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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사랑하는 나의 친구에게
작가 : 율혜
작품등록일 : 2018.11.5

[펜팔 친구/초반 편지 형식/귀여운 주인공/언어 배우려고 펜팔 시작한 주인공/사서 주인공/다정한 남주/차분하고 침착한 남주/피아니스트 남주/서로 존댓말 쓰는 주인공들/일상물]

[(저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해요. 햇빛이 맑은 날 강가를 거니는 것도 좋아하고,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며 의자에 파묻혀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요. 곁에 캐모마일 차가 담긴 찻잔을 올려둔 테이블이 있다면 더 행복할 거예요. 그리고 저는, 안젤라 그린스타이들의 노래를 무척 좋아해요. 스테판도 알고 있죠? 아인슈페너의 유명한 가수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꼭 모든 고민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라 몹시 행복해지곤 해요.
스테판,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안녕하세요, 안나.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것들을 좋아하시는군요. 당신이 말한 모든 것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죠.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하셨죠. 저 또한 그 케이크를 좋아합니다. 케이크로 유명한 가게 중 리스트레토에 있는 가게로는, '판도로'와 ‘파네토네’를 꼽을 수 있겠군요. 그 두 가게는 가끔 리스트레토를 방문할 때마다 찾아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곳입니다. 당신도 그곳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서로 알기도 전부터 우연히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조아라 닉네임 '김연정'으로 동시 연재 중입니다!

예쁜 표지는 하레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플로랑틴florentine(2)
작성일 : 18-12-13 18:17     조회 : 211     추천 : 0     분량 : 6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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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축제같은 하루-꽃별

 (함께 들으시면 좋습니다:D)

 

 -----

 

 역도 충분히 시끄러웠지만, 역을 벗어나자 정말 ‘축제구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쉽게 꺼내 입을 수 없는 색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이들이 신나게 웃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광대인 듯 오렌지 세 개로 저글링을 해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이도 있었고, 류트를 연주해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이도 있었다.

 

 다들 화려한 복장을 한 탓에 오히려 평범하게 차려 입은 안젤라와 안나가 돋보일 정도였다.

 

 날은 추웠지만,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많이 쌀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축제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세찬 물결처럼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왁자한 소란 속 방황하던 안나는 슬그머니 안젤라의 소매 끝을 잡았다. 소매 끝이 부푼 검은색 긴팔 원피스를 입고 있던 안젤라가 의아한 시선으로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난감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의 발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하던 안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한 마디에 한 번 씩 발길을 틀던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경쾌하게 웃은 안젤라는, 급기야 안나의 팔을 휙 잡아채 단단히 팔짱을 끼곤 화사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우선 실내로 들어갈까요? 슬슬 점심을 먹어야 하기도 하니까요. 적당한 식당이 이 근처에 있었던 것도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던 안젤라는 이내 목적지를 정한 듯,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노래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실례합니다.’하고 길을 터주길 요청하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슬금슬금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들의 머리 위로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안나는 문득, 이 순간이 꿈같다고 생각했다. 와볼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만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다. 순간 모든 소음이 먹먹하게 그녀의 귀를 틀어막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순간이 꿈이라면, 도저히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상념이 부서진 것은, 프란츠와 알렌의 얼굴을 떠올린 직후였다.

 

 “저기, 안젤라! 그런데 프란츠랑 알렌은 어떡하죠?”

 “왜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뒤따라오고 있는 것 같았는데-”

 

 고개를 틀어 뒤를 흘긋 바라본 그녀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인파 속에서 헤어진 것 같아요.”

 “아아.”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싱겁게 답한 안젤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요. 어린 아이들도 아닌걸요. 알아서 찾아올 거예요.”

 

 생각이 통한다면 말이지만.

 

 안젤라는 뒷말을 꿀꺽 삼키고서 생그레 웃었다. 그럼에도 안나는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뒤를 두어 번 더 흘긋거리다,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젤라의 목소리에 비로소 앞을 바라보았다.

 

 크지 않은 카페였다.

