아니. 글자가.”

 

 지레 찔렸던 우주는 아, 하고 흠흠 헛기침을 했다.

 

 “이상형 뭔데.”

 

 선과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다. 오히려 회사 형들이 지겹게 묻는다. 외모? 몸매? 청순? 섹시? 성격 같은 얘긴 하지 말고ㅡ라면서.

 

 호기심 없어 보이는 얼굴이 증명하듯 그 질문이 진짜 하고 싶은 쪽은 우주였다.

 

 “너는?”

 

 홱 뺏는 바람에 구겨진 종이를 괜히 빳빳하게 펴고 정리하는 척 노트에 넣으며 흘깃 살폈다. 과자를 먹는 옆얼굴은 무심해보였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

 

 이상형으로 그런 사람을 하는 게 어디 있어. 선은 가끔 지구상에는 없는 물질,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형체 같다.

 

 “이왕이면 안 죽었으면 좋겠고.”

 “불사신 원하는 거야? 좀비 원하는 거야?”

 “음.”

 “진지하게 고민하지 마.”

 “결정했어.”

 

 선택을 끝낸 선은 후련한 얼굴로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답이 궁금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호기심과 자기 혐오가 섞인 눈빛을 읽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선은 웃으며 과자를 집어 우주에게 내밀었다.

 

 “이왕이면 좀비.”

 

 우주는 저도 모르게 받아먹고는 왜냐고 물었다.

 

 “쉽게 죽지도 않고 나를 쉽게 잊지도 않도록.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태어나게.”

 

 쪼개고 쪼개면 뭘로 나올까. 저 작은 머릿 속 우주엔. 외계인 일지도 모른다.

 

 “그거 가사 써도 되냐.”

 “돈 내놔.”

 “맨날 사주잖아.”

 “아. 그렇네.”

 

 금방 수긍하고 다시 우물거렸다.

 

 선이 봉지를 접어 버리고 부스러기 묻은 손을 깨끗이 씻고 의자에 안착했다.

 

 "이제 과자 값해볼까."

 

 파일을 들려주자 오선지에 금방 채워 넣었다. 절대 음감이라고 했나. 타고난 재능은 아무래도 운 하나를 더 가진 것 같긴 하다. 노력까지 더해지면 더 무섭다. 얼마나 성장할지.

 

 공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선이 무사히 유명한 대학에 들어갔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친다는 걸 가끔 화성학 같은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봐야 실감한다.

 

 완성된 악보를 따라 키보드가 눌려진다. 작은 어깨를 약간 웅크린 듯 말아 연주하는 선의 등은 아름답기보다는 쓸쓸하고 초라하다. 처음 만났던 콩쿠르장처럼.

 

 열여덟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방황했다. 학교도 그만두고, 타투도 하고, 담배도 피고, 집에 누워 음악만 주구장창 들었다. 소리에 묻히고 가라앉도록.

 

 문득 너무 보고 싶어 엄마가 묻힌 곳을 찾았다 돌아가는 길 근처 예술회관에서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들어가 앉아 눈을 감고 잠시 꿈에 빠지듯 잠겼다. 유려하고 훌륭한 연주들 사이에서 귀를 사로잡는 곡은 따로 있었다. 폐허에 홀로 남은 아이 같이 선연한 슬픔과 몸부림치는 듯한 외로움이 몰아쳤고 저도 모르게 더듬은 얼굴이 젖어 있었다.

 

 맞닥뜨린 게 암전인지 백야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박수 소리에 눈을 뜨자 피아노에 엎어지듯 몸을 숙인 등 뒤로 내려앉은 빛은 아무도 그녀의 어둠을 보지 못하게 감싸는 듯 했다.

 

 상을 거머쥔 그녀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시린 바람에 하얀 숨을 뱉었다.

 

 ‘죽을 거야?’

 ‘아니.’

 

 그녀의 목소리는 허물어지던 연주와는 전혀 다르게 견고했다.

 

 ‘살 거야. 신이 허락할 때까지.’

 ‘기독교야?’

 

 제가 말하고도 헛소리라 생각했는데, 살풋 웃는가 싶더니 고개가 돌아왔다. 물기 하나 없이 아주 메마른 겨울 숲의 나뭇잎 같은 눈동자가 저를 쳐다봤다.

 

 ‘고기 먹을래?’

 

 그게 첫 만남이었다.

 

 “어떤 게 괜찮아?”

 

 선은 화음을 조금 더 쌓은 노래와 덜 넣은 음을 들려줬다. 무얼 하든 지루해 보이는 선은 피아노가 끼인 일에는 그나마 활력 있어 보인다. 먹을 때도 그렇고.

 

 미지근한 물을 마시다말고 선은 팔을 뻗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던 제 이마를 짚었다.

 

 “열나는데.”

 

 그래서 좀 몽롱했나. 과거 회상 같은 짓이나 하고. 차가운 바닥에, 차가운 물에, 젖은 발까지 콤보가 되어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린 건가. 우주는 고갤 저었다.

 

 “별로. 괜찮은데.”

 “집에 가자.”

 “됐어.”

 “내가 감기야.”

 “거짓말 하지 말고.”

 

 선은 입씨름 하지 않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일어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피력하려 몸을 돌렸다. 달칵. 등 뒤로 문 열리는 소리에 돌아봤을 때 입구에 없었다.

 

 “아, 진짜.”

 

 저거 말 더럽게 안 들어요. 우주는 재빨리 슬리퍼를 신고 우산을 들었다.

 

 선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랩을 시작했고 그 뒤에 길거리 공연도 했다.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날도 그랬다.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는 할머니를 도우러 마이크를 잠시 선에게 맡겨놓고 갔다.

 

 언덕 위까지 밀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급작스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우산을 하나 가져오긴 했지만 장비들이 걱정됐다. 선이 들긴 다소 무거운 제품이었다.

 

 우산을 든 사람들 사이를 전력으로 달려 도착한 우주는 텅 빈 공원에 우두커니 있는 검은색의 우산을 발견했다. 그 아래 젖지 않고 놓인 앰프와 마이크, 그 옆 푹 젖은 선까지.

 

 ‘뭐하냐.’

 

 고마운 생각보다 어이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선은 빗물에 눈을 깜빡였다.

 

 ‘소중한 거잖아.’

 

 문을 열자 하염없이 내리는 비 사이로 서 있다. 기다렸다는 듯 우산을 문 쪽으로 기울인 채 투명한 눈을 깜빡이는 선이.

 

 “어차피 죽 같은 건 못 해줘.”

 

 이상형이 뭐냐고 물었지.

 

 “치킨 사줄게. 먹고 자자.”

 

 비 맞지 않았으면 좋겠는 사람.

 

 

 

 

 
작가의 말
 

 나도 치킨 사줘, 나도 먹고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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