 

 카페 앞으로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었고, 안으로도 테이블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안젤라는 주변을 둘러보다 중간 즈음에 놓인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연스레 그 반대편 자리는 안나의 것이 되었다.

 

 “뭐 먹을까요? 이 카페는 애프터눈티세트가 유명한데, 저랑 같이 그거 먹을래요?”

 “앗, 사실 애프터눈티세트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그럼 그걸로 해요. 차 종류는 어떻게 할까요?”

 “음, 전 딸기 가향 홍차로 할게요.”

 “좋아요. 주문하고 올게요.”

 

 안젤라는 몹시 능숙하게 행동했다.

 

 안나는 턱을 괴고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춤을 추는 것 같은 걸음걸이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눈에 담아냈다. 악기 소리가 쉴 새 없이 났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의 고향인 리스트레토에도 수확제는 있었지만 플로랑틴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아니, 그건 그녀가 그간 지내왔던 곳이 리스트레토 구석에 있는 시골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는 이렇게 큰 축제를 경험해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하네요.”

 

 자리로 돌아온 안젤라가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얘기나 해볼까요? 우리는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잖아요. 당신께 궁금한 점이 많았거든요.”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긴 안젤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테이블 위로 팔을 뻗어 안나의 손을 쥔 그녀가 물어왔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저는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아, 재작년에 친구와 함께 안젤라의 공연을 보러 갔었거든요. 친구가 보러 가자고 해서요.”

 

 안젤라의 손을 잡지 않은 손으로 컵을 잡고 물을 한 모금 마신 그녀는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너무 잘 부르셔서……. 그 때부터 좋아한 것 같아요.”

 “아하. 그러면 프란츠는요?”

 “프란츠는 팽 페르뒤 졸업식 때 연주하는 걸 보고 그 때부터 좋아했어요. 원래 졸업식에 와서 연주해주지는 않는다고 하던데, 딱 제가 졸업하는 해에 연주하러 왔더라고요.”

 

 신기한 우연이죠. 안나가 배시시 웃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의 말을 경청하던 안젤라가 중얼거렸다.

 

 “신기하네요.”

 “네?”

 “그 연주, 아마 저와의 내기에서 져서 그랬을 거예요. 그 때 무슨 내기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제가 진 사람이 팽 페르뒤로 공연가자고 했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안나가 작게 감탄했다.

 

 “안타깝네요. 그 때 제가 내기에서 졌다면, 안나는 프란츠보다 저를 더 먼저 좋아하게 되었을 텐데.”

 

 안젤라의 짓궂은 말에 실없이 웃은 안나가 속삭였다.

 

 “지금은 둘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걸요. 두 사람은 재능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재능을 갈고닦기 위한 노력도 엄청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노력은 가장 쉬워 보이지만, 동시에 오래 끌고 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안나의 말을 가만히 듣던 안젤라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노력을 알아봐준 이가 있다는 게 기뻤고, 그게 안나라 더욱 기뻤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젤라는 안나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새삼 이 사람을 만나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바로 그 때, 3단 트레이와 차가 담긴 주전자, 찻잔을 들고 온 종업원이 그것들을 차례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가장 아래층에는 샌드위치가 있었고, 두 번째 층에는 미니 타르트와 커다란 마카롱, 한입 크기의 초콜릿 케이크가 있었으며, 가장 위층에는 작은 마카롱과 마들렌이 한 쌍씩 예쁘게 앉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채소를 훈제 연어로 돌돌 말아 바게트 위에 얹은 연어 샌드위치는 몹시 먹음직스러워보였고,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안나조차 손을 가져가게끔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던 그녀는 고민 끝에 연어를 먼저 먹은 뒤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식감이 부드러운 연어는 꼭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눈을 반짝이던 안나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맛있는 연어 샌드위치는 처음 먹어 봤어요…….”

 “입에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햄치즈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던 안젤라가 답했다. 입에 있던 것을 꿀꺽 삼킨 뒤, 그녀 몫의 레몬차로 입가심 한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몇 년 전에 오고 그 이후로는 온 적이 없어서, 맛이 변했으면 어쩌나 고민했거든요.”

 “이전에 오신 적이 있었군요.”

 

 어쩐지 길을 잘 아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가더라.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네, 부모님이 여행을 좋아하셔서요. 저희가 다 큰 이후로는 두 분만 종종 여행을 가시기도 해요.”

 “그렇구나……. 저희 부모님은 집이 최고라고 생각하셔서, 여행은 잘 다녀본 적이 없어요.”

 

 민망한 웃음을 걸친 안나가 말했다.

 

 “그래서 팽 페르뒤와 집을 오갈 때만 기차를 탈 수 있었죠. 그라나 파다노에 있는 도서관에 취직한 뒤에는 집에 자주 안 가서, 기차를 탈일도 많이 없었네요.”

 “집이 어디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브레사올라예요. 리스트레토 끄트머리에 있는.”

 “브레사올라요? 중간에 한 번 들르는 걸로 기억하는데. 잘 됐네요, 간 김에 가족들 좀 보고 와요.”

 

 마카롱 하나를 입 안에 쏙 넣던 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급하게 입을 우물거려 꿀꺽 삼킨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편지로 자주 대화를 나누는 걸요.”

 “그래도 얼굴 보는 건 또 다르잖아요. 간 김에 저희도 인사드리는 게 좋겠죠?”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냉정하긴. 작게 투덜거린 안젤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부서지는 물보라가 햇살을 반사하듯 싱그러운 웃음에, 하는 수 없이 안나도 웃고 말았다.

 

 남은 음식들을 모두 해치운 그들은 마지막 남은 차까지 호로록 마시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값을 지불하고 다시 인파속에 휘말린 그들은 저 앞에서 어두운 얼굴로 음식을 으적으적 씹어 먹고 있는 프란츠와 알렌을 발견하고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이네?”

 

 사뿐사뿐 걸어가 프란츠의 어깨를 툭 친 안젤라가 놀리듯 말했다.

 

 그녀를 휙 돌아본 프란츠는 그녀를 씹어 먹을 수만 있다면 씹어 먹고 싶다는 얼굴로 노려보다가, 짓씹듯 말했다.

 

 “어디 있었던 거야?”

 “비넨슈티히. 저기, 왜 예전에 애프터눈티세트 먹다가 체해서-”

 “어딘지 알 것 같으니까 그만 말해.”

 

 미간을 좁히며 안젤라의 말을 끊어낸 프란츠가 그녀를 향해 마구 잔소리를 퍼붓는 사이, 슬그머니 안나의 곁에 선 알렌이 속삭였다.

 

 “그래서, 저희 빼고 먹는 점심은 맛있었나요?”

 “알렌,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쪼잔하네요.”

 “쪼잔하다니!”

 

 과장되게 상처받은 얼굴을 한 알렌이 심장 부근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답에 웃음을 터뜨린 안나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은 맛있었어요. 알렌이 없어서 그런가?”

 “안나! 진짜 너무하시네요.”

 

 그녀를 보며 투덜거리던 알렌은 결국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저희는 거리에서 파는 음식만 조금 사먹었는데 말이에요.”

 “왜요? 식당에서 먹지 않고.”

 “저 사람이랑 제가요? 단 둘이 식당을요? 농담이죠?”

 

 알렌이 질색하는 얼굴로 대번에 소리쳤다. 못 사먹을 건 또 뭐람. 안나가 멀뚱히 그를 바라보자, 그는 진저리치며 파르르 떨었다.

 

 “상상도 하기 싫네요.”

 “그 정도예요?”

 “물론이죠. 같이 서서 거리 음식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의 투덜거림을 가만히 듣던 안나는 잠잠히 웃었다.

 

 폭풍우처럼 쏟아 붓던 잔소리를 마무리한 프란츠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으로 자리를 옮기자 말했다. 안젤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잔소리를 들은 사람치곤 멀쩡한 얼굴로 서있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모양이었다.

 

 자리를 옮기자는 말까지 하며 비장하게 걸음을 옮겼지만, 그들은 방황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이리저리 걸음을 옮겨가던 이들은 이내 노래를 부르던 한 남자 앞에 멈춰 섰다.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닌 것 같은데……. 꽤 잘 부르네요.”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안젤라가 중얼거렸다.

 

 “[그러니 만물의 왕은 들어라. 당신의 피조물은 더 이상 그대의 말을 듣지 않으니, 그 누구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일 일은 없을 것이다.]”

 “[왕은 추락했다! 그러니 세상 만물아, 너희의 우두머리 자리에 올라서라.]”

 “[왕관을 써라. 가시에 찔려 신음하라. 사라진 왕의 자리에 올라, 그의 책임을 물려받으라.]”

 

 남자가 열창하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 씩 웃으며 뒤의 가사를 읊은 안젤라가 그의 노래를 단단히 받쳐 주었다. 흠칫 놀란 얼굴로 안젤라를 바라보던 남자는 얼떨떨한 얼굴로 노래를 이어 불렀다.

 

 “[그리하여 다시 왕관을 쓴 자, 만물의 왕이 되어 그들을 굽어보며 그 무게를 배우라.]”

 “[그리고 두려워하라! 또 다른 이가 당신의 자리를 빼앗으려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왕관을 지켜내라.]”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끌고 내려간 안젤라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가, 자연스레 다른 노래를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내 고뇌를 아는 이 아무도 없느냐.]”

 

 음산하게 내리깔린 목소리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다들 그저 나를 막아서려 들기만 하는구나!]”

 

 안젤라의 라벤더 색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순식간에 그녀는 여왕이 되었다. 왕관도, 드레스도 없었지만 모두가 그녀를 여왕으로 보았다. 거대한 위압감이 그들을 내리눌렀다. 안나는 잠시간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주변에 서있던 이들은, 어느새 축제답게 환호성을 지르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아아, 나의 신하들! 나의 충성스러운 신하들! 그대들은 어디로 가고, 간신배들만 남아 내 귀에 대고 검은 말들을 쏟아내는가.]”

 “[아닙니다, 폐하.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하 크리스티앙이 여전히 폐하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남자는 고요한 목소리로 안젤라의 노래에 맞춰 가사를 읊었다. 안젤라가 허공을 향해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움켜쥐듯 주먹을 쥐었다. 매섭게 다물린 입매를 넋 놓고 바라보던 안나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입까지 헤 벌리고 안젤라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모두 나를 떠나고, 그대만이 남았군.]”

 

 남자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 안젤라가 그의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남자는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크리스티앙, 그대는 나를 떠나지 마. 내 곁에서 나를 지지해다오.]”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오로지, 그대만이 나를 지지해. 이런 나를 과연 왕이라 부를 수 있는가?]”

 “[세상 만물이 폐하의 것입니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만물이 폐하의 앞에 무릎 꿇을 것입니다.]”

 “[입에 발린 말이라도 내게 희망을 주는군. 그대는 나를 떠나지 마. 그대가 나를 떠나는 순간-]”

 

 그녀는 고요히 손을 들어 그의 머리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그대의 목을 자를 것이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섬뜩한 무언가가 목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들을 바라보던 안나는, 누군가 치기 시작한 박수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열렬히 손뼉을 쳤다. 안젤라는 무대를 마쳤을 때의 고아한 미소를 띠고 우아하게 인사해보였다. 거리가 그녀의 무대였다. 남자는 그녀의 곁에서 얼떨떨한 얼굴로 따라 인사를 하다가, 천천히 들기 시작한 현실감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악수를 주고받은 그들이 서로의 일행을 향해 다가갔다.

 

 “어땠어요?”

 “정말, 정말, 정말 좋았어요! ‘여왕의 고뇌’ 맞죠?”

 “네. 오랜만에 부르는 노래라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부르기 시작하니 가사가 떠오르더라고요. 다행이었죠.”

 

 개구지게 웃은 안젤라가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머리 위로 축복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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